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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3호갱

시안 진시황릉 3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1호갱 북쪽 25 m, 2호갱 서쪽 1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 28.8 m, 남북 24.6 m 정도로 U자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 520 ㎡ 정도로 1, 2호 갱에 비해 그 규모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1977년 9개월 간 첫 발굴.조사 후 보존을 위해 다시 흙으로 덮었으며, 1988년 전시장을 지은 후 다시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발굴.조사 결과 유적 대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68구의 병용, 1기의 전차, 34개의 청동제 무기가 출토되었다. 3호갱은 1, 2호갱의 지휘부로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릉 병마용갱 3호갱>

3호갱은 동쪽 끝 경사로가 출입로로 사용되었으며 입구에 전차가 있는 방이 있다. 양쪽 복도를 통해 남쪽 방과 북쪽방을 연결하고 있다. 남쪽 방에는 통로, 2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되며 북쪽방은 동쪽을 향하는 직선형이다. 1, 2호갱과 같은 구조로 흙으로 벽을 쌓아 칸막이를 만들고 목재 서까래가 있는 지붕으로 덮혀 있으며 통로에 병마용이 도열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내부>

출입문 경사로를 들어서면 정면에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도열해 있으며 복도를 통해 양쪽 방으로 연결된다. 양쪽 통로에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입구에 있는 방>

OLYMPUS DIGITAL CAMERA<입구 통로>

OLYMPUS DIGITAL CAMERA<통로에 도열해 있는 병사>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작은 방>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일직선 통로 형태의 북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Preface
Pit 3 was discovered in June 1976, located north of Pit 1 at the western end. It is 25 meters to the south of Pit 1 and 120 meters to the east of Pit 2. It is of U-shape about 520 square meters, measuring 28.8 meters long from east to west, 24.57 meters wide from north to south and 5.2 ~ 5.4 meters deep. Investigation shows that Pit 3 was destroyed seriously in history. Only 68 pottery figures, one chariot and 34 bronze weapons were unearthed from this pit. Pit 3 is now known as the command center of Pit 1 and Pit 2.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2호갱, 발굴현장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

1호갱에서 북쪽으로 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2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L’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동서로 124 m, 남북으로 98 m 정도 규모이다. 보병 위주로 구성된 1호갱과는 달리 궁수, 전차, 기병, 보병 등이 4개 대열로 배치되어 있다. 전체 대형은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투시 유연하게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는 형태로 진(秦)의 독특한 군사전략과 대형이 잘 반영되어 있다.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중이며 발굴된 토용 중 아주 적은 수만 갱내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같은 1호갱과는 달리 고고학 발굴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으며, 병마용을 대표하는 토용들을 별도의 전시공간에서 가까이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갱 2호갱>

OLYMPUS DIGITAL CAMERA<2호갱 내부>

진흙으로 쌓은 벽이 견고한 서까래가 있는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지붕은 섬유매트가 있는 진흙으로 덮혀 있다. 병마용 유물 발굴 과정에서 지붕들은 해체되었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부분에서 갱을 덮고 있는 지붕을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붕목유적(棚木遺跡, remains of Roof beams), 병마용이 도열해 있는 갱의 지붕>

1호갱과는 달리 2호갱은 출토된 병마용들을 도열해 전시하지는 않고 있으며, 바깥쪽에 앉아서 활을 쏘는 궤사용, 서서 활을 쏘는 입사용, 장교로 보이는 중급군리용, 장군으로 추정되는 고급군리용 등 병마용을 대표하는 유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차가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천차로 보이는 병마용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이 남아 있는 부분>

앉아서 노(弩)를 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궤사용(跪射俑, Kneeling Archer)은 2호갱 북동쪽에 위치한 궁수 중심의 대열에 발견된 것으로 갑옷을 입고 있다. 원래 노(弩)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호갱에서는 160명이 궤사용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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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갱 출토 궤사용(跪射俑, Kneeling Archers)>

OLYMPUS DIGITAL CAMERA <궤사용들이 주로 출토된 부분>

2호갱에서는 약 116명이 기병용이 말과 함께 출토되었다. 말들은 하곡마(河曲馬, Heque horse)라 불리는 티벳 북서부지방에서 가져온 품종이라한다. 말들은 안장이 얹혀 있지만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등자는 아직 없다. 기병은 꽉끼는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으며 한손에는 고삐를, 다른손에는 활을 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기병용 출토현장(騎兵俑, Cavalry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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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기병용(鞍馬騎兵俑, Cavalryman with his saddle war-horse)

