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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고창국(高昌國)은 투루판분지를 5~7세기 동안 한족이 지배했던 정권을 말한다. 고창국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현장법사 일행이 방문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유적으로는 현 투루판 도심에서 동쪽으로 4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창고성이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하지만 한족문화와 중앙아시아문화가 혼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남북조시대에 서역을 통해서 불교가 전래되면서 크게 번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은  고창고성 부근 포도밭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고창국과 당나라 때의 무덤들이다. 약 456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무게가 총 6톤이 넘는 2,700여 건의 문서가 출토되었다. 출토문서들 중에는 소그드어, 위구르어로 쓰인 불교,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 문서가 있어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1. 당 중앙정부가 서주로 보낸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6년/종이, 먹>

<2. 당 중앙정부가 서주로 보낸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6년/종이, 먹>

당 고종 시기에 중앙정부가 전국 각 지방관청에 내려 보낸 679년도 예산편성과 집행 지침으로, 투루판의 서주(西州) 관청에서 하위 5개 현에 배포하기 위해 베낀 문서의 일부이다.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박물관과 일본 류코쿠대학이 소장한 문서 조각과 함께 본래는 하나의 문서였으나, 1912년 오타니 탐험대가 무덤 속 부장품을 거두어 가는 과정에서 뜯겨 나갔다. 이 문서 조각은 현존하는 한.중.일 소장 문서 가운데 가장 앞부분에 해당한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문서에는 당 제국 각지에서 거둔 조세의 배분.보관 및 운송, 외국 사신의 접대 비용, 호랑이 등 맹수를 죽인 자에 대한 포상 재원 등에 관한 지침이 담겨 있다. 다른 사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당대 제도 전반의 다양한 항목을 담고 있어 당 전기 국가 재정 운용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문서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고창현의 도주 위사 처분 보고에 대한 서주 창조사의 지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5~676년 추정/종이, 먹>

시신깔개를 덮고 있던 또 다른 종류의 문서 조각이다. 당이 투루판 지역을 점령한 시기에 고창현에서 신고한 도주한 병사(衛士)의 처분에 대한 안건을 서주도독부의 창조사(倉曹司)에서 처리한 문서이다. 2020년 중앙아시아 고문자 조사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에 소장된 같은 문서 두 점을 찾았고, 그중 한 조각과 연결되는 것을 확인했다. 투루판에서 출토된 당대 관문서 중에는 문서를 검사한 관리의 서명 또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들이 있다. 중국 측 조각에 있는 문서 결재자의 서명이 ‘장원리’라는 인물의 것임을 확인하여 문서의 작성 연대가 그가 해당 직위에 있던 675~676년 무렵으로 밝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시신깔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 당 703년/초제>

시신을 눕히기 위한 장례용품이다. 보통 투루판 지역에서는 국씨고창국시기부터 당왕조 지배기에 걸쳐 관 대신에 갈대 줄기를 엮은 자리를 사용하였다. 무덤의 주인인 장예신은 국씨고창국 최고 가문의 후손이다. 이 시신깔대의 앞뒷면에는 당이 이 지역에 설치한 서주도독부에서 폐기한 문서가 감싸고 있었다. 문서 뒷면에는 테두리를 따라 기(綺)라는 자주색 직물 조각이 붙어 있다. 이처럼 문서와 직물을 덧대어 꾸민 시신깔개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부장품을 만드는데 사용된 투루판 문서
투루판 문서는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여기 있는 신발과 인형은 모두 투루판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용품으로 문서를 재료로 사용한 것들이다. 문서는 투루판의 건조한 기후 덕분에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당시 투루판에서는 관청 등에서 폐기한 문서를 재활용하여 장례용품을 만들었다. 문서를 꼬아서 무덤에 넣을 인형의 팔을 만들거나 신발의 안감 등으로 종이 문서를 사용하였다. 문서는 장례용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단되어 대다수가 파편으로 남아 있다. 이런 문서는 일부 조각들을 접합하여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이다. 문서는 공문서가 많지만 일부 매매 계약서, 편지, 처방전, 글씨기 연습장 등도 있다. 투루판 문서는 편집되지 않은 당대의 기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동시기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높은 지위에 있던 관리의 무덤에서는 시종, 무사, 관리, 무용수나 약사를 표현한 인형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이래로 이어온 순장의 풍습이 남아 있는 부분으로 죽은이를 사후세계에 보필할 수 있도록 껴묻거리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 투루판 지역에서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종이로 만든 인형이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종이는 문서를 재활용한 것으로 그 내용은 자료로서 큰 가치가 있다.


