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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중국고대청동기] 청동 예기, 신을 위한 그릇

예기(禮器)는 고대 중국에서 제사, 연회, 전쟁 등의 의례적 행위에 사용되는 기물로 사용자의 신분, 권력 등을 나타내기 위해 엄격한 위계적 제한을 두고 있다. 주례(周禮)에서 예기는 종교와 정치의 결합체였다. 초기에는 옥(玉)이 주술적 효과 등의 이유로 중요시 되었으며 상나라와 주나라 때에는 정치와 종교가 발달하면서 옥은 왕권의 상징으로 발전했으며 점점 더 많은 예기들이 청동으로 주조되었으며 진한(秦漢) 이후 청동기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10. ‘ _부정’글자가 있는 고기 삷는 세발솥(_부정정_父丁鼎 Ding), 서주 전기 기원전 11세기 ~ 10세기 전반>

새 모양 다리가 몸통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세발솥입니다. 내부에 “_父丁”글자가 있습니다. “_”라는 사람의 아버지(父)가 정(丁)일에 사망하였음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상나라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예기(禮器)는 사용하는 경우에 따라 종기(宗器), 여기(旅器), 잉기(媵器)로 나눈다. 종기는 제사를 올릴 떄 사용하는 것을, 여기는 전쟁을 위해 원정을 떠날 떄, 잉기는 혼례를 올릴 때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종류롸 기능면에서 청동 예기는 조리하는 그릇(취기炊器), 음식담는 그릇(식기食器), 술담는 그릇(주기酒器), 물을 담는 그릇(수기水器),악기(樂器)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고대 청동기의 종류
모양도, 이름도 다양한 청동기 어디에 썼을까요?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쓰임새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 술그릇, 음식그릇도 있고 물그릇도 있습니다. 그릇을 가열해야 하는 술 데우는 그릇과 음식을 만드는 그릇은 밑에서 불을 피울 수 있도록 바닥에 다리가 붙어 있습니다. 술잔은 손으로 들기 쉽게 손잡이를 달거나 입을 대기 편하게 주둥이를 만들었습니다. 물 따르는 그릇은 주둥이와 손잡이를 만들어 물을 쉽게 따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술그릇의 종류>

<음식그릇, 물그릇>

음식을 바취는 그릇에는 조리하는 그릇(취기炊器)와 음식담는 그릇(식기食器)가 있다. 조리하는 그릇으로는 세발달린 솥인 정(鼎, Ding)과 력(鬲, Li), 찜기인 언(甗, yǎn),  네발달린 솥인 방정(方鼎, Fang Ding), 굽다리솥(복鍑, Fu)가 있으며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는 수(盨, Xu),  궤(簋, Gui), 보(簠, Fu),  두(豆), 돈(敦, Dui), 화(盂), 조(俎, Zu),  포(鋪, Pu) 등이 있다.

음식 바치는 그릇
음식 바치는 그릇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라 말기부터 등장한 고기 삶는 세발솥(정鼎)입니다. 이 세발솥은 거의 2000년 가까이 제작된 중국의 대표 청동예기입니다. 이외에도 곡식 담는 그릇(궤簋)이나 굽다리 접시(두豆) 등이 상나라 때 등장하여 서주시대까지 유행합니다. 한편 수량은 적지만 춘추시대 제후국 중에는 북방 유목문화의 영향으로, 유목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굽다리 솥(복鍑)을 만든 나라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1. ‘려왕’ 글자가 있는 세발솥(려왕력呂王鬲 Li), 서주 후기, 기원전 9세기 전반 ~ 기원전 771년>

