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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317호)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작압에 모셔져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317호)이다. 광배와 대좌가 온전히 남아 있는 높이 0.63 m 의 고려시대 불상이다. 신체 비해 얼굴은 큰 편으로 머리의 상투는 뚜렷하다.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앉아 있는 석굴암 본존불 외형을 따르고 있지만 얼굴이나 신체의 세부적인 표현이 부자연스럽고 투박하다. 불꽃을 형상화한 광배는 불꽃무늬가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말 불상양식을 계승한 고려초기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317호 01-20200106청도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317호).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지만 신체의 비례나 세부적인 표현이 투박해지는 통일신라말 불상양식을 계승한 고려초기 불상이다.

청도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317호 02-20200106불상이 모셔진 불전인 작압. 운문사의 유래와 관련있는 전탑이 있던 곳에 세워진 작은 불전이다. 전탑을 구성했던 사천왕 석주(보물 318호)와 같이 모셔져 있다.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317호
이 불상은 실상투가 뚜렷하며, 네모진 상체와 하체에 법의가 수직으로 무겁게 내려져 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6각 불상 받침 대좌의 특이한 형태는 다소 딱딱한 느낌을 보여준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서 다소 어색한 감이 있고 결가부좌한 양 발 사이에는 부채꼴의 주름이 잡혀 있다. 이 불상은 부피감이 없고 상 자체가 나약하고 위축된 점, 조각에서 형식화가 많이 진전된 점으로 보아 신라말에서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보물 316호), 고려중기 승려 학일의 탑비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경내에 있는 원응국사비(보물 316호)이다. 고려중기 승려 원응국사 학일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탑비이다. 받침돌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고 비몸만 3조각으로 잘라져 있던 것을 복원해 놓고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윤언이가 짓고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승려 탄연이 쓴 것이라 한다.

원응국사 학일(1051 ~ 1144년)은 송나라에 유학하였으며,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할 때 선종을 지켰다고 한다. 법주사, 구산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운문사에 머물다 1144년 93세로 입적하였다. 그의 사후 인종은 그를 국사로 책봉하고 비를 세우게 하였다.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316호01-20200106청도 운문사 경내에 있는 원응국사비.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고 비문이 새겨진 비몸 만 3조각으로 부서져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놓고 있다.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316호03-20200106
비석 앞면. 윗부분에 “원응국사비명”이란 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앞면에는 그이 행적이 적혀 있다.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316호04-20200106
앞면 아랫부분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316호05-20200106
뒷면에는 제자들이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316호02-20200106운문사 출입문인 범종루를 들어서면 안쪽에 3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가운데 비석이 원응국사비이다.

