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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팔달문~서남각루(西南角樓), 팔달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

수원화성(사적3호) 팔달문에서 정상부까지 성벽들로 이어져 있다.  기존 산성 축성방법에 따라 지은 석축성을 하고 있으며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조때 쌓았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는 않았다. 경사진 지형으로  방어에 용이하기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방어 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정상부까지 치성(雉城)과 포루(砲樓)가 1곳씩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용이하도로 하고 있다. 포루는 치성과 비슷하지만 화포(火砲)를 설치할 수 있는 곳으로 치성과 달리 벽돌로 쌓았으며 지붕을 얹었다.

팔달산(八達山)은 해발 128m의 나즈막한 동산을 수원화성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팔달산은 정상부가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으로 되어 있는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서장대(西將臺)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남쪽끝에는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서남각루(西南角樓)가 설치되어 있다. 성벽에서 서남각루까지는 옹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용도로 연결되어 있고, 용도를 출입하는 출입문인 서남암문이 있다.

수원 화성(華城), 사적3호, 수원시 팔달구 일원
화성은 정조대왕 재위 13년만인 1789년 10월7일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원침(園寢)을 지금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그곳에 있던 관아와 민가를 지금의 수원시 중심부에 있는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겼다. 이후 1793년 수원도호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었고 1794년 1월부터 1796년9월까지 화성이 축조되었다. 화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5.74km, 성벽 높이 5m 가량이며 여장의 높이는 약 1.2m이다. 화성 성역은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당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관료.학자.기술자.백성들이 함께 만든 근대적 신도시이며 실학의 총체적 결정체이다. 화성은 정약용의 기본설계서인 『성설(城說)』에 기초하여 조선.중국.일본 성곽의 축성법 중 장점을 채택하였으며 거중기, 녹로와 유형거 및 각종 수례 등 새로운 과학기기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화성 축성에 대한 모든 내용을 『화성성역의궤』라는 공사보고서를 통해 상세하게 남겨놓았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에 서쪽 팔달산을 오르는 성벽. 수원화성 성벽중에서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성벽을 걸어오르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중간에 방어시설물인 ‘남치’와 ‘남포루’, 정상부에 서남암문(西南暗門)과 용도(甬道)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 성벽.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는 조총 공격에 대비하여 여장을 올려 놓고 있다. 정조때 쌓은 성곽이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남치(南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중간에 세워진 방어시설인 치(雉). 치는 성벽 바깥으로 노출된 방어시설로 성벽을 오르는 적들을 공격하기 쉽도로 만든 것이다. 삼국시대 산성에서 볼 수 있는 치성과는 달리 총안(銃眼)이 설치된 여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남치.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가까운 곳에 있는 적에게 총을 발사 할 수 있는 근총안.

OLYMPUS DIGITAL CAMERA치성에서 보이는 성벽 바깥쪽.

OLYMPUS DIGITAL CAMERA남치(南雉)와 주변 성벽. 아래쪽에는 팔달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남치 부근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을 오르는 성벽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남치 부근

남포루(南砲樓)
남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팔달문과 서남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9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팔달문 주위의 성벽과 화양루를 수비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따라서 조금 걸어 오르면 수원화성에 설치된 5개의 포루 중 하나인 남포루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포루는 화포를 설치할 수 있는 방어시설로 치성과 마찬가지로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수원화성 남포루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아 구운벽돌로 쌓았으며, 그 위에 지붕을 올려 놓았다. 공심돈처럼 내부가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 내부. 아래쪽에는 블랑기같은 화포를 배치하고 위쪽에 총안이 있는 판벽이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깨비 얼굴을 그려 놓은 총안이 있는 판벽

