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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진각국사비(보물 313호)이다. 고려중기에 활동한 진각국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은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로 머릿돌은 없다. 거북받침돌은 구슬을 물고 있는 용의 얼굴에 네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표현이 돋보이다. 비문은 고려중기 문장가 이규보가 지은 것이라 전하는데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마모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비해 비석제작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나, 조각수법이나 세부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고려중기에 활동한 승려로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이다.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송광사 2대 국사로 불교개혁을 이끌었다. 그의 사호 고려 고종은 진각국사라는 시호와 원소지탑이라는 부도이름을 내렸다. 이규모가 지은 비문은 『동국이상국집』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송광사 2대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려중기 문장기 이규보가 비문을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며 힘친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여의주를 물고 있는 얼굴.

SANYO DIGITAL CAMERA땅을 짚고 일어서려는 듯한 힘이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는 발.

SANYO DIGITAL CAMERA뒷면에서 본 거북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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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앞면). 글자가 마모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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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 뒷면에는 약간의 글씨가 남아 있으나 거의 알아보기 힘들다.

월남사지 진국국사비, 보물 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비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비석은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고종 37년(1250)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이규보(1168~1241)가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탁연이 왕명을 받아 썼다. 진국국사의 속세의 성은 최씨이고 법명은 혜심으로 화순 사람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문하에서 선학을 닦았고, 송광사 16국사 중 제2조인 고승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린 형태이다.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물었는데, 그 모습이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현재 비의 전면은 떨어져 나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나, 후면은 상당한 부분이 남아 있어 많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보물 507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무위사 경내에 남아 있는 선각대사탑비(보물 507호)이다. 통일신라말 고승 선각대사 형미를 기리기 위해 고려초 (946)에 세운 탑비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비몸, 머리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에 거북몸을 하고 있는 거북받침돌이다. 비를 받치는 비좌에는 구름무늬와 둥근형태를 새겼다. 머릿돌에는 비의 이름이 새겨진 네모형태의 공간이 있으며, 그 주위에 구름속의 용의 모습을 조각했다. 비몸에는 선각대사의 행적과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면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선각대사 형미(864~918)는 통일신라말 고승으로 보리사 보조선사의 제자이다. 당나라에 14년간 유학했으며 무위사에서 8년간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하였다. 고려 태조가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편광영탑’이라 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보물 507호). 통일신라말 당나라 비석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탑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용머리에 거북몸을 하고 있는 받침돌. 조각수법이 섬세하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거북받임돌. 비를 받치는 비좌에는 꽃무늬 모양의 안상을 새겨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면에서 본 거북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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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에는 선각대사 형미의 행적과 최언위가 글을 짓고 유훈율이 해서로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오래된 비석이지만 글자가 잘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머릿돌. 구름속 용의 모습을 조각해 놓고 있는데 죽은이의 영혼이 천상세계로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탑의 이름은 마모가 심하여 알아 볼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보물 507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비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비는 선각대사(864~918)를 기리기 위해 고려 정종 원년(946)에 세운 것이다. 대사는 통일신라 말의 명승으로 법명은 형미, 속세의 성은 최씨다. 형미는 무위갑사(현재의 무위사)의 주지로 8년간 머물렀고, 어려울 때 왕건을 도와준 바 있다. 비는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 받침돌의 몸은 거북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으로 사실성 있게 표현되었다. 몸돌에는 선각대사의 행적과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해서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 용의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상세계로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겼다. 각 부의 조각수법이 사실적인 뛰어난 작품이다. 비의 높이는 2.35 m, 폭은 1.12 m이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0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순천 송광사 경내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이다. 보조국사가 열반하자 왕으로부터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받았으며, 감로탑은 3년뒤인 1213년에 세워졌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여러차례 옮겨졌다가 관음전 뒷편으로 옮겨졌다. 탑은 4각형의 대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몸돌은 구형을 하고 있으며 지붕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는데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의 승탑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는 승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

SANYO DIGITAL CAMERA둥근 구형의 몸돌.

SANYO DIGITAL CAMERA팔각형의 지붕돌은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감로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송광사 수행공간.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희종 6)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고 3년 후인 1213년(강종 2년) 음력 4월 10일에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보물 572호)

순천 송광사 박물관에 소장.전시 중인 고려고문서(보물 572호) 2점이다. 송광사의 옛이름인 수선사의 창건연혁 등을 기록한 형지기와 수선사에 딸린 노비를 기록한 노비문서이다. 흔치 않은 고려시대 작성된 고문서이다. 종이에 붓으로 글을 쓴 문서로 당시의 문서양식과 필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선사형지기(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고려, 보물 572호

수선사형지기는 사천대(고려시대 관청의 하나)의 관리가 기록한 문서로 수선사의 창건연혁 및 가람이 배치상황, 불상과 건물의 현상, 보조국사 비문, 승려수, 재산목록과 함께 제위보이 내용과 규모, 예식보시, 전답.시지.염전.산전의 규모, 노비의 수 등을 기록한 등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사찰의 규모와 건축 상황 및 재산상태 등을 규명하기에 좋은 자료로 상당한 규모의 가람을 갖추었던 수선사의 경제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특유의 관리문서형식을 함께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비문서와 함께 보물 제572호로 지정된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노비문서, 고려, 보물 572호

1281년 작성된 노비문서이다. 수선사의 주지였던 원오국사가 아버지인 양택춘으로 받은 노비를 당시 사찰에 봉안한 거란본 대장경을 관리할 수 있도록 관에서 인증한 문서이다. 세속인인 부친이 출가한 자식에게 노비를 상속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례적인 문서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보물 1376호),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로부터 받은 문서

순천 송광사에 전해내려오는 고문서인 티베트문 법지(보물 1376호)이다. 송광사 원감국사가 원나라 세조 쿠빌리이로부터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내용은 문서 소지자에 대한 신분과 신분보장, 신분을 보장해줄 자들에 대한 명시와 협조요청, 문서발급자의 증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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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영인본)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보물 1376호)
원본 사진(아랫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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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세 원감국사 충지(1226 ~ 1293)

송광사 16국사 중 제6대인 원감국사가 고려 충렬왕의 명을 받고 원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로부터 받아온 것이라 전해진다. 이 문서는 원나라 통치기에 불교계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재사가 고려에 발급하였던 문서로, 사권보호를 위한 일종의 특허증으로 보고 있다. 문서의 내용은 문서 소지자에 대한 신분과 신분보장, 신분을 보장해줄 사람에 대한 명시와 협조요청, 문서 발급자의 증명부분 등으로 나눠진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