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고려시대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사에 있는 건칠보살좌상(보물)이다. 청량사 주불전에 모셔왔던 불상으로 12~13세기 영남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옻을 입힌 삼베를 여러겹 붙여 제작한 건칠상으로 주불인 약사여래좌상(보물)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보관상태나 도금 상태가 양호하지 않지만 원래의 모습은 유지되고 있다. 국내에 흔치 않은 건칠.칠포상이며 눈 부위에 감입 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 20221029-001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

봉화_청량사_건칠보살좌상_및_복장유물<복장유물>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보물) 20221029-003 <불상이 모셔진 청량사 유리보전>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보물) 20221029-002<유리보전 내부에 모셔진 보살좌상(오른쪽)>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은 경상북도 명호면 북곡리에 있는 청량사 소장의 고려시대 불상 가운데 하나이며, 복장유물과 더불어 2015년 12월 28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보살상의 일종으로서 옻을 입힌 삼베를 여러겹 붙여 만든 건칠상(乾漆像)이다. 눈 부위에 감입 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손 부위는 옻칠을 한 헝겊인 칠포(漆布)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관과 등 부분에 손상이 있으며, 보수를 한 흔적이 발견된다. 도금 상태는 양호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외형은 잘 유지되어 있다. 불상의 정확한 제작 연도와 제작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얼굴, 신체, 옷을 입은 모습 등으로 보아 12 ~ 13세기에 영남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국내에서는 드문 건칠.칠포상이라는 점에서 고려 시대 불상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소조여래좌상(국보)이다. 높이 2.78m의 소조불상으로 주불전인 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다. 손모양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여래처럼 보이지만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에 모셔져 있고, 원융국사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아마타여래를 표현한것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 소조불상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규모도 가장 크다. 근엄한 표정과 평행의 옷주름 등 형식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고려시대 불상에 비해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세련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불상 양식과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불상으로 고려초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02-20221029<영주 부석사 조조여래좌상(국보)>

얼굴은 풍만한편이며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 걸쳐 입고 있다. 평행한 옷주름을 촘촘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형태의 옷주름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한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에서 볼 수 있다. 광배(光背)는 불상 뒤편에 나무로 만들어 놓았는데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광배에는 작은 불상을 부차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03-20221029<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소조여래좌상은 나무로 앉아 있는 모습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붙여가면서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불상은 높이 2.78m의 크기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부처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진리의 빛을 표현한 광배는 불상 뒤편에 따로 나무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얼굴은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손모양은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데, 이러한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소조여래좌상이 있는 전각 이름이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파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무량수전이라는 점과 부석사 ‘원융국사비’에 “좌우에 다른 보처 부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다른 사찰의 불상과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쪽에 모셔져 있고 시선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배치에 대해서는 아미타여래가 서방정토에 계시기 때문에 서쪽에 모셨다는 설, 인도나 중국의 석굴과 유사한 느낌의 공간감을 만들고자 의도했다는 설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시대 초기의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불상이며, 웅장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예술적 가치도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높이 3.2m 정도의 작은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적이다. 조각수법이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01-20220711<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02-20220711<옆에서 본 모습>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03-20220711
<뒤에서 본 모습>

불영사 삼층석탑
불영사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3.21m이다. 기단부는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어 있다. 그리고 상.하층 기단 갑석 하부에는 부연이 없다. 탑신부는3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별도의 돌로 만들었다. 탑신석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처마는 수병이고 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는 노반 없이 여러 부재가 놓여 있다. 이 석탑은 원래 황화실 옆 동쪽에 일부 무너져 있었는데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석탑의 규모는 작으나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탑이며, 기단 갑석 하부에 부연이 없는 등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 초로 추정된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문익점이 처음 목화를 재배한 곳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목면시배 유지(사적)이다. 고려 공민왕 때(1363년) 중국 원나라를 사신으로 방문했던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붓통에 넣어 가지고 돌아온 후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이 태어난 이곳 마을에는 목화를 처음 심었다고 알려진 백여평 밭에는 지금도 그의 업적을 기려 목화를 재배해 오고 있다. 유적지에는 문익점을 기리는 부민각이라는 건물과 그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가 남아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1-20220222<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목화를 재배했던 밭 옆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처럼 보이는 ‘부민각’이라는 현판이 있는 한옥이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그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7-20220222<부민각>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8-20220222<부민각에 모셔진 초상화>

부민각과 목화밭 사에는 ‘문익점 효자비’를 볼 수 있다. 문익점은 모친이 돌아가신 후 묘곁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 이곳을 침범했던 왜적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정에 알려져 고려 우왕 때(1383) 그에게 표창을 내리고 마을을 ‘효자리’라 이름하도록 하였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9-20220222<효자비 비각>

유적지에는 이곳이 목면시배 유지임을 알려주는 2기의 비석과 그의 업적을 알려주는 기념관이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4-20220222<유적지 출입문>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5-20220222<2기의 비석>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2-20220222<전시관>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3-20220222<전시관 내부>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이곳은 고려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공민왕 12년(1363)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면화 씨앗을 구해왔다. 그 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면화재배에 성공하였다. 면화로부터 얻어지는 포근한 솜과 질긴 무명은 옷감을 향상시켜 백성들의 의생활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보물)

경주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효자 손시양 정려비(보물)이다. 고려중기 명종 때(1182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유교적 사회체제를 보여주는 정려비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된 유물이다. 당시 동경유수가 손시양의 효행을 국왕께 보고하여 마을 정문에 정려비를 세우게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보물)>

비석은 글자가 새겨진 비몸만 있고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다. 사각기둥형태의 화강석 돌기둥 앞면에는 ‘효자리(孝子里)’라고 크게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손시양의 효행내용과 비석을 세운 경위를 글자로 새겨놓았다. 비문은 당시 동경유수였던 채정이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
<’효자리(孝子里)’라는 큰 글씨가 새겨진 앞면>

경주황남리효자손시양정려비
<효행 내력과 비를 세운 경위를 적은 뒷면>

OLYMPUS DIGITAL CAMERA<비석이 세워진 황남동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골목길>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孝子孫時揚族間磚, 보물), 경북 경주시 황남동 240-3번지
정려비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이 비는 고려 명종 12년 (1182)에 세워진 정려비이다. 화강암을 네모기둥 모양으로 치석한 것인데, 비몸만 있을 뿐 아래의 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앞면에는 효자리(孝子里)라 쓰고, 뒷면에는 5행 130자로 손시양(孫時揚)의 효행 내용과 비를 세운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손시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돌아 가시자 3년씩 초막을 짓고 묘소를 지킴으로써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다. 이 사실을 동경유수(東京留守)가 국가에 보고하자, 왕이 그 효행을 기쁘게 여겨 정문(雄門)을 만들어 주고 포상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네모기둥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와 관련되지 않은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