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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초당마을, 경포호수 부근 초당두부로 유명한 마을

강원도 강릉시 초당순두부길에 위치한 초당마을이다. 이곳은 강릉 경포대를 찾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찾는 곳 중 하나로 초당두부로 유명한 곳이다. 초당두부마을은 조선중기 여류문인 허난설헌과 허균이 살았던 집 주변 마을 솔밭에 먹거리촌이 형성되어 있고, 경포대 입구인 선교장 주변에도 비슷한 음식점들이 모여있다. 1970년부터 두부를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음식점을 내기 시작하면서 맛집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근에서 서울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초당두부 공장도 자리잡고 있다.

초당두부는 허균의 아버지이자 삼척부사를 지냈던 허엽이 바닷물로 간을 한 두부를 만들게 했는데 그 두부가 유명해져서 그의 호를 따서 초당두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초당두부는 보기에는 큰 특색은 없어보이는데 수분함량이 많아서 그런지 부드러운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한다. 경포호수가 바다로 나가는 출구부분에 초당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관동팔경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경포대 주변은 조선시대부터 서울 등에서 찾아온 높은 지위의 손님들이 많았던 지역이다. 외부 손님들은 선교장을 비롯하여 이 지역 유력인사들의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는데,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두부를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이 이곳 초당마을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원도 강릉시 초당두부길에 위치한 초당마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적지로 초당두부를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가 살았던 집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초당마을은 경포호수가 바다와 만나는 입구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초당마을 입구.

SANYO DIGITAL CAMERA초당마을에는 1970년대 후반 두부를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솔숲 사이에 식당을 열면서 강릉을 대표하는 향토음식마을이 형성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오래된 식당들은 옛 한옥을 개조한 작은 규모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초당두부와 순두부.

SANYO DIGITAL CAMERA두부전골.

SANYO DIGITAL CAMERA마을 한쪽편에는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초당두부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초당순두부는 초당마을 외에도 경포호수 입구 선교장 부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옛날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집들은 손님접대를 위해서 두부를 집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양반가옥인 ‘강릉 심상진가옥’이다.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강릉대도호부 관아(사적)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에 있는 강릉대도호부관아(사적)이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강릉지역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936년(고려 태조19)에 강릉을 동원경이라 칭하고 임영관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강릉은 조선초에는 대도호부였으며 각종 정치지적인 이유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대도호부가 구한말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강릉은 영동지방에서 평야가 가장 넓은 곳으로 선사시대 이래로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고려 태조대에 임영관이 세워졌을 때 83칸에 이르는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여려차례 보수와 중수를 하였으먀,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학교가 세워지면서 객사문과 칠사당을 제외하고 다른 건물들은 헐렸으며, 그 목재들은 경포호 방해정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에 사용되었다. 1998년 관아건물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한 후 객사 건물 등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릉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옛날부터 피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고관, 선비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느라 아주 바빴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의 객사에서는 객사를 사용할 수 있는 직위를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그 직위를 설명해 놓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2000년대 들어서 복원한 건물로 문화재로서 큰 의미는 없지만 강릉의 사회와 문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강릉지방은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손님들이 많이 찾았던 관광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강릉지방을 둘러보면 관아 객사는 법률 등에 제한을 받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짓지는 못했지만, 강릉향교와 지역유지의 대저택인 선교장 등은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규모가 크고 많은 방들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대도호부 객사 정문인 임영관 삼문(국보51호). 고려시대 건축양식인 주심포공포를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그 모습이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안정적이고 단아하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객사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중대청. 다른 지역 관아에서는 볼 수 없는 건물로 관찰사가 임시로 근무했던 곳이라 한다. 강릉을 방문한  고위관료 등 방문했을때 머물렀던 곳으로 관찰사를 비롯하여 고관들의 방문이 잦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고려 건축양식으로 전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양식이다.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는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출처:강릉시청>

SANYO DIGITAL CAMERA강릉대도호부 객사인 임영관. 가운데 국왕의 위패를 모시는 중대청을 두고 양쪽에 좌.우 익랑인 서헌, 동대정이 있는 것은 다른 지역의 객사와 같지만 건물 앞쪽에 전대청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건물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지고 현재의 건물을 최근에 발굴.조사과정을 거쳐서 옛모습을 복원한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객사 중심 건물인 임영관 정청.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공간으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객사 정청에 걸려 있는 “임영관(臨瀛館)”이라 적힌 현판. 공민왕이 강릉지방을 방문했을 때 쓴 글씨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 익랑인 동대청. 앞면 4칸 규모의 큰 건물로 온돌방과 연회를 할 수 있는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2품 이상의 관리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좌측의 서헌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 재판, 국가 경사 및 애사시 망곡 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에 의하면 문.무관 구별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출처:강릉시청>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 익랑인 서헌. 앞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온돌방과 마루로 되어 있다. 3품이상의 관료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 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규정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출처:강릉시청>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강릉대도호부 객사.

SANYO DIGITAL CAMERA강릉대도부 관아 건물 중 객사문과 함께 남아 있는 칠사당(七事堂). 사당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관청건물이다. 조선시대 관아는 객사와 동헌, 내아를 기본으로 하여 이방청, 작청 등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부터 여러 종류의 건물이 있는데, 칠사당은  시대에 따라서 다른 용도로 사용된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에 불타버린것으로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군영 등의 용도로 사용하다가 1950년대까지 시장 관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일반 관아 건물 형태와 가정집의 형태가 섞여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칠사당 출입문. 행랑채와 솟을대문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칠사당 행랑채. 실무관리들이 사용했던 방들과 창고 등으로 이루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칠사당 행랑채.

