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서울 부암동 석파정(石坡亭) 별당, 구한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은 별당건물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 건물 중 세검정 삼거리로 옮겨지 중국풍의 별당 건물이다. 건물은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는 ‘ㄱ’자형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정면의 툇마루에 설치된 난간을 설치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앞면 4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외벽은 구운벽돌로 쌓았으며, 벽 중앙에 원형과 반원형의 창을 내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의 특징이다.

석파정은 원래 김흥근이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별장을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이 강제로 빼았다시피하였던 곳으로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 밖 바위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북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구한말 대표적인 정자건축물이다. 석파정에는 전망좋은 언덕에 별채가 따로 있는데, 국왕을 위해 비워두고 흥선대원군 자신은 이 별당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석파정 별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집은 원래 서예가 손재형이 1958년에 지은 집으로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석파정 별당>

세검정 삼거리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석파정 별당 전경. 원래 부암동 석파정에 속해 있던 건물을 1958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앞면 4칸에 ‘ㄱ’자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이다.

<별당이 있는 언덕>

서예가 손재형이 이 곳으로 옮기면서 나름 운치있는 장소에 별당을 세워놓고 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별당건물에서 내려다 보는 세검정 일대의 경치가 아름다웠을 것 같다.

<가운데 대청마루>

가운데 대청마루 2칸을 두고 양쪽에 온돌을 배치하였다. 흥선대원군은 난초를 그릴때 대청마루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퇴마루에는 구한말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난간을 설치하여 화려하게 꾸몄으며, 건물 양쪽 벽면은 벽돌을 이용해서 쌓았다.

<건너방>

흥선대원군이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건너방은 앞면으로  돌출시켰고 방을 넓게 하였다.

<옆에서 본 모습>

측면은 구운벽돌을 쌓아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 전통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중국풍의 건축양식이다.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둥근 형태의 창문>

<별당 한편에 쌓아 놓은 옛날 기와조각들>

<석파랑 별당에서 내려다 본 세검정 주변 경치>

지금은 상명대학교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은 옛날 산수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서울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명소였다.

<세검정 일대 그림>

19세기에 유숙이라는 사람이 세검정일대 풍경을 그린 산수화이다.

<석파정 아래 본 서예가 손재형이 지은 집 정원>

이 저택 바깥쪽으로는 지금은 도로가 있지만 원래는 개천이 흘렀을 던 것 같다. 이 집은 1958년에 지은 한옥이지만 전통한옥과 일제강점기 개량한옥의 특징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식당으로 운영하는 이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사랑채>

세검정 계곡 방향에 위치한 사랑채는  ‘-‘자형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안채>

안채 건물은 외관상 한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엌이나 화장실 등을 실내에 두고 있는 일제강점기 개량한옥 형태를 하고 있다.

<안채 정원에 심어진 대나무>

<누마루>

사랑채와는 별도로 가족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누마루를 두고 있다. 구한말 대저택 안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안채 마당과 별당으로은 오르는 길>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정원을 운치있게 꾸며놓았다.

석파정 별당, 19세기중엽 건립, 1958년 이전
이 집은 19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창의문 밖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 별당이다. 1958년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이곳에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이 별당을 뒤뜰에 옮겨 지었다. 이 집은 중앙에 대청이 있고 양 옆에 방이 있는 ‘ㄱ’자형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흥선대원군이 앞쪽으로 돌출된 큰 방을 사용하였고, 난초를 그릴 때에만 대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손님을 접대할 때는 건넌방을 사용하였다. 지붕이 끝나는 측면에는 붉은 벽돌로 벽을 세웠고, 벽 중앙에 원형과 반원형의 창을 내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의 특징이다. 정면의 툇마루에 설치된 난간은 상류사회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지은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별장 건축물이다. <출처:서울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