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 서화관] 신선을 만나다.

신선도(神仙圖)는 신선들의 모습과 설화를 표현한 그림이다. 도교의 신선사상과 함께 발전하였다. 장수(長壽)와 무병(無病)과 같은 생에 대한 애착과 기복적인 바램을 위해 그려졌다. 그림에는 많은 신선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 팔선(八仙)으로 불렸던 종리권, 여동빈, 장과로, 한상자, 이철괴, 조국구, 남채화, 하선고가 많이 그려졌으며 노자, 황초평, 마고선년, 하마선인, 동방삭, 서왕보, 장지화 등도 많이 보인다. 그림에 등창하는 신선들은 각자 관련된 설화에서 묘사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에서 신도는 남북조시대에 등장하여 당대까지는 인물화로, 북송때에는 불교와 도교를 주제로 한 그림(도석인물화)으로 분류되었다. 남송대 선종(禪宗) 인물화법이 더해지면서 꾸준히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에도 신선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여 조선후기 17세기에 성행하였다. 선비화가인 심사정과 직업화가인 김홍도를 많은 화가들이 작품들을 남겨 놓고 있다.


<종리권과 여동빈,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하선고와 이철괴,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한상자와 조국구,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남채화와 장과로, 여덟 명의 신선들(八仙圖), 맹영광, 중국 명 1640년대, 비단에 먹>

도교에서 숭상되는 여덟명의 신선인 팔선을 한 폭에 두명씩 그린 4폭의 족자이다. 오른쪽 첫번째 폭부터 죽은 자를 살리는 부채를 든 종리권과 그의 제자 여동빈, 팔선 가운데 유일한 여선인 하선고, 자신의 몸을 찾지 못하고 걸인의 몸으로 살아간 이철괴, 퉁소를 잘부는 한상자, 하늘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 조국구,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남채화, 불로장생의 비법을 깨달은 장과로를 그렸다. 섬세하면서도 개성적인 얼굴 묘사와 신선마다 특징적인 지물 표현, 예리하고 날카로운 철선묘(鐵線描)의 옷주름 표현은 당시 중국 화원화가들이 그리는 방식이다. 맹영광은 명말청초에 활동한 중국인 화가로, 병자호란 후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 일행이 1645년 심양에서 귀국할 때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가 1648년 청으로 돌아갔다. 조선에 머무르는 동안 이징, 이명욱과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심사정(1707~1769년)은 조선중기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의 증손이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지만 과거나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일생 동안 그림을 그렸다. 어려서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진경산수뿐 아니라 중국 절파화풍과 남종화풍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대표작으로 <강상야박도>, <파교심매도> 등이 있다.

<용을 마주한 여동빈, 전 심사정,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두건을 쓰고 도포를 입은 인물이 동굴 앞 벼랑에 앉아 상서로운 구름 속에서 나온 용과 마주하고 있다. 인물 뒤쪽 동자가 들고 있는 커다란 칼과 용으로 미루어 팔선 중 검사인 여동빈을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동빈은 평화롭게 방석에 앉은 채 용을 바라볼 뿐 싸울 생각은 없어 보이며 한 쌍의 학과 동자의 모습에서도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에 심사정의 호 ‘현재玄齋’가 쓰여지고 인장 2과가 찍혔지만, 심사정의 인물화에 비해 공간 배치가 어색하고 인물의 자연스러운 멋이 덜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종리권, 작가 모름, 중국 명 15세기, 비단에 색>

종리권은 중국 동한 무장 출신으로 대장군을 지냈다. 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풍채가 당당했으며 푸른 눈에 긴 수염을 길렀다. 전쟁에서 패해 종남산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동화제군을 만나 도술을 전수받고 신선이 되었다. 그림에서 종리권은 파도 위에 서 있는데 왼손의 호리병을 가리키고 있고 죽은 자를 살리는 부채를 허리춤에 차고 있다. 종리권의 신령스런 면모를 강조한 이 그림은 종교화일 가능성이 커서 단동상 혹은 팔선을 그린 여러 폭 중 한 점으로 생각된다. 15세기 명나라 궁중 화원인 유준은 이러한 단독 신선상을 많이 제작하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최명룡(1567~1621년)은 조선중기에 활동한 문인화가이다. 역학에 깊고 수항에도 능통하였다고 한다. 취로 그림을 그렸는데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선인무악도(仙人舞樂圖)>는 그의 대표작인데 신선들을 크게 부각시키는 화풍을 따르고 있다.


