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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옥전 고분군(사적)이다.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힜는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총 1,000여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중 합천박물관 뒷편 언덕에 봉분의 형태를 갖춘 18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 곳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와 가꾸우며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가야 중심지였던 지산동 고분군이 있는 고령군과 함께 대가야를 주요 세력이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들은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가야의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철갑옷, 투구,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말안장 뒤에 깃발을 꽂는 기꽂이, 고구려 투구를 연상시키는 투구와 철제 말투구 등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로마 유리잔이 이곳에서도 출토되어 신라와의 교류관계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자를 무덤으로 보이는 M2호분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어 발달된 가야의 금속 세공기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SANYO DIGITAL CAMERA<합천 옥전고분군(사적)>

옥전고분군은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으로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서 멀지 않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황강 주변으로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으며, 낙동강이 가까워 내륙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합천 옥전고분군(사적)<옥전고분군 무덤배치(위성사진)>

SANYO DIGITAL CAMERA<합천박물관에서 무덤이 있는 구릉으로 오르는 길>

언덕에는 봉분이 있는 약 27기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1,000기 이상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나 다른 지역 가야 고분에 비해 봉분의 크기는 작은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입구 주변에 있는 무덤들(M15, M20, M21 등>

SANYO DIGITAL CAMERA<구릉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고분군 중 위쪽에 M1호분과, M2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M1호분에서는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되어 남자가, M2호분에서는 장신구 등이 많이 출토되어 여자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M1호분과, M2호분>

M1호분에서는 각종 철제무기를 비롯하여 로마에서 만들어진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로마제 유리잔은 경주 고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출토되었다.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M1호분>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출토된 로마제 유리잔>

옥전고분군 M1호분
봉분의 지름은 동서 19.5 m, 남북 21.4 m로 평면상 타원형을 이룬 반지하식의 덧널무덤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그 가운데에 격벽을 만들어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구분하였다. 주위에는 3기의 순장곽이 축조되어 있는데 고령 지산동고분의 순장곽은 호석안에 포함되어 있음에 비해 이곳에서는 호석의 바깥에 연하여 축조된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제3차 조사(1989. 5. 8 ~ 1989. 7. 2)때까지도 전혀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처녀분이었으나 1991년 봄 안타깝게도 대규모의 도굴피해를 입었다. 유물은 각종 토기를 비롯하여 무구류와 말갖춤, 금동장허리띠 등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여기서 발견된 로만글라스는 경주의 신라고분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출토예로는 유일한 것으로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옆에 있는 봉분의 크기가 비교적 작은 M2호분에서는 금제귀걸이, 팔찌 등 다양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었다. 무덤속에 남아 있는 인골도 여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2,000여 개가 넘는 구슬과 구슬을 만들었던 옥마저석이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M2호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

OLYMPUS DIGITAL CAMERA<금팔찌>

옥전고분군 M2호분
봉분의 지름이 동서 13.4 m, 남북 14.5 m의 타원형을 이루는 반지하식 덧널무덤이다. 유물은 금제귀걸이와 팔찌, 구슬목걸이 등 장신구, 말띠드리개, 발걸이, 안교 등의 말갖춤과 각종 토기가 부장되었다. M1호분과 M2호분은 출토유물을 통해 거의 같은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M1호분에서는 무구와 마구가 주로 부장되고 장신구류는 전혀 없는 데 비해 M2호분에서는 반대로 무구는 한 점도 없고 대신 마구와 다양한 장신구류만 발견되었으며, 고분 속에 남아 있었던 인골 감정 결과 여성의 뼈였으므로 M1호분은 남성, M2호분은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M3호분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용봉무늬와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고리자루칼 4자루가 출토되었다. 말을 탈 때 깃발을 꽂았던 기꽂이도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M3호분>

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은 손잡이 끝에 달린 둥근 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이 장식된 것으로 가야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 나온다.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여 장식대도라고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 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151<봉황장식>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161<종장판 투구, 5세기, 옥전 M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171<말머리 가리개,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91<말방울,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61<기꽂이,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451<화살촉 다발,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12<청동그릇, 5~6세기, 3. 합천 옥전 M3호묘, 4. 의령 경산리 2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M4호 무덤>

