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사후세계

에트루리아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가는 무덤 너머의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신화의 하데스와 유사한 것이다. 이런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를 비롯하여 지중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이집트인의 사후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의 삼국시대 이전 많은 부장품을 묻었던 한반도에서도 볼 수 있는 사후세계관이다. 무덤은 생전에 살았던 집의 구조를 모방한 것으로 넓은 방, 벽화, 무덤용 가구 등이 있다. 석관 위에는 죽은 사람의 석상이 있는데 연회의식에 참가한 모습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담는 그릇, 포도주 등 연회의식과 관련된 기물들이 많이 부장품으로 묻혔다.

<피네스키 무덤, 석관>

저승의 신과 사후 세계
에트루리아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종교의식과 의례행위들, 그리고 무덤과 매장지에 쏟은 정성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중해 지역의 다른 모든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사후 세계에서도 죽은 이의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저승은 지하의 신들, 영웅들의 영혼, 죽은 이의 그림자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출구가 없는 세계에서 괴물과도 같은 신령들의 존재는 인간이 가진 본연의 두려움, 죽음에 대한 비통함, 운명의 불가피함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피네스키 무덤, 석관과 부장품>

<피네스키무덤, 석관과 부장품>

<피네스키 무덤, 부장품>

<피네스키무덤, 부장품>

<피네스키무덤, 부장품>

<피네스키 무덤, 부장품>

피네스키 무덤
피네스키 무덤 내부를 일부 재현한 공간입니다. 피네스키 무덤은 1970년 볼테라의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의 에트루리아인의 삶을 담은 공간입니다. 무덤이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되어 에트루리아 무덤의 내부 구성과 장례 연회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의 연회
연회 의식은 에트루리아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타르퀴니아의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들, 항아리와 유골함 표면의 수많은 장식들, 무덤 내 부장품으로 묻힌 값비싼 도기, 청동, 귀중품 등을 보면 이러한 연회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과 관련하여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는 연회는 장례식장에서 열린 실제 연회를 재현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저승으로 떠나기 전,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열린 연회에 그의 영혼이 참석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연회는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그릇에 담긴 실제 음식과 포도주는 죽은 이를 위해 무덤 안에 놓아 두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도제관(Sarcophagus), 기원전 2세기 말, 테라코타, 라치오 투스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에트루리아의 도제 관은 점차 돌로 만든 석관을 대체하였습니다. 뚜껑에는 일반적으로 망자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연회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의복을 입고 비스듬히 혹은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제 관에 묘사된 돌고래는 사후 세계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망자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석관,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초, 응회암, 라치오 투스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사이에 제작된 석관의 뚜껑으로,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뚜껑에는 망자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연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스듬한 자세로 오른손에는 ‘파레라’라 불리는 잔을 들고 있습니다. 석관은 현재 바티칸 미술관에 전시 중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장례 행렬
애트루리아인들에게 사후 세계로의 여정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무덤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행을 위한 모든 것을 담아야 했기에, 죽은 이의 신분과 지상에서의 삶을 상징하는 귀중한 부장품을 함께 묻었습니다. 장례 풍습은 화장 또는 매장에 관계없이, 장소와 가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지만, 장례 의식만큼은 정해진 순서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장례 행렬이 이루어졌으며, 이어서 주검과의 대면, 놀이, 연회, 의례를 통한 추모 등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에는 부장품들을 안치하고 죽은 이를 매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의 신들 가운데 저승의 신으로는 반트(Vanth)와 카룬(Charun)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트와 카룬을 비롯하여 저성의 신들의 무덤 벽화나 석관, 유골단지 등에 조각이나 그림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는데 죽은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골함에 표현된 조각 등을 통해 에트루리아인들의 저승으로 여행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무덤벽화에 그려진 반트와 카룬>

