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고인돌

강진 송정리 지석묘군

전남 강진군 칠량면 송정리에 있는 지석묘군이다. 고인돌이라 부르는 청동기시대 지배계층 무덤 유적이다. 이곳에는 24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남방식으로 불리는 바둑판식이다. 발굴.조사 결과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조각.돌화살촉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강진만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대 이래 한.중.일을 연결하는 연안해상교통로 주요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대구면에는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가마터(사적 68호)가 있으며, 병영면에는 조선시대 전라병영이 설치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송정리 지석묘군. 남방식 고인돌로 불리는 청동기시대 무덤유적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상당히 큰 규모의 고인돌.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이 없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인돌들.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제천 청풍지역 고인돌

충풍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전시해 놓은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다. 옛 청풍. 수산.덕산.한수 지역에 산재해 있던 에 산재해 있던 것들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남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이 같이 발견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 놓은 고인돌.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있던 고인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절반이 깨어진 채 남아 있는 고인돌. 탁자모양을 하고 있는 북방식 고인돌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북방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남방식 고인돌. 별자리모양을 새긴 성혈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인돌에 새겨진 성혈.

고인돌과 성혈(星穴)
고인돌은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괴었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덤양식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침돌 위에 덮개돌이 있는 탁자모양을 띄고 있다. 본 고인돌군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온 남방식 고인돌로 특히, 중앙에 배치된 고인돌은 하늘의 별로 보이는 성혈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전국에 있는 많은 고인돌 중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약 2,5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풍화작용에 의해 다른 별자리들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지만 북두칠성(큰곰자리)과 북극성(작은곰자리)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성혈은 묻힌 사람의 영생불멸을 기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이며, 별자리의 위치로 보아 당시 4~5월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북방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덮개돌만 남아 있다.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부여 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유적지 부근에 남아 있는 고인돌

충남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 지석묘이다. 송국리 주거유적지(사적 249호) 부근 낮은 구릉지대가 끝나고, 넓은 평야의 논이 시작되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2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있는데, 큰 판돌을 4개의 고인돌로 고인 탁자식 고인돌 1개와 받침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 1개가 있다. 동쪽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길이 5.8 m, 너비 3.7 m로 받돌은 일부만 남아 있다. 서쪽편 고인돌도 길이 5.8 m, 너비 4.2 m로 받침돌이 없으며 매장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제단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근에 있는 송국리 유적(사적 249호)은 송국리형토기를 비롯하여 동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된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이다. 1975년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하여 60여 기의 움집과 돌널무덤.독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부여 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유적이 있는 구릉 남쪽편에 2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있는 고인돌. 받침돌이 있는 탁자식 고인돌로 규모는 비교적 큰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덮개돌 위에는 의미가 있는 듯 구멍을 판 흔적이 있지만, 석재로 쓰기 위해 후대에 판 채석공이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덮개식 고인돌. 덮개돌의 규모는 탁자식 고인돌과 비슷한 크기이다. 덮개돌 아래에 무덤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제단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인돌이 있는 구릉 아래로 보이는 논산평야

SANYO DIGITAL CAMERA송국리 유적지(사적 249호)

거대한 바윗돌로 만든 무덤으로 농경의 비중이 점차 커지던 청동기 시대에 나타났다. 큰 판돌을 4개의 돌로 고인 탁자식 고인돌과 고인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이 있다. 석성천으로 흘러드는 연화천에 의해 형성된 낮은 구릉 끝에 자리하고 있어 당시 농경집단의 영역 표시적인 기능과 무덤의 기능을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기 모두 일찍이 훼손되어 1991년과 1992년의 발굴 조사에서는 아무런 유물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현재 지석묘의 뚜껑돌에 보이는 자국들은 이 돌을 깨뜨려 석재로 사용하려 했던 후세 사람들의 채석공 흔적이다. (안내문, 부여군청, 2010년)

<출처>

  1. 부여군청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사적 410호), 대산리마을 부근 감태바위 고인돌군

전남 화순군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사적 410호) 중 감태바위 고인돌군이다. 전체 5 km 지역에 분포된 고인돌 중 보검재 고개를 넘어 춘양면 대산리마을 인근에 흩어져 있는 140기의 고인돌이다. 그중 마당바위 고인돌은 길이 6.5 m로 넓은 덮개돌로 고갯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갔던 곳을 보인다. 마을 뒷편 감태바위 주변에는 바둑판식 고인돌을 비롯하여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고인돌들이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으며, 뒷편에는 돌을 채석장도 같이 있다. 이곳을 지나 대산리 마을에도 약 46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발굴현장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전남 화순군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사적 410호)은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모산마을에서 보검재(해발 188.5 m)를 넘어 춘양면 대산리로 연결되는 약 5 km의 고갯길 주면에 흩어져 있는 596기의 고인돌군을 말한다. 고창 고인돌 및 강화 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 춘양면 대산리마을 뒷편에 위치한 감태바위 고인돌군. 140기의 고인돌이 마을 뒷편에 밀집해 있다.

감태바위 고인돌군은 채석장 바로 아래에 있으며 고인돌 축조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고인돌 덮개돌의 채석 과정과 지상에 무덤방이 드러난 탁자식 고인돌과 고임돌을 괸 바둑판식 고인돌, 지상에 무덤방이 드러난 개석식 고인돌 등 여러 형식의 고인돌을 함께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산리마을. 이곳엔 약 46기의 고인돌이 발굴현장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공간과 체험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감태바위 주변의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또다른 고인돌. 화순지역에는 화산재가 굳어진 응회암이 많은 지역이다. 응회암은 가공하기가 쉬워 고인돌을 만들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순 고인돌유적지 장동응회암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4 km 길이에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고 있습니다. 고인돌의 재료인 장동응회암은 중생대 백악기 당시 커다란 호수였던 화순에 수차례의 화산폭발로 화산재가 쌓여 굳어진 암석입니다. 특히 이곳의 응회암은 화순지역에 넓게 분표하며 층과 층을 쉽게 떼어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어 고인돌을 축조하기에 적절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검, 가락바퀴 등의 유물이 대거 출토외었으며, 2000년 12월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위에 있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위 높은 곳에 위치한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보검재 고개로 올라가는 길. 도로 주변에 고인돌들이 흩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도로 옆에 있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고갯길 중간쯤에 위치한 마당바위 고인돌. 길이 6.5 m의 상당히 크고 넓은 고인돌이다. 이 고갯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보인다.

