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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금관가야 지배층 무덤들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대성동 고분군(사적)이다. 금관가야 무덤들로 길이 약 300m, 높이 20m 정도의 낮고 경사가 완만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데  다른 가야 고분과는 달리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조성된 무덤들로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구릉 정상에는 4~5세기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중국제 거울, 북방계 말갖춤, 방패형동기, 호랑이모양 띠고리, 청동솥 등이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은 당시 한.중.일 문화교류에서 금관가야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대성동 고분군은 구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해반천 동쪽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평지 또는 해발 20m의 낮은 구릉꼭대기에 크지 않은 규모의 무덤들이 밀집해 있다. 금관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의 무덤(수로왕릉)이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무덤들이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지 북쪽에는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남쪽에는 대성동박물관이 있다. 금관가야 중심부인 봉황대 유적(사적)이 남쪽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위성사진>

<서쪽 해반천 옆 도로에서 보이는 대성동 고분군>

<북쪽에서 본 모습>

유적지 북쪽 평지에서 발견된 29호분과 39분은 발굴되었던 상태로 복원하여 노출전시관으로 조성해 놓고 있다. 29호 무덤은 3세기 후반에, 39호분은 이보다 100년 늦은 4세기 후반에 조성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29호 무덤은 가야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회청색의 도질토기, 순장, 달개가 달린 금동관, 오르도스형 청동솥 등이 한반도 남부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다.

<노출전시관>

<노출전시관 내부의 29호분과 39호분>

<김해 대성동 29호 무덤(나무덧널 무덤), 3세기, 국립김해박물관>

김해 대성동 29호묘(3세기)
김해 양동리 고분이 2세기 가락국(구야국)의 중심이었다면 3세기에는 김해 대성동으로 중심이 이동합니다. 대성동에서 확인된 첫 번째 왕의 무덤이 29호묘입니다. 내부에서는 북방의 오르도스동복, 도질토기, 순장, 달개가 달린 금동관 등이 처음으로 확인이 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39호 무덤 부곽과 29호 무덤>

<29호 무덤>

노출전시관
노출전시관은 대성동고분군에서 발굴된 무덤 중 29호분과 39호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 전시하여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축조 방법과 유물 부장상태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29호분은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왕묘로 추정되는 주요한 무덤이며 청동솥, 최초의 가야 도질토기 등 중요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39호분은 이보다 100년 정도 늦은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29호분을 일부 파괴하고 축조하였다. 이러한 무덤간의 중복축조는 대성동고분을 비롯한 금관가야 무덤축조 방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세력교체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대성동고분군의 무덤들은 대부분 구릉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다. 노출전시관 뒷편으로는 23~24호 무덤(4~5세기)이 발굴조사된 구역이 있다. 이곳에서는 사신문양거울, 굽은칼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노출전시관 뒷편>

<23호, 24호 무덤>

이곳은 2기(23, 24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구역으로, 사신문양거울, 굽은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곳입니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사신 격자무늬 거울, 4세기, 2. 김해 대성동 23호묘, 김해 양동리 44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동의대학교 박물관>

<굽은 칼, 삼국시대 5세기, 김해 대성동 무덤>

구릉 정상부 바로 아래에는 18기(5~22호)무덤이 발굴된 구역이 있다. 호랑이모양띠고리, 방패꾸미개 등의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5~22호 무덤이 발굴된 구역>

이곳은 18기(5~22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구역으로, 호랑이모양띠고리, 방패꾸미개 등의 유물이 출토된 곳입니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5~22호 무덤>

<바람개비모양 동기, 4세기, 1. 대성동 88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2. 김해 대성동 1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일본 고분시대의 문물로 방패나 화살통에 붙인 청동 꾸미개로 추정됩니다. 일본 기나이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가나가와현 오즈카 고분, 서로는 후쿠오카현 마루쿠야마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8. 가락바퀴모양 석제품, 4세기, 대성동 18호묘, 8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왜계(하지키) 토기, 4세기, 1. 김해 대성동 13호묘, 2. 김해 구지로 33호묘, 3. 마산 현동 8호묘, 4. 김해 부원동유적, 국립김해박물관>