OLYMPUS DIGITAL CAMERA판벽 바깥쪽으로 보이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를 지나 팔달산 정상부에 설치된 서남암문으로 오르는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와 주변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암문 아래 바깥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남암문(西南暗門)과 서남포사(西南舖舍)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 문은 용도(甬道: 담을 양쪽에 쌓아 만든 길)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舖舍)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796년(정조20) 8월6일 홍예가 완성되었다.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 정상부 남쪽편 능선에 위치한 서남암문. 서남암문은 남쪽편 능선 끝에 세워진 방어시설인 서남각루(西南角樓)를 출입하는 암문이다. 암문과 서남각루까지는 용도(甬道)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암문 주벽 성벽과 달리 구운벽돌을 사용하여 성벽을 쌓고 있으며, 그 위에 작은 문루를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암문위에 설치된 작은 문루인 서남포사(西南舖舍).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조총공격에 대비해 판벽으로 막아 두고 있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암문 옆 성벽은 곡면을 주어 치성과 같은 기능을 하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쪽에서 본 암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남암문.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암문과 바깥쪽 용도(甬道).

OLYMPUS DIGITAL CAMERA서남각루까지 연결된 용도(甬道).

OLYMPUS DIGITAL CAMERA용도는 본성 성벽에 비해 성벽을 낮게 쌓고 있다. 수원화성 용도는 그 형태나 방어상 취약한 지역을 보완하는 기능적인 측면에 남한산성 옹성과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 용도의 동쪽에 위치한 용도동치(甬道東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방어시설로 수원화성에 설치된 10개의 치성가운데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도서치(甬道西雉), 용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남각루(西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바싱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팔달산 남쪽 능선에 설치한 용도의 남쪽 끝에 세워졌다. 1796년(정조20) 4월16일 공사를 시작하여 7월20일 완성하였다. 편액에는 화양루(華陽樓)라고 쓰여져 있는데 ‘화(華)’자는 화성을 뜻하고 ‘양(陽)’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이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용도는 팔달사 정상부를 따라 이어지는 능선 끝자락 서남각루까지 이어진다. 서남각루는 전망이 좋은 위치에 설치되어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성안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장대(將臺)와 비슷한 성격의 건물이다. 화양루(華陽樓)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감각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누마루처럼 바깥쪽을 높게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남각루 내부. 가운데에는 전돌을 깔아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도 끝은 양쪽이 치성처럼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는 치성과 거의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도 바깥쪽 성벽. 성벽 바깥쪽은 경사가 급해서 성벽을 높게 쌓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용도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수원 화성 ]팔달문(八達門, 보물 402호), 수원화성 남문

수원 화성 남문인 팔달문(八達門, 보물 402호)이다. 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長安門), 한양도성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과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문이다. 잘다듬은 화강석 쌓아 홍예문을 만들었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 놓았다. 문루 앞면 5칸의 우진작기붕을 하고 있다. 문루는 조총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판벽으로 막혀 있는데, 조선후기 성문 문루의 특징이다. 바깥쪽에는 구운벽돌로 쌓은 높이 약5m의 옹성(甕城)을 두여 2중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옹성은 무너져 없어졌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으며, 성문 양쪽에 세웠던 좌.우 적대(敵臺)는 무너지고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북경을 비롯하여 청나라 성곽기술을 많이 참조하였는데 팔달문에서 그 특징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성문은 화강석을 쌓은 석성(石城)을 하고 있지만, 옹성은 벽돌로 쌓은 전성(塼城)을 하고 있어 수원 화성(華城) 축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총과 화포가 일반화된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쌓은 성문의 형태로 명.청대에 쌓은 중국 읍성의 성문과 비슷하다. 팔달문은 그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통팔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수원화성의 남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다. 서울을 남대문인 숭례문 주변에 남대문 시장이 있듯이 이 곳 팔달문에는 지동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팔달문이라는 이름은 서쪽편 팔달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북경에서 제일 유명한 만리장성인 팔달령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원 팔달문(八達門), 보물 402호,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역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18) 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19) 5월20일에 완공되었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2호로 지정되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바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가장 큰 규모의 성문으로 바깥쪽에 옹성을 둔 조선후기 성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문 양쪽에 동.서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은 화강석으로 쌓는 전통적인 석축성과 구운벽돌로 쌓은 중국 전성의 특징을 같이 가지고 있는 수원화성 축성방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팔달문. 성문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홍예를 만들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옹성은 화포와 조총이 일반화된 조선후기 성곽에서 볼 수 있는 방어시설이다. 팔달문 옹성은 중국 청나라 성곽기술을 받아들여 구운벽돌로 쌓아 올린 전성(塼城)이다. 성벽은 높이 5m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며, 위에는 조총공격을 피할 수 있는 여장을 설치해 놓았다. 옹성 가운데에 출입문과 작은 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팔달문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성벽과 여장.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가운데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옹성내부 팔달문 홍예.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았는데, 숙종대에 크게 보강한 한양도성 석축에 비해 돌을 세련되게 잘 다음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팔달문 성문.

