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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불비상, 금은기, 도용 (남북조, 수, 당)

불비상은 비석형태에 돋을새김으로 불상 등이 새겨진 것으로 마을 입구, 주요 교차로, 사원 등 대외적이고 공적인 장소에 주로 세웠다. 조상의 안녕을 기리고 공덕을 쌓는 역할을 했다.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초 충청도지방에서 불비상이 만들어 졌다.

<중국 불비상>

조상비(造像碑)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인 조상비가 등장했다. 조상비의 기본 형태는 네모난 돌에 불상과 명문을 새긴 것으로 중국의 전통적인 비(碑)에 종교적 숭배대상인 불상이 더해진 형식이다. 중국의 비가 지배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조상비 제작에는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발원자로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상비는 마을 입구, 주요 교차로, 사원 등 대외적이고 공적인 장소에 주로 세웠으며, 조상의 안녕을 기리고 공덕을 쌓는 역할을 했다. 이곳에 전시된 네 점의 중국 불비상은 북위(北魏)와 당(唐)대에 제작된 것으로 대체로 석가불이나 아미타불, 미륵불이 묘사되고 있고, 일부에는 공양자상과 조상기(造像記)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조상비는 당시 유행했던 불교 도상에 발원자의 염원을 담아 이들의 신앙과 바람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나한, 보살, 신장을 비롯하여 불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앙한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단에는 향로와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불비상(佛碑像), 북제 ~ 수(隨)>

다양한 군상이 빽빽하게 묘사된 북제의 불비상이다. 앞면에는 앉아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나한과 보살, 신장이 주위에 둘러 서 있고 상단에는 꽃줄을 든 천인과 보탑이, 불상 아래에는 향로와 사자,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뒷면은 2단으로 된 감실에 오존불과 반가사유상이 새겨져 있다. 다양한 상들로 가득 채워져 구도가 복잡하고 세부 표현이 다소 번잡하지만, 부피감이 살아 있는 인물 묘사나 허리를 쌀짝 비튼 보살의 삼곡(三曲) 자세는 눈길을 끈다. 앞면 하단의 명문에는 재주(齋主) 등 읍의 주요 인물 명단과 공양주 등이 “부모님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부처를 모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불비상, 북제 ~ 수>

<윗부분 오존불>

<아랫부분 인물상>

높이가 162cm에 이르는 비교적 큰 북제 불비상이다. 앞면은 오존불(五尊佛)을, 중단에는 역사(力士)를 새겼고, 가장 윗부분에는 보탑(寶塔)과 천인을 조각했다. 중단의 역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이다. 뒷면은 상단에 용 장식과 오존불을 새기고, 중단에는 4개의 감실에 각각 삼존불을, 하단에는 향로와 사자, 인물상을 표현했다. 가장 아래에는 불비상에 조각된 각각의 상을 공양한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 불상은 다소 경직된 모습이지만 사자는 예스럽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불비상, 당 현경 5년(660년)>

<윗부분 불상과 협시보살>

<아랫부분 감실의 오존상>

당 현경 5년(660년)에 고만해 일가족이 발원한 불비상이다. 육감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불상과, 보살상은 전형적인 7세기 당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앞면 상단에는 의자에 앉은 자세의 불상과 협시보살이 있고 그 위로는 보탑과 천인이 있으며, 중단에는 2개의 감실에 오존상을 묘사했다. 뒷면 상단에는 용 장식이, 중단에는 삼존불과 나무를 새겼다. 명문은 앞면의 하단과 중단의 감실 사이에 새겨져 있는데, 고만해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형수와 처, 조카, 아들, 딸 등 일가친척이 힘을 모아 불비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앞쪽에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쪽에 서로 얽혀 있는 용으로 장식했다. 아래쪽에 발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00여명 넘는 발원자가 참여했다고 한다.


<불비상, 북위 영안 2년(529년)>

북위 영안 2년(529년)에 조성된 불비상이다. 꼭대기 부분은 서로 얽혀 있는 용 4마리로 장식했고 상단에는 삼존불과 발원자의 관직명이, 중단에는 공양자상, 그리고 하단에는 함께 발원한 이들의 이름을 새겼다. 공양자상 사이에 명문이 있는데, 영안 2년에 국왕과 칠세부모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 불비상은 마을의 신앙 공동체인 읍의 구성원인 개씨와 양씨, 왕씨 등을 포함하여 100명이 넘는 발원자가 함께 조성한 것이며 10여 명의 주요 공양자는 말을 타거나 일산(日傘)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춘추전국시대 이후에는 금속으로 만든 실생활 기물이 많아졌고, 진한대에 이르면 금은입사(金銀入絲), 감옥(嵌玉), 누금세공 등을 이용한 화려하고 세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당대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부터 금속제 그릇들이 수입되었으며, 그들로 부터영향을 받아 상당히 수준높은 금속제 그릇이 만들어졌다.

