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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칼(보물)

경남 김해시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칼(보물)이다. 함안 마갑총은 1992년 함안군 도심 아파트 신축 공사 과장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온전한 상태의 온전한 형태의 말갑옷과 토기, 철기류 등이 확인되었다. 철제 말갑옷는 말머리를 가리는 투구, 목과 가습을 가리는 목가슴드리가, 말의 몸을 가리는 신갑(身甲)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표현된 철제말갑옷의 형태와 중장기병의 모습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고리자루큰칼은 손잡이 고리에 금상감한 거치문을 장식했으며 손잡이는 연호문을 타출한 도금은판으로 감싸고 있다. 가야의 뛰어난 제작기술과 조형적인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40 <말갑옷, 5세기, 함안 마갑총,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41<뒤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발굴 당시 사진>

가야가 중장기병을 운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중장기병은 북방의 고구려와 삼연(三燕) 등 정주화한 유목국가가 널리 활용하였습니다. 가야의 말갑옷은 제철기술과 국력이 주변 나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OLYMPUS DIGITAL CAMERA<금상감고리자루칼, 가야, 함안 마갑총>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 부분>

 상원하방형이며 환두 내 도상이 없는 소환두대도이다. 환의 앞뒷면에 금상감한 거치문을 새겨 넣었고 앞 뒷면에 배치한 거치문의 바깥쪽으로 은상감한 점문을 배치하였다. 칼등에도 59.9cm 가량을 금상감한 거치문으로 장식하였다. 손잡이는 연호문을 타출한 도금 은판으로 감싸고 각목문을 넣은 고리를 감아 고정하였다. (안내문, 공주박물관특별전, 2016년)

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은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넓은 평지에 있는 함안군청 뒷편 낮은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2 km 능선과 그 주변에 봉분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지배층 무덤으로 보이는 큰 봉분들은 정상부에, 그 아래에는 작은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야를 대표하는 유물인 수레바퀴모양 토기,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는 말갑옷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2. 안내문, 공주박물관특별전, 2016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7호 무덤에서 출토된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이다. 쇠뿔모양의 뿔잔(각배)를 대표하는 유물로 말 머리가 달린 뿔모양 잔이다. 2점이 출토되었는데 큰 것은 높이 14.4cm, 길이 17cm, 작은 것은 높이 12.1cm, 길이 17cm로 형태와 제작수법이 거의 동일한다. 각배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며 남성적이고 신성한 말에 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각배는 다양한 형태의 유물로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말머리모양 뿔잔, 3.부산 동래 복천동, 1969년 발굴, 보물, 삼국시대(가야) 5세기>

복천동 고분군(사적)은 동래읍성 북문 안쪽 구릉에 위치하고 가야시대 무덤들이다. 1969년 주택공사 중 우연히 무덤이 확인되어 여러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0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땅을 파서 방을 만들고 나무관을 넣은 덧널무덤, 땅속에 돌로 벽을 쌓고 천장을 덮어 만든 구덩이식 돌방무덤, 땅속에 시신을 바로 묻는 널무덤 등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4~5세기 낙동강 하류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토기들, 철제갑옷과 투구류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부산-복천동-고분군사적-03-20211125<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합천 옥전 M3호분 출토 고리자루 큰칼(보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합천 옥전 M3호분 출토 고리자루큰칼(보물)이다. 합천 옥전고분군 M3호 무덤에서 출토된 4점의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이다. 이 고리자루칼은 손잡이 끝에 달린 둥근 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이 장식된 것으로 가야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 나온다.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여 장식대도라고도 한다. 손잡이 부분에 가는 은선으로 전체를 감은 후 그 위에 얇은 금박을 붙여 장식하고 있어 뛰어난 금속가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 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151<봉황장식이 있는 손잡이 부분>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은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힜는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총 1,000여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중 합천박물관 뒷편 언덕에 봉분의 형태를 갖춘 18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 곳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와 가꾸우며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M3호분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용봉무늬와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고리자루칼 4자루가 출토되었다. 말을 탈 때 깃발을 꽂았던 기꽂이도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M3호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보물)