OLYMPUS DIGITAL CAMERA문루는 앞면 5칸에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성문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도로 개방된 조선전기 성문문루와는 달리 조총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판벽으로 막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서 본 문루.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문루를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팔달문 문루와 옹성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은 수원화성 남문으로 정조가 현륭원으로 참배할 때 지나가던 문으로 수원 남쪽 경기남부지역과 연결된다. 정조는 수원에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의도적으로 상업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팔달문 안팎으로 시장을 조성하였다. 지금도 주변에는 지동시장을 비롯하여 재래시장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부근 지동시장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부근은 상업의 중심지로 오늘날까지 수원시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통진도호부(通津都護府), 통진이청(通津吏廳)과 비석군

통진(通津)은 한강하구에 위치하고 있던 작은 고을로 강화도를 건너는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오늘날 김포시의 서쪽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월곶면, 통진면, 하성면 등을 포함한다. 조선초기에는 종6품 현감이 고을 수령인 통진현(通津縣)이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에 강화도에 읍성과 돈대를 쌓고 행궁을 설치하였으며, 강화부는 종2품 유수부로 승격되었다. 이때 강화도 입구에 위치한 통진현에는 문수산성를 쌓으면서 종3품 도호부사가 고을수령인 통진도호부(通津都護府)로 승격되었다.

통진도호부 읍치는 문수산성 동쪽편에 오늘날 월곶면사무소가 있는 군하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읍치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있다. 관아의 흔적으로는 면사무소 내에 남아 있는 고목들과 통진이청(通津吏廳), 선정비 등이 있으며 근처에 중등교육기관인 통진향교가 있다. 통진도호부 관아건물들은 구한말 병인양요 직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아 건물로는 동헌, 내아, 객사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중 아전들이 근무하던 이청 건물만이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폐가가 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김포시 월곶면 군하리에 위치한 통진도호부 관아터. 지금은 월곶면사무소에서 사용하고 있다. 동헌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며, 옛 관아의 흔적으로 오래된 고목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앙도서관 소장「통진지도」통진부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객사가 있던 곳으로 보이는 곳에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통진이청(通津吏廳),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통진읍지」기록에 의하면 통진에 있는 대부분의 관아를 기사년(1869)에 부사 백낙선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통진읍지」.「통진지도」에 이청의 규모가 기술되어 있다. 통진이청은 정면7칸, 측면2칸의 평면으로 구성된 건물로 전체 14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우측에 대청이 넓게 차지하고 좌측에 방과 부엌을 배치시킨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3.1운동 당시에는 주재소로 쓰였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후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폐가로 방치되었고, 2011.10월 문화재로 지정되어 2013.9월에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통진이청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관아건축 중 하나로 경기도 관아건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김포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통진도호부 관아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통진이청. 이방에 속했던 관아 아전들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폐가가 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복원전 폐가로 방치되었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왼쪽 2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가운데 4칸은 온돌방, 오른쪽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전들이 사용하던 관아 건물 중에는 큰 편이다.

