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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기마인물형 뿔잔(국보), 가야를 대표하는 도기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이다. 높이 23.2 cm 크기의 인물형 도기로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의 형상을 올려놓고 있다. 표현방법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가야무사의 복식과 무기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무사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뒤쪽에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각배가 있다. 경주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지만 가야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국보 275호 02-20200212<말 탄 무사모양 뿔잔, 5~6세기, 전 김해 덕산리, 국보>

무사는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류와 방패를 들고 있다. 갑옷은 투구와 목가리개 등이 잘 표현되어 있고, 말에도 무사와 마찬가지로 몸 둘레에 갑옷을 걸쳤다.

OLYMPUS DIGITAL CAMERA<말과 갑옷을 입은 무사>

국보 275호 03-20200212<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말탄무사모양뿔잔(국보275호), 가야 5세기
이 토기는 국은 수집 문화재 가운데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나팔처럼 아래로 벌어진 굽다리 위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말이 올료져 있고 그 위에 무사가 타고 있다. 무사는 갑옷에 투구를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창과 같은 긴 무기를 비껴 들었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 말에도 갑옷을 입혔는데, 가로와 세로로 그어진 선으로 보아 철판이나 네모난 조각을 이어 만든 비늘갑옷임을 알 수 있다. 무사의 뒤쪽 말 등에는 두 개의 뿔잔이 대칭으로 높게 솟아 있다. 이 토기는 크지 않으나 매우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기마풍습과 함께 갑옷 또는 말갑옷의 형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국보)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국보)이다. 경북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야 금관과 부속 금제품이다. 금관은 높이 11.5 cm, 밑지름 20.7 cm로 관테에 풀과 꽃 모양의 세움장식이 형태이다. 넓은 관테에는 아래, 위에 점을 찍어 원형 금판을 달아 장식하였다. 전시된 금관에는 곱은 옥이 달려 있으나 이는 출토 이후에 단 것이라 한다. 대가야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국보 138호 04-20200212<금관, 6세기, 국보, 전 고령>

가락국의 관은 6세기 즈음에 이르러 관테에 풀과 꽃 모양의 세움장식을 세우는 것으로 형태를 갖추어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국보 138호 03-20200212<다른 방향에서 모습>

국보 138호 02-20200212<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

원형, 은행형, 꽃형 등 여러 형태의 부속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떤 형태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보 138호 05-20200212<금제장식>

가락국이 전성기일 때 만든 금관이어서 매우 안정적이면서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넓은 관테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경옥제 곡옥을 매달고, 풀잎 모양 세움장식 4개를 세웠습니다. 세움장식의 끝 부분은 꽃봉오리 모양으로 마무리하여 화려함과 신비감을 더했습니다. 금관은 가라국이 왕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사회였음을 말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독자적으로 정치적 상징물을 제작할 만큼 국력이 컸던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보물)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들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무덤에서 같이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5세기 대가야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확인되었다. 불상 광배모양의 솟은 장식 양쪽으로 작은 연봉오리모양의 장식이 하나씩 있다. 관테의 안쪽에 천이나 가죽을 덧대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대가야 관모와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보물 2018호 02-20200212<금동관, 5~6세기, 고령 지산동 32호분, 보물>

OLYMPUS DIGITAL CAMERA<2014년 중앙박물관 전시 모습>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고령의 서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능선부를 따라 수십기의 대형무덤이, 아래쪽에는 중.소형 무덤이 분포되어 있다. 수백기의 무덤이 모여 있어 가야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그중 봉분이 큰 것은 72기가 있다. 토기를 비롯하여 금동관.갑옷, 투구, 칼, 꾸미개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32호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사천 늑도 유적(사적), 고대 한.중.일 해상무역을 보여주는 초기 가야 유적

경남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늑도 유적지(사적)이다. 삼천포항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 늑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대 한.중.일간의 해상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80년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패총, 무덤, 주거유적 등과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가는 초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주로 발굴되고 있다. 그중 일본 야요이시대 토기, 중국계 유물인 낙랑토기, 중국 진나라 화폐인 반량전도 발견되고 있어 당시의 국제교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천포항에서 삼천포대교를 지나면 늑도를 포함하여 4개의 작은 섬이 있다. 그 중 늑도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섬전체에서 유적이 고루 발견되어 실제 유적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늑도는 삼천포에서 큰 섬인 남해를 돌아가지 않고 광양만으로 직접 연결되는 노량해협이 시작되는 것으로 항해술이 크게 발전되지 않았던 조선시대까지도 중요한 해상교통로 였다. 또한 삼천포항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섬이라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좋다. 초기 성읍국가로서 좋은 입지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삼천포항과 남해 창선도 사이있는 작은 섬 늑도. 섬전체가 유적지로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노량해협으로 들어가는 항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 중국과 일본,가야 사이의 무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SANYO DIGITAL CAMERA늑도 맞은편에 있는 작은 섬 초양도.

SANYO DIGITAL CAMERA늑도 동쪽에 있는 무인도 학섬.

