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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향교(江陵鄕校),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향교

강릉 도심 강릉역 뒷편 화부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강릉향교이다.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옛 강릉도호부 관아에서 운영했던 교육기관답게 전국 향교들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향교이다. 고려 충선왕 때인 1313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으며, 인조 때에 크게 중수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영동지방에는 서원이 많지 않아 향교의 교육기능이 없어진 조선후기와 구한말에도 그 기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1909년 화산학교를 설립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강릉농업학교를 비롯하여 초.중.고 6개교를 이곳에서 개교시켰다고 한다. 지금도 명륜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교육긴관으로서 향교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강릉항교는 화부산 경사진 곳에 위치하고 있느데, 제향공간인 대성전(보물 제214호)을 윗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아래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향공간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와 자사·증자·맹자를 모시고 있으며, 동·서무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시고 있다. 조선후기 이후 성균관을 비롯하여 다른 지역 향교는 동·서무에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하였는데, 강릉향교에서는 조선초기 양식 그대로 모시고 있다. 강학공간은 2층 누대 형식으로 지어진 명륜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와 부속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강당건물인 명륜당은 다른 지역 향교에 비해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관동팔경을 유람을 떠났던 선비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

강릉향교(江陵鄕校), 강원도 강릉시 명륜동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각 지방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강릉향교는 1313년인 고려 충선왕 5년에 강릉존무사 김승인이 화부산(花浮山) 아래에 창건하였다. 조선 태종11년인 1411년에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2년 뒤에 판관 이맹상의 발의로 다시 세웠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는데, 한국전쟁 때에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09년 화산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교육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강릉농업학교를 비롯하여 초.중.고 6개교를 명륜당에서 개교시켰다. 매년 음력2월과 8월의 초정일(初丁日)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거행하고 있다. 강릉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오성(五聖).공문십철(孔門十哲).송조육현(宋朝六賢)을 봉안한 대성전(大成殿)과 우리나라의 18선현(先賢)과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를 봉안한 동무(東廡).서무(書廡)가 있고, 강론을 하던 명륜당(明倫堂)과 유생들이 기숙을 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건물이 있다. 이 중 대성전은 보물 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강릉시 명륜동 화부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강릉향교. 제향공간을 위에, 강학공간을 아래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면 11칸으로 크게 지어진 강당 건물이 인상적이다. 구한말 신식학교를 개교하고, 지금도 명륜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의 중심건물인 대성전(보물214호)이다. 이 건물은 조선초인 1413년(태종13)에 처음 지었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수리하였다. 전국 향교의 대성전 건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간결한 주심포 방식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내부.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다. 강릉향교 대성전에는 전통적인 문묘(文廟)의 형식에 따라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晏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5성(聖)과 공자의 제자 중 뛰어난 공문십철(孔門十哲), 송나라의 뛰어난 유학자들인 송조육현(宋朝六賢) 등 중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마당. 양쪽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뛰어난 유학자들이 위패를 모신 동.서무를 두고 있으며, 출입문으로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다른 향교나 서원에서는 볼 수 있는 회랑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중국과 우리나라의 뛰어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東廡). 앞면 5칸, 옆면 1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무

OLYMPUS DIGITAL CAMERA서무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 출입문. 회랑이 있는 솟을대문을 가운데에, 양쪽에 출입문을 두어 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릉향교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인 대성전 앞 회랑. 원래 궁궐 정전 영역이나 불국사같은 통일신라 이전 사찰에 중심영역에서만 볼 수 있는 있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릉향교 강학공간인 명륜당. 앞면 11칸의 누대 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으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많은 선비들이 이 곳을 찾아 학문을 논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 신식교육을 위한 화산학교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이후 초.중.고 6개 학교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명륜당.

OLYMPUS DIGITAL CAMERA난간이 있는 명륜당 복도.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현판.