OLYMPUS DIGITAL CAMERA<안장을 얹은 말>

OLYMPUS DIGITAL CAMERA <기병용이 출토된 부분>

2호갱에서 출토된 입사용(立射俑, Standing Archer)이다. 갑옷이 아닌 전투복을 입고 있는 보병으로 양손의 포즈는 활을 쏘는 자세를 하고 있다. 2호갱에서는 172구의 입사용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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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용(立射俑, Standing Archer)>

2호갱에서 출토된 중급군리용(中級軍吏俑, Middle-ranking Officer)이다. 모자와 네모난 신발을 신고 있다. 갑옷아래 군복은 무릎까지 늘어져 있다. 중급장교의 갑옷은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가습갑옷만 있고 다른 하는 가슴갑옷과 검은 갑옷을 같이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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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군리용(中級軍吏俑, Middle-ranking Officer)>

2호갱에서 발견된 장군으로 보이는 7구의 고급군리용(高級軍吏俑, High-ranking Officer) 중 하나이다. 고급군리용의 키, 의복, 투구는 그의 높은 지위를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미늘 갑옷을 입고 있으며 턱아래 리본으로 묶은 투구를 착용하고 있다. 갑옷을 장식하기 위해 리본으로 만든 8개의 매듬, 전면에 3개, 후면에 3개, 어깨에 각각 1개의 매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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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군리용(高級軍吏俑, High-ranking Officer)>

진시황 병마용갱은 3곳 모두 비슷한 토목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그 크기와 모양은 다르게 조성되었더. 갱은 지하 5 m 정도이며 흙으로 만든 칸막이벽으로 공간을 분리한 긴 복도형태를 하고 있다. 바닥은 도기 벽돌로 포장되어 있으며 강한 서까래가 있는 지붕으로 덮혀 있다. 지붕은 섬유매트와 흙으로 덮혀 있으며 경사지니 도로를 통해 지상으로 연결된다. 전체적으로 병마용을 은폐하기 용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붕목유적(棚木遺跡, The traces of timber), 병마용갱을 덮고 있는 지붕>

OLYMPUS DIGITAL CAMERA<지붕과 그 아래에 묻혀 있는 병마용>

OLYMPUS DIGITAL CAMERA<병마용갱에 사용되었던 벽돌들>

OLYMPUS DIGITAL CAMERA<복도에 묻혀 있는 병마용>

OLYMPUS DIGITAL CAMERA<복도에 묻혀 있는 병마용>

OLYMPUS DIGITAL CAMERA<철전판(鐵栓板, Iron belt), 철추(鐵錘, Iron hammer), 철부(鐵斧, Iron axe)>

OLYMPUS DIGITAL CAMERA<포지전(鋪地磚, The pottery floor bricks)>

OLYMPUS DIGITAL CAMERA<붕목유적(棚木遺跡, The traces of timber)>

진시황 병마용에서는 동노기(銅弩機, Bronze crossbow trigger), 동월(銅鉞, Bronze battleaxe), 동극(銅戟, bronze halberd), 동모(銅矛, Bronze spear), 동피(銅鈹, broze pi), 동성(銅殳, Bronz Shi), 동과(銅戈, Bronze Gi) 등 약 4만여 개의 청동무기가 출토되었다. 이 무기들은 모형제작, 주조, 마무리 과정을 통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무기의 표면에는 크롬처리기술을 통해 도금되어 발굴 당시 새것처럼 반짝여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진나라 때 도금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무기제조 과정이 표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균(金鈞, Bronze hook)

OLYMPUS DIGITAL CAMERA동전촉(銅箭鏃, bronze arrow-heads), 철정동촉(鐵錠銅鏃, Bronze arrow with iron s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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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노기(銅弩機, Bronze crossbow trigger), 동월(銅鉞, Bronze battleaxe)

OLYMPUS DIGITAL CAMERA동검(Bronze Sword)

OLYMPUS DIGITAL CAMERA동극(銅戟, bronze halberd), 동모(銅矛, Bronze spear), 동피(銅鈹, broze pi), 동성(銅殳, Bronz Shi), 동과(銅戈, Bronze Gi)

Preface
Located 20 meter to the north of Pit 1 at the eastern end, Pit 2 is in “L” shape. This pit was discovered in April 1976, covering area of 6,000 square meter. It measures 124 meters long from east to West, 98 meters wide from to south and 5 meters deep. Different from Pit 1, Pit 2 consists of mixed military force in four arrays: archers, war chariots, cavalrymen and infantrymen. The four arrays seemed to exist independently, but could be assembled immediately to constitute a complete battle formation during the war times. This reflects the unique strategy of Qin military affairs. The excavation work of Pit 2 is still continuing. At present a large area of the remnants of the roof beams and small part of the pottery warriors and horses are being exhibited in the Pit. It is a rare chance for visitors to enjoy the archaeological digging at the site. (안내문,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박물관)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경산 조영동 고분군(사적 516호), 삼국시대 초기 신라 지방세력 무덤