<금은기>

<금은기>

당(唐)대의 금은기(金銀器)
당대에는 수준 높은 금속 제조 기법으로 완, 합, 배, 반, 호 등 다양한 금은기를 생산하였으며, 궁정과 귀족 계층에서 널리 사용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아시아 문화가 유입되어 당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풍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형태의 금은제 그릇이 제작되었다. 손잡이가 있는 잔, 굽다리 은잔 등은 서아시아 그릇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사자 꽃무늬 은접시, 당>

<2. 원앙무늬 합, 당>

<3. 사자 보상화무늬 합, 당>

<1. 상자, 당>

<2. 포도 국화 넝쿨무늬 병, 당>


<3. 당초문이 새겨진 잔, 당><4. 손잡이가 달린 잔, 당>

<5. 꽃 새 넝쿨무늬가 새겨진 은제 가위, 당>

<1. 상자, 당>


<2. 동자무늬 주자, 요(遼, 916~1125년)>


<3. 꽃모양 잔, 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수당시대 20220215_18
<4. 귀때잔, 요>


<5. 잔, 요>


<6. 굽다리잔, 요>

굽과 몸통이 모두 밖으로 벌어진 굽다리잔이다. 굽 하단은 작은 금 알갱이를 붙이는 누금세공 기법으로 장식했다. 몸통 바같 면에는 큰 보상화(寶相華) 무늬와 활짝 핀 꽃무늬를 번갈아 새겼다. 그릇 안쪽 바닥 중앙에는 두들겨서 표현하는 타출(打出)기법으로 거북이를 표현하였고, 그 주변에는 8개의 보상화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몸통 외면에도 보상화 무늬 12개를 음각했고 문양 사이사이에 꽃잎이 4개인 꽃무늬를 장식했다. 굽 주변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1026년에 제기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도용(陶俑)은 중국에서 죽은이와 함께 묻는 인물.동물의 상을 말하며 명기의 일종으로 흙으로 빚어서 만든 것을 말한다. 이는 현실의 사람이나 가축 등을 본 떠 만들어 죽은이를 저승으로 호종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국시대 순장제도가 사라지면서 예기(禮器)제도가 무의미해지고 껴묻거리의 종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대 이전에는 옥기, 청동그릇 등의 예기와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 무기, 마구류가 주로 매장되었지만, 한대 이후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실감나게 표현한 인물과 동물도용 제작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매장 수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도용>

<도용>

힘이 넘치는 사실성이 돋보이는 도용이다. 서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서역지방을 통해서 외국말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전인 남북조시대까지는 다리가 짧은 중국 토종말 형태로 만들어지진다.

<도용>

도용(陶俑)
진.한대에는 많은 부장품을 함께 묻는 후장(厚葬)제도가 유행하면서 지배층 무덤의 부장품 종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대 이전 무덤에서는 옥기, 청동그릇 등의 예기(禮器)와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 무기, 마구류들이 출토된 반면, 한대 이후 무덤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표현한 인물과 동물 도용이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당대에는 무덤을 지키는 용도로 채색이 화려한 삼채 진묘수, 말, 낙타 등을 함께 매장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문관과 무사, 남북조>

죽은 자를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무덤에 부장되는 문관과 무사 모습의 도용이다. 복장은 모두 호복(胡服) 차림이다. 호복은 전국시대에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궁술과 함께 기마에 편한 복장이 북방 유목문화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바지와 길이가 짧은 웃옷을 의미한다. 북조에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평상복과 조복으로 입을 만큼 정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말 탄 여인, 당>


<4. 호인, 당>


<5. 매를 든 인물, 당>

손에 매를 들고 사냥하는 인물 모습의 도용이다. 북방 민족의 옷인 호복을 입고 복두를 쓴 남장한 여성으로, 당대에 매사냥은 여성들의 대표적인 야외 오락이었다. 인물은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飜領袍)를 입었고 허리에는 호풍의 여러 물품을 드리운 첩섭대(䩞鞢帶)를 둘렀는데, 이는 돌궐의 복제에서 유래된 것이다. 외래문화에 개방적이었던 당대에는 호풍이 이국 양식의 대명사로 여겨져 민간 및 여성들에게까지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6. 남성과 여성, 서한>

<1. 무덤을 지키는 괴수, 남북조>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부터 죽은 이를 지키기 위해 무덤에 매장하는 괴수 모양 도용이다. 진묘수는 날카로운 사슴의 뿔 또는 사자의 갈기, 긴 혀, 괴기스럽게 포효하는 괴수의 얼굴 등이 특징인데, 이것은 보는 이를 위협하여 감히 무덤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진묘수는 네 발 짐승의 몸에 눈을 부릅 뜬 무서운 사람의 얼굴을 하였고 등의 갈기는 위로 곤두섰다. 이지러진 얼굴 표정에 보이는 생동감과 안정적인 자세는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무덤을 지키는 괴수(鎭墓獸), 당>


<4. 소, 당>


<1. 당삼채말, 당>


<2. 말, 남북조>


<3. 낙타, 당>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2.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