<선인무악도(仙人舞樂圖), 학과 함께 춤을 추는 네명의 선인, 최명룡, 조선 17세기 전반, 비단에 색>

깊은 산 속 커다란 바위 아래 네 명의 선인이 학을 둘러싸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다. 네 사람 중 퉁소를 지닌 인물은 한상자, 박을 치는 인물은 조국구일 가능성이 있다. 오래 살아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함께 어우러진 선인들은 부드러우면서도 흥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흑백 대비가 심한 절벽 표현, 거칠게 그린 나뭇가지와 나뭇잎 처리, 인물을 강조한 구성, 굵고 진하게 표현한 옷 윤곽선 등은 당시 유행하던 절파 화풍의 영향이다. 오른쪽 위에 적힌 ‘석계 石溪’는 문인화 최명룡의 호인데 그는 역학, 음양학, 불교학 등에 능통했고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정선(1676~1759년)은 당시 인기였던 금강산, 관동팔경 등의 명승과 서울 주변 명소들, 지방관으로 근무했던 지역의 경치 등을 많이 그렸다. 초기에는 실경산수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으며 점차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재구성하여 독창적인 진경산수화로 발전시켰다. 산수화 뿐 아니라 신선을 그린 그림들도 작품으로 남겨 놓고 있다.


<바다를 건너는 선인(仙人渡海圖), 정선, 조선 18세기 중반, 종이에 먹>

석장을 잡고 있는 선인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파도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위로 구름에 살짝 가린 둥근 달이 떠 있어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힘찬 필선으로 표현한 옷자락의 생동감, 선인의 인자한 표정, 흐르는 구름과 출렁이는 물결의 유연한 처리 등에서 정선의 뛰어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의 시구는 중국 명대 철학자 왕수인(1472~1528)의 시 <범해 泛海>의 일부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하지장도(賀知章圖), 김홍도, 조선 1804년, 종이에 엷은 색>

당나라 시인 하지장(659~744)이 술에 취해 나귀를 탄 채로 졸고 있다. 그는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고 풍류를 즐겨 두보는 <음중팔선가 飮中八仙歌>에서 하지장을 술취한 팔선 중 첫번째 인물로 묘사했다. 앞쪽에서 시중드는 인물은 주인이 나귀에서 떨어질까 몸을 붙들고, 나귀는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걸음을 내딛는다. 술동이를 메고 뒤따르는 이는 그 모습이 우스운지 미소를 머금고 앞사람과 눈빛을 주고 받는다. 김홍도는 물기 없는 간단한 붓질로 인물을 표현하고 두보의 시 중 하지장 부분을 행초서(行草書)로 썼는데 그림과 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세발 두꺼비와 노는 유해섬, 심사정(1707~1769년),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유해섬(劉海蟾)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의 전설적인 선인이다. 그는 재상 자리를 버리고 속세를 떠난 초월자이자 내단술(內丹術)인 연금술의 대가였다. 세발 달린 두꺼비는 유해섬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영물인데 특히 돈을 좋아해 유해섬이 종종 엽전으로 그를 꾀어 내곤 했다. 역적 가문의 자손으로 벼슬길이 막힌 심사정은 평생 그림 제작에 몰두했고 다양한 화목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그림은 붓 대신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로 누더기 옷을 걸치고 두꺼비와 천진하게 놀고 있는 유해섬의 거친 느낌을 잘 살렸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해금강, 전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가파른 바위 절벽이 절경인 해금강의 뱃놀이를 그렸다. 동해의 기기묘묘한 절벽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출렁이는 파도와 암석에 부딪치는 물결을 표현했다. 금강산 근처의 해금강은 18세기 이후 유람의 명소가 되어 많은 이들이 방문했고, 신비로운 대자연을 신선처럼 유람한 경험과 감흥은 시와 그림 제작으로 이어졌다. 절벽을 각지게 표현하고 죽죽 내려긋는 수직준과 파도 표현 등은 정선의 화법과 유사하지만 필세가 다소 떨어져 진작 여부를 검토하게 한다. 정선은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바탕에 두고 남종화법을 써서 우리나라의 산천을 특징적으로 표현한 진경산수를 확립했고, 이는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뱃놀이, 심사정, 조선 1764년, 종이에 엷은 색>

