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불상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여래상(국보)이다. 삼국시대 백제인들이 가야산 용현계곡 바위에 조각한 불상으로 여래입상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을 세워 놓고 있다. 연꽃대좌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높이 2.8m로 머리에는 작은 육계를 하고 있고, 얼굴과 윤곽들을 두툼하게 표현했으며, 법의로 발등까지 덥고 있다. 불상의 삼존불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중국 북조 말기에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

불상이 위치한 서산시 가야산 일대는 중국과 뱃길이 있었던 태안반도에서 백제 왕성이었던 부여와 공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태안에서 30km정도 떨어져 있어 아침에 출발한 여행자가 하루를 묵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 화엄10찰 중 한곳이었던 보원사라는 큰 절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삼존불 중 반가사유상은 남북조시대 북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인 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반가사유상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태안읍에 남아 있는 삼존불상과 함께 당시의 문화교류 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SANYO DIGITAL CAMERA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서산시 가야산 계곡 절벽에 있는 큰 바위를 파서 불상을 조각하였는데, 바위가 자연스러운 처마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앞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대표적인 마애석굴의 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 반가사유상이 포함된 이 삼존상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새겨진 불상이 누구인지 이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 연꽃입을 새긴 대좌위에 서 있으며, 법의는 발등까지 덥여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석불 중 여래입상의 얼굴. 햇볓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서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예전에 이곳에 보호각이 있었을 때 관리인이 조명을 비쳐주면서 설명해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햇빛에 비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부여박물관에 가면 삼존불상(복제)을 전시하고 있는데, 조명이 바뀔때마다 변하는 표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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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있는 보살입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며, 상체에는 천의를 걸치지 않고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으며, 하체는 치마가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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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미소띤 얼굴을 하고 있는 보살로 삼국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던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이나 관음보살을 표현한 불상이 많다. 중국 북위때 협시불로 나타났다가 신라에서 많이 만들어졌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시대 불상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와 일본의 반가사유상이 유명하며, 협시불로 표현된 이 불상에서 반가사유상이 중국에서 유래하여 백제를 통해 신라와 일본에 전래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애불
마애불은 바위면에 부조나 선각으로 새긴 불상을 말한다. 조각된 면이 깊이 들어가 감실처럼 된 것과 석굴사원의 벽에 새겨진 것도 이에 해당된다. 마애불은 기원전 3~2세기 무렵 인도에서 조성되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 백제의 마애불로는 태안마애삼존불과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들 수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본존불은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맺고 있다. 특히 이 불상에 보이는 미소는 일반인들에게 ‘백제의 미소’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본존불의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오른쪽에는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보살입상은 양손을 위아래로 하여 보주를 받들고 있어 당시 백제의 보살상에 많이 나타나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태산마애삼존불(국보307호)은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달리 중앙의 보살입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불입상을 배치하는 도특한 구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6세기말에서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목조의 전실을 꾸몄던 것으로 보이는 구조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출처:부여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 안쪽에서 본 삼존상

OLYMPUS DIGITAL CAMERA중국 산동성 박물관에 전시된 반가사유상이 있는 삼존불상. 남북조시대 북제(563년)에서 만든 삼존불상으로 반가사유상을 본존불로 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삼존불의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가야산 계곡 입구. 가야산은 중국과의 교류에서 중요한 통로가 되었던 태안과 내륙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야지대가 많은 주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산이었기때문에 중요한 사찰들이 많다. 지금도 예산 수덕사, 서산 개심사가 가야산에 남아 있고, 조선중기에 폐사되기전까지 화엄10찰 중 한곳으로 전국적으로도 큰 사찰이었던 보원사절터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삼존상이 바위언덕 용현리 계곡. 계곡 안쪽으로 1~2km 정도 들어가면, 화엄10찰 중 한 곳이었던 보원사 절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바위절벽

SANYO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

SANYO DIGITAL CAMERA 다리를 건너 경사진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관리사무소 건물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건물처럼 지은 관리사무소, 이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마애여래삼존불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들어가는 길에 ‘불이문’라 적힌 작은 출입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곳까지 연결되는 숲길. 불이문에서 불상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상을 조각한 바위 앞에 쌓은 축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SANYO DIGITAL CAMERA담장너 머로 보이는 불상을 조각한 바위. 바위에는 예전에 보호각을 세웠던 흔적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담장너머로 눈에 익은 장면들이 보인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삼국시대 백제인들이 새겨놓은 조각상이지만 그 조각수법이 빼어나고, 불상을 조각한 바위를 잘 선택했기때문에 후대에 조성된 많은 불상들보다 생동감있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축대에 올라서면 보이는 삼존불상

SANYO DIGITAL CAMERA방향에 따라서 약간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삼존불상.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약간 높은 곳에서 본 삼존불상

SANYO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불이 있는 곳에서 계곡 안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 위치한 보원사지. 통일신라시대 화엄10찰 중 한곳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서산마애삼존불, 국보84호,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 계곡, 백제 6~7세기
서산마애삼존불은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백제 마애불이다. 높이 280cm의 본존불과 좌에는 반가사유보살상, 우에는 보살입상의 배치를 갖고 있다. 본존은 중후한 체구에 입술을 드러내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며, 뺨을 한껏 부풀린 모습은 백제인의 전형적인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잘 취하지 않는 반가사유보살상을 협시보살로 배치한 점은 거의 유일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서산시 운산면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는데, 바로 이 마애불과 당시 백제와 중국과의 활발한 문화 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가 있다. (안내문, 서산시청,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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