SANYO DIGITAL CAMERA전사청에서 향교 내부를 출입하는 문.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이 공부하는 기숙인 서재.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툇마루와 온돌방 등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동.서재 건물과는 달리 작은 출입문, 창문 등에서 고려시대 이전 건물 양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동쪽 천운정사(天雲精舍). 앞면7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제사를 준비하고 향교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는 살림집이다. 손님이 많은 강릉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규모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운정사 앞 작은 연못. 손님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향교 서쪽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 역할을 하는 건물인 재방(齋房)을 별도로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재방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교에는 은행나무, 향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이 심어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봄 강릉향교

 

평창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과 사자암

상원사에서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해발 1,563m)을 오르는 길목에 큰 암자인 사자암(獅子庵)과 우리 나라의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월정사 적멸보궁(寂滅寶宮)을 만날 수 있다. 적멸보궁은 원래 사리를 모시는 곳을 오르는 계단에 편의상 세운 전각이다. 예배장소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삼국시대 신라 선덕여왕때인 643년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수행한 후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지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을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5대 적멸보궁은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의 법흥사 그리고 정선의 정암사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유명한 산아래 계곡이난 중턱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오대산 비로봉을 오르는 능선 높은 곳(해발 1,200m)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오대산을 이루고 있는 다섯 봉우리(오대, 五臺) 중 중대(中臺)에 해당하는 지로봉(智爐峯, 현 호령봉)에 속한 곳이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두 짝의 판자로 만든 문을 달았고, 양쪽 칸에는 아래에는 판자로 만든 벽을 대고 위에는 띠살창을 하고 있다. 이 곳을 오르면 깊은 강원도 오대산 산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멸보궁 아래에는 부처를 호위하는 사자를 상징하는 오대산 다섯암자 중 하나인 사자암(獅子庵)이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삼국시대 자장율사가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를 나누어 모신 5곳의 적멸보궁 중 하나인 월정사 적멸보궁이다. 오대산 비로봉을 오르는 해발 1,200 m의 높은 능선에 모셔져 있다.

오대사 월정사 적멸보궁(寂滅寶宮),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는다. 태백산 정암사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사 월정사의 적멸보궁 등 강원도의 네곳과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오대산에 봉안하고 이 보궁을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낮은 한 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단층인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이다. 건물 전면의 중앙에만 두짝의 판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중방을 설치하고 협간 아래는 판벽을 하고, 그 위에 띠살창을 한 점이 특이하다. 이 건물은 그간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최근 건물 내부의 구조에서 15세기 후반 양식의 다포와 고식 단청, 배흘림기중 등의 특징이 조사되어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적멸보궁은 보통의 법당과 달리 겹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의 형태라는 사실이 보고되어 있다. (안내문, 월정사, 2008년)

SANYO DIGITAL CAMERA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해발 1,200m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두꺼운 판문을 달아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적멱보궁 앞 마당. 능선에 비교적 넓은 마당이 모셔져 있다. 승려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요사채 건물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승려들이나 신도들은 아래쪽에 있는 사자암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오르는 길.

SANYO DIGITAL CAMERA적멸보궁이 있는 능선 아래 울창한 전나무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자암.

SANYO DIGITAL CAMERA사자암은 최근에 크기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경사진 지형에 계단식으로 요사채 건물을 지어 놓고 있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는 강원지방을 대표하는 대형사찰이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어 귀국한 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작은 암자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에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고려초기 팔각구층석탑이 조성된 것으로 볼 때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월정사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여러차례 방문하였으며 실록(實錄)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두는 등 왕실의 원찰 기능을 했던 사찰이다.여러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거나 오랜 내력이 있는 불전은 남아 있지 않다. 한국전쟁 이후 탄허(呑虛), 만화(萬和) 등의 주도로 크게 중창하여 석가모니불을 모신 적광전을 주불전으로 하여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다.

사찰 중에서 경주 불국사처럼 가람들이 질서 있게 배치된 경우도 있지만,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된 원찰역할을 했던 사찰들은 대부분 가람배치에 있어서 질서를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선종 사찰들에서 이런 경향은 더 많아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월정사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사찰로 가람배치에 있어서 질서를 강조하지는 않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 많은 전각들이 중건되는 과정에서 이런 경향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강원지역과 오대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월정사. 월정사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팔각구층석탑(국보48호)을 중심으로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다. 월정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불교계에서 비중이 큰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당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어 건축물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이나 요사채가 남아 있지 않다.

오대산은 동.서.남.북.중앙의 봉우리에 각각의 대(臺)가 있어 오대(五帶)라 불린다. 동대(東臺) 만월산에 관세음보살, 서대(西臺) 장령산에 대세지보살, 남대(南臺) 기린산에 지장보살, 북대(北臺) 상왕산에 미륵보살, 상원사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면 설법을 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오대신앙의 근원지인 적멸보궁이 있다고 여겨진다. 월정사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요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한강의 발원지인 오대천이 흐르며, 강원도 산간지역에서는 비교적 농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월정사 주변에는 곧게 자란 전나무가 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 개울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전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과 일체가 된다는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한강의 발원지 중 한곳인 오대천이 사찰 앞으로 흐르고 있다.

