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조선왕릉, 관아, 종묘/제단/사당, 성균관/향교, 서원/서당, 고택, 정자/정원
궁궐(宮闕)은 국왕과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의 궁궐은 법궁으로 경복궁을 두고 있으며, 이궁(離宮)으로는 동궐에 해당하는 창덕궁과 창경궁, 서궐에 해당하는 경희궁을 두었다. 경운궁으로 불렸던 덕수궁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크게 중건한 궁궐로 석조전을 비롯하여 서양문물을 일부 반영하였다. 궁궐외 국왕이 거쳐하는 영역으로는 즉위전에 거처했던 장소인 잠저(潛邸), 국왕의 행차시 임시로 머무는 행궁 등이 있다. <더보기>
-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勤政殿, 국보223호)과 조정창덕궁 후원, 부용지와 주합루 그리고 영화당
- 창덕궁 정전(正殿), 인정전(仁政殿, 국보225호)과 조정(朝廷)
- 창덕궁 후원, 부용지와 주합루 그리고 영화당
- [고궁박물관] 조선의 국왕 상징물
- 북경 자금성 태화전
조선시대에는 27대 왕과 왕비 및 추존 왕과 추존 왕비가 있는데, 이들의 무덤을 왕릉이라 한다.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陵),원(園),묘(墓)로 분류된다. 현재 국내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릉은 40기, 원은 13기이다. <더보기>
관아(官衙)는 중앙부서와 지방의 관리와 실무자들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광화문 앞에는 관청들이 들어선 육조거리가 형성되었으며, 지방에는 관청이 들어선 읍치가 있고 지위에 규모에 따라 다양한 관아들이 들어서 있었다. <더보기>
- 육조거리,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가 있었던 광화문대로
-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 국왕의 정책을 자문하고 보필하는 기관
- 광주부(廣州府) 관아, 남한산성내 설치된 행궁과 관청들
- 경상감영 선화당,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정청 건물
- [중국 취푸] 공부(公府), 공자 종손 집무공간인 대당(大堂)
제사시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제천의식이 있었으며, 중국의 제례의식과 결합하여 한국적인 제사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은 종묘나 문묘 등 위패를 모신 사당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있으며, 사직단이나 선잠단처럼 제단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 <더보기>
- 종묘 정전(正殿),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곳
- 사직단,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 환구단, 대한제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곳
- 북경 천단공원 황궁우, 하늘을 관장하는 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
- 창덕궁 선원전, 역대국왕의 어진을 모신 전각
문묘(文廟)는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문묘는 중국 노나라 수도였던 곡부(曲阜)에 처음 세워졌다. 문묘는 공자가 행단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으로 유학이 국가 이념이었던 사회에서는 공립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중국 북경의 국자감, 서울의 성균관, 지방의 향교가 이에 해당한다. <더보기>
- 성균관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 비천당
- 북경 국자감 대성전(大成殿), 공자 위패를 모신 곳
- 취푸 공묘(孔庙),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행단(杏壇)
- 광주향교 (廣州鄕校), 광주부(廣州府)에서 설치했던 중등교육기관
- 강릉향교(江陵鄕校),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향교
서원(書院)은 뛰어난 학자 등의 위패를 모시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주세붕이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안향(安享)을 모시는 백운동서원을 세우면서 교육기능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를 최초의 서원이라고 한다. 조선중기 이후 국왕이 현판과 토지를 하사하는 사액서원이 생겨나면서 지방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서당은 개인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향후 서원으로 발전할 의도를 가진 경우가 많다. <더보기>
- 영주 소수서원, 고려 유학자 안향을 모신 최초의 서원
-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선생을 모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
- 안동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선생을 모신 서원
- 경주 옥산서원,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모신 서원
- 달성 도동서원, 정통 성리학을 계승한 유학자 김굉필을 모신 조선 5대 서원
고택(古宅)은 옛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공간으로 그 형태를 한옥이라 부른다. 한옥은 목재로 기둥이나 보같은 구조물을 만들고 기와나 초가로 지붕을 얹은 형태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고택 중 가장 오래된 형태는 조선초기 맹사성이 살았다는 맹씨행단이며, 현존하는 고택들은 대부분 18~19세기에 지어졌다. <더보기>
- 서울 안국동 감고당(感古堂), 인현왕후의 친정으로 북촌(北村)을 대표하는 가옥
-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堂), 만해 한용운이 만년에 살았던 성밖마을 소박한 한옥
- 남양주 여유당(與猶堂), 팔당호에 자리잡은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집
- 강릉 오죽헌(烏竹軒, 보물165호), 율곡이 태어난 유서깊은 깁
- 아산 맹씨행단 (사적109호), 청백리 정승 맹사성 고택으로 가장 오래된 민간 주택
누각과 정자는 휴식을 취하기위한 공간으로 주로 경치가 좋은 곳에 세워졌다. 궁궐에서도 후원에 크고 작은 정자를 세웠으며 관아에서도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를 개최하거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세웠다. 개인들 또한 손님접대나 휴식, 공부나 후학 양성의 목적으로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들을 세웠다. <더보기>
- 경복궁 경회루(慶會樓, 국보224호)와 연못, 국왕이 개최하는 연회가 열렸던 공간
- 창덕궁 후원, 부용지와 주합루 그리고 영화당
- 남원 광한루(보물 281호), 한국을 대표하는 누각
- 수원화성 서장대, 팔달산 정상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 서울 부암동 석파정(石坡亭), 흥선대원군이 인왕산 계곡에 세웠던 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