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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금당실마을 반송재 고택

경북 예천군 용문면 삼금곡리 금당실마을에 있는 반송재(伴松齋) 고택이다. 조선 숙종 때 문신 김빈이 낙향하여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후 구한말 때 원래 살던집이 팔리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건물은 앞쪽에 ‘-‘자형 사랑채가, 뒷편에 ‘ㄷ’자형 안채가 있는 튼 ‘ㅁ’자형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영남 북부지역 고위직을 지낸 상류층의 살았던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집주인이 살고 있지 않고 비어 있어 금당실마을을 찾은 탐방객이 마을 고택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예천 반송재 고택>

대문채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건물이다. 대문 양쪽에는 작은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문채>

<안쪽에서 본 모습>

<사랑채 앞 마당>

사랑채는 ‘-‘자형 건물로 앞면 5칸반 규모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 앞에는 문짝을 달아 마루방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왼쪽 온돌방 앞에 작은 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채>

<왼쪽 온돌방>

<뒷편에서 본 사랑채>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안채는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양쪽에 날개채를 달아내어 ‘ㄷ’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안채>

안채는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양쪽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른쪽 날개채는 온돌방을, 왼쪽 날개채는 온돌방과 부엌으로 되어 있다.

<안채와 안마당>

<대청마루>

<부엌이 있는 날개채>

<중문 안쪽에 있는 곳간채>

반송재 고택
반송재(伴松齋) 고택은 조선시대 문신 갈천 김빈(1621~1694)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조선 숙종 6년(1680) 경에 처음 세웠다. 210여년 뒤 구한말의 대신 이유인이 99칸 대저택을 지으려고 2,000여 평의 부지를 매입할 때 그 땅에 있던 갈천 고택도 함께 사들였다. 갈천 고택은 고종 36년(1899)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고, 이유인의 동생인 이유직이 살았다. 그 후 1940년 김빈의 아우인 반송헌 김정의 10대 주손 김환명이 이를 되찾아 반송헌의 종가로 삼으면서 ‘반송재’라 이름 붙였다. 고택의 전체적인 구조는 튼 ‘ㅁ’자형으로, ‘ㄷ’자형의 안채와 ‘-‘자형 사랑채를 남쪽으로 두고 곳간채는 동쪽으로 두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고, 사랑채는 정면 5칸반,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랑채 가운데 있는 2칸의 대청은 앞에 장지문 네짝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각 방의 여러 종류의 창호 형식, 창문틀의 구조 수법 등이 섬세하고 우아하다. 반송재 고택은 영남 북부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배치와 평면 구성법을 지니고 있어 조선후기의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