쪽배 한척이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유유히 가로지르고 있다. 온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과 달리 두 선비는 뱃머리에 몸을 기대어 휘몰아치는 풍랑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 듯 느긋한 모습이다. 좁은 배 위에 놓인 서안과 책, 붉은 매화 가지를 꽂은 꽃병, 고목에 살포시 앉은 학은 이 그림이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신선들의 우아한 뱃놀이임을 암시한다. 58세의 심사정은 만년에 완성한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으로 거친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존재를 표현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번개의 신(雷公圓), 김덕성,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색>

천둥소리를 내는 북과 망치를 짊어지고 칼을 쥔 번개의 신, 뇌공이다. 입을 쩍 벌리고 한쪽 다리를 길게 내려 뻗은 포즈는 마치 악인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순간을 보는 듯하다. 뇌신은 조선시대 불화에서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작게 등장하는데 이를 독립시켜 단독상으로 그린 점이 특이하다. 김덕성은 정조 대에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했는데 특히 신장상(神將像)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뇌신의 우락부락한 근육과 송숭한 체모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강화하고, 근육에 표현된 음영은 조선 후기 서양화법의 수용을 보여준다. 화면 상단의 제발문은 여항문인이자 송석원시사(松石園試社)의 일원이었던 엄계응이 1804년에 쓴 것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약초 캐고 사슴과 벗하기, 전 김홍도, 조선 18세기 말 ~ 19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지팡이를 든 선인이 뒷짐을 지고 아래쪽의 사슴 한 쌍을 가만히 굽어보고 있다. 곁에 선 동자의 바구니에는 영지와 약초가 가득하다. 험난한 계곡으로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그 위로 홀연히 나타난 인물에게서는 신선과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림 상단에는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도술에 능했던 귀곡자(鬼谷子)의 은둔 생활을 예찬한 당나라 시인 진자앙(661~701)의 <감우시(感遇詩)> 중 일부가 적혀 있다. 김홍도는 말년에 고사인물화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귀곡자 혹은 속세를 피해 은거한 선인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남극노인, 조석진, 20세기 초, 종이에 색>

소나무 아래에서 한 손에 복숭아를 든 수노인(壽老人, 남극노인)이 뿔이 길게 자란 흰 사슴 위에 걸터 앉아 있다. 수성(壽星), 즉 남극성(南極星)은 본래 도교에서 중시되는 별자리로, 장수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에 따라 의인화되어 노인으로 시각화되었다. 화면에 남극노인과 함께 등장하는 소나무, 복숭아, 사슴 역시 장수를 상징한다. 조석진의 고사인물화는 스승인 장승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동일한 도상을 반복적으로 활용해 많은 수의 작품을 제작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 작가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엷은색>

장과로는 중국 당나라 7 ~8세기 무렵에 활동한 도사로, 호흡을 조절하는 내단(內丹) 수련을 쌓아 장수했다고 한다. 원나라 때부터 팔선의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팔선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장과로는 종이 나귀를 타고 하루에 수만리를 갔다고 하는데 나귀를 거꾸로 타고 책을 읽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과로도기도>(보물)와 도상적으로 매우 유사하여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후대 화가가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海上群仙圖), 작가모름, 조선 18~ 19세기, 종이에 엷은색>

