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이야기, 목조건축, 비석/금석문, 금속공예, 도자공예, 회화/서예/문서, 과학/기술, 무기/병서, 국보문화재
비석은 어떤 인물이나 사건 등을 기념하기 위해 돌.목재.철재 등에 글자와 조각 등을 새겨 넣은 기념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돌에 글자와 조각상을 새겨놓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비석과 같은 형태의 기념물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의 함무라비법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단초를 제공해 준 로제타스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동양에서 비석은 주로 돌에 글자를 새긴 석비의 형태로 중국 주나라부터 시작되어 한대와 당대를 거치면서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을 갖춘 전형적인 석비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삼국/통일신라. 삼국시대에는 다양한 목적으로 비석들이 많이 세워졌는 광개토대왕비, 진흥왕순수비 등 통치자를 찬양하거나 정치적 의도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것도 있으며, 포항 중성리비처럼 재산권을 조정하거나, 남산 신성비나 무술오작비처럼 성곽이나 제방을 쌓고 그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 등 국가를 통치하고 법령과 제도를 알리기 위한 비석들이 많이 세워졌다.
고려/조선시대에도 통치자를 찬양하거나 정치적 의도 등을 널리 알리거나 다양한 목적의 비석들이 세워졌다. 삼국시대와는 달리 종이문서를 주로 사용했기때문에 비석의 역할은 크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지방 관아에 관리를 지낸 인물들의 공덕비나 서원, 사찰 등이 내력 등을 적은 사적비 등도 있다.
신도비는 왕이나 뛰어난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졌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왕릉이나 개인의 무덤 등에 세워졌다.
탑비는 승려의 일생과 업적이 적혀 있는 비석으로 사리를 모시는 승탑과 함께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영향을 받아 거북받침돌 위에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진 것이 많은 편이다. 머릿돌과 받침돌에서는 조형미가 뛰어난 것이 많으며, 비에 적힌 글씨를 명필의 글씨를 집자하거나 당대의 문장가가 글을 짓고 명필이 글씨를 직접 쓴 경우가 많다.
중국의 비석
중동과 유럽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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