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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등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통일신라 때 백제유민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3점의 불비상이 발견되었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 발견 당시 비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한 곳이다.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1<비암사 삼층석탑>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6<기단부>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7<탑신부>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5<남쪽에서 본 모습>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2<동쪽에서 본 모습>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3<북쪽에서 본 모습>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4<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계유’가 새겨진 아미타불, 국보, 통일신라, 연기 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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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보물, 통일신라(7세기), 연기 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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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이 새겨진 아마타불과 보살, 보물, 통일신라(689년), 연기 비암사>

비암사는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졌으나 1960년 이곳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에 쓰여진 내용으로 삼국통일 후 백제 유민들을 위해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8<세종 비암사>

비암사 삼층석탑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조형 기념물이다. 이 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1932년 복원 공사를 하면서 없어진 기단부를 보완하고 뒤집혀 있던 석재들을 바로 잡았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에 있는 몸돌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두해 보이고 밑면의 받침이 4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60년 3층 석탑 꼭대기에서 3점의 비상이 발견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점의 비상은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기축명아미타불비상,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으로 각각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당진 안국사지 절터

충남 당진군 정미면 안국산 중턱에 있는 안국사지 절터이다. 창건연대나 사찰의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으나 출터유물이나 남아 있는 석탑과 불상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석탑(보물), 매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절터의 규모나 남아 있는 유물 등으로 볼 때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절터>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배치된 삼존석불이다. 본존물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 갓을 쓰로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몸체는 조형미가 없는 편이며 신체만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옆에 있는 보살상도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이다. 고려시대 지방호족들을 중심으로 조성했던 거대 석조불상들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9<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2<옆에서 본 모습>

석탑(보물)은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고 투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간단하며 탑신 몸돌은 1층만 남아 있고 2층부터는 지붕돌만 있다. 탑신 몸돌에는 1면에는 출입문을, 다른 3면에는 여래좌상을 새겨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세부적인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는 떨어지는 편으로 고려중기 석탑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10<당진 안국사지 석탑(보물)>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3<뒷편에서 본 석탑>

석가여래삼존입상 뒷편에는 고려시대 매향의식을 했던 내용이 적혀 있는 큰 바위가 있다.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4<안국사지 매향암각>

안국사지 매향암각
불상 후면에 있는 매향암각은 모양이 배(舟)같이 생겨서 ‘배바위’, 고래모양이라 하여 ‘고래바위’ 또는 베틀에 딸린 북모양ㅇ이라 하여 ‘북바위’ 등으로 불린다. 바위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을 치른 내용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매향은 향나무를 땅에 묻는 민간 불교의식으로 향나무를 통해 소원을 비는 자와 미륵불을 연결되길 바라는 신앙의 한 형태이다. 이런 매향활동을 통해 고려시대 몽고와 왜구의 침입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지역민들이 불안한 민심을 달래고자 미륵신앙의 안식처로써 안국사를 선택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6<안국사지 절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7<사찰 전각으로 보이는 건물>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41<사찰 전각>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42<연못>

당진 안국사지 20230316_08<당진 안국사지 절터>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

당진 안국사지 석탑(보물)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사지 절터에 있는 석탑(보물)이다. 탑은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지않고 투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간단하며 탑신 몸돌은 1층만 남아 있고 2층부터는 지붕돌만 있다. 탑신 몸돌에는 1면에는 출입문을, 다른 3면에는 여래좌상을 새겨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세부적인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는 떨어지는 편으로 고려중기 석탑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석탑(보물)>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3<기단부>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4<여래좌상이 새겨진 1층 몸돌(서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6<1층 몸돌(남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7<1층몸돌(서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8<문짝이 새겨진 1층 몸돌(북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5<지붕돌>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9<석탑 옆에 있는 다른 석탑의 몸돌>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21
<서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22
<북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23
<동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2<아래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10<위쪽에서 본 모습>

안국사는 안국산에 위치한 절터이다. 2003년 출토된 기와에서 요나라 연호가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맹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사찰에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11<당진 안국사지>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보물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요나라 성종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년)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톨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난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사지 절터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배치된 삼존석불이다. 본존물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 갓을 쓰로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몸체는 조형미가 없는 편이며 신체만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옆에 있는 보살상도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이다. 고려시대 지방호족들을 중심으로 조성했던 거대 석조불상들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커다란 돌에 신체를 얇게 조각하여 새겨 놓고 있는데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1
<갓을 쓰고 있는 형태의 본존불>

오른쪽 협시보살은 인동당초문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2
<오른쪽 협시보살>

왼쪽 협시보살은 얼굴이 남아 있지 않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3
<왼쪽 협시보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6
<오른쪽 아래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4<옆에서 본 모습>

안국사는 안국산에 위치한 절터이다. 2003년 출토된 기와에서 요나라 연호가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맹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사찰에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5<당진 안국사지>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보물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요나라 성종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년)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톨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난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지(사적)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보물)이다. 석조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 사원, 사찰 입구에 놓여 있다. 석조에 담긴 물로 손을 씻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석조는 화강석 내부를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 석조 양식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조각 등으로 장식한 흔적이 없으며 작은 배수구마나 있다.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약 4톤 정도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2<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년>

SANYO DIGITAL CAMERA<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09년>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1<옆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4<반대쪽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3<석조 내부>

SANYO DIGITAL CAMERA<작은 배수구>

보원사는 화엄십찰 중 하나로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 상당히 유서깊고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마애여래삼존상(국보)에서 보원사 절터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 북조와 백제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불교문화 전파 경로에 있던 유서깊은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석조(보물), 당간지주(보물), 오층석탑(보물), 법인국사탑(보물) 등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5<서산 보원사지 절터(사적)와 석조(보물)>

보원사지 석조, 보물,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989년(고려 경종 3년)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을 비릇한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시켜 볼 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