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삼국/통일신라, 고려/조선/근대, 삼국/통일신라 성곽, 조선시대 읍성과 산성,고분/왕릉, 근대건축, 사적
고구려 산성, 고구려는 북방유목민들과 투쟁을 통해 효과적인 방어체제로 많은 산성을 쌓았다. 한반도에서도 한강유역을 다투던 시기에 크고 작은 산성과 보루(요새)들이 세워졌으며, 고구려의 산성은 신라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대표적인 군사방어체제가 되었다.
백제 토성과 산성. 백제는 중국,일본과의 해상무역을 통해서 성장한 국가이다. 삼한시대나 가야연맹체와 마찬가지로 백제는 큰 강 주변 늪지에 토성을 쌓고 교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성백제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대표적이다. 이후 고구려의 압박을 받아 공주와 부여로 천도한 이후에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왕성 주변에 산성을 쌓아 방어력을 보완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통일신라, 신라 초기는 백제와 마찬가지로 경주 월성이나 대구 달성 같은 교통요지의 낮은 구릉에 읍성 성격의 토성을 주로 쌓았다.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경주 주변을 중심으로 산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삼국통일 후 나당전쟁의 과정에서 전국의 주요 거점에 산성을 쌓아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신라가 쌓은 산성은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몽골과의 전쟁 이후 많은 산성들이 허물어지고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일부는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고려시대는 북방민족과 전쟁이 많았던 시기로 주로 한반도 이북 지역에 많은 산성들을 쌓았으며, 한강 이남 지역에는 통일신라때 쌓은 산성들을 보수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지역의 산성 중 대표적인 곳으로는 대몽항쟁이 흔적이 있는 강화산성과 죽주산성, 처인성 등을 들 수있다. 강화산성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산성들은 몽골의 압력으로 허물어진 후 사용하지 않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일부를 보수하여 다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