서주 중기부터 아가리의 입술부분이 넓어지고 몸통의 깊이가 얕아진 세발솥은 전국시대 전기까지 사용됩니다. 이 세발솥(鬲)은 춘추전국시대 열정제도에서 곡식 담는 그릇(궤簋)를 대신하여 고기 삶는 세발솥(鼎)과 함께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몸통에 장식된 새무늬는 도식화되는 과도기 양식으로 새의 머리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쪽에 “呂王作尊鬲, 子子孫孫永寶用亭” 글자가 있습니다. “려왕이 만들었고 자손들이 영원히 보배로 사용하기를 기원한다.”라는 뜻입니다. 려나라는 강(姜)씨 성을 가진 염제(炎帝) 후예의 제후국으로 허난성 남양의 서쪽에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2. 굽다리 솥(파곡문복波曲文鍑, Fu), Mounted Cauldron, 춘추전기, 기원전 770년 ~ 7세기 전반>

북방초원지역에서 유행하던 대표적인 조리기가 황화유역의 청동기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입니다. 외벽 중앙에 불로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어 실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통에는 용무늬가 변형된 절곡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 파도무늬가 있습니다. 춘추 전기 샨시(陝西)성의 진라라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3. 곡식 담는 그릇(와신수문궤 蝸身獸文簋 Gui), Steamed Food Serving Vessel, 서주 전기 기원전 11 ~ 10세기 전반>

상나라 후기부터 손잡이가 달린 그릇이 출현합니다. 몸을 말고 뿔이 달린 특이한 형태의 동물이 대칭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주둥이 윗부분은 길게 말려 있으며 아래 부분은 짧고 뾰족한데 그 사이에 이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무늬는 샨시성 일대에서 서주 전기 이후 일정한 시기에만 유행한 무늬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4. ‘시_’ 글자가 있는 곡식담는 그릇(시_궤是_簋 Gui), 서주 중기 기원전 10세기 후반 ~ 9세기 전반>

<글자가 있는 안쪽>

받침대를 붙인 곡식 담는 그릇은 서주의 대표적인 양식입니다. 바닥에 놓기 편리하고 기물을 높여 장엄하고 중후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뚜껑은 이미 사라졌고 목 부분 양쪽에 손잡이를 붙여 놓았습니다. 받침대의 구멍과 몸통의 줄무늬는 주나라가 상나라의 풍습을 바꿔 스스로의 격조를 높이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바닥 내부에 글자가 있습니다. “시_가 부친 을공(乙公)을 위해 궤를 만들었고 자손들이 영원히 보배로 사용하기를 기원한다.”라는 내영입니다. 만든 사람인 시_는 정(鼎)족 출신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5. ‘괵강’ 글자가 있는 굽다리 접시(괵강포虢姜鋪 Pu), Mounted Dish, 서주 후기 기원전 9세기 전반 ~ 기원전 771년>

<글자가 있는 윗면>

말린 과일, 육포 등을 담았던 그릇입니다. 접시 바닥에 “虢姜作旅, 永寶用”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괵강은 괵나라에 시집 온 강씨 성의 여자로, “괵강이 이 그릇을 만들었고 영원히 보배로 사용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괵나라는 희(姬)씨 성으로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아들, 즉 주나라 문왕 동생의 제후국으로 전해집니다. 희씨 성과 강씨 성의 제후국 간에 혼인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6. ‘아화부정’ 글자가 있는 찜통(아화부정언亞盉父丁甗, ,Yan), Steamer, 상후기 기원전 13~11세기>