마당바위 고인돌은 길이 650 cm, 두께 110 cm의 대형 덮개돌로, 마당처럼 넓다고 하여 마당바위 고인돌로 불린다.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 10매가 빋치고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로 주변에는 이곳이 묘지이었음을 표시했던 구획석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고인돌 주변에는 조그마한 바둑판식 고인돌과 탁자식 고인돌도 있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바위 아래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도로 아래쪽에 위치한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고인돌.

화순 효산리 및 대산리 지석묘군, 사적 410호
화순고인돌 유적은 2000년 12월 고창고인돌 및 강화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는 화순고인돌이 전 인류를 위하여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탁월한 문화유산임을 널리 인정받은 것이다. 화순고인돌은 남쪽 산기슭을 따라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산리를 잇는 보검재(일명 보성재, 해발 188.5 m) 계곡 일대 약 5 km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특징은 좁은 지역 내에 고인돌 여러 개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며 당시의 자연환경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또한 고인돌 덮개돌 채석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돌을 캐는 것과 캔 돌을 쌓아 고인돌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유적은 국가 사적 제 410호로 지정되었고, 거점 지역별로 괴바위 고인돌군(47기), 관청바위 고인돌군(190기), 달바위고인돌군(40기), 핑매바위 고인돌군(133기), 감태바위 고인돌굴(140기), 대산리 발굴지(46기) 등에 596기의 고인돌이 빽빽히 분포해 있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화순군청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사적 410호), 핑매바위 고인돌군

전남 화순군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사적 410호) 중 핑매바위 고인돌군이다. 전체 5 km 지역에 분포된 고인돌 중 보검재 고개를 지나 핑매바위까지 주변에 흩어져 있는 133기의 고인돌군을 말한다. 핑매바위는 길이 7 m, 높이 4 m의 거대한 고인돌로 오래세원 이 고갯길의 이정표가 되어왔다. 주변에는 많은 고인돌들이 흩어져 있으며 뒷편에는 돌을 채취했던 채석장이 보인다.

전남 화순군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사적 410호)은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모산마을에서 보검재(해발 188.5 m)를 넘어 춘양면 대산리로 연결되는 약 5 km의 고갯길 주면에 흩어져 있는 596기의 고인돌군을 말한다. 고창 고인돌 및 강화 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핑매바위 고인돌군은 보검재 고개를 넘어서 이정표가 되었던 핑매바위가 서 있는 곳까지 흩어져 있는 133기의 고인돌을 말한다. 주로 도로 위쪽에 분포하고 있으며, 아래쪽에도 여러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나주와 보성을 연결하는 보검재 고갯길에서 이정표가 되었던 핑매바위. 높이 4 m의 거대한 덮개돌이다. 자연석이 아니라 다듬은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아래에는 덮개돌을 받쳤던 받침돌들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는 여흥민씨 재실이 있음을 표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팽매바위 고인돌은 돌을 던진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길이 7 m, 높이 4 m, 무게 200톤이 넘는 초대형 덮개돌로 세게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아랫면은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고 받침돌이 고이고 있어 덮개돌 아래에 일정한 공간이 있다. 이 고인돌에는 마고할머니와 관련된 전설과 옛 장수가 묻혔다는 장군바위 전설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고인돌 위 구멍에 왼손으로 돌을 던져 들어가면 시잡가고 장가간다는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핑매바위 주변에는 지동마을에서 보검재로 올라가는 산비탈을 따라 133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서 있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개너머 도로 아래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도로 옆에 있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핑매바위 윗쪽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으로도 고인돌들이 줄을 지어 모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위쪽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바둑판식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도로 옆에 보이는 작은 규모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핑매바위 뒷편으로 보이는 채석장 주변

OLYMPUS DIGITAL CAMERA핑매바위 앞 도로.

OLYMPUS DIGITAL CAMERA핑매바위 부근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핑매바위 앞 도로 아래에 있는 고인돌군.

OLYMPUS DIGITAL CAMERA크고 작은 고인돌들이 흩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당히 큰 규모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으로도 핑매바위보다 약간 작은 규모의 고인돌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핑매바위 주변.

화순 효산리 및 대산리 지석묘군, 사적 410호
화순고인돌 유적은 2000년 12월 고창고인돌 및 강화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는 화순고인돌이 전 인류를 위하여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탁월한 문화유산임을 널리 인정받은 것이다. 화순고인돌은 남쪽 산기슭을 따라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산리를 잇는 보검재(일명 보성재, 해발 188.5 m) 계곡 일대 약 5 km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특징은 좁은 지역 내에 고인돌 여러 개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며 당시의 자연환경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또한 고인돌 덮개돌 채석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돌을 캐는 것과 캔 돌을 쌓아 고인돌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유적은 국가 사적 제 410호로 지정되었고, 거점 지역별로 괴바위 고인돌군(47기), 관청바위 고인돌군(190기), 달바위고인돌군(40기), 핑매바위 고인돌군(133기), 감태바위 고인돌굴(140기), 대산리 발굴지(46기) 등에 596기의 고인돌이 빽빽히 분포해 있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화순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