저승의 문지기 반트(Vanth)와 카룬(Charun)
반트와 카룬은 에트루리아의 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승의 신입니다. 반트는 날개가 달린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횃불과 함께 죽은 이의 운명을 담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칼과 열쇠를 들고 팔에 뱀이 감겨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카론에 해당하는 카룬은 수염을 기르고 매부리코에 뾰족한 귀가 특징입니다. 짧은 튜닉을 입은 남성으로 묘사되거나, 저승의 문지를 상징하는 망치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 벽화에서는 카룬의 피부색이 그가 이끄는 죽은 이와 같은 푸르스름한 색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페르세포네의 납치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설화석고로 만든 유골함입니다. 유골함 뚜껑에는 유골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왼쪽으로 기대 누워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연회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유골함 정면에는 저승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납치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골함 측면에는 망자의 영혼을 이끄는 신, 반트와 카룬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바다 신령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설화석고, 토쇼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볼테라 귀족 페르디난도 인코트리가 1742년 진행한 조사에서 발견된 유골함입니다. 세로로 홈이 새겨진 두 기둥 사이에 여성의 형상을 한 바다 괴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다 괴수는 흩날리는 긴 머리에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등 뒤에는 외눈이 달린 한쌍의 날개가 넓게 펼쳐져 있고, 허리 아래로는 꼬리가 달린 바다뱀의 몸통을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그리핀과의 전투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응회암,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1858년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의 돌방무덤에서 발견된 유골함입니다. 석관 중앙에는 그리핀과 싸우는 두 명의 전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사는 방패, 창, 검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핀은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그리스 신화 속 괴수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핀은 아폴론의 보물을 지키고 금광을 수호한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망자를 인도하는 반트와 카룬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저승으로 향하는 여정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짧은 키톤을 입은 망자는 말을 타고 왼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반트는 오른손으로 말의 고삐를 끌고,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있습니다. 아래를 향하는 횃불은 저승으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뒤쪽의 카룬은 오른손에 칼, 어깨에 망치를 걸머지고 망자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저승의 신
에트루리아의 조각이나 그림에서 저승의 신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징합니다. 에트루리아의 묘비에는 종종 이러한 저승의 신들을 인간과 짐승의 본성을 함께 가진 존재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무덤 벽화나 석관, 유골단지에서 화병 장식에 이르기까지, 조각과 그림에 남아 있는 수많은 신령들은 저승으로 죽인 이를 안내하는 영혼 “호위대”의 존재를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의 문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반트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유골함의 뚜껑에는 망토로 온몸을 두른 망자가 누워 있습니다. 유골함 정면에는 저승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가족과 이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의 문은 저승을 상징합니다. 망자의 여정을 반트와 저승의 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 문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석관 중앙에 네마리 말의 고삐를 쥔 여신이 두 마리의 돌고래가 헤엄치는 파도에서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석관의 다른 쪽 측면에는 내세로 이어지는 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조는 저승으로 이어지는 문턱을 넘는 망자의 여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괴물들이 득실거리지만, 돌고래처럼 우호적인 동물도 있는 바다를 건너는 일과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바다 신령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마차를 타고 저승으로 가는 여정의 한 장면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왕관을 쓴 남성은 마차의 고삐를 잡은 채 여성의 어깨를 감싸고 있습니다. 