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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 문명과 신전 건축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9년 가을 <로마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그리스, 로마와 함께 고대 지중해 문명의 한축이었던 에크루리아(Etruria)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고대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지방에 있었던 고대문명이다.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리아아인이었다고 하며, 이탈리아 본토사람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출품된 유물들을 통해 에트루리아인들의 생활모습과 세계관, 종교관, 사후관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로마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


<반트(Vanth), 기원전 4세기말, 응회암, 라치오 투스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저승의 문지기이자, 사후 세계로 향하는 여정에서 죽은 이들을 호위하던 반트의 신상입니다. 짧은 키톤을 허리에 묶어 엉덩이를 가리고, 다리와 배를 드러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스듬히 기울어진 자세로 보아, 아마도 무덤 입구 양옆에 다른 비슷한 조각품과 대칭으로 서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지중해의 가려진 보물, 에트루리아(Historical and Geographical Context, Etruria)
기원전 10세기, 이탈리아의 중북부, 해안을 끼고 있는 광할한 땅에 새로운 문명이 탄생합니다. 로마에 흡수되기까지 약 1천년 간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문명, 바로 ‘에트루리아 문명’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의 여러 도시들과 교류하였으며, 화려하고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 언어 등을 발달시켰습니다. 에트루리아는 한 때 이탈리아 북부와 코르시카섬까지도 지배했지만, 오늘날까지도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인 신비의 문명이기도 합니다. 에트루리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소아시아의 리디아왕국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는 견해와 이탈리아 원주민이 세웠다는 견해가 있지만 아직도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에서 이들을 종종 ‘해적’으로 표기한 것을 보면, 아마도 활발한 해상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 인들은 에트루리아인을 가리켜 티르세노이(Tyrsenoi) 혹은 티레노이(Tyrrhenoi)라 불렀으며, 로마인들은 투크키(Tusci) 혹은 에트루스키(Etrusci)라고 불렀습니다. 이말은 오늘날 이탈리아 중부의 대포적인 지방인 ‘토스카나’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처럼 12개의 도시들이 연맹을 결성했으며 처음에는 왕들이 통치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어떤 왕조는 과두지배체제로 바뀌었다. 엘바섬의 철과 에트루리아의 구리를 바탕으로 금속세공업과 무역이 발달했으며 숙련된 세공기술이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 이집트, 카르타고 등과 무역활동을 했으며 이탈리아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지와 경쟁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농촌지역이었던 로마가 강성해지면서 세력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에트루리아 주요 도시>

12개 도시 연합체, 에트루리아(City States and City Associations)
기원전 8세기 후반, 에트루리아인들은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인들과 교류하며 번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동방화 시기에는 부유하고 세련된 귀족이 성장했지만, 그 후 아르카익 시기부터는 일정한 형태를 갖춘 정치 집합체를 구성하여 도시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도시 간에 다양한 연합이 형성되었고 점차 더 큰 연맹체가 등장했습니다. 볼시니(Vosini) 근방의 에트루리아 도데카폴리스(Etruscan Dodecapolis)는 가장 유명한 연맹 중 하나였는데, 이는 ’12개 마을 연합’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곳은 에트루리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였던 볼툼나 성소(Fomum Voltumnae)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지중해를 둘러싼 문화의 교류(Cultural Exchange in the Mediterranean)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대륙에 둘러싸인 바다, 지중해는 서구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바닷길을 이용해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정보와 상품이 오고 갔으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금과 보석을 수출하였고, 그리스는 올리브를 수출하였습니다. 에트루리아는 올리브와 포도주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치품을 만들어 교역했는데, 특히 엘바 섬의 풍부한 철자원은 에트루리아 번영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항해술과 금속 다루는 기술을 바탕으로 지중해의 여러 지역과 활발한 문화 교류를 이어 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오디세우스와 사이렌이 묘사된 유골함(Cinerary Urn Sarcophagus: Odysseus and the Sirens), 기원전 2세기 후반,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볼테라 네크로 볼리스의 거대한 돌방무덤에서 발견된 유골단지입니다. 호메로스가 쓴 그리스 서사 <오디세이>의 일화 중 사이렌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을 현혹하여 정신을 혼미하게 한 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이렌과, 이에 맞서 현혹되지 않으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원에게 귀를 막고 노를 젓게 한 뒤, 자신은 돛대에 묶어 난관을 헤쳐 나가려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코린트식 컵(Corinthian Kotyle), 기원전 6세기 전반,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코린트식 도기는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의 최대 무역품이었습니다. 코린트식 도기는 신화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꽃이나 종려나뭇잎 등 화려한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원전 7세기 후반 코린트식 도기가 에트루리아로 유입되었고, 에트루리아 현지에서는 코린트 양식의 장식무늬와 형태를 재현한 이른바 ‘에트루리아-코린트식 도기’가 탄생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암포라(Amphora)는 고대 유럽에서 쓰이는 특이한 형태의 용기이다. 액체와 고체를 막론하고 다양한 물품을 저장하고 운송하던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포도를 담는데 사용했다.