<그릇 안쪽>

<동물얼굴이 장식된 다리>

시루와 솥을 위아래로 연결하여 벼와 조 등 음식을 찔 때 사용한 청동기입니다. 다리에 소뿔을 가진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내부에 “亞盉父丁”글자가 있습니다. 화盉는 만든 사람의 성씨이고 아亞는 무관임을 나타냅니다. 부정은 아버지가 정丁일에 사망하였음을 표시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7. ‘과’글자가 있는 손잡이 술통(과유戈卣, You), Wine Vessel,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뒤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올빼미 두 마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모양의 손잡이 술통입니다. 몸통의 봉황무늬와 다리의 용무늬가 매우 섬세합니다. 목에 대칭으로 장식된 뱀과 몸통의 용무늬는 올빼미의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표현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몸통 안쪽에 고리를 달아 밧줄 형태의 손잡이를 끼워 놓았습니다. 내부 바닥에 있는 “戈” 글자는 만든 사람의 성씨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상나라 때 귀족들은 술을 즐겨 마셨다. 서조 초기에는 술을 엄격히 금하면서 서주 중기 이후 청동 술잔이 크게 줄어들었다. 작(爵)은 중요한 의례용 술잔으로 춘추시대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상나라 떄 귀족들은 청동작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당시 무덤에서는 많을 작(爵)이 출토되고 있다. 고(觚,  Gu)는 술잔과 예기로 사용되었는데 상나라와 주나라 때 인기가 낳았다. 차(觯, Zhi)는 의례용 술잔을로 작아 보인다. 가(斝, Jia)는 술통 또는 의례용 용기로 상나라와 서주 초기에 유횅했다. 준(尊, Zun)은 중대형 술잔으로 상나라부터 춘추 후기까지 유행하였다. 호(壺)는 술통으로 한나라 때까지 유행하였다. 원형, 네모 등 다양한 모양이 있다. 뢰(罍, Lei)는 큰 술통으로 예기로 사용되었다. 춘추 중기까지 유행했다. 유(㔽, You)늘 향이나 술을 담는 예기이다. 상나라에서 서조 때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굉(觥, Gong)은 술을 마시는 그릇이다. 상나라 말부터 서주 초기까지 유행하였다.

술 바치는 그릇
상나라 떄는 술바치는 의례에 사용한 술그릇이 발달했습니다. 세발 술잔(작爵), 나팔 모양 술잔(고觚), 술 데우는 세발 그릇(가斝) 등 다양한 술그릇을 만들어 썼습니다. 서주 중기 이후에는 상나라가 사용했던 술그릇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세발 술잔(각角)과 굽다리 술잔(치觶), 손잡이 술통(유卣) 및 술 단지 등이 등장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8. ‘_부정’글자가 있는 나팔 모양 술잔(_부정고_父丁觚, Gu), 상 후기 기원전 13~11세기>

상나라 후기 술잔이 길어지고 굽다리의 십자 구멍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굽다리의 구멍은 안쪽과 바깥 거푸집을 합칠 때 일정한 공간 유지를 위해 진흙 덩어리를 끼워 놓았던 흔적으로 청동기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없어졌습니다. 돌대로 술잔의 몸통과 굽다리의 공간을 나누고 무늬를 장식하여 매우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굽다리 안쪽에 ‘_父丁’ 글자가 있습니다. _는 만든 사람의 성씨이고 부정은 아버지가 정(丁)일에 사망하였음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들은 상대 산동 지역에 대규모로 거주하던 씨족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9. ‘가’ 글자가 있는 세발 술잔(가작家爵, Jue)>

이 세발 술잔은 초기의 편평한 바닥 형태가 아닌 둥근 바닥으로 제작되어 주조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통을 돌대로 나누고 동물얼굴무늬를 장식했습니다. 빈 공간에도 소용돌이 무늬를 가득 장식해 놓았는데 이것은 상나라 후기의 특징입니다. 손잡이 안쪽에 “家”글자가 있는데 만든 사람의 성씨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0 ‘사’ 글자가 있는 굽다리 술잔(사치史觶, Zhi), Wine Cup, 상 후기, 기원전 13 ~11세기>

새무늬, 동물얼굴무늬, 용무늬가 얕은 새김으로 바탕무늬 없이 가득 장식되어 있습니다. 바탕무늬가 없어지는 것은 상나라 후기의 장식기법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내부에 있는 글자 “史”는 기물을 만든 사람의 성씨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1, 조롱박 모양 술병(인문호호鱗文瓠壺, Hu), Wine Bottle, 서주 후기 ~ 춘추전기 기원전 8~6세기>

어깨와 몸통의 고리에 사슬을 연결하여 들고 다녔던 조롱박 모양의 술병입니다. 사슬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뚜껑에 용무늬가 있고 몸통은 비늘무늬를 층층으로 겹쳐 장식하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술병은 예기가 아닌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생활용기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2. ‘기백매망’ 글자가 있는 술병(기백매망호杞伯每亡壺, Hu), 춘추전기 기원전 770년 ~ 7세기 전반>

