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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가야 본성] 가야의 무기

삼한시대 가야지역은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점차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금관가아와 아라가야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으며, 5세기와 6세기에는 대가야와 아라가야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다. 가야 고분에서는 칼.창 같은 철제 무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특히 용과 봉황 등을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지배자의 신분과 내부 결속을 다지는 상징물로 추정된다. 가야는 풍부한 철자원과 우수한 철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철기 만드는 도구, 4세기, 1. 끌,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2. 집게, 김해 퇴래리 소업I-1호묘, 6호묘, II호묘, 국립김해박물관>

<3. 망치, 김해 퇴래리 소업I-1호묘, 6호묘, II호묘, 국립김해박물관>

<3. 망치>

철기를 만드는 도구는 왕을 포함한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의 무덤에서 나옵니다. 이는 철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집단의 성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기술은 요즘의 첨단기술에 해당하여 특정 집단이 보안을 유지하며 전승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덩이쇠, 5세기, 고령 지산동 75호묘, 대가야박물관>

덩이쇠는 다른 용도의 철기로 만들어 쓰기도 하고, 화폐로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가야의 지배자는 무덤 바닥에 덩이쇠를 깔아서 경제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가야는 여러 나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덩이쇠의 모양이나 규격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덩이쇠, 4~5세기, 김해 대성동 94, 95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함안 도항리 1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덩이쇠를 활용한 철기류의 재현품>

<화살통 꾸미개, 5세기, 고령 지산동고분, 국립중앙박물관>


<봉황장식 큰칼, 합천 옥전 M3호묘, 5세기, 경상대학교 박물관>

<봉황장식>

<종장판 투구, 5세기, 옥전 M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말머리 가리개,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새를 장식한 미늘쇠는 아라가야와 대가야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미늘쇠의 용도에 대해서는 특정 집단의 군사적 상징물이라는 설과 장례용구의 하나라는 설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미늘쇠, 4~6세기, 합천 옥전 M6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함안 도항리 1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가야의 철
고대사회에서 철을 다루는 기술은 군사력과 직결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첨단기술이 군사기술에 먼저 사용되는 것과 같습니다. 철은 동(銅)과 달리 두드려서 얇게 펼 수 있고 두들겨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락국은 철 수출의 중심지로, 일정한 크기로 만든 도끼와 덩이쇠는 지금의 돈처럼 쓰였습니다. 김해 퇴래리 소업 유적에서는 철기를 만드는 전문 장인의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중 1호 무덤에서 고리자루 큰칼이 출토되어 당시 철기를 만드는 장인의 신분이 높았음을 말해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원료인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낸 후 생산된 철로 도구를 만들어야 한는데 상당한 수준의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김해에는 제철기술을 갖춘 장인들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생전에 사용했던 망치와 큰못 등을 같이 묻었다. 부장품으로 고리자루 큰칼이 같이 묻혀 있어 이들이 상당히 높은 신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제사토기, 4세기, 김해 퇴래리 소업유적 I-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제사토기>

철 제작 장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그릇입니다. 그릇받침과 굽다리 접시 등이 가락국의 양식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고리자루 큰칼, 4세기, 김해 퇴래리 소업유적 I-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주인공의 신분을 나타내는 정치적 상징물입니다. 큰칼을 소유한 자는 결코 낮은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1.쇠투겁창, 화살촉, 도끼, 낫>

높은 신분을 가진 자가 사망하면 기본 조합으로 구성된 부장품을 넣었습니다. 기본 조합 철기류는 쇠투겁창, 화살촉, 도끼, 낫입니다. 이 철기류를 소유한 자는 높은 신분이었음을 나타낸 듯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철기 만드는 도구, 4세기, 김해 퇴래리 소업유적I-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무덤 주인공의 직능을 말해주는 부장품입니다. 삼국시대에 철을 다루는 장인은 요즘의 첨단 기술을 취급하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가야의 제철장인
철의 생산은 광석의 채취에서 제련 및 정련에 이르는 모든 제철기술을 갖춘 전문 집단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제철작업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김해 퇴래리 소업 유적은 가락국에서 제철기술을 갖춘 전문 장인의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이 무덤에는 장인이 생전에 사용한 망치와 큰못 등을 부장했습니다. 이 중 1호 무덤의 주인공은 신분을 보여주는 고리자루 큰칼과 철기를 제작하던 도구를 모두 소유하고 있어 비교적 높은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 장인의 신분이 높은 것은 제철기술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관리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가야는 초기에 쇠단검, 쇠투겁창, 쇠꺽창 등을 사용했으며, 2세기 후반부터 쇠장검, 고리자루큰, 슴베있는 쇠화살촉 등이 추가되었다. 3세기 후반부터 관통력이 향상된 단면 마름모꼴 쇠투겁창과 목 있는 쇠화살촉이 무기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며 5~6세기에는 금은으로 장식한 큰칼이나 화살통 등이 유행하였다.

<화살촉 다발,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화살통 꾸미개, 5세기,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화살통 재현품, 고령 지산동 고분>

<큰칼, 4~6세기, 1. 함안 도항리 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2.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3,7. 부산 복천동 28호묘, 복천박물관, 4. 함안 도항리 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5. 고령 지산동 73호묘, 대가야박물관>

<6. 고성 송학동 1C호분, 동아대학교 박물관>


<쇠투겁창, 4~6세기, 1. 고성 내산리 34호묘, 국립진주박물관, 2. 함안 도항리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4. 고령 지산동 75호묘, 대가야박물관, 5.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6. 남원 월산리 M1-A호묘, 국립전주박물관>

<3. 김해 여래리 II지구 4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화살촉, 4~6세기, 7. 고성 내산리 21-1호묘, 34호묘, 국립진주박물관>

 <8. 고령 지산동 30호묘 주변 I지구 3호묘, 국립대구박물관, 11. 함안 도항리 8호묘, 54호묘, 마산 현동 6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0. 부산 복천동 38호묘, 복천박물관,>

가야의 무기
가야의 무기는 다양합니다. 백병전에 사용하는 칼, 검 그리고 철창이 대표적입니다. 칼은 무기이지만, 화려한 장식으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철창은 가야를 대표하는 주요한 무기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4.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