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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벽계강당, 구한말 유학자 이항로가 후학을 양성하던 곳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벽계구곡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벽계강당( 蘗溪講堂)이다. 이곳은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대표한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년)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이항로는 과거에 합격했으며, 많은 추천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일생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김형묵, 최익현, 양헌수, 유인석 등이 이곳에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강당건물은 실제로 당시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가 서원을 건립할 의도로 구상했던 것을 1999년에 건립하였다. 실제로는 그가 살았던 집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가 건물 구조를 살펴보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이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강당의 규모는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은 서원의 강당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서원을 설립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구한말은 서원을 중심으로 한 당쟁의 폐해가 많았고, 서원철폐령때문에 서원을 세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뒷편에는 그를 모시는 사당인 노산사(盧山祠)가 1954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 서원이 건립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양평 벽계강당>

이항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생전에 구상한 내용에 따라 1999년에 세워졌다. 건물은 행랑채가 있는 솟을대문과 강당으로 구성되었다.

<강당>

<실제로 이항로가 후학을 양성했던 집>

<사랑채>

실제로 사랑채가 후학을 양성했던 공간이다. 일반적인 살림집과는 달리 집의 규모에 비해 사랑채 규모가 상당히 크고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 안마당>

그의 제자들이나 손님들이 묵을 수 있도록 많은 방을 두고 있으며, 살림집인 안채와는 담장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이항로(李恒老, 1792~1868년)는 조선의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이며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3세 때 《천자문》을 떼고, 6세 때 《십팔사략》을 배웠다고 한다. 1840년 헌종 때 경사(經史)에 밝은 선비로 천거되어 휘경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 벽계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864년 고종 때 좌의정 조두순의 추천으로 장원서 별제·전라도 도사를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특히 성리학에 밝았으며, 저서로 《화동역사 합편강목》 60권과 《벽계아언》 12권, 《주자대전 잡의집보》 등이 있다.  (위키백과,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