합천_옥전_M4호분_출토_금귀걸이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

합천_옥전_M6호분_출토_금귀걸이
<합천 옥전 M6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크고 작은 무덤들(M3~M10)>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721
<미늘쇠, 4~6세기, 합천 옥전 M6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함안 도항리 1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M11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무덤들(M16  등)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 무덤들(M23~ M27호분)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작은 크기의 무덤>

SANYO DIGITAL CAMERA<옥전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 제일 아래쪽에 있는 무덤>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09<금동모관, 4~5세기, 2.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11<금귀걸이, 4~6세기, 4. 합천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5. 합천 옥전 M1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허리띠고리, 6세기, 6. 합천 옥전 M1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63
<갑옷과 투구,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461<화살통 꾸미개, 5세기,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19<고리자루큰칼, 은장식, 함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합천_옥전_28호분_출토_금귀걸이
<합천 옥전 M28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26<신라토기, 1. 고성 송학동 1B-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3. 합천 옥전 3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28<신라토기, 4. 김해 대성동 73호묘, 성동고분박물관, 5. 합천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20200212_11<배모양 그릇, 5~6세기, 1. 김해 여래리 2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2. 합천 옥전 99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옥전고분군, 사적 326호,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이 유적은 황강변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하며 유구는 고총고분 27기를 포함하여 고분의 총 수는 약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유적은 1985년 겨울부터 1992년 봄까지 5차에 걸쳐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고분은 모두 146기인데, 유물은 토기를 비롯하여 철제의 갑옷과 투구, 각종 무기, 말갖춤, 귀걸이와 목걸이 등 무려 2,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의 주인공은 『양직공도』와 「일본서기」에 전하는 다라국의 지배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고분 연구를 통해 다라국 또는 가야사 전반에 대한 재구성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출토자료의 대부분이 일본의 중기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하여 향후 한일고분문화의 비교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한일고대사의 재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창녕 계성 고분군(사적), 창녕박물관으로 옮겨진 계성고분이전복원관

경남 창녕군 교리 창녕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계성고분이전복원관이다. 1998년 발굴.조사된 계성고분군 II지구 1호분을 이전.복원한 것이다. 이 고분은 창녕 계성고분군에 지역에서 해발 76 m 구릉 정상부에 있던 대형봉토석식무덤으로 봉토가 12방향으로 구획되어 조성되어 있었다. 발굴.조사 결과 만흔 유물들이 도굴되었지만 금제큰고리귀걸 등 장신구, 철제도끼 등 철기와 제사 행위와 관련된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도로공사 과정에서 이곳으로 이전된 것이지만 창녕 일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 내부 구조와 조성방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계성고분군은 삼국시대 가야 지배층의 무덤이 밀집해 있는 유적으로 창녕군 계성리, 계남리, 명리, 사리 등에 걸쳐 있다. 금제큰고리귀걸이같은 장신구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글자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박물관 야외에 있는 계성고분 이전복원관>

창녕_계성_고분군_후면_(촬영년도___2015년)<창녕 계성고분군(사적)>

창녕 계성고분군<창녕 계성 고분군 분포(위성사진)>

SANYO DIGITAL CAMERA<내부전시공간>

도로공사로 원래 위치에 있던 봉분을 현재의 위치로 옯겨 놓았다. 12방향으로 구획하여 흙으로 쌓은 성토방법과 석실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II지구 1호분>