월정사(月精寺),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한국불교의 중심지인 오대산 월정사는 문수보살(文殊菩薩)님의 지혜광명이 가득한 성지이다.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를 모시어 귀국한 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사리를 봉안하시고 이곳에 초가를 지어 도량이 창건되니 그때가 643년(선덕여왕12)이었다. 그 뒤 신효거사와 신의스님, 유연스님, 이일스님, 영담스님, 정암스님 등께서 시대를 이어 중창하여 불법을 널리 펴셨다. 이후 6.25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모든 건물이 불탔으나 만화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이어 현해스님, 정념스님의 원력으로 오늘날의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이로써 근대불교의 고승이신 한암스님의 선맥과 탄허스님의 교법을 계승한 월정사는 선원과 출가학교, 템플스테이, 기도정진 등 여러 가지 수행활동으로 불교의 세계화, 생활화, 예술화를 이뤄가며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오대산은 동.서.남.북.중앙의 봉우리에 각각의 대(臺)가 있어 오대(五帶)라 불리며 동대(東臺) 만월산에 관세음보살, 서대(西臺) 장령산에 대세지보살, 남대(南臺) 기린산에 지장보살, 북대(北臺) 상왕산에 미륵보살, 상원사에는 문수보살께서 각각의 일만 보살로 화현하여 상주설법하시며 중대(中臺)에는 오대신앙의 근원지인 적멸보궁이 있다. 더불어 월정사는 만월산의 정기(精氣)와 한강의 시원지인 우통수(于筒水)가 모여 이루어진 청량한 땅에 우뚝 세워져 늘 푸른 숲과 함께 빼어난 풍광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 4교구 본사로 산하에 60여개의 사찰과 10여개의 암자가 있으며, 국보48호인 팔각구층석탑과 보물139호인 석조보살좌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월정사>

SANYO DIGITAL CAMERA2008년 초여름 월정사.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월정사 들어가는 전나무숲길

월정사 들어가는 길은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오대천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오른 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이 길은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오대산과 월정사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다른 지역과는 월정사 주변에는 전나무가 심어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말 나옹선사가 월정사에서 공양을 드리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져 공양을 망쳐서 산신령이 소나무대신 전나무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약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1km에 이르는 숲길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들어가는 전나무숲길.

OLYMPUS DIGITAL CAMERA눈으로 덮힌 월정사 전나무숲길.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산에서 발원하여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오대천. 태백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인정받기전까지는 오대천이 한강의 발원지로 여겨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눈내리 겨울 오대천과 전나무숲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천을 건너는 다리.

천왕문(天王門), 금강문(金剛門) 그리고 용금루(湧金樓)

월정사에는 출입문으로 천왕문과 금강문이 있고, 주불전인 적광전과 마주하고 있는 용금루 또한 출입문으로서 기능을 갖고 있다. 천왕문은 일반적인 사찰 출입문과 비슷한 형태이며 금강문과 용금루는 2층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문루는 원래 사찰을 찾은 신도가 잠시 쉬거나 설법을 하는 강당으로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월정사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강당은 요사채 건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를 들어가는 첫번째 출입문인 천왕문이다. 1974년에 중건된 건물로 그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전통사찰의 천왕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천왕문.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오대천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찻집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겨울 찻집

OLYMPUS DIGITAL CAMERA찻집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입구의 작은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경내로 들어가는 2번째 출입문인 금강루와 금강문. 1999년 새로 지은 것으로 2층 문루 형태를 하고 있는데, 원래 있던 용금루와 중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2층 마루에는 윤장대를 배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문.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문에 모셔진 금강역사

