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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정동진,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해돋이 명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역길에 위치한 정동진역이다. 동해안을 따라서 서울에서 강릉까지 연결되는 영동선이 지나고 있으며, 정동진에는 작은 간이역이 자리잡고 있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철길과 해안풍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때 여객취급이 중지되기도 했으나 90년대 크게 히트한 SBS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동진 해돋이열차가 운행되면서 관광객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철길 옆에는 일명 ‘모래시계나무’ 또는 ‘고현정 소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관광명소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간이역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론 정동진역 앞에는 상가도 많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정동진은 광화문 정동쪽 바닷가라는 뜻으로 강릉남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해수면의 승강운동과 지반의 융기에 따라 퇴적면이 해안선을 따라 계단식으로 분포하는 해안단구 지형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강릉 정동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역길
정동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동쪽에 있는 나루터란 뜻이며, 장엄한 해돋이로 유명하다.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으며, 1994년 방영되었던 SBS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곳이다. 이 곳은 탤런트 고현정이 정동진역과 역구내 소나무를 배경으로 촬영된 장면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며 특히 이곳의 약 30그루의 소나무 전체가 비스듬히 누워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또한 매일 청량리역에서 정동진역간 해돋이 시간에 맞춰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출처: 강릉시청>

SANYO DIGITAL CAMERA정동진역. 시골의 작은 간이역이었던 정동진역은 90년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해돋이 명소로 탈바꿈했다. 많은 관광객이 찾기는 하지만 간이역 풍경은 아직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역사 정면에 위치한 작은 소나무. ‘모래시계 소나무’ 또는 ‘고현정 소나무’로도 불리는 이곳의 명물이다. 드넓은 동해바다와 철길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정동진역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SANYO DIGITAL CAMERA바다쪽에서 본 소나무.

SANYO DIGITAL CAMERA강릉남쪽 삼척에서 해안선을 따라 연결되는 영동선 철도.

SANYO DIGITAL CAMERA강릉으로 향하는 방향.

SANYO DIGITAL CAMERA정동진 바닷가. 넓지는 않지만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동진역 남쪽 해안. 멀리 여객선 모양의 호텔이 보인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강릉시청

강릉 주문진항,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어항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위치한 주문진항이다. 강릉도심 북쪽에 위치한 어항으로 영동지방에서는 묵호항, 속초항과 함께 가장 많은 어선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항구로서 입지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방파제가 건설되면서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어항이 되었다. 동해안 여행을 떠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어시장이 크게 발달되었다. 예전에는 명태.오징어 등이 많이 잡혔던 곳이지만 지금은 속초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대표하는 어종이 많지 않은편이다. 어시장에서는 근처에서 잡히는 양미리, 도루묵, 방어와 같은 생선과 문어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지방을 대표하는 주문진항. 강릉과 가까이 있고,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방파제를 쌓아 어항으로 크게 발전했던 곳이다. 어선들이 주로 정박하는 어항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어시장이 발달한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방파제를 막아 조성한 주문진항.

SANYO DIGITAL CAMERA어선들이 정박한 항구 주변으로 어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항구에 정박한 어선들.

SANYO DIGITAL CAMERA관광객으로 번잡한 주문진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강릉 사굴산 굴산사지(사적 448호), 통일신라 구산선문 사찰이었던 절터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위치한 옛 절터인 굴산사지(사적448호)이다. 굴산사(掘山寺)는 통일신라 후기(851년)에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선종을 크게 전파한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다. 범일국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굴산사에서 40년동안 지내면서 불법을 공부하고 전파하였다. 구산선문은 기존 교종의 교리 중심에서 부처의 가르침이 주는 본래 의미를 전한다는 선종의 성격을 갖고 있다. 통일신라말기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지방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유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의상대사의 화엄십찰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불교의 경향을 보여주는 사찰들이다. 굴산사는 후삼국시대 세력균형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던 강릉지역 호족들의 지원을 받았던 사찰로, 굴산사를 창건한 범일국사 또한 이 지역 호족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굴산사는 고려시대 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했으나, 조선초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대관령 남쪽 사굴산 자락에 창건된 굴산사는 깊은 산중에 위치한 산중 사찰은 아니고, 동해안에서도 가장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 강릉 지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굴산사 절터 대부분은 지금은 농지로 사용되고 있기때문에 정확한 사찰규모와 영역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최근에 발생한 수해로 절터의 일부분이 발굴조사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굴산사 절터임을 알 수 있는 유물로는 사찰입구에 세워졌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보물86호)와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85호)와 석조불상 등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후기 선종을 이끌었던 구산선문 중 사굴산문을 이끌었던 굴산사 절터(사적448호). 강릉지방 호족들의 지원으로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으나, 폐사되었다. 절터는 농경지로 사용되었다가 1949년 대홍수로 주춧돌 등이 발견되어 이곳이 굴산사 절터였음이 확인되었다. 절터에는 굴산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범일국사 사리를 모신 승탑과 당간지주, 석조불상 등이 남아 있다.