SANYO DIGITAL CAMERA삼천포와 초양도를 연결하는 삼천포대교. 다리 아래 바닷길을 이용하면 큰 파도가 없이 노량해협까지 갈 수 있어 중요한 무역거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무역항 사천늑도
경남 사천시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 늑도. 그곳은 섬 전체가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유물도 나왔지만,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가는 초기철기시대가 중심이다. 청동검과 함께 출토된 남작쇠도끼.쇠칼.뿔손잡이칼 등은 남부지방에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의 모습을 보여주며, 집터에서는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난방시설과 부뚜막시설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말기의 덧띠토기.뚜껑.소형토기를 비롯하여 일본 야요이시대 토기도 많이 나왔고, 중국계 유물인 낙랑토기와 중국 진나라 화폐인 반량전도 발견되어, 이곳이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한국-중국-일본을 연결하는 고대무역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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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토기, 초기철기시대, 김해박물관. 야요이는 일본 선사시대(기원전 200~기원후 300) 문화를 말한다. 일본신석기문화인 조몬문화와는 큰 차이를 보이며 일본에서 철기와 청동기를 사용한 세력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야요이토기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야요이 토기편,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흑요석편.개오지조개, 초기철기시대, 김해박물관. 개오지조개는 주로 열대지방의 얕은 바다에 사는 조개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량전, 중앙박물관. 진시황이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면서 만든 동전으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래척추뼈, 초기철기시대, 김해박물관, 토기를 만들때 받침대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롱옥,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한국식동검.칼자루 끝장식,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토제품, 김해박물관, 제사의식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그릇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판모양쇠도끼.자루달린 칼. 뼈찌르개. 뼈칼,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컵,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컵,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칸막이접시,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바리, 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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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있는 항아리, 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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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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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독, 김해박물관, 죽은 사람을 묻은 독무덤에 사용된 것이다.

사천 늑도 유적, 사적 450호
패총이란 수렵.어로.채집에 의하여 살아온 옛 사람들이 조개 등의 패류를 먹은 뒤에 버린 껍데기와 생활 쓰레기 등이 홤께 쌓여 이루어진 유적으로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사천시 앞바다에 있는 늑도는 섬 전체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후기에 속하는 방다한 규모의 유적으로 1985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집단적인 집자리와 돌널무덤.독무덤.널무덤 및 조개더미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리형 민무늬토기, 민무늬항아리 등의 토기와 숫돌, 사슴뿔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민무늬토기 가운데에는 일본의 야오이시대의 토기도 섞여 있어 한.일 간의 문화 교류를 구명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이곳의 유물은 기원전 1세기 때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곳 늑도 조개더미 유적은 당시 주거 생활 형태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상활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안내문, 사천시청)

<출처>

  1. 안내문, 사천시청
  2.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4.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성산동 고분군(사적), 삼국시대 성산가야 지배층 무덤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성산동고분군(사적)이다. 삼국시대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들로 성주읍 동남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약 70여기의 무덤들이 분포되어 있으며, 하나의 봉분내에 2인 이상을 매장한 가야의 장례 풍속인 순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덤들은 주로 구릉에 흙으로 쌓은 원형봉토분으로 앞트기식돌방무덤과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1980년대에 계명대학교에서 발굴.조사를 했는데 가야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대구박물관과 계명대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대호를 비롯한 다양한 토기류와 은제 장신구 등 1,350여점이 있다.

성산가야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가야연맹체 중 하나로 한반도 동남부 변한 12국 중에 하나에서 발전하였다. 벽진가야라고도 하며, 성주읍과 인근 벽진면 일대를 영토로 하였는데, 낙동강 서쪽지역으로 농업생산력의 풍부했으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할 수 있어 고대국가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쪽편 가야연맹체의 중심국가였던 고령 대가야와는 출토된 유물에서 다른 특징을 나타나며 오히려 신라의의 유물과 유사점이 많아서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 성산동고분군(사적). 삼국시대 성산가야 지배층 무덤들로 성주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가야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성주읍 주변의 넓은 평야지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덤들을 흙으로 쌓은 원형봉토분 형태를 하고 있는데, 내부는 앞트기식돌방무덤과 굴식돌방무덤 등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는 원래 무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전에 밭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약간 넓은 잔듸밭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중턱쯤에 위치한 큰 규모의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약간 아래쪽에 위치한 53호분

OLYMPUS DIGITAL CAMERA중간쯤 위치한 57호분.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56호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 여러기의 봉분들이 이어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분이 있는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성주읍치였던 성주군소재지. 낙동강 지천인 이천이 성주읍치를 남쪽으로 휘감으면서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비교적 넓은 농지가 펼쳐있어 농업생산력이 좋았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중앙박물관전시, 2014년). 신라의 토기와 비슷한 점을 보여 성산가야가 신라의 영향 아래에 있었음을 추정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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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1.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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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목항아리, 2.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중앙박물관

성주 성산동 고분군, 사적86호,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동
성산가야 수장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군은 성산(해발 389 m) 줄기를 따라 축조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129기가 확인되어 정비 및 복원을 하고 있다. 1988년에 있었던 발굴조사에 따르면 고분의 묘장형태는 한 봉토내에 2인 이상을 매장한 순장에 의한 다장묘로서 별도의 순장곽을 설치하거나 부곽의 한 구석에 순장한 형태임, 주실인 석실은 크기에 비해 유물이 빈약한 반면 부곽에는 넘칠 종도로 많은 유물을 부장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출토품으로는 대호를 비롯하여 유개장경호, 단경호, 유개고배 등의 토기류와 은제 장신구, 화촉 등 1,350여점이 있으며, 이 유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 및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보관되고 있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