말발굽 아래에는 상체는 인간이지만, 등에 날개를 달고 물고기 꼬리를 한 트리톤이 보입니다. 유골함의 오른쪽 끝에는 수염을 기른 저승의 신이 오른손에 막대기를, 왼손에는 뱀을 감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여행하는 부부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마차를 탄 부부가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마차 앞에는 말을 탄 사람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있으며, 뒤로는 어른 한 명과 아이 한명이 행렬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볼테라 지역 유골함에서만 보이는 특징입니다. 뚜껑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오른손에는 부채, 왼손에는 석류를 들고 비스듬히 누위 있는 여성을 묘사해 놓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로의 여행
볼테라에서 발견된 유골함은 매우 뛰어난 종교적 조각으로, 에트루리아인들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여정”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유골함은 죽음과 현세의 경계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기념물로, 여기에는 죽은 이가 알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해 길을 나서는 장면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죽은 이의 친구들과 가족은 작별인사를 하고, 죽은 이의 영혼은 반트와 카룬의 호위 하에 마차 혹은 말을 타거나 걸어서 마지막 여행을 시작합니다. 저승으로 이어지는 여러 개의 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 사에에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오두막모양 유골단지, 기원전 9세기말, 점토, 리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오두막 모양의 유골단지는 빌라노바 시기 초기(기원전 9세기) 네크로폴리스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이러한 모양의 유골단지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주거지를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초기 철기시대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타원형 혹은 직사각형 형태의 오두막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유골단지(Cinerary Urn), 유골단지, 기원전 8세기 전반, 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 리보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2. 물미, 청동, 3. 도끼, 청동, 4. 창, 기원전 8세기 전반, 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립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빌라노바 시대 우물 무덤에서 출토된 유골단지와 금속제 무기입니다. 이 무덤은 전사에게 바쳐진 것으로 금속제 무기는 사회적 역할과 힘을 상징합니다. 도끼와 창은 전사로서 그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볼테라 최초의 도시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옹관, 유골단지, 기원전 7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2. 스키포스(Skyphos), 테라코타, 3. 팔찌, 청동, 4. 창, 기원전 7세기, 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19세기 말 볼테라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골단지와 부장품입니다. 이 무덤은 초기 동방화 시기의 무덤으로, 망자의 유골을 올륨(ollum)이라 불리는 갈색 단지에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릇을 뚜껑으로 사용해 봉인한 유골단지는 커다란 화병인 돌륨 안에 넣었는데, 돌륨은 다시 거대한 우물에 넣어 석판으로 고정해 덮어 두었습니다. 철제 창을 함께 부장한 것으로 보아 무덤 주인은 전사로 추정됩니다. 청동 팔찌와 연회를 암시하는 그릇을 볼 때 전사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았던 인물로 여겨집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유골단지, 유골단지 뚜껑, 기원전 8세기 전반, 회반죽 혼합물,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2. 조개나팔, 조개껍데기, 3. 면도칼, 청동, 4. 쌍잔, 회반죽 혼합물, 5. 키아토스(Kyathos),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6. 향로,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7. 접시, 기원전 8세기 전반, 회반죽 혼합물,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8. 칼, 9. 칼집, 10. 창과 물미,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청동 투구를 뚜껑으로 사용한 유골단지입니다. 유골단지 안에서는 망자의 유골 외에도 개인 용품이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기, 화병, 작은 청동향로 등의 의례물품은 유골단지 주변에 정갈하게 놓여 있습니다.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망자는 전사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밖에도 나팔로 사용되었던 커다란 소라 껍데기가 한 쪽이 파손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 네크로폴리스 현황>