<뒷부분>

여러 신선들이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바다를 건너는 환상적인 그림이다. 가장 오른쪽에는 악을 물리치는 보검을 등에 멘 여동빈, 그와 함께 다니는 버드나무 정령 유자선, 죽은 이를 살리는 부채를 든 종리권이 그려졌다. 술에 취해 나무 아래에 앉아 졸고 있는 이는 당나라의 은자 장지화이고, 약초가 담긴 소쿠리를 든 여성은 수명의 신 마고(麻姑)이다. 왼쪽 끝의 인물들은 방향을 달리하여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붓을 쥐고 있는 학문의 신 문창(文昌)과 그를 호종하며 두루마리를 든 시동들이다.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와 옷깃을 휘날리는 바람에도 개의치 않는 신선들의 못븡이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묘사되었다. 장수와 행복, 성공을 바랐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소망을 엿볼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꿈을 꾸는 여동빈, 백은백, 조선 1863년, 종이에 색>

검사(劍士)가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눈을 감은 채 비스듬히 앉아 있다. 오른손에 쥔 칼과 도복으로 미루어 팔선 중 여동빈으로 생각된다. 당나라 사람인 여동빈은 질병이나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며 공덕을 쌓았다. 일반적으로 여동빈은 늠름한 관료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처럼 느슨하게 쉬고 있는 모습은 드물다. 이는 여동빈이 꿈을 꾸고 이생무상을 깨달은 뒤 종리권을 스승으로 모시는 황량몽(黃粱夢) 고사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임당 백은배는 화원 가문 출신의 화원으로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하며 초상화, 고사인물화 등을 그렸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최북(1712~1760)은 조선 영조 때 활동환 화원출신 화가이다.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훼(花卉), 괴석(怪石), 고목(枯木)을 두루 잘 그렸다.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으며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미법산수도>, <의룡도> 등이 있다.

<나무그늘에 누워, 최북,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13면 서화첩 중 제4면>

나무 그늘 아래에 노인이 팔을 괴고 편안하게 누워있다. 붉은 매화 나무 아래의 돌 탁자 위에는 술병과 술잔이 그려져 술을 마신 후 산바람과 계곡물 소리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선의 삶을 갈구했던 옛사람들은 잠시 세상일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명상을 하곤 했다. 최북은 18세기에 활동한 직업화가로, 붓으로 먹고 산다는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사용했다. 이 화첩은 심사정의 모란, 석류 그림 2점과 함께 최북의 소, 게, 파도, 꽃, 인물 그림 9점이 섞여 있는데 모두 대중들이 선호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나무 그늘에서의 휴식, 최북, 조선 18세기>

<나무 그늘에서의 휴식, 최북, 조선 18세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인물을 그렸다. 왼쪽 그림에서는 암석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늙은 승려를 그렸다. 가사를 입고 염주 목걸이를 한 그는 대나무 지팡이에 팔을 걸친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그림에는 초립을 쓴 인물이 긴 지팡이를 쥐고 소나무 뿌리 근처에 앉아 있다. 운모가루를 바른 종이 위에 나무와 바위 등을 간략학게 그리고,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로 옆에 전시된 화첩 그림처럼,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인물 그림은 이해하기 쉬었다. 직업화가인 최북은 수용에 맞추어 이러한 그림을 다수 그렸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신선을 만나다.
늙지 않고 오래 사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은 인간의 오랜 소망입니다. 신선은 초월적인 신과는 달리, 역사적 인물로 수련이나 단약 복용을 통해 불로장생했습니다. 중국 원나라 때 대표적인 여덟명의 신선인 팔선(八仙)이 형성된 이후, 신선은 점점 많아지고 세속화되면서 사람들이 장수와 복을 비는 친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속세를 떠니지 못하지만 신선을 동경해 산수유람이나 명상을 하며 신선과 같은 풍류나 아취를 즐기고자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신령스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인간적인 신선들을 그림으로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4.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