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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충북 청주시 상당군 남문로에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국보)이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당간지주, 철당간이 온전히 남아 있어 오래된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당간지주의 옛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기둥은 원통모양의 철동 20개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했으며 당간지주 윗부분에는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를 잡아매고 있다. 철통은 원래 30개였는다고 한다. 3번째 철통에는 이 철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을 글로 적어놓고 있다.

철당간이 있는 이곳은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흥덕사나 많은 금속공예 유물들이 출토된 사뇌사 절터가 인근에 있어 이 지역은 예로부터 금속공예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 전쟁 등으로 폐허가 되면서 이곳에 관아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청주 도심 중심지로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있었다. 절터는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철당간만이 절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당간은 사찰입구 또는 불전 앞에 괘불이나 깃발을 거는 곳을 말한다. 많은 사찰 입구에는 철당간을 세웠던 당간지주가 남이 있지만 철당간은 이곳 청주를 비롯하여 계룡산 갑사, 안성 칠장사에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당간지주에 철당간이 고정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철당간과 당간지주>

<철당간을 받치고 있는 바닥돌>

<옆쪽에서 본 당간지주>

철당간은 원래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도 20개의 철통이 남아 있다. 철동은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했다.

<철당간>

<철당간(아래쪽)>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962년 청주 호족 김예종이 병에 걸리자 철당간을 바쳐 절을 장엄할 것을 맹세하며 사촌형 희임 등과 함께 철통 20단을 주조하여 높이 60척의 철당을 세운다.”라 적혀 있다.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고려초기 지방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글자가 새겨진 부분>


<뒷면>

용주사지 철당간이 있는 이곳은 지금도 청주지역의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로 오가는 사람들로 번화한 지역이다. 청주지역에서는 돛대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 홍수를 예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설화가 있어서 도심에 있지만 오늘날까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주사지 철당간이 있는 청주 도심>

<반대편에서 본 모습>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당간은 사찰 앞에 세워 사찰을 알리는 깃발을 달았던 것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사찰의 건립과 함께 많은 수의 당간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대부분 당간을 받치고 있던 지주만이 남아 있다. 철당간이 서 있는 곳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이다. 이 당간은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둥근 철통 30여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다. 이 중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다. 명문이 새겨진 철당간으로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철당기에는 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연대, 그리고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명이 적혀 있다. 당시 지방경영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철당기의 끝에는 ‘준풍 3년'(962년)에 주성하였다고 하여, 고려 광종 때 사용했던 독자 연호를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청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청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