OLYMPUS DIGITAL CAMERA용금루는 1977년에 중건된 문루로 앞면 7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이곳은 월정사를 찾는 신도들이 앉아서 쉬거나 설법을 하는 강당으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성보박물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용금루를 들어서면 팔각구층석탑과 주불전인 적광전을 비롯하여 주요 월정사 주요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용금루는 사찰을 출입하는 문루라기보다는 신도들이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깥쪽으로는 오대천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안쪽으로 구층석탑을 비롯하여 사찰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OLYMPUS DIGITAL CAMERA종고루는 경내 마당 한쪽편에 있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범종, 목어, 법고 등이 걸려 있는 곳이다. 월정사 출입문 중 하나인 금강루 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월정사에는 별도의 종고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종고루 옆 불유각(佛乳各).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있는 원형의 석조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으로 오래된 당간지주가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48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경천사지석탑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이다. 팔각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이다. 1층 탑신에는 불상을 모신 감실을 두고 있으며, 2층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상륜부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으며.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은 당시의 금속공예 수법을 살펴볼 수 있다. 석탑 앞에는 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탑에 공향을 하고 있는 보살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우리나라 북부지역에서 유행했던 다각다층석탑의 하나로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앞에는 석조보살좌상(보물139호)이 놓여 있다. 부처를 상징하는 석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은 원래의 것을 복제하여 새로 만든 보살상이다.

주불전인 적광전(寂光殿)

월정사의 주불전인 적광전은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불전이다. 원래 이 곳에는 일곱부처를 모신 칠불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1969년에 현재의 규모로 적광전을 중건하였다. 원래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의 이름이지만 이 곳 월정사는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다. 이는 화엄종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적광전을 중건할 때 비로자나불을 같이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불전이다.

적광전(寂光殿)
적광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부로 모신 전각이다. 백두대간의 심장부인 만월산을 진산으로 한 월정사의 가장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근대에 신축된 법당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원래 이 자리에는 일곱분의 부처님을 모신 칠불보전(七佛寶殿)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여타 전각과 함께 전소되었다. 1969년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사용하여 중건하였다. 적광전에 모신 부처님은 경주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따른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대웅전이라 하고 적광전은 본존불로 법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이나, 월정사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적광전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는 오대산이 화엄.문수도량이며 한암.탄허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면서 불교 최고의 경전인 화엄사상을 널리 펼쳤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탄허선사께서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적광전’이라고 이름하신 것이다. 적광전의 외벽은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고, 뒷면에는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한 심우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적광전 네 개의 기둥에는 탄허선사께서 친필로 쓰신 자장율사의 불탑계가 주련으로 결려 있다. <출처:월정사>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적광전 문살과 기둥의 주련. 주련의 글씨는 적광전을 중건한 탄허선사가 직접 적은 글씨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 적광전 뒷면에 그려진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한 심우도(尋牛圖) 벽화.

OLYMPUS DIGITAL CAMERA적광전 앞 바닥의 전돌.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수광전(壽光殿), 개산조각(開山祖閣), 진영각(眞影閣), 삼성각(三聖閣)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뒷편으로는 4동 불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안쪽에 있는 것이 이름난 큰 산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으로 많이 불리는 수광전이 있고, 그 옆으로 민간신앙과 관련된 삼성각과 보통 조사당으로 불리는 개산조각과 영정각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들은 최근에 세워져서 그런지 그 규모가 크고 정형화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뒷편에 나란히 있는 불전들

OLYMPUS DIGITAL CAMERA보통 큰 산에 자리잡은 사찰에서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경우가 많으며, 보통 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이라 부르지만, 월정사에는 수광전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된 것들로 불전을 중건하면서 새로운 이름들이 많이 붙힌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정형화된 느낌을 주고 있다.  한쪽편에는 지장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자장율사의 영정을 모신 개산조각. 보통은 조사당이라고 불리는데, 월정사에는 조사당 역할을 하는 불전으로 개산조각과 함께 그 옆에 진영각이라는 큰 건물을 세워 놓고 있다. 원래 사찰의 조사당은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월정사는 앞면 5칸짜리 건물 2동을 조사당 역할을 하는 불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월정사는 불전은 많이 두지 않는 반면에 영정각을 일반적인 사찰에 비해 비상식적으로 크게 지어놓고 있다. 앞면 5칸 규모는 웬만한 사찰의 주불전보다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승려들이 수행공간인 요사채