<2. 아테나식 흑화 암포라(Attic Amphora with Black Figures), 기원전 530~520,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반대편 모습>

에트루리아에서는 기원전 6세기 전반부터 그리스 아테네에서 생산된 도기를 수입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흑하식 도기가 유행했지만,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적화식 도기가 유행합니다. 아테네에서 생산된 도기 (아티카 도기)에는 주로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아내인 아리아드네가 포도가 가득한 곳에서 황소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3. 아테네식 적화 스탐노스(Attic Stamnos with Red Figures), 기원전 5세기 전반,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반대편 모습>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장면을 담은 스탐노스입니다. 한쪽면에는 디오니소스와 그를 따르는 여신 마이나데스가 양 옆에 서 있습니다. 다른 면에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두 명의 사티로스 사이에 헤라클레스를 묘사해 놓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에서는 고대 그리스처럼 많은 신전들이 세워졌지만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로마시대 기록이나 건물터, 신전모형 등을 통해서 신전은 사각형태로 지어졌는데 오늘날 지붕이 있는 목조건축물과 비슷한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동양건축물과는 달리 ‘人’자 형태를 하고 있는 방향을 정면으로 사용했으며 다양한 구성요소들로 장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트루리아 신전>

<에트루리아 신전의 구성요소>

  • 출입계단(Entrance stair): 주로 신전 건축물의 앞면에만 위치하는 계단
  • 포디움(Podium): 사각형의 높은 석조 기단
  • 프로나오스(Pronaos): 열주가 세워진 신전 입구
  • 토스카나 기둥(Tuscan colums): 에트루리아 건축의 전형인 토스카나 기둥은 그리스 도리아 양식의 단순화된 형식
  • 셀라(Cellae): 신상을 안치하는 내부 공간
  • 페디먼트(Pediment): 신전 앞면 위의 삼각형 부분
  • 중심 아크테리온(Main acroterion): 페디먼트의 가장 윗부분에 있는 장식물
  • 아크테리온 조각상(Acroterial statues): 지붕 장식물
  • 장식 기와(Antefixes): 지붕의 기와를 꾸미는 세로형의 건축요소

