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 관아,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내아(內衙)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는 지금의 인천 부평구, 계양구, 부천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행정기관으로 읍치는 계양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부평도호부는 서울 한강이남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로 15개면이 부평도호부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부평이 인천에 속해있지만 원래는 인천과는 구분되는 지역으로 사실상 부천과 같은 생활권이었다 할 수 있다. 구한말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부평의 중심이 현재의 부평역과 부천역 부근으로 바뀌었지만 부평과 부천의 중심지는 계산구 부평초등학교가 있는 옛 부평도호부 청사 주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옛 부평도호부 청사가 있었던 읍치에는 객사, 동헌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아로 추정되는 건물이 부평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다. 일제가 구한말에 초등학교를 설치하면서 관아 건물 중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객사를 초등학교 건물로 바꾼 경우가 많은데 부평도호부는 대부분의 청사가 허물어지고, 내아 건물만 변형된 채로 학교 운동장 구석에 남아 있다. 부평도호부에서 관장하는 중등교육기관인 부평향교는 계양산 아래에 남아 있다.

부평도호부 청사
고려시대 의종 4년에 안남도호부, 고종2년에 계양도호부, 조선시대 태종 13년에는 부평도호부를 설치했다. 기록에 의하면 객사, 동.서헌, 삼문, 근민당, 좌.우익랑, 동.서책방, 사령청, 향청, 포도청, 훈무당, 부창 등 여러채의 청사 건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부평초등학교를 지으면서 대부분 철거하여 현재는 내아만 남아 있다. 원래 “ㄱ”자형 건물이 있었으나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자형 건물로 바꾸어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도리집이 됐다. <출처:인천시청>

SANYO DIGITAL CAMERA 조선시대 경기도 한강이남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 중 하나였던 부평도호부 청사가 있었던 부평초등학교이다. 이곳에는 객사, 동헌 등 많은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내아로 쓰였던 건물만이 운동장 한쪽에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평도호부 내아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부평초등학교 운동장 동쪽편에 있다. 운동장 입구에는 관청 부근에 많이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평도호부 내아 건물. 부평부사가 거처했던 살림직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원래 우리나라 건물에서는 짝수를 잘 쓰지 않는데 이 곳은 ‘ㄱ’자형 건물을 변형해서 그런지 6칸짜리 건물이 만들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세워졌다. ‘ㄱ’자형으로 된 살림집을 변형한 것으로 일반적인 한옥이나 관아 건물에서 잘 보이지 않는 건물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앞에는 정조대왕 잠시 들렀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욕은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역대 임금중에 공식적으로 부평을 경유해간 임금은 정조대왕 한 분이다. 정조 21년에는 김포에 있는 장릉을 참배하고, 부평.안산을 거쳐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였다. 이때 정조는 부평에 머물며 활을 쏘고 욕은지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출처:인천시청>

SANYO DIGITAL CAMERA부평도호부 내아 건물

SANYO DIGITAL CAMERA부평초등학교는 지금의 행정구역상 부평구에 있지 않고 계양구에 있다. 초등학교 건물 앞에 고목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곳에 객사나 동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부평부사를 지낸 관리들의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