월정사는 적광전을 비롯하여 부처를 모신 불전을 여럿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전보다는 승려가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잠시 묵을 수 있는 요사채들을 많이 두고 있다. 이는 월정사가 위치한 장소가 민가가 있는 마을과 거리가 떨어져 있고, 오대산이 명산인 까닭에 이 곳을 방문하는 인사가 많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월정사의 요사채는 주불전인 적정전 앞 마당 양쪽에 설선당(說禪堂)과 성적당(惺寂堂)이 있고, 뒷편에 심검당(尋劍堂), 황화당(黃華堂)을 비롯하여 최근에 신축되고 있는 많은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템플스테이가 활성화되면서 더 많은 요사채 공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있는 경내 동쪽편에 있어 동당이라고도 불리는 요사채인 설선당이다. 앞면과 옆면이 10칸이 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로 ‘ㅁ’자형 건물형태를 하고 있다. 기존 사찰의 요사채에 비해서 상당히 큰 건물로 종무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경내 서쪽편에 있어서 서당이라고도 불리는 서별당으로 성적당, 향적당 등과 함께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요새채 건물로 지어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월정사에서 강당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OLYMPUS DIGITAL CAMERA수광전 옆 별채 형식의 요사채인 황화당. 템플스테이를 위해서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2011년 겨울 월정사 요사채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성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성보박물관 맞은편 수행공간. 상당히 큰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평창 오대산 상원사, 가장 오래된 동종으로 잘 알려진 사찰

오대산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는 이곳에서 수행한 성덕왕이 705년에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사찰로,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만났으며 병을 나았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조는 직접 권선문을 작정하고 사찰를 크게 중창하였다. 이때 ‘상원사(上院寺)’라 이름을 짓고 왕실의 원찰(願刹)로 삼았다. 현재의 사찰은 1946년 불타버린 것을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하며, 영산전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사찰건물이 없다. 사찰에는 문화재로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든 높이 1.67 m, 지름 91 c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있으며, 세조가 직접 보았다고 하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문수동자상과 문수보살상, 상원사를 중창하기 위해 세조가 쓴 친필어첩인 중창권선문(국보292호)이 있다.

상원사는 오대산 정상(해발1,563 m)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큰 절로, 지도에서 찾아보면 해발 950 m 정도의 아주 높은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상원사를 찾아가는 가는 길은 수월한 편인데, 월정사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10여분 들어가면 상원사 입구에 도착한다. 상원사 주변에는  월정사와 함께 아름드리 전나무 숲을 볼 수 있다. 상원사에서 숲길을 따라가면 오대산 정상부근에 있는 적멸보궁까지 쉽게 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산 상원사 전경. 해발 약950 m의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이지만,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짜임새가 있다. 영산전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사찰 건물은 없으며 대부분 최근에 크게 중수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산 상원사를 다시 세우며 쓴글(복제품), 월정사성보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국보 29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세조이지만 월인석보상절을 비롯하여 한글 사용에 가장 공이 큰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세조10년(1464) 세조의 총애를 받던 신미스님 등이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지은 글이다. 한글로 번역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다. 신미스님이 부처님께 기도한 일을 전해들은 세조가 쌀, 무명, 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도 신미스님의 기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2008년 상원사. 상원사 동종을 보관하고 있던 보호각이 마당 가운데에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주불전인 문수전(文殊殿). 세조가 직접 친견했다는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다. 내부에는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221호)와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1811호)가 모셔져 있다. 궁궐 정전 건물처럼 ‘-’형 건물로 지어진 사찰의 주불전과는 달리 누마루가 있는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왕실과 관련된 원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에 모셔진 문수동자과 문수보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221호,왼쪽)은 의숙공주와 효녕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을 빌기 위해 조성되어 1466년 상원사에 모셔졌다.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1811호, 오른쪽)은 1661년(현종)에 조성된 것으로 조성연대와 문수보살좌상임을 밝히는 발원문이 복장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수동자가 세조의 등을 씻어 주는 장면을 그린 그림. 문수전 바깥 외벽에서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푸른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상을 그린 그림.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 한쪽편에 모셔진 보살상.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 앞에는 통로로 사용하는 좁은 마루가 있다. 일반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으로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ㄱ’자형으로 돌출된 누마루에는 안암중원(1876~1951)을 비롯하여 상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승들의 초상화을 모시고 있다. 고승의 초상화를 모시는 조사당(祖師堂)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 앞에는 최근에 조성한 석탑인 오대보탑(五臺寶塔), 영산전 앞에 있는 오층보탑을 대신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반영하여 2012년에 조성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 뒷쪽에는 상원사에 남아 있는 불전 중 가장 오래된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靈山殿)
영산전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집으로, 1946년 화재가 났을 때 유일하게 화마를 피한 전각으로 오대산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법당에는 석가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영산전이라 한다. 용약혜견(1830~1908)스님이 1899년 해인사의 고려장경 4부를 인출하여 삼보사찰에 각기 1부씩 모시고 1부는 전국의 유명한 사찰에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 일부인 39함(函)이 여기 영산전에 모셔져 있었다. 현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옮겨 보존되고 있다. (안내문, 상원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전에는 석가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석탑.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로 그 형체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석탑에 구름, 용, 연꽃 등 다양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영산전 석탑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영산전 석탑은 기단부터 상층부에 이르기까지 탑 전체가 여러가지 무늬와 불상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심하게 파손되어 탑신의 형체를 알 수 없고 층수마저도 파악되지 않은 채 보전되어 있다. 기단에는 구름과 용, 연꽃 등의 무늬와 탑신에는 통일신라양식의 불상이 한 면에 4존씩 조각되어 있으며 비록 복원이 어려운 상태로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소박하면서도 당당하게 천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안내문, 상원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이 사찰을 대표하는 유물인 상원사 동종(국보36호)가 있는 비각이 있다. 이곳에는 유리벽 속에 상원사 동종이 보관되어 있으며, 그 옆에 복제품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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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국보36호). 현존하는 한국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으로 통일신라 성덕왕24년(725)에 만들어졌다. 음통이 있는 종뉴(鐘紐), 상.하대, 유곽과 비천상, 당좌 등 한국종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는 걸작이다. 원래 안동지역에 있던 것으로 세조대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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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소림초당(少林草堂)