경북 경산사 조영동 일대에 있는 고분군(사적 516호)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은 근거지였던 임당동 일대에 분포한 고분군 중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삼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있었는데 발굴.조사 후 4 ~ 6세기에 조성된 8기의 대형 봉토분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대형 봉토분에서는 금, 은, 금동 등으로 만든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쪽 임당동고분군과의 사이에 있는 저습지에서도 다양한 생활유적과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의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지로 평가 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 조영동고분군(사적 516호). 임당동고분군과 함께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을 무덤을 추정되는 8기이 대형봉토분이 금호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임당동고분군이 있는 서쪽방향. 금호강이 대구를 향해 흐르고 있으며 주택지가 형성된 저습지에서 생활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 북쪽으로는 금호강이 영천에서 대구로 동.서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멀리 팔공산 일대 산악지대가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는 영천방향으로 금호강을 따라 넓은 평야가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 아파트 부근에 부적리고분군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아래에 있는 2기의 대형봉토분. 하나의 봉토분에 여러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끝에 있는 대형봉토분. 여러개의 무덤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 가운데 있는 3기의 대형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주택가 옆에 있는 3기의 봉토분.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봉분들.

경산 조영동 고분군, 사적 516호
이 고분군은 임당동 구릉에 분포하는 고분들 가운데 중앙부인 ‘성말괭이’라고 부르는 곳에 위치한 봉토분이다. 이 무덤들 가운데 일부가 1987년 임당동 주택지 개발지역에 포함됨으로써 영남대학교 박물관의 조산단에 의하여 2년에 걸친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에서 독(항아리)무덤(옹관묘), 널무덤(목관묘), 덧널무덤(목곽묘), 돌널무덤(석관묘) 등 우리나라 원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많은 무덤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특히 큰 무덤들에서 금동관을 비롯하여 금, 은, 금동 등으로 만든 각종 유물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무덤들은 삼국시대 초기 고대 국가 중 하나인 압독국에 속한 지배계급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고분군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고대국가 형성 및 발달에 관한 새로운 연구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는 목책을 이용한 성곽, 각종 주거지, 대형 건물지, 저습지 등의 생활 유적지 등이 조사됨으로써 고대인들의 생활전반에 관한 연구의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경산 임당동 고분군(사적 516호), 삼국시대 신라 지방세력 무덤

경북 경산시 임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사적 516호)이다. 구릉위에 쌓은 신라 지방세력의 토성 바깥쪽에 양지바른 곳에 1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1980년대 이후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는데 바위를 깎아 만든 수혈식석실, 암반 위에 돌을 쌓의 만든 횡구식석살, 독으로 만든 옹관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금동관을 비롯하여 장신구, 마구, 토기류 등 2,0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동물뼈, 씨앗을 비롯하여 순장자를 포함한 인골 등도 확인되었다.