몸통을 여덟으로 나누고 테두리는 변형 동물무늬로 감쌌습니다. 목의 양쪽에는 고리가 달린 동물머리 장식이 있습니다. 매우 간결한 느낌으로 서주시기 새롭게 등장한 양식입니다. 그릇 안쪽에 글자가 있습니다. “기백매망이 주조(邾曺)를 위해 이 호를 제작하였고, 오랫동안 장수하고, 자손이 영원히 보배로 사용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기(杞)나라는 성씨가 사(姒)이고, 주(邾)나라는 조(曺)씨로 주조는 매망의 어머니 또는 부인입니다. 이 글로 산동지역의 기나라와 주나라가 혼인관계를 맺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 산동성 신타이(新泰)현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3. ‘백하보’ 글자가 있는 술단지(백하보령伯夏父_,Lei), 서주후기 기원전 9세기 전반 ~ 771년

어깨 양쪽의 손잡이는 몸을 말아 올린 작은 용의 모습입니다. 목에는 동물얼굴무늬가 변형된 절곡무늬가 있고 몸통에는 비늘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모두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무늬입니다. 어께에 글자가 있습니다. “백화보가 필희(畢姬)를 위해 령을 만들었고, 자손들이 오랫동안 보배로 사용하기를 기원한다.”라는 내용입니다. 필희는 필지라는 땅을 하사받은 희씨 성의 여자로 기물을 만든 백하보의 어머니이거나 부인을 뜻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술의 봉헌
서주는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권력을 굳건히 하려는 목적으로 제사와 의례를 제도화했습니다. 제사와 의례는 고대 중국 사람들이 하늘의 절대자, 자연신이나 조상신에게 전쟁에서의 승리나 왕실의 안위, 개인의 행복 등을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주나라 의례 중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술 바치는 의례인 관례(祼禮)였습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시부(示部)에 “祼, 灌祭也” 즉, “관은 땅에 술을 붓는 제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례의 목적은 정확하지 않지만 제사의 대상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예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5. ‘아추’글자가 있는 나팔 모양 술잔(아추고亞醜觚, Gu),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나팔 모양 술잔은 막대 모양 옥기를 꽂아 술을 따르던 예기입니다. 어떤 옥기에는 위패와 비슷하게 제사 대상의 죽은 날이 적혀 있기도 합니다. 목의 파초잎무늬에는 추상적인 동물얼굴무늬가 있고 몸통과 굽다리에는 용무늬가 대칭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굽다리 안쪽에 “아추”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만든 사람의 성씨입니다. 아추족은 상나라때 산둥지역의 씨족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6. ‘죽유’ 글자가 있는 손잡이 술통(죽유유竹斿卣, You),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두껍고 편평한 손잡이를 양쪽의 용머리와 함께 주조하였습니다. 뚜껑에서 굽다리까지 세로 돌대로 칸을 나눈 뒤, 뚜껑과 몸통에 뿔과 눈이 거대하고 입을 크게 벌린 동물얼굴무늬를 장식했습니다. 뚜껑의 가장자리와 목, 굽다리에 모두 작고 뿔을 가진 새무늬가 있습니다. 대표무늬는 돋을새김으로 장식하였는데, 다른 무늬와 높이 차이를 두어 매우 입체적입니다. 몸통과 뚜껑에 “죽유”라는 글자는 만든 사람의 성씨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7. ‘부신’글자가 있는 술통(부신준父辛尊, Zun),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바깥으로 벌어진 아가리, 긴 목, 부푼 몽통과 높은 굽다리로 이루어져 있어 나팔 모양 술잔과 형태가 유사합니다. 몸통과 굽다리에 동물얼굴무늬가 있으며 돌출된 눈을 제외하면 모두 편평합니다. 그 옆에 등을 맞댄 새무늬가 있고 빈 공간은 소용돌이 무늬로 채웠습니다. 몽통 내부에 “부신”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아버지가 신辛일에 사망하였음을 표시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8, ‘염’ 글자가 있는 세발 주전자(염화冉盉, He), Spouted Vessel, 서주 전기 기원전 11~10세기>