OLYMPUS DIGITAL CAMERA문수전 동쪽편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수행공간인 청량선원(淸凉禪院)

OLYMPUS DIGITAL CAMERA수행공간으로 2동의 큰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의 건물로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서쪽편에 위치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입구인 청풍루(淸風樓). 사찰의 문루는 신도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상원사 청풍루는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최근에 신축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루 1층 작은 전시실 내부. 조선 중기 상원사 불전에 모셔졌던 문수보살36화현도를 여러 기록을 참조하여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여 그린 문수보살 36화현도를 비롯하여 여러 그림들과 조각상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2008년 봄

OLYMPUS DIGITAL CAMERA 봉황보당(鳳凰寶幢), 보당은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의례용으로 거는 깃발이다. 이른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여 최근에 조성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에 만화루(萬化樓)라는 누각이 있다. 이전에 상원사 경내로 들어오는 출입문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경내로 들어가기 전 손을 씻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불교성지로서의 오대산
우리조상들은 일찍부터 자연을 존중하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산을 숭배하였다. 산을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한 까닭은 산을 신이 사는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이러한 자연신앙은 자연스럽게 불교 신앙에 융화되었다. 그중에서도 산을 숭배하는 신앙이 불교화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대산의 문수신앙과 오만보살신앙이다. 오대산이 진성이 거주하는 곳이라 믿게 된 것은 신라 자장율사(590~658)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를 모시면서부터이다. 이로서 ‘동북방청량산에 문수보살이 계시면서 일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늘 설법한다.’는 「화엄경」을 바탕으로 한 오대산 신앙이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수보살이 오대산에 머문다는 믿음은 7,8세기에 이르면 오류성중(五類聖衆)이라 하여 오만보살신앙으로 더욱 발전된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에서 수행하며 오대의 각 대마다 거주하는 오만보살에게 일일이 참배하였다고 한다. 즉,

동대 만월산(滿月山) 관음암에는 일만의 관음보살이,
남대 기린산(麒麟山) 지장암에는 일만의 지장보살이,
서대 장령산(長嶺山) 수정암에는 일만의 대세지보살이,
북대 상왕산(象王山) 미륵암에는 일만의 미륵보살이,
중대 지로산(地爐山) 진여원에는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며 설법한다는 것이다.

