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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자격루 누기(淚器, 국보), 조선시대 물시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창경궁 자격루 누기(淚器, 국보)이다. 최근까지 덕수궁 마당 한편에 전시되어 있다가 최근에 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보루각 자격루로 불렸던 이 자격루 누기는 중종 31년(1536)에 만든 것으로 창경궁에 있던 것이다. 조선 세종 때 (1434년)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 북이 자동으로 울리는 물시계가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하지 못하고 중종 때(1536년) 유전 등이 개량하여 만들었다. 현재는 자동시보장치는 남아 있지 않고 3개의 물그릇과 2개의 물받이통만 남아 있다. 중국 광동성에 남아 있는 명나라 물시계보나는 약간 늦게 만들어졌다.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원래의 물시계는 복원되어 고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중국 베이징에도 시간을 알려주던 고루(鼓樓)에 비슷한 형태의 물시계가 있다.

<창경궁 자격루 누기(국보)>

창경궁 자격루 누기는 중종 때(153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는 물을 받는 수수호와 2단의 파수호가 남아 있다. 중종대의 물시계는 2단의 파수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 명전전 뒤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며, 원래의 돌받침대는 명전전 뒤에 남아 있다.

<2단의 파수호>


<용그림 부조가 있는 수수호(물받이통)>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복원해 놓고 있는 자동물시계인 자격루를 볼 수 있다. 세종대에 장영실이 고안한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시계을 물을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계장치가 상당히 정밀하고 복잡하여 중종대 이후 고장난 것을 복구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복원해 놓은 보루각 자격루>

물시계는 누각 위에 물을 공급하는 3단의 파수호(왼쪽 상단)를 올려놓고 중간에 2개의 수수호(가운데), 자동시보장치를 동작하기 위한 각종 기계장치(오른쪽 하단), 기계장치에 의해 징,북,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보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위에서 본 모습>

자격루가 울리는 시각
자격루의 시간을 알리는 장치는 하루 동안 2시간에 한번씩 시각을 알리는 종과, 밤 동안 시각을 알리는 북과 징으로 구성됩니다. 옛날에는 하루를 자시(밤11시~새벽1시)로 시작하여 해시(밤9시~11시)로 끝나는 시간 체계로 구분하였고 매시마다 자격루의 종을 울렸습니다. 야간에는 해지는 시각부터 해뜨는 시각(하지 때 19시48분~03시52분경)까지를 하루 밤으로 설정한 후 하루 밤을 다섯 등분하여 이를 ‘경’이라 부르고 북으로 알렸으며 1경을 다시 다섯 등분하여 ‘점’이라 부르고 징으로 알렸습니다. 밤의 길이는 게절에 따라 변화하므로 경과 점의 시각 역시 달라졌습니다. 지금 자격루의 시각은 사시(오전9시~11시)부터 시작하여 유시(오후5시~7시)까지로 맞추어 놓았고, 밤에만 울렸던 북과 징을 관람객들이 들을 수 있게 하지를 기준으로 삼아 14시간을 앞당겨 놓았습니다. 약600년 전에 제작된 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계를 복원한 것이므로, 현대의 시계와 비교하여 1~3분 오차가 발생한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시간 알림장치 내부>

 자격루의 복원 제작 과정에서 작동을 모의 시험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보장치이다. 시보장치는 하루12시간과 밤 시간인 5경을 시각과 청각으로 알리는 장치이다. 물시계 쪽의 잣대 위에서 떨어진 작은 구슬이 상자 내부로 굴러 들어가 상자 안의 큰 구슬을 밀쳐 떨어뜨리고, 이 큰 구슬이 움직이면서 상자 위쪽의 인형이 종, 북, 징을 울리는 구조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시보장치 내부>

<시간을 알리는 12지신 인형>

<물시계에 물을 공급하는 파수호>

시간을 알려주는 시보장치는 인형이 북.종.징을 울리는 형태이다.

<시보장치>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해시계, 별시계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시계 중의 하나이다. 물시계를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도 물시계가 사용되었으며, 중국과 인도 또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통일신라시대에 물시계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시간을 알려주던 고루에는 설치되어 있는 자동 물시계인 비루(碑漏, Beilou)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격루에 비해서 웅장한 면은 없지만, 삼단의 파수호와 시간츨 측정하는 자가 설치된 수수호, 시보를 작동하는 기계장치와 소리를 내는 시보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베이징 고루에 있는 물시계(비루)>

자동 물시계, 자격루
조선시대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과 절기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제왕은 백성들의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시각제도는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었고 통치의 수단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이용하던 물시계는 조선 태종대에 시각 알림 장치를 자동화하여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으로 자격루가 제작되었다. 세종 임금의 명으로 1434년(세종16) 장영실이 완성하여 경회루 남쪽 보루각이라는 전각에 설치하였다. 자격루의 시각을 알려주는 인형이 치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이 신호를 광화문을 거쳐 종류에 전달하여 북과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 이에 따라 인정(통행금지 밤 시각)과 파루(통금해제 새벽시각)에 궁궐의 문과 한양의 도성문이 열리고 닫혔다. 낮에는 오정(낮12시)을 알려 주고, 밤에는 계절에 따라 밤의 길이가 변하게 되므로 계절마다 다르게 1경에서 5경까지의 밤 시간을 알려줌으로써 당시 한양의 사람들의 생활리듬을 편리하게 하는 표준시계가 되었다. 세종대의 자격루는 그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1536년(중종31)에 다시 만들어졌는데 그 일부인 물항아리(파수호, 수수호)가 현재 덕수궁에 남아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