통진 현감.부사 선정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조선중기~말기 통진에 현감.부사로 부임해서 선정을 베풀었던 분들을 기리고자 당시 고을 사람들이 건립한 비이다. 통진은 1413년(태종13) 감무(監務)가 다스리던 고을에서 현감이 다스리는 고을로 승격되었고, 1694년(숙종20) 문수산성이 완성되면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현재 총17기의 선정비 및 불망비가 전하고 있는데, 현감 권대운, 현감 윤게, 관찰사 이형규 등이다. 이중 부사 최흥덕의 비가 2기이다. 1914년 통진군이 김포군에 병합되고 일부 면이 월곶면으로 병합되면서 현재의 월곶면사무소 내에 위치하게 되었다 비위 훼손과 부식을 방지하고 시민에게 역사교육의 장소를 제공하기 위하여 2013년 8월 보호비각을 설치하였다. <출처:김포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월곶면 사무소 마당 한쪽편에 모아 놓은 비석군. 역대 통진 현감과 부사를 역임한 인물들을 위해 세운 공덕비와 선정비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비각 안에 있는 비석들.

OLYMPUS DIGITAL CAMERA통진도호부 읍치였던 월곶면사무소 앞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통진도호부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통진향교가 읍치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수산성은 문수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서울에서 육로로 강화를 가기 위해서는 이 성문을 지나 산성 앞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화 갑곶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숙종대에 강화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쌓았으며, 이때 통진현은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김포향교(金浦鄕校), 옛 김포현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

김포시 읍내 김포동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이다. 원래는 김포시청이 있는 김포 장릉 부근에 있었는데,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추존왕 원종)의 무덤이 장릉을 조성하면서 걸포동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구한말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들은 1980년대에 원래의 건물을 크게 수리하였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뒷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의 교육기능이 없어지고 제사기능만 남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향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의 김포시는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다. 김포현은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룬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김포향교, 경기도 김포시 김포동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하였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비를 충당하게 하였다.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세워졌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다. 원래 김포고등학교가 있는 산기슭에 있었으나 장릉이 만들어지는 관계로 김포시 걸포동으로 이전되었다가 다시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1988년 대성전 및 담장을 보수하였고 1989년에는 명륜당을 해체.보수하였다. 대부분 향교와 같은 배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출처:김포시청>

SANYO DIGITAL CAMERA김포향교는 김포읍내에서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김포초등학교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고, 골목이 좁아서 그런지 홍살문은 남아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향교 강학공간인 명륜당.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김포가 겨울이 추운편이라 대청마루에 문짝을 크게 달지 않고 있다. 향교의 교육기능이 쇠퇴한 조선후기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실제로는 제사를 준비하고 유림들이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태 등으로 볼 때 잘 지은 건물은 아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명륜당. 앞쪽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뒷쪽으로 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마당. 마당은 그리 넓지 않은편이며, 마당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를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향교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동.서재를 갖추고 있다. 교육기능은 없어졌지만 원래 향교의 형태를 제대로 갖출려고 했다.

SANYO DIGITAL CAMERA서재. 앞면 3칸 규모로 맞배지중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툇마루를 두어 걸터 앉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향교 제향공간인 대성전.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로 다른 향교 대성전과는 달리 맞배지붕이 아닌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1980년대 크게 중수한 것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동무.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동무와 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무.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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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앞에 있는 고목. 향교과 이곳에 옮겨질 때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향교를 관리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살림집.

광명 오리 이원익 종택, 충현서원터에 남아 있는 고택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오리 이원익 종택이다. 종택은 오리 이원익의 영정을 모셨던 정자인 관감당과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들은 조선시대 지어진 전통한옥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관감당은 전통 한옥의 사랑채나 정자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나 살림집인 안채는 서울지역 개량한옥과 비슷하다. 살림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ㄱ’형의 문간채로 이루어졌으며, 중정형태의 안마당을 두고 있는 ‘ㅁ’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이라기 보다는 일제강점기 경기지역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리 이원익은 조선 선조에서 인조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분으로 ‘오리정승’이라는 별칭으로 후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분이다. 원래 이 집터는 이원익 선생이 50여년간의 벼슬길을 끝내고 낙향하여 살던 초가집에 인조가 새로 집을 지어 하사했으며, 그 뒷편에는 그를 모신 충현서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감정(觀感亭)
조선중기 인조 때의 문신이자 청백리로 이름높은 오리 이원익 선생이 50여년간의 관직 생활에서 물러나 만년을 보낸 누정이다. 선생은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등 4대에 걸쳐 평안도 도순찰사, 좌.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했고 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대동법의 실시를 건의하여 전국적으로 실시케했으며 조세제도의 시정, 군병방수제의 개혁 등 큰 업적을 남겼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서민적인 인품을 지녀 ‘오리정승’이란 이름으로 많은 일화가 전하는데 시호는 문충이다. 선생이 벼슬에 물러나 이곳 초가에 살 때 인조가 승지를 보내어 그 생활을 알아본 즉, 비바람이 새는 퇴락한 집에서 곤궁한 삶을 이어가므로 도 감사로 하여금 정당을 짓게하여 하사하였다. 선생은 청백리로서의 귀감으로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곳’이라는 데서 ‘관감정’이라 했다고 한다. 그뒤 병자호란때 크게 훼손된 것을 후손들이 중건, 영정을 모시고 ‘관감당’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현재 뒷편으로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우와 제향을 받들던 충현서원 터가 있으며, 정자 앞에는 ‘탄금암’이라 새겨진 지석묘가 있다. <출차:광명시청>