II지구 1호분
이전.복원 대상인 II지구 1호분은 가장 높은 해발 76 m 지점에 조성되어 있는 중심고분으로 대형 봉분을 가진 횡구식석실분입니다. 조사당시 봉토 정상부는 도굴로 인하여 석실의 상부 석벽과 뚜껑돌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석실이 크기는 길이 396 cm, 너비 230 cm, 높이 200 cm이며 봉분을 제거하고 토층상태를 확인한 결과 모두 5차에 걸쳐 매장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묘도는 석실의 장축방향과 일직선상으로 구획하고 바닥에는 소형 할석이 깔려 있었으며, 석실벽면은 긴벽의 아래 3~4단은 수직으로 쌓아 올렸고, 그 위로는 내부로 경사지게 맞조려서 축조한 맞조림식 구조를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다. 또한 석실 벽면의 돌 사이 틈새를 막기 위하여 논흙과 같은 점토질의 흙에 볏짚과 같은 것을 함께 섞어 벽면에 발라서 마무리한 흔적이 일부 벽면에 남아 있다. 석실바닥은 대부분 도굴로 인해 훼손이 되었으나, 1차 시상대의 상부에는 단단한 점토로 덮혀 있어 훼손을 면할 수 있었으며, 2,3차 시상대는 바닥에 자갈을 깐 반면 1차 시상대는 넓은 돌을 깔고 그 사이에 자갈을 채워 바닥 면을 편평하게 하였습니다. (안내문, 창녕박물관, 2010년)

봉분은 12방향으로 나누어 다른 성질의 흙으로 쌓았다. 영남지역 여러 곳에서 이런 방식의 봉분들이 확인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봉분>

봉토의 분할성토
II지구 1호분을 발굴조사한 결과 석실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하여 방사선상으로 12방향으로 나누어 토질의 차이가 있는 흙을 이용하여, 봉토를 조성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봉토 축성방법은 196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굴조사한 창녕 계성고분군과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창녕 교동고분군 1호.3호분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봉분의 분할성토방법은 성주와 대구, 울산 등의 영남지방에서 조금씩 확인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발굴조사에도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 학계에서의 연구과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창녕박물관, 2010년)

SANYO DIGITAL CAMERA<위쪽에서 본 석실 내부.>

SANYO DIGITAL CAMERA<석실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금제큰고리귀걸이, 김해박물관. 이 무덤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유리제목걸이, 은제 허리띠장식,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유리장신 은제모자 소도자(복원품), 계성 2지구 1호분, 창년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행엽, 금동제 귀설이, 계성 2지구 1호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은제귀걸이, 은제반지, 계성 2지구 1호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삼엽문환두대도, 계성 2지구 1호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청동합, 계성 2지구 1호분, 창녕박물관>

출토유물
II지구 1호분에서는 도굴로 인해 많은 유물이 결실되고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은 모두 20여점으로 크게 토기와 철기, 장신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토기는 굽있는 주발 등 7점이 봉분 주위에서 출토되어 제사행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철기는 석실 내부에서 출토되었는데 물미, 철제도끼 등 5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장신구는 금속제와 유리제로 나눌 수 있는데 금속제는 금제큰고리귀걸이, 은제팔찌 등 9점이 출토되었고 유리제는 유리제목걸이, 유리제팔찌장식이 출토되었습니다. 출토유물을 통해서 당시 문화수준 및 피장자의 신분 등을 짐작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금제큰고리귀걸이는 금에다 유리를 장식한 것으로 당시 금가공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국내에 출토 예가 드문 것입니다. 또한 함께 출토된 은제팔찌와 은제허리띠장식구, 유리제목걸이 등은 양산부부총의 유물조합관계와 비교될 수 있으며, 귀걸이와 팔찌, 허리띠장식 등을 한 것으로 보아 피장자가 여성이라는 것과 신분이 상당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창녕박물관, 2009년)

계성고분군은 창녕군 계성면 계성리, 계남리, 명리, 사리에 걸쳐 있는 비화가야 고분군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5번국도 양쪽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계성고분군(도로공사전)>