동물 머리 형태의 손잡이가 있고 고리 사슬로 뚜껑과 연결해 놓았습니다. 둥근 몸통 아래 3개의 원통모양 다리가 있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목에 2줄의 띠무늬가 있고 나머지 부분은 무늬가 없습니다. 손잡이와 뚜껑 안쪽에 각각 冉자가 있는데 만든 사람의 성씨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9. 용무늬 국자(용문두龍文斗, Dou), Ladle,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술을 뜰 때 사용한 국자입니다. 주로 술통(尊), 술 단지(罍)나 동물 모양 술통(觚) 등 술을 담았던 그릇 안에서 발견됩니다. 용무늬와 불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허난성 안양 부호(婦好) 무덤에서 이와 비슷한 용무늬가 발견된 예가 있어 상나라 후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수기(水器)는 손을 씻기 위해 물을 담아 두는 물통을 말한다. 상주 시대 귀족들은 의례를 행하기 전후에 손을 씻고 몸을 깨끗이 하여 예의를 표시했다. 손을 씻는 것은 고대문명이 출현한 중동 지역의 신전이나 교회, 사찰 입구에 손을 씻는 수조가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나라 때 중요한 의례로 여겨진 것으로 볼 때 서역의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추론해 볼 수도 있다. 물을 담는 대야와 같은 반(盤), 물 따르는 그릇인 이(匜, Yi)  등이 있다.

손씻는 그릇
주나라 때는 제사나 잔치 전에 두 손을 깨끗이 씻는 의례인 관례(盥禮)를 행하여 신과 참석한 사람들에게 청결로 존경을 나타냈습니다. 주나라에서 손 씻는 행위가 중요한 의례가 된 것입니다. <예기>에서 손 씻는 의례를 “젊은이가 쟁반을 들고 어른이 물을 받들어 손 씻기를 청한다. 손을 다 씻으면 수건을 드린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주나라 무덤에서는 손 씻을 때 사용한 대야와 주전자 또는 대야와 물 따르는 그릇이 종종 함께 발견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30. ‘경길’글자가 있는 대야(경길반京姞盤, Pan), 서주 후기 기원전 9세기 전반 ~ 기원전 771년>

물 따르는 그릇(匜)이나 세발 주전자(盉)와 함께 손씻는 의례에 사용한 대야입니다. 타원형의 몸통과 높은 굽다리에 손잡이가 양쪽에 달려 있습니다. 바닥에 글자가 있습니다. “정월 초, 길한 정해(丁亥)일에 경길이 대야를 제작하였고 영원히 보배로 사용하길 기원한다,.”라는 내용입니다. 경나라는 영(贏)씨 성을 가진 동이족 소호(少昊)의 후예의 나라이고 경길은 경나라 사람고 결혼한 길씨 성의 여자를 뜻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31. 물 따르는 그릇 (용봉문이龍鳳文匜, Yi), 춘추전기, 기원전 770년 ~ 7세기 전반)>

깨끗한 물을 담아 손 씻는 의례에서 물을 따를 때 사용한 그릇으로 대야와 함께 종종 발견됩니다. 바가지 모양의 몸통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물을 따르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바깥에는 용무늬와 봉황무늬가 있고 안에는 물고기 무늬가 있습니다. 이 그릇은 전형적인 주나라 양식이지만 물고기 무늬는 주로 장쑤성과 안후이성에서 제작된 손씻는 그릇(盥洗器)에 있는 특징으로 장강 지역에서 많이 출토됩니다. 이것은 중원지역의 양식에 지역양식이 더해져 현지화가 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예기의 기능은 하늘과 땅의 귀신과 신들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주대 후반에는 예기의 주된 기능이 “기(纪)”로 바뀌었다. “기”에는 세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든 기신물(纪神物)이다. 은나라 말기 청동기에는 이런 목적으로 미세한 구름과 천둥문양을 사용하고 있다. 표면에 틔어나온 복장한 장식은 동물얼굴무늬, 용무늬, 괴수무늬(기문夔纹), 봉황무늬, 매미무늬(선문蝉纹) 등이 있다. 두번째는 마땅함(의宜)에 있고 세번째는 덕(德)과 공(攻)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다.

