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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특별전,"종묘(宗廟)"] 종묘제례악, 신을 위한 음악.노래.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종묘제례 의식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으로 악기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을 맞추어 추는 일무를 춘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 종묘제례와 더물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기악(樂)’, ‘노래(歌)’, ‘무용(舞)’을 통칭한다. 종묘제례악은 중국 주나라 이래로 정립된 동아시아의 왕실의 제사의식에 사용된 음악중 거의 유일하게 남았으며,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문묘제례악과는 달리 세종대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조선왕조 500년 이상 계승되어 왔다.

조선은 유교적 국가통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와 왕실을 중심으로 각종 의례에 맞는 음악을 연주함으로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예악(禮樂)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세종은 난계 박연 등과 험께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기술로 악기와 악보를 만들어 조선의 음악제도를 정립하였는다. 세종은 종묘제례악의 근간이 되는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 등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또한 음악의 길이를 표기할 수 있는 ‘정간보(井間譜)’를 창안하였고, 표준 음높이를 제장하고, 편종.편경 등을 제작하는 등 음악의 근간을 확립하였다.

종묘 정전에서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모습.

종묘제례악 연주.

필일무(八佾舞)

천자의 제향 때 쓰이는 일무로 우리나라에서는 문묘.종묘 제향에 쓰인다. 일(佾)은 열(列)을 의미하며 지위에 따라 팔일무, 육일무, 사일무, 이일무가 있다. 종묘에서는 원래 육일무를 추었으나, 대한제국 이후 팔일무를 추고 있다.

흥안지악(興安之樂)
– 신을 보내는 예(송신送神)를 행할 때 부르는 노래
제사를 모두 법도대로 끝내니
신이 편안하고 즐거워 하시도다.
가신지 멀지 않아
우리를 문득 돌아보시도다
무지개 깃발과 비슷하게
구름을 타고 멀리 가시도다.

<정대업定大業> 중 ‘소무昭武’
– 두번째.세번째 술잔을 올리는 예(아헌亞獻.종헌終獻)를 행할 때 부르는 노래
하늘이 우리 열성을 사랑하시어
세세토록 성스러운 무공을 밝히셨도다.
비길 바 없는 공렬을 드러내고자
이에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종묘제례악의 악기 편성 중 등가(登歌)라 불리는 댓돌(월대) 위의 연주단

헌가(軒架)라 불리는 댓돌 아래 연주단

신로(神路) 양쪽에 악공들이 배치된다.

적과 악

적(翟), 복제, 용머리를 장식한 나무 자루에 꿩 깃털을 묶어 매듭을 드리웠다. 문무(文舞)를 출 때 오른손에 쥔다. 약(籥), 지공(指孔)이 3개인 관악기로 대나무로 제작되었다. ‘약’은 세개의 구멍으로 모든 소리를 조화롭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문무를 출 때 왼손에 쥔다. <출처:고궁박물관>

창과 검

창(槍), 복제, 나무로 만든 창이다. 무무(武舞)를 추는 뒤의 4열 무인이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출 때 손에 쥔다. 검(劍), 복제, 무무(武舞)를 추는 앞의 4열 무인이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출 때 손에 쥔다. <출처:고궁박물관>

약과 적을 들고 문무를 추는 모습(왼쪽), 검을 들고 무무를 추는 모습(오른쪽)

종묘제향 일무의 순서와 동작을 기록한 무보, 시용무보(時用舞譜),

일무인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의 순서와 동작을 기록한 무보이다. 연주음악의 음계, 춤 동작 및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무보로 현재 종묘제례 일무의 교본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해금(奚琴),

속이 빈 나무 한쪽에 오동나무 복판을 붙이고 긴 나무를 꽂아 줄을 활 모양으로 건 악기이다. 말총으로 만든 활대로 두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낸다.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아악부원이었던 심소 김천흥 선생이 사용한 것이다. <출처:고궁박물관>

당피리, 당필율(唐觱篥),

8개의 지공(指孔)을 가진 죽관에 겹으로 된 설(舌)을 꽂아 분다. 당악계 음악에 편성되었다. 대금(大笒), 취구(吹口)에 입김을 불어 넣어 연주하는 악기이다.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雅樂手)를 지낸 김성진 선생이 사용한 대금이다. 종묘제례에서는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 사용되었다.<출처:고궁박물관>

박(拍),

연주의 시작과 끝으 ㄹ알리고 춤사위의 변화를 조절하는 악기이다. 6개의 나무판자 한쪽에 구멍을 2개씩 뚫고 한데 묶어서 만들었다. 양손으로 벌려 잡았다가 한순간에 모아 친다.