SANYO DIGITAL CAMERA<박물관에 옮겨진 1호분이 있던 계성고분군 II지구 전경.>

계성고분군
계성고분군은 가야 및 삼국시대 고분이 밀집분포하고 있는 유적으로 창녕군 계성면 계성리, 계남리, 명리, 사리에 걸친 고분군입니다. 1967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래 199년까지 5차에 걸쳐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최근의 조사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호암미술관과 경남고고학연구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발굴조사구역은 해발 682 m인 영축산의 서쪽능선 하단부분에 형성된 낮은 구릉면을 따라 남쪽에서부터 I지구가 시작되고 북쪽 끝이 IV지구이며 구릉을 중심으로 총 4개 지구로 나누어 집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금제큰고리귀걸이, 은제팔찌 등을 비롯한 장신구와 마구, 무구, 농공구, 기와, 자기 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李」, 「大」 등의 명문이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어 이 지역의 삼국시대 사회문화상과 매장풍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창녕박물관, 2009년)

SANYO DIGITAL CAMERA<두귀달린 목긴잔, 계남고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파수부유대소호, 계남고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인화문 유개호(계성B – 3호분), 주구호(계남고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인화문병, 계성 C – 1호분. 창녕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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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 계성고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쇠도끼, 계남리 1호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가락바퀴, 계남고분군,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유개합, 계성B -1호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덩이쇠, 계남리 1호분, 창녕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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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호, 계남리 1호분, 창녕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大」자 새겨진 그릇, 비화가야 지역으로 신라문화가 확산되었음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이전.복원사업의 경과와 의의
국도 5호선 확장구간에 포함되어 1998년 호암미술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계성고분군의 II지구 1호분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정상부에 자리잡은 대형봉토석실무덤입니다. 이 고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제큰고리귀걸이 등 중요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고, 또한 봉토가 방사선사상의 12방향으로 구획되어 조성된 특징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 고고학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우리 창녕군은 창녕읍 송현리 49-3번지 1679 ㎡의 부지에 복원관을 건립하여 II지구 1호분을 이전.복원하고 영구보존하기로 영구보존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게 되었습다. 이번 사업으로 멸실위기에 있던 중요문화유적이 공간적 위치만 달리하여 보호를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교동고분군과 더불어 지역의 고대사를 밝혀줄 중요한 여가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박물관, 2010년
  2.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4. 계성고분군 보고서, 창녕군, 2015년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가야연맹체 아라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에 있는 말이산고분군(사적)이다. 가야 연맹체 중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넓은 평지에 있는 함안군청 뒷편 낮은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2 km 능선과 그 주변에 봉분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지배층 무덤으로 보이는 큰 봉분들은 정상부에, 그 아래에는 작은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야를 대표하는 유물인 수레바퀴모양 토기,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는 말갑옷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아라가야는 변한 12국 중 안라국에서 출발했으며 559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500년 이상 존속했던 정치세력이다. 함안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곳에 있으며, 남해안 주요 항구인 마산항과도 반나절 거리에 있다. 남해안 연안항로와 낙동강 내륙수운의 잇점을 살려서 무역으로 크게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이런점들이 확인되고 있다. 가야연맹체를 주도했던 금관가야와는 협력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가야연맹체 아라가야 지배층 무덤으로 함안군청 뒷편 말이산 능선을 따라 큰 봉분들이 들어서 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함안 말이산 고분군 위성사진>

SANYO DIGITAL CAMERA<함안군청 뒷편 유적지 입구에 세워진 안내도>

지배층 무덤으로 보이는 대형 봉분들은 정상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 길이 약 2 km에 이르는 말이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대형 봉분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말이산 능선>

SANYO DIGITAL CAMERA<2~3호분>

4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봉토의 지름이 39.3 m, 높이 9.7 m나 되는 최대규모의 고분이었다.

SANYO DIGITAL CAMERA<4호분>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21<말띠 드리개, 5~6세기, 13. 함안 도항리 4호묘, 8호묘, 5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31<15. 말띠꾸미개, 6세기, 함안 도항리 4호, 2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능선 서쪽편 아래로 5~8호분이 있다. 끝에 있는 박물관 옆 8호분에서는 순장제도를 확인해 주는 인골이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5~8호분>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241<말머리가리개, 함안 말이산 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381<말방울, 5세기, 16. 함안 도항리 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8. 고성 송학동 1A-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9호분>

SANYO DIGITAL CAMERA<10호분>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121 <덩이쇠, 4~5세기, 함안 도항리 1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11호분>