OLYMPUS DIGITAL CAMERA관감정은 오리대감이라 불리웠던 조선중기 문신 이원익 선생이 만년을 보낸 누정이다. 앞면 5칸의 사랑채 건물처럼 생긴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그의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세웠던 정자 건물 형태를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 가운데 2칸은 문이 달려 있는 대청마루로 보이며,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감정은 이원익이 벼슬에서 물러나 초가에 살고 있을 때 인조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병자호란때 크게 훼손된 것을 후손들이 새로 짓고 그의 영정을 모시면서 ‘관감당觀感堂’이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현재는 영정을 모신 영우라는 건물을 뒷편에 별도로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감정 앞에는 작은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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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감정 앞 마당에 심어진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관감정

OLYMPUS DIGITAL CAMERA관감정 출입문

오리 이원익 종택 , 광명시 소하동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이 살던 가옥으로 현재의 건물은 20세기 초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인조 8년(1630)에 2칸 초가인 이원익의 집에 비가 새므로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다. 효종 9년(1658)에는 그 집터에 사당이 건립되어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는데 후에 서원이 췌철되었다. 1916년에는 옛 집터에 관감당이 다시 지었고 이듬해에는 안채가 건립되었으며 1940년경에는 문간채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소하동 오리로변의 주택가에 있는 충현서원 내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문간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자형 사랑채인 관감당이 그 옆에 따로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13칸 반 규모로 소로수장집인데 건넌방, 대청,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고 안방 앞쪽에서 꺽이어 부엌과 온돌방이 있다. 지붕가구와 기둥이음, 부엌의 봉창과 다락의 완자창 등은 세련된 목수의 솜씨를 보이고 있다. 문간채는 13칸 규모인데 대문간 좌우에 온돌방과 부엌, 광이 있다. 이 집은 20세기에 건립된 경기지역 살림집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출처:광명시청>

OLYMPUS DIGITAL CAMERA 관감정 입구에 있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후손들이 살았던 종택이다.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집으로 보이며 지금은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집을 비워놓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전체적으로 중정이 있는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유리문을 사용하고, 외벽을 벽돌로 쌓는 등 일제강점기 이후 변화된 경기도지역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종택은 ‘ㄱ’자형으로 된 안채와 ‘ㄱ’자형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한옥보다 건물도 크고 마당도 넓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종택은 ‘ㄱ’자형으로 된 안채와 ‘ㄱ’자형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한옥보다 건물도 크고 마당도 넓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13칸반 규모의 큰 한옥으로 건넌방, 대청마루, 안방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개량한옥에서 볼 수 있는 유리 미닫이문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방 앞쪽 날개채에 부엌과 온돌방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궁이가 있는 부엌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역할을 했던 찬마루. 구한말 이후의 도시한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엌 옆에 있는 작은 방.

OLYMPUS DIGITAL CAMERA문간채도 안채와 비슷한 13칸 규모이다. 집안일을 돌보는 하인들이 거처하는 기존의 행랑채와는 달리 거실을 두고 있는 사랑채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간채 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