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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수원화성

  • [수원화성] 화서문(華西門, 보물)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

    팔달산 서장대를 지나서 능선을 따라 연결된 성벽을 내려오면, 나즈막한 언덕에 설치된 서북각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평지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화서문(華西門, 보물)과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 역할을 하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을 볼 수 있다. 화서문 부근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수원화성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외벽을 쌓은 석축성을 기본으로 하고 암문, 옹성, 포루, 공심돈, 여장 등에는 벽돌을 일부 사용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 [수원화성] 서이치~서북각루(西北角樓), 팔달산 북쪽 능선

    팔달산 정상에 자리잡은 수원화성 지휘소인 서장대에서 서문에 해당하는 화서문 부근 서북각루(西北角樓)까지는 거리(약400m)가 짧으면서 경사가 있는 편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포루와 치의 간격이 약간 좁은 편이다. 서장대 아래 경사진 능선에 치성과 포루가 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성벽 바깥에는 수원역과 경기도청 등 주요 행정기관에 많이 몰려 있다. 경사진 능선을 따라서 내려오던 성벽길이 평지로 바뀌는 곳에는 화서문 일대…

  • [수원화성]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팔달산 정상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팔달산 정상부 능선을 북쪽 끝자락에는 서장대(西將臺)와 서노대(西弩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화성내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서장대와 함께 장안문 동쪽에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불리는 동장대(東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앞면3칸, 옆면3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서장대 뒷편 사방으로 쇠뇌를 공격할 수 있는 방어시설인 서노대가 설치되어 있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 적힌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며, 그는…

  • [수원화성] 서삼치~서암문, 팔달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

    수원 팔달산(八達山)은 해발 128m의 낮은 야산으로 남북으로 약 1.2km, 동서로 400m 정도이며 정상부는 약 400m 정도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원화성 중에서 산성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팔달산 아래 남쪽을 향하고 있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사방으로 시야가 틔여 있어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기 용이하다. 정상부 능선 남쪽 끝자락에는 서남각루(西南角樓)가 설치되어 수원화성 남쪽 팔달문 바깥지역을 감시하며, 북쪽…

  • [수원화성] 팔달문~서남각루, 팔달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

    수원화성(사적) 팔달문에서 정상부까지 성벽들로 이어져 있다.  기존 산성 축성방법에 따라 지은 석축성을 하고 있으며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조때 쌓았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는 않았다. 경사진 지형으로  방어에 용이하기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방어 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정상부까지 치성(雉城)과 포루(砲樓)가 1곳씩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용이하도로…

  • [수원 화성 ]팔달문(八達門, 보물), 수원화성 남문

    수원 화성 남문인 팔달문(八達門, 보물)이다. 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長安門), 한양도성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과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문이다. 잘다듬은 화강석 쌓아 홍예문을 만들었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 놓았다. 문루 앞면 5칸의 우진작기붕을 하고 있다. 문루는 조총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판벽으로 막혀 있는데, 조선후기 성문 문루의 특징이다. 바깥쪽에는 구운벽돌로 쌓은 높이 약5m의 옹성(甕城)을 두여 2중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 수원부, 부속관청과 장용외영

    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 행차시 임시로 머물던 행궁으로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다. 이곳은 국왕 행차시 머무는 행궁과 수원유수가 근무하던 수원부 관아, 그리고 정조의 친위부대라 할 수 있는 장용영 군사들이 머물던 군영의 역할을 같이 하던 곳이다. 정조가 화성축성을 끝냈을 무렵에는 전체 430칸으로  궁궐에 버금가는 규모의 행궁이 완성되었다.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낙남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졌다. 현재의 건물들온…

  • 수원부 관아, 화성행궁(사적) 봉수당과 장락당

    화성행궁은 국왕이 국방을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던 행궁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이곳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참배할 때 머물던 곳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읍치였던 화산 주변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읍치에 읍치에 있던 관아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수원화성을 축성하게 된다. 화성행궁은 수원유수가 업무를 보는 관아건물이지만 그 규모가 562칸으로 궁궐의 절반 정도이다. 정조는 화성행궁을 크게 지은 것은 왕위를 순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