태평소(太平簫),

‘호적胡笛’, ‘날나리’, ‘쇄납瑣㖠’이라고도 한다. 음이 강하고 높은 것이 특색이며 종묘제례악, 풍물놀이, 불교음악 등에 사용되었다.

진고(晉鼓),

고려 1116년 예악기의 하나로 전래되었다. 현재 사용되는 북 중 가장 크다.

편종(編鍾),

타악기의 일종으로 고려 1116년(예종11)에 송나라에서 수입되어 궁중제례악에 사용되었다. 크기는 같지만 두께가 다른 16개의 종을 상단과 하단에 8개씩 걸고 뿔망치인 각퇴(角槌)로 쳐서 소리를 낸다. 종의 두께가 두꺼우면 높은 음을 내고 얇으면 낮은 음을 낸다.

어(敔), 복제,

고려 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된 후 아악연주에 사용되었으며, 종묘와 문묘의 제례악에 쓰인다. 음악의 끝을 알리는 악기로 서쪽에 놓인다. 나무로 만든 엎드린 호랑이 모양으로 등 위에 27개의 톱니가 있다. 대나무채로 호랑이 목덜미를 세 번 친 다음 등의 톱니를 세번 그어 연주한다.


축(柷),

고려 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된 후 아악연주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종묘와 문묘의 제례악에 쓰인다. 긴 막대를 수직으로 내리쳐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로 동쪽에 놓인다. 음악의 끝을 알리는 어와 짝을 이룬다.

장고(杖鼓),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장단악기이다. 왼쪽은 가죽이 두꺼워 낮은 음을 내고, 오른쪽은 가죽이 얇아 높은 음을 낸다. 왼쪽 가죽은 왼손바닥으로 치고, 오른쪽 가죽은 채로 친다.

편경(編磬),

타악기의 일종으로 고려 1116년에 송나라에 수입되어 궁중제례악에 사용되었다. ‘ㄱ’자 모양의 16개의 편경을 상단과 하단에 8개씩 걸고 뿔망치인 각퇴(角槌)로 쳐서 소리를 낸다. 돌의 두께가 두꺼우면 높은 음을 내고 얇으면 낮은 음을 낸다.

방향(方響),

타악기의 일종으로 고려시대부터 당악과 고취(鼓吹)에 편성되어 쓰였다. 16개의 쇳조각을 상단과 하단에 8개씩 걸고 뿔망치인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낸다. 쇳조각의 두꼐가 두꺼우면 높은 음을 내고 얇으면 낮은 음을 낸다.

악학궤범,

조선최고의 실용음악 이론서이서 법률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성종 24년(1493)에 장악원의 낡은 의궤와 악보를 바로 잡으라는 어명에 따라 편찬했다. 이 악서는 음악이론을 비롯하여 아악.당악.향악에 관한 여러 사항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고, 이외에도 악기.의상.그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악후보, 보물, 1759년,

조선 세조 당시 음악을 담은 악보이다. 영조 35년 서명응이 세조 때의 음악을 모아 편집한 악보이다. 책 표지 제목에 ‘장악원’이란 인장이 찍혀 있어 장악원에서 연주한 악보임을 알 수 있다.

종묘제례시 악공들이 대기하던 정전 악공청.

영녕전 악공청

 신을 위한 음악.노래.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 제향에서는 음악과 노래 및 춤으로 구성된 종묘제례악이 연행된다. 종묘제례악에 쓰인 음악으로는 왕의 문덕(文德)을 칭송하는 <보태평保太平>과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정대업定大業>이 대표적이다. <보태평>과 <정대업>은 세종대에 우리 음악인 향악을 바탕으로 창제되어 세조 대에 이르러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된 이래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종묘 정전에서 댓돌 위, 아래에 편성된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의 두 개 연주단이 제례의 절차에 따라 번갈아가며 음악으 ㄹ연주한다. 또 일무(佾舞)라고 하는 종묘제례를 위한 춤사위도 행해진다. <보태평>에서는 구멍이 셋 뚫린 피리(약籥)와 꿩 깃털로 장식한 막대(적翟)을 손에 쥐고 문무(文舞)를, <정대업>에서는 나무로 만든 창과 칼을 들고 무무(武舞)를 춘다. 연주와 노래는 장악원의 남자 음악인이, 춤은 일정한 훈련을 거친 군인이나 궁중에 속한 남성이 담당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와 함께 2001년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