중국 고대 청동기에 숨은 동물들
처음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기술이 완전하지 않아 청동 그릇에 간단한 선으로만 무늬를 표현하였습니다. 기원전 16세기 이후 청동기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무늬를 자유롭게 넣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상나라 사람들은 청동기에 동물얼굴, 용, 봉황 등 신화나 상상 속의 동물을 과장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청동예기의 위엄과 장엄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기괴함을 넘어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32. 동물 모양 술통 (봉문희굉鳳文牺觥, Gong),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상나라 후기에 주조기술이 발달하면서 동물 모양을 본 떠 만든 청동기가 등장합니다. 술통의 등에는 호랑이 한마리가 타고 있고 몸통은 봉황를 중심무늬로 사용한 것은 당시에 새를 신령한 동물로 생각하기 시작한 사회 풍조가 반영된 것입니다. 후난성에서 출토된 술통인 희굉과 형태가 흡사하여 장강유역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33. 동물얼굴무늬 술병(수면문호獸面文壺, Hu), 상 후기 기원전 13 ~ 11세기>

몽통이 아가리에 비해 큰 술명을 호(壺)라고 합니다. 중국 신석기시대에는 토기로 제작하였고 상나라 때 청동기로 제작하여 한나라 때까지 사용하였습니다. 이후에는 도자기로 제작하여 가장 오랜 기간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되며 사용한 그릇 중에 하나입니다. 몸통에 동물 얼굴무늬가 있고 나머지 빈 공간은 소용돌이 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릇에 무늬를 가득 채워 넣은 것은 상나라 후기 때 유행한 장식기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동물 문양>

<동물 문양>

조선시대에는 의례에 따라 각종 제사와 행사를 마련했다. 각종 의례에 사용된 그릇과 관련 물품들은 <예기(禮記)> <예기편(禮器篇)>에 언급된 내용에 따라 제작하였다. 제기는 대표적인 예기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과 차별된 모습을 하고 있다. 보(簠)·궤(簋)·변(籩)·두(豆)와 같이 고대 이래로 사용된 청동예기들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종묘 신실에 차려지는 제상(祭床)>

<신실기용 神室器用>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오향친제설찬도(五享親祭設饌圖), 19세기 후반>

조선시대 종묘제례에 사용한 제기
조선은 건국 초부터 국가의례를 정비하여 국왕이 유교윤리의 핵심인 효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고, 왕권의 정통성과 왕조의 영원한 안녕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특히 유교적 이상국가인 중국 하.상.주 삼대의 제도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은 종묘의 신실마낟 정성스레 제사상을 차렸는데 음식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제기에 담았다. 변(籩)은 마른 음식을 담는 제기이며, 두(豆)는 물기 있는 음식을 담는 제기이다. 변.두는 제사상의 양쪽에 짝을 맞우어 두었는데 종묘제례에는 12개씩 놓았다. 변과 두 사이에 등(㽅), 형(鉶), 보(簠), 궤(簋)를 두었다. 등은 간을 하지 않은 고깃국을, 형은 간을 한 고깃국을 담는 제기로 제사상의 북쪽 중앙에 6줄씩 놓았다. 보와 궤는 곡식을 담는 제기이다. 궤에는 기하무늬와 도철무늬를 장식해 음식을 탐하는 것을 경계했다. 궤의 다리에는 국왕이 민생을 잘 살피고 경계하라는 의미로 4개의 누무늬를 담았다. 음식 담는 그릇 외에 향합이 보궤 앞에, 촛대와 등잔 각 한 쌍이 제사상의 남북 가장자리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