SANYO DIGITAL CAMERA<13, 14호분>

수레바퀴 장식 토기는 굽다리 위에 수레바퀴가 양측에 놓이고, 그 사이에 뿔모양 잔을 마주보게 붙인 토기이다.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각배의 일종으로 보인다. 수레는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레바퀴장식토기, 김해박물관> 

마갑총은 고분군 북쪽끝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2년 아파트 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발굴.조사결과 고구려 개마무사의 실체를 보여주는 말갑옷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40<말갑옷, 5세기, 함안 마갑총,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41<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발굴당시 사진.(김해박물관, 2012년)>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251<재갈, 4~5세기, 3.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4. 함안 도항리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방울,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발걸이, 중앙박물관>

함안 도항리 무덤에서 출토된 판금갑옷으로 중세 유럽의 중무장한 기사를 연상시키는 갑옷이다. 갑옷에는 판금갑옷과 미늘갑옷이 있는데, 유럽의 기사와는 달리 주로 보병들이 판금갑옷을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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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갑옷, 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68
<투구와 삼각판 갑옷, 5세기, 함안 도항리 13호묘,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환두대도, 중앙박물관>

미늘쇠는 길쭉한 철판의 양쪽 가장자리를 오려내어 만든 것으로 미늘의 형태는 고사리나 가시모양이 많다. 말탄 무사를 말에서 끌어내릴 때 사용하는 무기였으나 새모양의 미늘을 만드는 등 의기로 변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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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쇠, 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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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쇠,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미늘쇠, 말띠드리개, 쇠칼, 쇠낫, 쇠화살촉, 쇠투겁창, 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무사-20200212_121<함안 도항리 1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대외관계-20200212_02<녹각장식 철검, 5세기, 4. 함안 말이산 3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김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01<배모양 토제품, 5세기, 함안 말이산 45호묘, 두류문화연구원>

중앙박물관특별전-가야본성20200212_09<집모양토기, 4~5세기, 1. 창원 석동고분, 국립김해박물관, 2. 함안 말이산 45호묘, 두류문화연구원
3. 김해 봉황동 유적,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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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그릇받침, 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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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그릇받침,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굽다리접시에 있는 불꽃무늬 구멍은 함안지역 토기의 주요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입큰단지.그릇받침, 작은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김해박물관>

토기의 굽다리에는 보통 세모 또는 네모 모양의 구멍을 뚫지만, 이 토기에는 직선과 곡선을 이용하여 불꽃모양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불꽃 모양 굽구멍은 대부분 함안지역토기에서 보이며,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토기입니다. 곡선적인 토기의 모습과 불꽃무늬가 어어러져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굽구멍들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용도뿐 아니라 토기를 구울 때 굽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합니다.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목항아리, 손잡이잔,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방울잔, 김해박물관>

함안 도항.말산리 고분군,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말산리
고분군은 안라국(安蘿國, 아라가야)의 중심지였던 가야읍에 위치하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고분의 대부분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약 2 km의 주능선과 서쪽으로 뻗은 여덟 갈래의 능선 위에 분포하고 있다. 안라국의 왕을 비롯한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 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 기의 중소형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기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34호분(현 4호분)은 봉토의 지름이 39.3 m, 높이 9.7 m나 되는 최대규모의 고분이었다. 최근에는 고분군 북쪽 끝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갑옷이 출토되었고 박물관 옆의 8호분에서는 다섯 사람의 순장인골이 확인되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고분군은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6세기 중반 무렵까지 약 60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인데, 안라국의 성립, 발전, 멸망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안라국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고분의 규모와 유물 출토양상으로 보아 6세기 무렵 안락국은 남부가야의 중심국으로서, 바다건너 왜와는 물론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섭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말산(末山) 또는 말이산(末伊山)이라고도 부르는 이는 머리사(首山)의 의미로서 안라국의 역대 왕들이 묻혔던 곳 이었기 때문에 전해져 오는 이름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함안군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함안군청, 2009년
  2.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4.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