죽은 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는 그리스어로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시가지 외곽에 있는 고대 무덤군, 즉 고대의 공동묘지를 뜻합니다. 봉분을 뜻하는 투물루스(Tumulus), 즉 죽은자의 집은 그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처럼 꾸몄습니다. 죽어서도 평온한 삶을 계속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신구, 무기, 식기 등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생전의 모습을 벽화로 남겼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카노푸스 단지와 의자, 기원전 7세기 말, 청동, 토스카나 피사, 포조 알라 살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탁자, 청동, 주사위, 뼈, 눈 모양 부장품, 기원전 7세기 말, 뼈, 토스카나 피사, 포조 알라 살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포조 알라 살라 출토품
키우시의 한 귀족 가문의 무덤에서 발견된 카노푸스 단지입니다. 망자의 유골은 얇은 청동판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유골단지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골단지는 청동 의자 위에, 그 앞에는 연회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트라페자’라는 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청동 그릇, 불을 지피는 도구, 도기, 주사위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7세기 후반, 회반죽 혼합물, 움브리아 페루지아 카스랄리오네델라고,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7세기 말,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카노푸스단지, 기원전 7세기 말 ~ 6세기초,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인물 형상 카노푸스 단지
에트루리아의 유골단지는 단순한 반구형 뚜껑에 망자의 얼굴을 간략하게 묘사한 초기 형태에서 점차 뚜껑에 얼굴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카노푸스단지로 발전하였습니다. 인물 형상은 망자으 유골을 담는 단지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외형적인 모습에서 무덤 주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되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옥좌 위에 올린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를 위한 공간, 무덤
초기 빌라노바 시기의 가장 흔한 장례 방식은 화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례가 단지 화장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무 더미 위에서 화장을 마친 유골은 바리뚜껑으로 덮은 쌍원뿔 유골단지에 담아 보관하였습니다. 망자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였던 경우에는 단지의 뚜껑을 마치 인간의 형상과 같이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전시들을 위해 단지 뚜껑을 투구로 교체했는가 하면, 이후에는 의인화된 모습을 제현한 여러 기념물을 제작하여 덮자고 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묘표석, 기원전 6세기 전반, 응회암, 움브리아 오르비에토,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 묘표석은 주로 무덤 위나 무덤 방 입구 옆에 설치되었습니다. 묘표석의 형태는 매우 다양했는데, 망자의 성별, 연령,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랐습니다. 이 묘표석은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여성의 상체가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은 키우시 지방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눈물 흘리는 조각상과 비슷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묘표석, 기원전 6세기 후반, 대리석, 피사-리보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돌방무덤이 눈에 띄도록 무덤 위에 설치한 묘표석입니다. 묘표석 아래에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암양 머리를 장식해 놓았습니다. 이는 의식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상징합니다. 에트루리아 북부 해안에서 유행한 이러한 묘표석은 당시 이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 사람들로부터 대리석 가공 기술을 배워 제작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비석, 기원전 6세기 후반, 사암, 토스카나 피렌체 안텔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피에솔로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일명 ‘피에솔로석’이라 불리는 비석입니다. 이 비석은 사각기둥 형태로 상부에 종려 나뭇잎 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래에는 의자에 기댄 두 명의 남성이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대화하는 모습과 두 명의 젊은이가 주사위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2단으로 나누어 표현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묘포석, 기원전 6세기 초, 응회암, 라치오 불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사각기둥 형태의 묘표석으로, 앞면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단에는 고삐를 쥐고 말 옆에서 걷는 남자, 가운데는 스핑크스, 하단에는 등에 새를 태운 황소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옆면에는 실재의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연회 장면과 사자가 묘사된 유골단지, 기원전 6세기 말, 돌,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웅크리고 있는 아켈로스가 석관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한 유골단지입니다. 뚜껑은 경사진 지붕형태로 용마루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석관의 앞면에는 조문객들과 함께 있는 망자의 모습이, 뒷면에는 장례 의례를 암시하는 전차 경주가 묘사되어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적화 켈레베, 기원전 4세기 말, 적화식 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나체로 있는 두명의 여성이 양쪽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한 손은 엉덩이에 대고 있고 다른 손은 뿔 모양의 잔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잔은 신에게 포도주를 바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와 3세기 사이에 에트루리아 문화에 널리 퍼졌던 디오니소스 제사의 종교적 이미지와 관련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적화 켈레베, 기원전 4세기 말, 적화식도기, 움브리아 페루지아 몬테루체,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볼테라 지역의 전형적인 켈레베로, 목 부분의 한 면에는 날개달린 여신의 머리가 그려져 있고 도기 몸통에는 마이나테스가 포도 넝쿨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반대편 목 부분에는 청년의 머리가 두마리 말의 상체 사이에 그려져 있고, 도기의 몸통에는 제단 앞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사티로스가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유골단지로 사용된 켈레베
켈레베는 기둥 모양의 크라테르를 일컫습니다. 원래 크라테르는 연회 때 포도주와 물을 타는 데 사용된 그릇으로 그리스에서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조상의 시신을 화장한 후 남은 유골을 담는 용도로 자주 사용하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