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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현 관아,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관아 건물

용인현(龍仁縣)은 용인 지역에 설치된 조선시대 행정 구역으로 종5품 현령이 고을 수령이었다. 그 범위는 양지군과 죽산군이 합쳐진 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읍치는 오늘날 용인시 마북동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용인 한국민속촌에는 옛날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 관아건물을 복원해 놓고 있다. 용구현은 처인현과 통합되기 전인 고려시대 고을이름으로 용인현을 잘못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아는 국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고을을 방문한 관찰사나 중앙 관료가 묵었던 숙소인 객사를 중심으로 고을수령이 근무하던 동헌, 살림집인 내아, 형방청을 비롯해서 아전들이 근무하던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곳 민속촌에서는 객사를 비롯하여 아전들이 근무하던 건물들은 복원해 놓고 있지는 않다. 또한 용인현은 현(縣)단위 고을 규모로 종5품인 현령이 고을 수령으로 있었던 지역인데, 현재 복원된 관아 건물들은 실제보다 규모나 면적에 있어서 약간 과장된 느낌을 주고 있는 규모이다.

관아 아문(衙門)과 행각

용구현 관아 출입문인 용구아문은 지방 행정단위 중 고을규모가 컸던 고을의 아문을 복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문으로 이루어진 출입문 위에 문루를 올려놓아서 웅장해 보이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아문 양쪽으로는 하급관료나 관아소속 노비들이 머물렀던 외행랑이 들어서 있다.

관아는 공청이라고도 하며,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외관직의 정무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지방행정의 단위 부서인 주,군,현에는 각기 관찰사, 부사, 군사, 현감, 현령 등 지방장관과 함께 공청이 있었다. 이곳 관아는 정문과 외행랑, 중문과 내행랑, 정청인 동헌과 내당, 그리고 내당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후면에 옥사가 부설되어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용인민속촌에 복원해 놓고 있는 관아 건물>

용구현 관아를 복원해 놓고 있다고 설명해 놓고 있는데, 용구현은 고려시대 용인지역 고을이름이며, 관아건물의 규모 또한 고을 규모에 비해서 큰 편이다.

<용인현 관아 아문>

이층 문루형식으로 되어 있다. 문루는 화감암석재로 만든 기둥위에 문루를 올려놓고 있다. 문루에서는 보통 고을수령이나 이 곳을 방문한 인사들이 관아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있다.

<외행랑>

아문 양쪽으로는 외행랑 건물이 쭉 들어서 있다. 실제 관아건물보다는 외행랑을 과장되게 만든것으로 보인다.

<아문과 중문 사이의 마당>

행랑에는 아전(衙前)들이 근무하던 방들과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랑>

행랑에는 고을수령이 사용하던 교통수단인 가마, 교자, 말을 보관하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종5품에 해당하는 용인현령은 고위직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교자나 가마를 타지 않고 지역을 돌아볼 때는 말을 타거나 걸어 다녔을 것으로 보인다.

<행랑>

아문 왼쪽편에 아전(衙前)들이 근무하거나 민원인들이 대기하던 방들이 보인다.

<아전들이 근무하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는 대청마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부엌>

<온돌방>

외행랑 건물에 온돌방이 여럿이 있기는 한데, 실제 조선시대 관청건물에서는 온돌방을 많이 두지 않고 대청마루가 많았던 것 같다.

<중문>

용인 현령이 업무를 보는 동헌으로 들어가는 중문인 등원문. 삼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동헌 입구에서 본 아문과 행랑>

동헌, 용인 현령이 근무하던 공간

동헌은 지방수령이 근무하던 지방장관이 공사를 처리하는던 공청으로 관아의 중심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종2품이 수령인 부(府)에서 종5,6품관이 수령인 현(縣)까지 다양한 규모의 고을이 존재했었다. 고을 수령의 명칭 또한 다양해서 부사, 목사, 군수, 현감, 현령 등 직위에 따른 이름들이 있었으며, 호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장소인 동헌 건물은 가운데 대청마루로 된 정청이라는 넓은 공간이 있고, 그 양쪽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한쪽은 고을수령 집무실이라 할 수 있고, 다른 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이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동헌 건물은 옛날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 관아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동헌 건물규모는 앞면 7칸으로 가운데 3칸은 공적인 업무를 보던 정청이며,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는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한칸의 폭이 넓게 만들어서 건물규모가 상당히 크게 보인다.