임당동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 등으로 볼 때 4 ~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유물의 형태 등으로 볼 때 신라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등 초기 신라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보인다. 임당동 고분이 있는 경산 지역은 『삼국사기』 에 기록된 압독국(押督國)이 있었던 곳으로 출토유물 등으로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상 임당동 고분군(사적 516호).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인 압독국의 근거지였던 토성 바깥쪽에 10여기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앞에서 내려다 모습. 영천에서 대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호강에서 남쪽으로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는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 뒷편으로는 지방세력 근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둘레 950 m 정도의 임당토성이 있다. 경주 반월성이나 대구 달성과 비슷한 입지와 형태를 하고 있어 같은 문화권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앞에서 본 임당동고분군. 앞쪽으로 백지산(486 m)을 비롯한 산악지역과의 사이에 경산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임당동 고분군 중 앞쪽에 위치한 1호분. 5기 정도의 무덤이 같이 있는 연접분으로 발굴.조사 결과 금동관모, 은제허리띠, 고리자루칼 등 출토되어 압독국 최고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분 발굴.조사 당시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당시 무덤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경산 임당 1호분은 5기 정도의 무덤이 연이어 축조된 연접분으로, 고분의 절반 정도를 발굴한 결과 으뜸덧널(주곽)과 딸린 덧널(부관)로 구성된 주부곽식의 암광목곽묘 2기(1A호/1B호)가 조사되었다. 1A호분은 긴지름 17.8 m, 짧은지름 15.3 m의 둘레돌(호석)이 확인되었고, 높이가 3 m인 타원형의 봉분을 가졌다. 내부는 길이 440 cm, 너비 160 cm, 길이 207 cm인 직사각형 으뜸덧널과 길이 365 cm, 너비 428 cm, 깊이 77 ~ 122 cm인 사각에 가까운 딸린덧널로 이루어져 있다. 무덤에서는 금동관모, 은제허리띠, 고리자루칼 등 최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금공품과 토기, 말갖춤 등 430여 점의 유물 뿐만 아니라 상어뼈, 새뼈, 조개껍질, 살구씨 등 다양한 동식물 자료도 풍부하게 출토되었다. 또 주인공 뼈와 순장자로 보이는 인골 2개체도 확인되었다. 고분은 토기류 등의 유물로 보아 5세기 말 또는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고분의 주인공은 옛 압독국의 지배세력인 간층(干層)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OLYMPUS DIGITAL CAMERA주택가 옆에 있는 2호분. 1982년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고리자루큰칼 등 중요 유물들이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적발되어 임당동고분군의 중요성이 확인된 무덤이다. 이후 임당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분 뒷편에 있는 무덤들. 앞쪽에 3호와 4호분이, 뒷편에 5~7호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분 뒷편 3호분. 여러개의 무덤이 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4호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5, 6, 7호분. 2호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독 2개를 포함하여 모두 15개이 무덤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7호분에는 발굴.조사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다.

경산 임당동고분군 41-202001057호분 내부. 이곳에 발견된 독무덤을 볼 수 있다. 봉분 주위에 둘레돌이 돌려져 있는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 임당동에서 출토된 쇠도끼.

경산 임당동 고분군, 경북 경산시 임당동
이곳 임당동 구릉 위에 분포되어 있는 옛 무덤들은 오랫동안 개간 및 도굴 등으로 인해 훼손.멸실되어 왔으나, 1982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무덤의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무덤은 암반을 수직으로 깍아내고 만든 수혈식석실과 암반 위에 냇돌을 쌓아 만든 횡구식석실, 독으로 만든 옹관 등 종류가 다양한 형태였고 이곳에서 금동관을 비롯하여 금 귀걸이, 반지 등 장신구류, 마구류, 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속에는 순장된 여러 사람들의 인골이 함께 묻혀 있어 이들 무덤의 주인공이 지배계층에 속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발굴결과를 종합해 볼 때 이 무덤들은 4 ~ 6 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옛 문헌에 전하는 압독국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출토된 유물이 모두 신라 문화권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이 압독국은 신라의 지배를 받던 지방국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 전 사벌왕릉, 후삼국시대 지방세력 무덤

경북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에 있는 사벌국 왕릉으로 전해지는 고분이다. 조선시대 문헌에 후삼국시대 지방세력이었던 사벌국 왕릉이 있다고 하여 사벌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상산 박씨 시조 무덤으로 여겨지며 조선후기 전국적으로 각 성씨 시조의 묘역이 성역화될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고분 옆에는 통일신라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삼층석탑이 남아 있어 사찰 옆에 무덤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벌국은 상주지역에 있었던 삼한시대 소국 중 하나로 인근 지역에서 당시 지배층 무덤들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북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에 있는 전 사벌왕릉이다.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절터 옆에 무덤을 조성했다. 낙동강에서 1 km 정도 떨어진 낮은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산 박씨 시조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조선후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덤 옆에는 옛 절터임을 알려주는 통일신라 삼층석탑(보물 117호)가 있으며, 조서후기 이후에 조성된 재실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사전’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 삼문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당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그 옆에 있는 건물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인 것으로 보인다.

전 사벌왕릉, 경북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이 능은 상주에 있었던 소국인 사벌국의 왕릉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주변에는 삼국시대 고분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봉분의 크기는 장축직경 16 m, 단축직경 14.5 m인 동.서향의 타원향 봉토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이 왕릉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서편에 있는 신도비에는 상산박씨의 시조인 신라 경명왕 아들 박언창이 신라말(917년)에 사벌군으로 책봉되어 있다가 후삼국 동란기에 사발국을 세웠고 이 능이 그의 묘라는 내용이 있다. 그 동안 황폐한 채 돌보지 않다가 조선 현종 이후 누차에 걸쳐 국가에서 수축 또는 보수를 해 왔고 1825년 상주목사 민종열이 현재와 같이 보수하였다. 인접한 헌신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 이후에 해당하는 큰 석실 봉토분들이 밀집 분포되어 있어서 당시 이 지역 세력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