오대산은 보천태자 이후 많은 이들의 신앙의 귀의처가 되었으며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시대에도 상원사는 세조가 문수동자를 친견한 일화를 통하여 오대산이 문수신앙의 성산으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근대에 와서는 한암, 탄허, 만화스님이 오대산에 머물면서 수행오법(修行五法)의 가풍으로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한국불교 진흥에 큰 지주가 되셨다. 오대산은 이렇듯 불교성지로서 신앙의 귀의처였던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 많으며 산내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서 중생교화와 전법의 대가람인 월정사를 비롯하여 문수보살님의 지혜가 충만한 상원사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중대사자암 적멸보궁 등이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성지로서 그 몫을 다하고 있으며 오늘도 깨달음과 지혜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내문, 상원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산 상원사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 사찰입구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에서 상원사로 들어오는 길.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깔려 있다.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지금도 비포장도로를 유지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 길은 두로령(頭老嶺, 해발 1310m)을 넘어 홍천구 내면 명개리로 이어진다. 원래는 도로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오대산 탐방로로 활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때 한강의 발원지였던 오대천이 상원사 앞으로 흘러간다. 이곳에서 세조가 몸을 씻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입구에 있는  관대(冠帶)걸이, 이곳은 조선 초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둔 곳이라 하여 관대걸이라 하며 아래와 같은 문수동자와 얽힌 전설이 전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전나무 숲이 울창한 상원사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입구의 부도군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청풍루(淸風樓)를 오르는 계단길.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사지상이 세워져 있다. 이 길은 최근에 만들어진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청풍루.

OLYMPUS DIGITAL CAMERA상원사 들어오는 길.

상원사(上院寺), ‘천고의 지혜 깨어 있는 마음’의 가람
한암스님의 수행오법(修行五法)으로 정진하는 문수보살 화현(化現)의 지혜도량으로 1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불교성지이다. 신라 성덕왕4년(705)에 신라의 보천과 효명태자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眞如院)이다. 이때의 창건 설화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왕자와 함께 천명을 거느리고 여의(如意) 원년에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두 형제는 중대 남쪽 봉우리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함께 수행하면서 매일 오대에 나아가 예배하며 참배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702년 효소왕의 후계를 두고 나라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하였는데 보천태자가 끝까지 고사함에 효명왕자가 귀경하여 왕위에 오르니 그가 성덕왕(성덕왕)이다. 왕이된 효명은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이 여러 모습으로 몸을 나타내 보이던 곳에 진여원을 세우니 이곳이 지금의 상원사다. ‘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거세어진 척불(斥佛) 정책은 승려의 도성(都城) 출입을 금지하고 11종(宗)이던 종파를 7종으로 통합하였으나, 태종은 상원사 중대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았다. 이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많은 불사를 하였으며, 나라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경의 간행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세조는 오대산에서 두번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지병(持病)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동자를 친견하고 병이 나았으며, 참배 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가 그것이다. 지금도 상원사는 모든 불자의 귀의처로서 오대광명이 가득한 가람으로 누구나 고요한 마음.고요한 생각.고요한 몸가집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스러운 천고의 지혜와 깨어있는 마음의 청량한 가람이다. (안내문, 상원사, 2015년)

 

강릉향교 대성전(보물214호)

강릉향교 제향공간의 중심건물인 대성전(보물214호)이다. 이 건물은 조선초인 1413년(태종13)에 처음 지었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수리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간결한 주심포 방식을 하고 있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전국 향교의 대성전 건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五聖)과 뛰어난 제자인 공문십철, 송나라때의 뛰어난 인물인 송조육현 등을 모시고 있다. 대성전 앞 동무 서무에는 설총, 최치원을 비롯한 18현과 그 외 선현들을 모시고 있다. 출입문으로 가운데 솟을대문을, 양쪽에 평대문을 두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회랑을 구성하고 있다.

강릉향교 대성전, 보물214호, 강원도 강릉시 명륜동
강릉향교 대성전은 강릉향교의 제사공간을 대표하는 중심 건물로 지방향교 중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다.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晏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5성과 공문십철(孔門十哲), 송조육현(宋朝六賢) 등 중국 성현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설총(薛聰), 최치원, 정몽주, 이황, 이이 등 18현과 그 외 선현들은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 봉안하고 있다. 대부분의 향교가 중국의 7성현과 우리나라 18선현을 포함 25선현을 봉안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강릉향교만 총 136위를 배향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대성전 전면으로는 강론을 하던 명륜당(明倫堂)과 유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건물인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규모나 전통에 있어 전국 향교 중 제일이라 할 수 있다. 대성전은 단순하나 절제된 힘이 느껴지는 맞배지붕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몸소 실천하려는 선비들이 엄중함을 느끼게 하며 의식을 행하는 공간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강릉향교 대성전.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전국의 향교 대성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간결한 주심포 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 앞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퇴간과 월대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내삼문.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고, 양쪽에 평대문을 두어 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릉향교 대성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