원응국사비, 보물 316호
고려 중기의 승려인 원응국사 학일의 운문사 중창과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이다. 고려 인종 22년(1144) 학일왕사가 93세로 입적하자 인종은 국사로 책봉하고 원응이라는 시호를 내려 비를 세우게 하였다. 이 비는 높이 2.3 m, 폭 0.9 m로 비석머리와 받침돌은 없어졌고 현재는 3편으로 절단되어 있는 비편을 연결하여 하나의 비신으로 구성하였다. 해서체로 쓰여진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문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분의 작성자는 윤언이이며 글씨는 고려중기의 명필, 탄연스님이 썼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보물 1324호), 회화적 기법이 돋보이는 고려시대 불상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소래산(해발 299.6 m) 중턱에 있는 마애보살입상(보물 1324호)이다. 장군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에 5 mm 정도의 얇은 선으로 보살상을 새겨놓고 있다. 머리에는 둥근 보관을 쓰고 있으며 목에선 삼도가 굵은 띠처럼 새겨져 있고 꽃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은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각진얼굴, 덩굴무늬가 새겨진 보관, 양어깨를 덮은 옷 등이 특징이다. 높아 12 m의 대형 불상으로 회화적인 기법이 돋보인다. 고려초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거대불상 조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1-20191112소래산 중턱 바위에 새겨진 마애보살입상(보물 1324호)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6-20191112
높이 12m 정도의 거대 불상으로 5 mm 정도의 얕은 선를 바위에 새겨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나 신체, 의복 등 세부적인 표현이 섬세하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4-20191112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데 얼굴은 네모형을 하고 있으며 귀를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고 있다. 보관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라 불리는 선이 새겨져 있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5-20191112몸에는 선으로 섬세하게 의복을 표현하고 있다. 단순하면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불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표현기법과 비슷해 보인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3-20191112등산로에서 보이는 불상.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2-20191112불상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시흥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 고려시대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은 소래산 중턱에 있으며 병풍바위 또는 장군바위라 불리는 암벽에 얇은 선으로 새겨져 있다. 머리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졌으며, 보석으로 꾸며진 원통형의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데, 관의 양옆으로 좁은 관 띠가 휘날리고 있어 특이하다. 얼굴은 갸름하고 눈, 코, 입이 큼직하며, 양쪽 귀는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또한 목에는 삼도라고 불리는 선이 새겨져 있어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인 법의는 배에서부터 규칙적인 반원을 그리며 무릎까지 물결치듯이 유려하게 흘러내렸다. 또한 가슴에는 속옷을 묶은 띠매듭이 선명하다.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쓴 모습이나 이목구비가 큼직하게 표현된 것은 고려 전기 석불 조각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손갖춤에서 오른손은 가슴으로 올려 바깥쪽으로 향하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고 있다.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발꿈치를 붙이고 양쪽으로 발 끝을 벌린 자세를 하고 있는데, 발가락의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이 입상은 전체 높이 약 12.2 m(머리 높이 3.4 m, 보석 관 높이 1.4 m), 어깨너비 약 3.7 m, 연꽃 모양 대좌 너비 약 4.7 m에 달하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석조 불상 조각 중에는 매우 큰 편이다. 새긴 선의 깊이가 5 mm 정도로 얇음에도 기법이 뛰어나며 마치 그림을 그린 듯이 표현되어 있어 세련되다. (안내문, 시흥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흥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보물 418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 있는 보각국사탑과 비(보물 428호)이다. 보각국사는 고려중기에 활동한 승려로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탑은 바닥돌 위에 8각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이 있는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전형적인 승탑이다. 몸돌 앞면에는 탑이름, 뒷면에는 문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새겨 놓고 있다. 탑비는 당대 문장가인 민지가 지었으며,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왕희지 글씨체를 보기 위하여 비석을 탁본하면서 그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다. 지금도 일부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사본이 월정사에 남아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보물 418호). 고려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8각형의 목조건축물 형태을 하고 있는 전통 승탑양식을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연석 바닥돌 위에 8각형 받침돌이 3단으로 올려져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동물이 조각되에 있으며 원형에 가까운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돌에는 탑이름과 문모양,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인각사 보각국사탑비(보물 418호). 일연의 행적과 비를 세운 경위, 제자들의 이름 등을 새겨 놓았다. 중국에서 직접 왕희지 글자를 집자하여 글을 새겼으며 당대 문장가인 민지가 비문을 지었다. 왕희지의 글씨를 얻기 위해 수많은 탁본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비가 크게 훼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원본은 옛 탁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면에는 일연의 행적과 그를 추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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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에 남아 있는 글씨

OLYMPUS DIGITAL CAMERA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제자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면에 남아 있는 글씨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 보물 418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탑비이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 위에 놓여 있으며,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팔각 받침돌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 조각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윗부분은 원형에 가까우며 단조롭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은 팔각이며 정면에는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문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 입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살짝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 선 끝 부분에 꽃 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비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이 세웠으며,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비의 앞면에는 스승인 일연의 행적과 스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다비식 때의 영험, 제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년

상주 복용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경북 상주시 서성동 왕산공원에 있는 복용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이다. 통일신라 이후 생활유적지인 상주 복룡동 유적(사적 477호) 마을이 있던 것을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불상을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깨는 좁으며 오른손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투박하면서도 부드럽고 풍만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형식화된 옷주름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복용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옛 상주목 읍치 진산이었던  왕산공원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은 양쪽 손이 파손되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지권인 자세를 하고 있는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투박하면서 풍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은 둥글고 풍만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가늘게 뜬 눈, 작고 도톰한 입술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상주 왕산공원. 원래 통일신라 이후 읍치였던 복룡동 유적 인근 마을에 남아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 보물 119호, 경북 상주시 서성동
당초 석불좌상이 있었던 곳은 복룡동 358번지 마을 가운데에 동향의 단간와우를 세우고 비로전이란 현판을 붙여 봉안되었으나 1975년 10월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불좌상으로 머리에는 큼직한 나발이 표현되었고 둥글고 풍만한 얼굴에 내려 뜬 눈, 작고 두툼한 입 등에서 적정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양쪽 무릎과 오른손 양어깨와 머리부분은 파손이 심하고 광배와 받침인 대좌는 없어졌다. 불의는 양어꺠에서 부채꼴을 이루는데 서로 대칭된 모습으로 보아 지권인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총높이 148 cm인 중후한 모습의 이 불상은 조각수법이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