<1. 문인,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당대의 정형적인 관식인 복두를 쓰고 있다. 팔 부분은 종이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는 투루판에서만 볼 수 있는 제작 방식이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부장품을 만들 때 폐기된 문서를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는 ‘투루판 문서’라고 불리며,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여인,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7~8세기 당대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보여주는 인형들이다. 납이 섞인 흰색 안료인 연백(鉛白)을 바른 후 채색을 하여 색이 매우 선명하다. 머리 부분에는 금박의 장식이 있어 고위층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환관, 투루판 카로호자/7~8세기>

<4. 신발, 투루판/6~7세기,>

신코 부분이 구름 모양을 솟은 전형적인 당대의 신발이다. 겉감으로 녹색 계통의 마름모꼴 능화(菱花紋)이 표현된 견직물을 사용했다. 신의 안쪽은 줄무늬가 있는 견직물로 장식했고, 밑창에는 종이를 대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5. 신발, 투루판/6~7세기>


<6. 신발, 투루판.6~7세기>

여덟 겹의 종이로 신발을 만들었고, 안쪽에는 붓글씨의 흔적이 나아 있다. 남가 귀한 투루판에서는 장례 때 죽은 이의 신발을 종이로 만들어 함께 묻는 예가 많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묘표(墓表)는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이나 전돌 위에 죽은 이의 이름과 관직, 사망일자, 사망 당시의 나이 등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무덤 입구에 매장했다. 관직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관인과 그의 가족의 무덤에만 매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인의 이주와 함께 유입된 문화로 5~8세기까지 제작되었으며, 당시의 제도와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무령왕릉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것이 발견되었다.

<1. 가매구의 부인 삭겸의 묘표, 국씨고창국/582년(연창 22년)/벽돌, 진사>


<모표 내용>

<2. 가매구의 묘표, 국씨고창국/586년(연창 26년)/벽돌, 진사>

<묘표 내용>

<3. 범숭경의 묘표, 국씨고창국/592년(연창 32년)/벽돌, 연단>

<묘표 내용>

<1. 국효숭의 부인 장씨의 묘표, 국씨고창국/600년(연창 40년)/벽돌, 연단>

<묘표 내용>

<2. 후륭관의 부인 장씨의 묘지, 당 677년(의봉 2년) 추정/벽돌>

<묘표 내용>

<3. 장ㅁㅁ의 묘표, 국씨고창국/583년(연창 23년)/벽돌, 먹, 산화철>

<묘표 내용>

투루판 출토 묘전
묘전(墓塼)은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판 모양의 벽돌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먼 훗날 무덤이 허멀어진 뒤라도 무덤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묘전을 제작하여 두덤의 널방 입구나 통로에 두었다. 중국에서는 주로 돌에 글자를 새겼지만 돌이 귀했던 투루판에서는 흙을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묘전은 국씨고장국 시기인 530년대부터 확산되었다. 동시기를 전후로 이 지역에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무덤에서도 복희여와도, 진묘수 등 중국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투루판 묘전은 투루판 문서와 더불어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국씨고창국의 독자적 연호와 관제 및 동시기 사람들의 생사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창고성에서 발견된 당나라 비에서는 주인공인 강거사가 대장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이다.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상당히 오래된 비(碑)이다.