구릉 정상부에는 4기(1~4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구역이 있다. 판갑옷, 재갈, 물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5호 무덤>

이곳은 4기(1~4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구역으로 판가봇, 재갈, 물미 등의 유물이 출토된 곳입니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갑옷, 4세기,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말머리 가리개, 4~5세기. 1. 김해 대성동 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재갈, 4~5세기, 3.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4. 함안 도항리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3. 통모양 동기, 4세기, 김해 대성동 2호묘, 39호묘, 88호묘, 9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일본의 경우 44기의 무덤에서 59점이 출토되었습니다. 기나이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사이타마현 구마노신사 고분, 남으로는 구마모토현 시미즈 고분에서 출토되는 등 넓은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리목걸이, 4세기, 3,5. 김해 대성동 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군 남쪽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대성동박물관이 있다.

<대성동박물관>

<박물관내부에서 재현해 놓은 가야시대 기마무사>

<청동 투겁창, 2~4세기, 2. 김해 양동리고분, 대성동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청동 투겁창은 일본 북부 규슈를 중심으로 발견되며, 제사와 의례 행위를 하기 위해 무기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반면 일본의 심장부인 기나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제사와 의례용으로 청동 방울을 제작하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청동그릇, 4세기, 1.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중국 서진의 청동그릇입니다. 유사한 것들이 삼연을 비롯한 북방에서도 확인되어, 서진과의 직접 교류, 삼연을 통한 유입 등 유입경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청동솥, 4세기, 대성동 47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재갈, 4세기, 4.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말방울, 4세기, 5.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삿갓모양 말방울은 대성동유적에서만 출토되었습니다. 중국 조양(朝陽) 원대자 벽화 무덤, 안양(安陽) 효민둔 154호 무덤 등에서 출토되어 북방의 유목국가(모용선비)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허리띠 꾸미개, 4세기, 1. 김해 대성동 88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가락국 지배자의 무덤에 부장한 중국식(서진) 허리띠 꾸미개입니다. 중국에서 두 마리의 용을 장식한 허리띠 꾸미개는 황제나 왕족이 착용한 최고급 위세품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금동말띠 꾸미개, 4세기, 2,4,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말머리 꾸미개, 4세기, 3.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유리잔, 4~5세기, 1. 김해 대성동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2. 경주 금관총, 국립경주박물관(비교자료)>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보물)>

<유리목걸이, 4. 김해 대성동 88호묘, 5, 김해 대성동 3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왜계무기, 3~4세기, 김해 양동리, 대성동유적,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4. 창, 5. 돌화살촉, 6. 청동촉>

<철기 만드는 도구, 4세기, 1. 끌,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덩이쇠, 4~5세기, 김해 대성동 94, 95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굽다리접시, 7.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신라토기, 4. 김해 대성동 73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5. 합천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빗모양 장신구, 4세기, 5.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6. 손칼, 4세기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사슴뿔 머리장식, 4세기, 김해 대성동 91호묘, 대성동고분박물관>

<공원 광장에 있는 조형물>

대성동고분군 무덤배치의 특징
본 대성동고분군에서는 2차에 걸쳐 분묘들이 중복축조되었음이 판명되었다. 제1차는 3세기말, 제2차는 5세기 초의 일이다. 이러한 분묘의 중복축조는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유례가 없는, 김해지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제1차 분묘중복축조는 이 무렵 김해로 갑자기 대거 유입된 순장.도질토기.북방계 갑옷과 투구.기승용말갖춤 등의 북방문화를 근거로, 이 문화를 소유한 북방주민이 김해로 이주함에 따라, 전시기의 분묘를 파기하고 그들의 무덤을 축조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즉, 특정 북방주민의 이주설이다. 그 외 분묘중복은 친족관계에 있는 분묘들이라는 견해와 묘역부족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제2차 분묘축조현상은, 이후 대성동고분군을 비롯하여 김해지역에서는 지배자의 무덤이 축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금관가야의 쇠퇴를 이해하는데 극히 중요하다. 이곳 노출전시관의 부지에서도 많은 무덤들이 중복축조되어 있었으며, 29호분과 39호분의 목곽묘도 그러한 중복현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김해시청, 201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14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0년
  4.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