에트루리아 신전 건축의 흔적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건물의 기단을 제외하고는 풍화되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그의 저서에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사각형의 행태로 지어졌다. 너비는 길이보다 약간 짧고, 앞부분이 반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뒷부분의 반은 세 명의 신을 위한 세 개의 방으로 나뉜다.”고 적었습니다. 사제들은 정면 계단을 통해 사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신전 모양 유골함(Cinerary Urn in the Shape of a Temple), 기원전 3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피사 라파르벨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사각형 몸체에 경사진 지붕을 갖춘 작은 신전 모양의 유골함입니다. 매끈한 벽과 이오니아식 기둥 머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페디먼트는 개방된 형태로, 수평틀 위에 장식 기와가 일렬로 줄지어 있습니다. 페디먼트의 중앙 윗 부분을 장식한 장식판을 보면 불치의 작은 시전의 구조와 매우 유사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신과 인간의 안식처, 신전(The Temple)
신전은 하늘에 있는 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 땅 위에 지은 성스러운 건물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정면성이 중시되었습니다. 계단은 대부분 정면에 설치되었습니다. 돌기둥은 네 개의 기둥만으로 구성되며, 기둥 사이의 간경이 넓습니다. 지붕은 나무로 씌운 후 테라코타로 덮었습니다. 지붕의 마루나 페디먼트에는 큰 장식물이 세워졌습니다. 신전 안에는 다양한 신상을 모셨으며, 이러한 에트루리아 신전 구조는 로마의 신전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고문헌, 신전 터, 장식 기와, 신전 모양의 유골함 등으로 에트루리아 신전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1. 여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 2. 여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

<3. 두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 4. 남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장식 기와는 신전 지붕보의 가장자리를 보호하거나, 기와의 끝부분을 마감하는 테라코타 장식입니다. 무늬가 새겨진 이 장식 기와는 긴 키톤과 망토를 입은 세 명이 여성과 두쌍의 인물을 표현했습니다.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한 점의 장식 기와에는 왼편에 가슴을 드러낸 남성이 팔로 여성을 잡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 점은 남자 한 명만 남아 있는데, 현재는 다리만 모이는 어떤 인물과 싸우고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5. 멘르바가 묘사된 장식기와, 기원전 2세기 전반, 테라코타, 라치오 볼세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기다란 키톤을 입고 투구와 방패로 무장한 멘르바는 몸통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머리는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옆에는 망토를 두른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소조상 아래의 명문을 살펴보면, 이 인물이 치렌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치렌스는 시간과 운명을 관장하는 에트루리아의 여신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묘시된 장식판,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신전의 기둥 윗부분을 장식했던 판입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신하에 따르면,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연인 테세우스가 미로의 괴물을 죽이고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나, 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디오니소스는 그녀를 도와주며, 아내로 맞이합니다. 아리아드네는 나중에 여신으로 추앙받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7,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필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신전은 우리나라 사찰 불천처럼 나무로 만든 보에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다. 나무로 만든 부분에는 채색된 테라코타로 장식하였다. 불전에서 목재에 화려한 단청무늬로 장식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식물문양과 사람의 모습 등이 표현되어 있다.

<2~7,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필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화관을 두르고 그 위로 얼기설기 연결된 종려 나뭇잎이 마치 후광이 비치듯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여서의 머리는 기원전 5~3세기 에트루리아에서 널리 유행하던 양식입니다.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가 묘사된 페디먼트 장식판에 연결됐던 것으로 보아, 이 여성은 이오니소스를 따르는 마인데스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8~15.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16~20.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볼치 신전의 페디먼트(Pediment of Volci)
볼치 신전의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테라코타입니다.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나무로 제작된 보에 기와 지붕을 얹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부분은 채색된 테라코타로 마감하여 내구성을 갖추었습니다.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가 표현된 것으로 보아 디오니소스를 위한 신전의 장식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로마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

전시를 열며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한 축이었던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개최합니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지중해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역사가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태곳적 사람들”이라 여겼습니다. 베일에 싸인 그들의 기원과 언어, 종교는 에트루리아인들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탄과 매력을 자아냅니다. 로마 문화의 근간을 이루지만 아직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에트루리아. 이번 전시는 에트루리아의 문하를 살피며, 우리의 문화적 시야를 넓히고자 마련 되었습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약 300여점의 전시품에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세계관, 종교관, 사후 관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천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펼쳐진 에트루리아의 다양한 유물들은 죽어서도 현재의 삶이 이어지기를 바랐던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합니다. 세련되고 신비로운 고대 유럽 문명의 하나로, 로마의 근간을 이룬 에트루리아. 이제 그 문명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