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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고루(사적), 고려시대에 쌓은 토루

경주에 있는 성벽으로 추정되는 유적인 남고루(南古壘)이다. 경주 대릉원 남쪽 입구에서 황오동 구분굴을 둘러싸면서 북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주역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없어지고 북천 부근 성동동 전랑지(사적 88호) 부근 성동동 24번지 부근에만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1936년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밑넓이 9.5m, 외벽높이 3.5m, 내벽높이 2m로 확인되었다. <고려사> 등에 경주 읍성을 축성했다는 기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경주 왕성이었던 반월성(半月城) 방어와 연계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남고루(사적 17호)>

OLYMPUS DIGITAL CAMERA<남고루 안내표지판과 비석이 있는 부분>

경주 남고루 사적17호 11-20210626
<성동동 24번지 수목제거 후 투루가 노출된 상태>

OLYMPUS DIGITAL CAMERA<경작지에서 볼 수 있는 토루를 쌓았던 큰 돌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정비계획을 알려주는 현수막>

OLYMPUS DIGITAL CAMERA<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남고루 석축을 따라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OLYMPUS DIGITAL CAMERA<남고루 북쪽을 흐르는 경주 북천(알천)>

경주 남고루(慶州 南古壘), 사적 17호
원래 남고루는 대릉원 입구에서 북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감싸면서 북천(北川)까지 이르렀으나, 지금은 황오동 일대에서만 남북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장같은 이 터는 언제 무엇을 하려고 만든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사>에는 고려 현종(顯宗) 3년(1012)에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경주 북쪽에 돌로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 남고루는 그 때 만들어져 북천의 범람을 막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충남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이다.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이 각각 광배와 대좌를 두고 있는 형태의 삼존불상이다. 높이 3.1 m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의 불상으로 전반적으로 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높이 2.2 m 정도의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비슷한 얼굴 형태를 하고 있지만 크기가 작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197호 01-20210414<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197호 04-20210414
<본존불>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197호 03-20210414
<좌 협시불>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197호 05-20210414
<우 협시불>

삼층석탑과 함께 원래 읍내리 도심 절터에 있던 것을 옛 우산성 남쪽 도심공원으로 옮겨 놓았다.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197호 02-20210414<삼층석탑과 석조여래삼존입상>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197호,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고려시대 불상 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불상이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돌로 만든 부처가 가운데 있고 좌우로 부처나 보살이 서 있는 형태를 뜻한다. 본래 읍내리 1구에 있었으나 1961년 용암사로 옮겨왔고, 1981년에 보호각을 짓고 모셨다. 가운데 있는 본존불과 좌우에 있는 협시불은 각각 머리 뒤의 후광을 표현한 광배와 네모난 대좌가 따로 있다. 본존불의 얼굴은 마모되어 윤곽만 남아 있지만 소박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귀는 턱까지 내려 왔으며 목에는 수행의 단계를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앞면에 3개, 옆면에 2개씩 코끼리의 눈을 닳은 안상(眼象)을 새겼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방식으로 보인다. 좌우 협시물의 조각 방식은 거의 같고, 몸을 약간 틀어 본존불 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의 협시불은 섬세한 옷자락 사이로 목걸이 장식이 보이고, 옷자락은 3가닥씩 T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오른쪽의 협시불은 왼손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다. (안내문, 청양군청,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군청,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보물), 고려초기 석탑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에 옛 절터에 남아 있는 구층석탑(보물)이다. 높이 약 6 m로 2층 기단 위에 9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윗층 기단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기는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1층 탑신은 높게 만들었으며 2층부터는 낮은 높이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평이하고 탑신이 높아 전체적으로 안정감은 부족해 보인다.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1-20210414<청양 서정리 구층 석탑(보물)>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3-20210414<기단부>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은 완만하게 작아지는 비율을 가졌다.  1층 지붕돌 받침은 5단이며, 나머지 지붕돌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4-20210414<1층 탑신>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5-20210414<윗층 탑신>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11-20210414
<서쪽에서 본 모습>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12-20210414
<북쪽에서 본 모습>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13-20210414
<동쪽에서 본 모습>

석탑이 세워진 곳에는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청양에서 공주와 부여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정산현(定山縣) 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석탑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주요 교통로에 자라잡고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2-20210414<석탑이 남아 있는 절터>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고려초기
고려 초기에 세워진 9층 석탑이다. 부근에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탑 이외에 절이 있었다는 흔적은 현재 찾을 수 없다. 탑은 사각형의 2층 기단 위에 세웠는데 아래 기단의 네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 조각이 있고, 위의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과 버팀목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지붕돌은 완만하게 작아지는 비율을 가졌고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1층의 지붕돌 받침은 5단이지만 2층 이상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모두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얇으며 층수가 9층이라는 점에서 안정감이 떨어지지만,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상하의 비례가 아릅답게 조성되는 등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청양군청,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군청,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장곡사 상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석조대좌(보물)이다.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61 cm의 철조불상이다.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智拳印) 수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불꽃 형상을 하고 있는 광배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불상이 놓여 있는 석조대좌는 원래 석등 대좌로 사용하던 것이다. 전체적인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174호01-20210414<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174호02-20210414<불상이 모셔진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좌상은 상 대웅전의 높은 석등대석(石燈臺石) 위에 양쪽 발을 각각 무릎 위에 올려 놓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모습이다. 머리는 곱슬머리이며 얼굴은 이마가 좁은 느낌을 주는데, 얼굴의 전체 모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좁아진 삼각형의 모양이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 걸쳐 있고, 두 손은 지권인을 하고 있다. 광배는 나무로 새긴 배 모양인데 두광과 신광은 연꽃무늬로 꾸몄고 둘레에는 불꽃 무늬를 새겼다. 대좌는 3단으로 하단은 엎어진 연꽃, 중단은 8각의 돌기둥, 그리고 상단은 위로 핀 연꽃을 화강석에 각각 새겨 조성하였다. 대좌에 비해 불상이 전체적인 모습이 빈약하고, 얼굴의 세부는 불명확하다. 고려 초기 충북 괴산의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상 계열을 잇고 있는 일련의 철불로 중요시되며, 신앙적으로도 의의가 깊은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신라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귀면청동로(국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귀면청동로(鬼面 靑銅爐, 국보)이다. 높이 12.9 cm의 솥모양의 몸체를 다리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몸체에는 도깨비 얼굴을 형상화하였다. 몸체 윗부분은 3개의 산(山)이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몸체 양쪽에 2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향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나 통풍구가 있는 점으로 볼 때 풍로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형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내부의 불받침은 없어졌다.

국보145호 02-20200212<짐승 얼굴 무늬 풍로, 고려, 국보>

국보145호 04-20200212<옆에서 본 모습>

국보145호 03-20200212<옆에서 본 모습>

국보145호 05-20200212<불판이 남아 있지 않은 내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