SANYO DIGITAL CAMERA칠사당 누마루. 형태는 구한말 사대부들이 살던 한옥의 누마루와 비슷하지만 실무관리들이 사용한 공간으로 1칸규모의 작은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칠사당은 앞면 6칸 규모로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실무관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실무 관리들이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구한말에 지어진 건물로 공포는 이익공양식을 사용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온돌방 한쪽편에 아궁이를 두고 있으며, 그 위에 문서나 책자 등을 보관할 수 있는 다락방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온돌방 뒷편에 있는 작은 마루.

 강릉대도호부 관아, 사적388호,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국보 제51호)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강릉시청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강릉도호부 객사 정문

강원도 강릉시 임릉로 옛 강릉도호부 관아에 남아 있는 임영관 삼문이다. 강릉 객사 정문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관아 건물 중에서 유래가 오래되었고 건축 수법도 뛰어나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임영관 삼문은 앞면3칸, 옆면 2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고려시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건축의 수법이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그 수법도 뛰어나기 때문에 문화재로서 가치가 상당히 높다. 임영관은 고려 태조대(936년)에 처음 세워진 지방관아로 그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다. 객사를 비롯한 임영관 건물들은 대부분 헐리고 정문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여러 건물들이 복원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도호부 관아 객사 출입문인 임영관 삼문(국보51호). 객사 정문으로 그 모습이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안정적이고 단아하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백년이 넘은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최근에 지은 건물처럼 깨끗하고 단정하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관아 출입문으로 삼문으로 되어 있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인 맞배지붕과 주심포양식이 잘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주심포 양식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과 보. 단정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준다.

SANYO DIGITAL CAMERA 지붕을 받치는 공포의 구조가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로 간결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준다.

SANYO DIGITAL CAMERA주심포 양식과 함께 안정감을 주고 있는 배흘림 기둥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잘 구현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은 커다란 널판문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객사마당에서 본 임영관 삼문.

SANYO DIGITAL CAMERA바깥에서 임영관 삼문.

SANYO DIGITAL CAMERA마당에서 본 모습.

강릉 임영관 삼문, 국보 51호,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강릉 임당동 성당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에 위치한 임당동성당이다. 이 성당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인 195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웅장하거나 화려한 멋은 없지만 다양한 양식을 접목시켜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에 지어진 영동지방 성당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당시 시대 상황이나 건축양식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근대건축물에 해당하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임당동성당은 1931년 강릉읍 임정이라는 곳에 처음 세워졌다가 193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강릉도호부 관아인 임영관이 주변 지역으로 읍치(邑治)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임당동성당.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기에 지어진 성당건축물로 화려하거나 웅장함은 없지만 전통 성당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낡았지만 세련된 느낌을 준다.

SANYO DIGITAL CAMERA성당 정면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첨탑은 교회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 큰 교회에는 종루역할도 하지만 이 성당은 교회건축물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만 갖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성당 측면. 북쪽편에는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으며, 제단 근처에는 약간 돌출된 익랑을 두고 있어 전체적으로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이 있는 남쪽편 측면.

SANYO DIGITAL CAMERA성당내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이다. 간결하면서 세련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강릉 임당동성당,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1950년대 강원도 지역 성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외관의 뾰족한 종탑과 지붕 장식, 첨두형 아치 창호, 부축벽을 이용한 입면구성 및 내부의 정교한 몰딩구성 등 의장기법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강릉 방해정(放海亭), 경포호수가 별장으로 지어진 곳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에 위치한 방해정(放海亭)이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누각과 정자가 많이 세워져 있는 경포호수가에서도 바다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강릉지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계모임을 위해 세워진 다른 정자와 달리 오늘날 부호들의 별장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곳이다. 부근에 있는 99칸 대저택인 선교장의 별장으로 구한말 군수를 지낸 이봉구라는 사람이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 지었다.

방해정은 정자처럼 집이름을 지어 놓기는 했지만 별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앞면 4칸 규모로 누마루, 온돌방과 마루로 이루졌다. 누마루와 방, 마루에는 분합문을 두고 있어, 경포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지금도 주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규모가 작어서 그런지 서쪽편에 별채를 새로 지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경포호수가 해수욕장 입구에 위치한 방해정. 여기는 원래 인월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구한말 선교장 별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경포호수 경치를 감상하기 좋도록 앞쪽에 행랑채를 두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 규모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한쪽편에는 누마루를 달아내었다.

SANYO DIGITAL CAMERA방해정에서 실제 정자 역할을 하는 누마루. 분합문을 열어두면 3면이 개방되어 시원한 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루와 온돌방에서도 경포호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앞쪽에 분합문을 달았다. 바깥쪽에는 걸터 앉을 수 있도록 작은 툇마루를 달아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원래 전통한옥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데, 방해정 집주인이 가꾸고 있는 분재들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는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별채를 두고 있다. 살림집 규모를 갖추기 위해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방해정 앞 경포호수.

강릉 방해정(放海亭),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원래 이곳은 삼국시대의 고찰인 인월사터였는데, 1859년 청안 현감과 통천 군수를 지낸 이봉구가 관직을 물러난 후, 강릉객사를 해체할 때 자재의 일부를 가져다가 이 정자를 짓고 만년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풍광이 좋은 터에 자리잡은, 누마루가 있는 별당 형식의 정자인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ㄱ’자형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두개의 온돌방과 마루방, 부엌을 달아 살림집으로도 사용이 가능하게 하였다. 전면은 모두 분합문의 띠살문을 달아 문을 열면 경포호의 정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40년 후손인 이근우가 크게 수리하였고 1975년과 1990년에 보수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