<동헌>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용인현) 동헌을 복원했다고 하는 한국민속촌 관아 동헌건물이다.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은 칸사이의 폭이 넓어서 상당히 크게 지은 건물이다. 외국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는지(?) 실제보다 약간 크게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왼쪽에서 본 모습>

동헌 건물은 정청으로 사용하는 가운데3칸 대청마루와 양쪽에 온돌방 2칸씩을 두고 있다. 현령급 고을은 일반적을 5칸 정도 규모이지만 7칸 규모로 상당히 큰 편이다.

<대청마루>

대청마루로 되어 있는 가운데 3칸을 정청이라고 부르며, 고을 수령이 하급관리들과 공식적인 회의를 하거나 재판 등 공식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온돌방>

동헌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한쪽편은 손님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쪽 온돌방>

고을수령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고을수령은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겨울 난방비 등의 문제로 앞면 1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분합문>

<형구>

동헌 건물을 복원할 때 빠지지 않는 형구들이 동헌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고을 수령에 대한 선입견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방위를 표시한 표지석>

<중문과 내행랑채>

등원문을 들어서면 양쪽에는 내행랑채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들은 아전들이 근무하던 방과 부엌,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행랑채 대청마루에 전시된 하급관료들의 모자>

부근당(付根堂)은 지방장관이 백성들을 위한 원활한 정무와 자신의 영달, 관내의 태평과 풍작 등을 기원하는 신당으로 지방장관이 새로 부임을 해 오면 가장 먼저 이 신당에 들러 참배를 한다. 부근당에는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 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시고 있는 무속신앙과 결합된 관청내의 독특한 신앙형태이다. 무신도와 남근석, 제단이 구비되어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부근당 가는 길>

동헌 뒷편에는 부근당(付根堂)이라는 사당이 있다. 부근당은 관아에 설치된 사당으로 무속신앙이 관청과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신다.


<부근당>


<부근당 내부>

<동헌 옆 옥사로 들어가는 출입문>

<옥사>

한국민속촌 옥사(獄舍)는 우리나라 사극에서 많이 등장했던 장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보통 옥사는 형방청 건물과 같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현단위 작은 고을에서는 큰 옥사를 두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또한 약간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옥사 내부>

<형구를 차고 있는 중죄인>

<여자 옥사>

<일반 옥사>

<옥사에 전시된 형구들>

내아(內衙), 지방 수령의 거처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지방 수령 사적인 거처로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을 내아 또는 내당이라고 부른다. 내아는 원래 고을 수령의 부인과 자녀들이 거처를 하는 곳이지만, 조선시대에 실제로 고을 수령이 가족과 함께 부임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며 주로 단신으로 부임하거나 나이가 어린 자식이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림집인 내아 건물은 대부분 소박하게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내아에는 관청에  예속된 기생인 관기나 노비인 관노들이 함께 거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된 내아 건물은 앞면 5칸반의 규모가 큰 건물에 내외행랑채를 두고 있다. 본채 건물은 특이하게 ‘ㅓ’형 건물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데, 아마도 구한말에 많이 지어졌던 양반집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청인 동헌과는 복도와 협문으로 연결되며 그 나름의 행랑이 있어 고간과 주비의 처소가 갖추어져 있다.

<내아>

조선후기 구한말 양반집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민속촌 내아 건물 본채. 앞면 5칸반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 ‘ㅓ’형 구조를 하고 있다.

<누마루>

구한말 양반집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누마루. 사랑채와 붙어 있으며, 정자의 기능을 하고 있는 구조로 관아 내아 건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구조이다.

<누마루 내부>

<복도>

정청인 동헌과는 복도와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온돌방>

고을 수령 가족들이 거처하는 방으로 온돌방이 3칸에, 사랑방과 연결된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고을수령의 거처는 대가족이 사는 살림집이 아니기 때문에 방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안방과 사랑방 사이의 대청마루>

일반적인 살림집이 아니라서 그런지 대청마루가 중앙에 개방된 모습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안방 내부의 모습>

<행랑채>

이 곳 내아에는 본채와는 별도로 ‘ㄱ’자형으로 생긴 행랑채가 있다. 관아에 소속된 노비나 기생들이 머물던 공간으로 집안 살림과 방문객을 식사 준비 등을 하는 장소이다.

<행랑채에 있는 1칸짜리 방>

<방과 방 사이 작은 대청마루>

<부엌>

관아를 방문하는 방문객이나 관아에 근무하던 사람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일반 살림집에 비해서 부엌의 규모가 큰 편이다.

<내아 출입문이 있는 내행랑채>

<출입문>

바깥쪽에서 내부를 직접 볼 수 없도록 꺽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 내아 외행랑채>

주로 창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물 등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통>

내부에는 다양한 술통들이 보인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많았던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