경남 김해시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보물)이다. 수정체 다면옥 20점, 주판옥 120점, 곡옥 6점 등 총 146점으로 이루어졌다. 맑고 투명한 무색, 황색, 갈색 등 가양한 색상의 수정을 매끈학 다듬었다. 수정은 경남 양산 등에서 생산된 것으로 수정의 형태와 색채가 다양하고 크기도 크며 수량도 많은 편이다. 3세기 금관가야 지배층이 사용했던 위세품으로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손꼽힌다.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63
<수정 목걸이, 3세기 1. 김해 양동리 27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수정 목걸이는 당시 가락국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구슬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목걸이는 가장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양동리 고분군(사적)은 가야 고분 중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 500여기의 무덤이 흩어져 있다.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양동리 마을 뒷산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출토유물을 통해 가야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해 교역을 하고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소가야 지배계층 무덤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에 있는 송학동 고분군(사적)이다. 소가야 지배계층 무덤으로 고성읍 무기산에 1~7호 무덤과 11, 12호 무덤이, 북쪽을 300m 떨어진 기월리에 8,9,10호 무덤이, 동쪽에 13, 14호 무덤이 있으며, 도심에 제2송학동 고분군으로 불렸던 무덤이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이 일본의 전방후원형 무덤을 닮았으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 뒤 돌방무덤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하고 있다. 무덤들은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덤에서는 토기류와 금동귀걸이, 금동장식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소가야는 3세기까지 변한 12개국 중 고자미동국, 고자국으로 불렸던 세력이 성장한 것이다. 삼한시대 사천 늑도 등과 함께 한.중.일 해상교역로에서 중요 거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금관가야와 경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에 합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 유적으로는 송학동 고분군, 내산리 고분군, 율대리 고분군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고성 송학동고분군<고성 송학동 고분군 위성사진>

1호분은 외관상 북쪽에 원형고분, 남쪽에 전방후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발굴조사 결과 모두 13개의 돌덧널과 돌방이 있는 독립된 원형 고분이 모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성방법에서도 인공적으로 흙을 다져 쌓은 가야 고분의 축성양식이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모습>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501<큰칼, 6. 고성 송학동 1C호분,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01<발걸이, 5~6세기, 고성 송학동 1A-1호묘, 10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81<말방울, 5세기,  18. 고성 송학동 1A-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05<뚜껑접시(스에키계 토기), 5세기, 8. 고성 송학동 1A-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26<신라토기, 1. 고성 송학동 1B-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3. 합천 옥전 3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15<청동 굽다리접시, 6세기, 5. 고성 송학동 1C호묘, 고성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22<말띠드리개, 6세기, 1.고성 송학동 1C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구릉 서쪽에 있는 2기의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1호무덤 옆에 있는 작은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구릉 동쪽 아래에 있는 3기의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1호 무덤 아래 작은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제일 아래에 있는 무덤>

고성 송학동 고분은 도심과 가까운 작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어 도심과 당항포가 있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릉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북쪽 방향>

원래 동쪽 도심에 있는 무덤들은 송학동 제2고분군으로 불렸는데 기월리고분군과 함께 통합하여 송학동 고분군으로 지정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심에 있는 무덤>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01<말갖춤, 5~6세기, 2. 말띠꾸미개, 고성 내산리고분, 고성 송학동 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동아대학교박물관, 3. 발걸이, 고성 내산리고분, 고성 송학동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04<넓은입 구멍단지, 7. 고성 내산리고분, 고성 송학동고분, 국립진주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고성 송학동고분군, 사적, 경남 고성군 송학동
고성읍 북쪽의 무기산 일대에 위치한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7기 가량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이다. 소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에는 겉모양이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닮았다 하여 한일양국 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제1호분도 위치하고 있다. 199년부터 동아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고분군의 특징과 내용이 밝혀지게 되었다. 첫째, 모든 고분의 봉토는 인공을 다져 쌓아 올려졌다. 언덕 위를 평평하게 고른 뒤 한 켜씩 다져가며 쌓아 올린 판축의 기술이 확인되었다. 둘째, 1호분은 모두 13개의 돌덧널과 돌방으로, 3개의 독립된 둥근 봉토를 가진 고분이 합쳐진 것으로 판명되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다른 모양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셋째, 가장 북쪽에서 발견된 B-1호 돌방은 전통적 가야고분과는 다른 모양인데, 입구.돌벽.천정에 붉은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넷째,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금동귀걸이, 마구, 금동장식, 큰칼, 청동제높은잔, 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어 소가야 왕릉의 면모를 짐작케 해 주었다. 넷째, 출토된 유물의 특징을 통해 고분군은 대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경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고분군이 자리한 고성군은 소가야의 옛 터로 알려져 있지만, ‘작은 가야’가 가야인들 자신이 불렀던 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철이 많이 나는 ‘쇠가야’가 잘못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