강릉 굴산사지, 사적 448호,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이 곳은 신라 선종 9산 중 사굴산파가 시작된 절인 굴산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굴산사는 신라후기 범일 스님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범일스님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 굴산사에서 40년을 보내는 동안 신라의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 3대 임금으로부터 국사가 되어 주기를 권유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오로지 불법을 공부하고 전파하는데 힘썼다. 굴산사가 언제 창건되고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던 절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절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위치한 유적과 유물을 볼 때, 그 범위가 매우 넓었던 것으로 보인다. 옛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와 범일스님의 사리탑이라 전해지는 부도, 돌부처상 3구 및 많은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다. 또한 범일스님이 태어났을 때의 전설이 깃든 석천과 학바위가 있다. 굴산사지는 강원도 영동지방의 옛 불교 신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이다. (안내문, 강릉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2012년 발굴.조사 중인 굴산사지 절터. 법당, 승방, 회랑, 탑이 있었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굴산사는 사굴산문(闍掘山門)의 중심 사찰로 전성기 사찰영역의 반경 300m에 이를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건물터로 보이는 부분. 건축부재들이 발견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굴산사 건물터 발굴.조사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굴산사지 승탑(보물85호)이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 진성여왕대에 활동했으며 굴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추정되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나 조각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한쪽편에 남아 있는 작은 샘인 석천. 굴산사를 창건한 범일스님의 탄생설화가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범일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종을 공부한 후 귀국하였으며, 당나라에서 만난 이지역 출신 승려의 간청으로 이곳에 굴산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범일은 강릉 지역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숭앙되고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굴산사 입구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보물86호). 현존하는 당간지주 중 가장 큰 규모로 전반적으로 조각수법 등이 단순하고 소박하나 웅장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당간지주가 있는 이곳은 건물터가 있는 곳과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 옛 굴산사가 상당힌 큰 규모의 사찰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보물 86호,
신라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가 창건한 굴산사의 옛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이다. 굴산사는 범일국사가 당나라 유학시 왼쪽귀가 멀어진 승려가 고향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청으로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절에 행사가 있사찰을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사찰 앞에 세워지며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밑부분이 묻혀 있어 지주 사이의 깃대받침이나 기단 등의 구조를 확인할 수 없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밑면에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깃대를 고정시켰던 구멍은 상.하 두 군데에 있고, 정상은 끝이 뽀족한 형상이며, 남쪽 지주의 끝부분은 약간 파손되었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나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안내문, 강릉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굴산사 뒷편으로 보이는 백두대간. 평창과 연결되는 대관령, 정선과 연결되는 삽당령 길에서 멀지 않은 교통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굴산사지 주변은 영동지방에서 농지가 넓고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호족의 지원을 받아  구산선문의 중심을 큰 사찰이 될 수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번창했기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견제를 받아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굴산사지에서 멀지 않은 농가 부근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 원래 3구의 석불좌상이 있었다고 하며, 2구는 인근 암자에 있고, 1구만이 이 곳에 모셔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불상의 화려한 조각수법은 보이지 않고, 둥글고 긴 얼굴, 평면적인 신체, 투박한 조각 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머리에 지붕돌을 얹고 있으며, 얼굴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조각수법이 투박한 느낌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입체감이 없는 불상으로 당시 이 지역 불상 조각의 경향을 보여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은 비로자나불의 손갖춤을 하고 있다. 나머지 2구의 불상과 함께 비로자나불 삼존불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굴산사지 석불좌상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 절터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이곳에 있는 3구의 석불 가운데 완전한 2구는 근처의 작은 암자에 있고, 머리부분이 없어진 1개는 우물가에서 발견되어 이곳에 모셨다. 이는 비로자나불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비로자나불 삼존불을 모신것으로 생각된다. 얼굴은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어깨는 움츠린 듯하다. 옷의 표현이 두꺼워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가슴 부근에 있는 손의 모습은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이 불상은 둥글고 긴 얼굴과 평판적인 신체에 곡선적인 조각 등 고려 전기에 유행한 자연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지역적 특색을 담고 있다.  (안내문, 강릉시청, 2012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강릉시청