<강거사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석 조각, 투루판 고창고성, 당 무주 695~697년 추정, 돌>

<아래 부분>

<윗 부분>


<탁본>

<비에 대한 설명>

<측천 문자>

<투루판 고창고상 대불사 절터>

도성유적인 고창고성에서 발견된 당나라 비의 조각이다. 비문에 따르면 주인공인 강거사(康居士)는 강국(康國, 현 사마르칸트) 출신의 소그드인 지도자였으나, 7세기 중반에 당나라로 귀순하여 투루판에 터전을 잡고 높은 지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말년에 공덕을 쌓기 위해 대장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벌이고 그 경전 목록을 새긴 이 비를 세웠다. 비의 글자 가운데는 당의 측천무후가 창제하여 반포한 측천문자가 있기 때문에 무주(武周) 시기의 비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 고문자 조사에서 비에 새겨진 경전 목록이 당시 널리 유통된 불교경전목록인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제8권 전체와 <대주간정중경목록>의 일부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비 전체에 적혀 있던 사경목록의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이 두 목록에 근거하면 온전했을 당시의 비면에는 818부 4,039권이 넘는 경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비는 6~7세기 투루판 지역의 비 가운데 실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예로, 이 비에 새겨진 대장경의 실제 경전들을 향후 투루판 지역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말을 탄 여인, 투루판/7~8세기>

당대 전형적인 상류층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인상이다. 얼굴 전체에 하얀 분을 바른 후 뺨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이마에는 붉은색 꽃문양을 그렸다. 이것은 사홍(斜泓)과 화전(花鈿)이라고 불리는 당시 유행한 화장법이다. 말에는 안장, 고삐 등이 묘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새머리가 있는 장식병,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물 따르는 곳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에 새의 눈을 표현하여, 물을 따르는 부분이 새의 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형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hoe)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중해 지역,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에서 금은기, 유리기, 도자기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남쪽 능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鎭墓獸)는 시신을 안치한 널방 입구에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 또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널방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동물 진묘수가 발견되었다.

<진묘수(鎭墓獸), 투루판 아스타나/7~8세기/흙에 채색>

투루판의 아스타나 카라호자의 무덤에는 시신을 안치한 묘실 입구에 상상의 동물 한 쌍이 배치된 경우가 많다. 이 동물은 흔히 ‘진묘수’라고 불리며 묘실 내부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이 못하도호록 막는 기능을 ㅎ나다. 전시된 진묘수는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이 결합된 모습이며 머리 위쪽에 잘려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진묘수는 성당(盛唐) 시기에 유행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스타나 고분은 투루판시 도심에서 35km 정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해당하는 국씨 고창국과 당나라 지배기에 조성된 지배층들의 무덤이다. 유적지에 있는 2층 누각에 올라서면 남쪽편에 넓게 고분이 펼쳐져 있다.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아 무덤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투루판 아스타나 무덤>

<투루판 주요 유적>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시크로드 경계의 삶>

투루판 지역이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는 1912년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대원 요시카와 고이치로(1885~1978년)가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북동부의 투루판 지역에서 수집한 것이다. 이 한문자료들은 투루판의 한인왕조였던 국씨고창국 시기인 6세기 말부터 당 왕조 지배기인 7세기 말에 작성된 것들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먼저 투루판의 독특한 장례용품인 시신깔개에 붙어있던 당나라 문서가 있다. 이 문서를 조사한 결과, 같은 문서의 읿부가 현재 중국과 일본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중국 소장 문서 조각과 서로 연결됨을 확인하였다. 이 문서는 7세기 후반 당 고종 때 국가 재정 전반과 군사 제도에 관한 당나라 관문서이다. 한편 죽은 자의 존재를 후세에 기억하기 위한 묘전도 전시한다. 특히 일부 묘전 조각을 새롭게 확인하거나 접합하여 복원한 해석문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투루판의 중심지였던 고창고성에서 출토된 소그드인 불교 신자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편을 소개한다. 비문에 새겨진 경전들이 당대 장안 서명사(西明寺)에서 조성한 대장경 목록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 비교하여 사라진 부분을 포함한 전체 비의 형식을 복원했다.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는 국내외 관련 연구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며, 실크로드 경계에서 한인과 서역인이 공존했던 삶의 흔적을 살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3.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