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터/당간지주

전통사찰절터탑(Pagoda)승탑/석조문화재불상/불교조각 

백제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침류왕때이지만, 실제로 불교가 크게 융성한 것은 백제 부흥을 꿈꾸던 성왕때이다. 중국 양나라의 무제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으로부터 기술자 등을 지원받아 도읍을 사비성으로 옮기면서 정림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세웠다. 이런 경향은 그의 아들인 위덕왕과 무왕, 의자왕때까지 이어졌으며, 이런 경향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사비기 도읍이었던 부여 일대와 무왕에 미륵사를 세웠던 익산지역에는 당시 세웠던 절터들이 여러곳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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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주의 칠처가람(七處伽藍). 신라에 불교가 받아들여진 것은 고구려를 통해서 눌지왕때인 5세기 중엽이었으나 실제로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된 것은 법흥왕 때인 527년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서이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에서 불교는 왕실과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이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긴 경주의 일곱 곳의 숲에 사찰들이 세워졌는데 이를 칠처가람이라 한다.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천왕사, 담엄사가 칠처가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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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사찰. 통일신라는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대중적인 종교로 변모시켰으며, 불교를 통해 사회 안정을 이루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포용하고 융화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경주에는 죽은 국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과 국가의 안녕을 비는 호국 불교 성격의 사찰들이 많이 세워졌다. 문무왕을 위해 세운 감은사, 성덕왕과 효소왕을 위해 세운 황복사, 불국토를 구현한 불국사 등이 대표적이다. 귀족들 또한 선대이 명복과 가문의 번창 등을 기원하기 위해 많은 사찰들을 세웠는데 김유신이 세운 천관사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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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십찰과 구산선문. 통일 이후에는 주로 화엄종과 법상종 등의 종파가 유행하였다. 화엄십찰(華嚴十刹)은 의상이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전국에 세운 사찰을 말하며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한 곳으로 오늘날까지 중요 사찰로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 팔공산 미리사, 계롱산 갑사, 가야협 보원사, 삼각산 청담사가 이에 해당한다. 하대에는 선종이 전래되어 구산선문이 형성되는 등 선종불교가 주요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은 지역 호족들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선종 계열 사찰로 강릉 굴산사, 영월 흥녕사, 문경 봉암사, 보령 성주사, 남원 실상사, 곡성 태안사, 장흥 보림사, 창원 봉림사, 해주 광조사가 이에 해당된다. 구산선문 사찰들은 화엄십찰과는 달리 문경 봉암사를 제외하고는 현대 불교에서의 비중은 낮은편이며 일부는 폐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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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호족들이나 향리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철불상을 제작하거나 사찰을 건립하는 등 많은 불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거점이나 교통로에는 기존 사찰들을 크게 중창하거나 새로운 사찰들이 세워졌다. 이들 사찰들은 대토지 소유 등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야기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찰들이 폐사되어 그 절터만 남아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불교 신앙대상이 사리를 모신 탑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으로 바뀌면서 석탑은 많이 세워지지 않았으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고려시대 절터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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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큰 사찰을 유지하기에 매우 어려웠고,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사찰들이 없어졌다. 반면에 왕실의 비호를 받은 일부 사찰들은 크게 번창했으며 왕릉을 지키는 원찰들도 세워졌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승병의 역할을 재평가 받으면서 일부 사찰들은 국가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으며, 국방상 중요한 산성 등에는 승병들을 위한 사찰들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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