강릉 굴산사지 승탑(보물 85호)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옛절터에 남아 있는 굴산사지 승탑(보물85호)이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 진성여왕대에 활동했으며 굴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추정되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나 조각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승탑은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받침돌, 위에는 지붕돌과 꼭대기 장시이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 악기를 연주하는 조각상을, 윗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은 상대적을 작고 낮게 만들어졌으며 지붕돌은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어 균형미는 떨어진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선종 9산 중 하나로 강릉지역을 대표하는 큰 절이었던 굴산사가 있던 곳이다. 굴산사는 통일신라 후기 당나라에서 유학한 범일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굴산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는 많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옛 절터에는 범일국사의 승탑과 당간지주, 석불좌상이 현재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승탑.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한곳이었던 굴산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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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국사는 통일신라시대때 활동한 승려이지만, 이 승탑은 조각수법이나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받침돌.몸돌.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받침돌에는 여러가지 장식을 조각해 놓고 있으며, 사리를 모신 몸돌이 상대적을 작고 간소하게 꾸며져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지 않고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승탑 지붕돌과 상륜부 장식. 사리를 모시는 몸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붕돌과 장식을 크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악기는 장구.훈.동발.비파.소(피리).생황.공후.적(대금) 순으로 묘사되어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아랫받침돌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닥돌과 접시모양의 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승탑 앞에 놓여진 석조유물 조각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중 하나로 강릉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던 굴산사 절터. 굴산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려시대까지 사찰이 존재했다고 한다.

강릉 굴산사지 승탑, 보물 85호,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이 부도는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굴산사터의 위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변형된 수법을 보인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받침부분이 놓이고, 위로는 지붕돌과 꼭대기장식이 놓였다. 꼭대기장식으로는 상륜받침과 보개, 연꽃봉오리 모양의 구슬장식이 놓여 있다. 한 돌로 된 바닥돌은 8각의 평면이며, 위에는 접시 모양의 받침돌이 있다. 2단으로 된 8각의 괴임돌이 있는 아래받침돌은, 평면이 원형이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 중간받침돌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천상의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조각되어 있는 상은 8구 모두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악기는 장구.훈.동발.비파.소(피리).생황.공후.적(대금) 순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맨 윗받침돌은 위를 향해 활짝 핀 연꽃모양을 새겼다. 몸체는 8각의 낮은 몸돌과 지붕의 경사가 급한 지붕돌로 이루어지는데, 지붕돌 처마끝의 치켜올림이 없어 밋밋하다. 전체적으로 위축된 느낌을 주는 이 부도는 몸돌이 낮고 작은 데 바하여 지붕돌이 다소 커져 균형을 잃은 듯 하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2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강릉 경포호수,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

강원도 강릉시 동해에 위치한 대표적인 석호(潟湖)인 강릉 경포호수이다. 경포호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자연호수로 동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해송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경치가 좋은 곳에 별장을 풍경을 즐기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인지라 이 곳 경포주변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누각과 정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일생에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는 관동팔경을 구경하며 시을 읊고 풍류를 즐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관동팔경중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경포호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강릉대도호부 객사인 임영관이나 강릉향교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던 것으로 보이며, 강릉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부호들은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릉지역에서 제일 부잣집인 선교장이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율곡선생의 외가인 오죽헌 또한 많은 선비들이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경포대 언덕에서 내려다 본 경포호수.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즐겼던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경치이다. 비롯 경포호수가 매립 등으로 그 넓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동해안 제일의 호수로서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포호수 남쪽편 초당마을 부근.

SANYO DIGITAL CAMERA 경포호수 가운데 있는 새바위와 월파정.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경포대 부근

SANYO DIGITAL CAMERA경포해수욕장 입구.

SANYO DIGITAL CAMERA호수에서 자라는 갈대.

SANYO DIGITAL CAMERA경포호수를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 경포호수는 둘레가 원래는 12km 정도였으나 지금은 많이 줄어들어서 4km정도라고 한다. 천전히 산책하기에 좋은 거리이다.

SANYO DIGITAL CAMERA경포호수를 형성하고 있는 모래톱이 경포해수욕장을 형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경포해수욕장 솔숲.

SANYO DIGITAL CAMERA경포호수가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물길.

SANYO DIGITAL CAMERA경포호수를 막고 있는 수문. 원래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석호였지만 지금은 농사에 사용할 수 있는 담수호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포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호수 둘레는 본래 12km에 달했으나 지금은 하천에서 토사가 흘러들어 4km 정도로 줄었다. 호수 주변에는 누정이 많기가 전국에서 으뜸으로, 경포대를 비롯하여 해운정, 경호정, 금란정, 방해정, 석란정, 창랑정, 취영정, 상영정 등의 정자가 남아 있으며, 정자마다 시문이 남아 있다. 호수 수면이 거울같이 맑아 경포호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람에게 유익함을 준다하여 군자호라고도 한다. 호수 한 가운데 있는 바위는 각종 철새들이 와서 노는 곳으로 새바위라고 하며,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이란 글씨가 남아 있다. (출처:강릉시청)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강릉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