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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 서문성벽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대리 낙안읍성 서문 바깥쪽에 있는 서문성벽집이다. 건물은 ‘-’자형 안채와 헛간채, 가게로 사용되었던 작은 별채가 있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안채는 부엌, 안방, 마루, 윗방이 나란히 배채되어 있다. 헛간, 돼지막 등으로 사용되었던 헛간채가 대문 오른쪽에 있다.  안채는 19세기 지어진 건물로 전형적인 읍성내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낙안읍성 서문 입구에서 있으면서 상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 낙안읍성 서문성벽집. 성문 앞 큰 길에 작은 건물을 지어 상점으로 사용해 왔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을 들어서면 담장 역할을 하고 있는 성벽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부엌,안방, 안마루, 웃방이 나란히 배치된 앞면 4칸 규모의  ’-자형 초가집이다. 읍성내 마을에서는 중간규모 정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안채.

OLYMPUS DIGITAL CAMERA헛간채는 돼지막, 헛간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문간방을 두고 있다. 지금의 형태는 일제강점기 이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헛간채는 골목으로 창문을 두고 있지 않으며, 원래 있던 돌담을 담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터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낙안성 김소아 가옥
이 집의 건립 연대는 19세기 중엽으로 추측된다. 남향으로 낙안마을의 보편적인 평면구성을 대표할 수 있는 구조이다.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안마루, 웃방 그리고 헛간으로 구성된 한일자 모양의 집이다.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안방 쪽은 뒤로도 툇마루를 놓았다. 부엌은 앞과 뒤쪽으로 넓히면서 큰 공간을 이루고 있다. 부뚜막은 안방쪽의 벽에 설치되어 있다. 이 고을의 일반적 특징과 같이 처마가 특히 짧고 서까래를 덧달았으며, 서까래도 대나무를 섞어 쓰거나 가늘게 만들었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낙안읍성 마루방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 낙안읍성 안에 있는 마루방집이다. 낙안읍성 내 동.서를 연결하는 큰 길 옆에 있는 초가로 지은 가옥이다. 마당이 비교적 넓은 집으로 안쪽에 ‘-’자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부엌.안방.마루.작은방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으며,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시던 자리가 남아 있다. 초가집이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으로 관아에 근무했던 아전 또는 향리가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마루방집. 19세기초에 지어진 것으로 비교적 넉넉한 규모의 초가집이다.

순천 낙안읍성 마루방집 05-20100705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셨던 곳과 관솔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옥 뒷마당에 있는 오래된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과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이 가옥은 낙안읍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에 위치하고 있다.

낙안성 김대자 가옥
19세기 초에 건축된 집으로 추정되며 평면은 중앙에 대청을 둔 한일자 모양의 4칸 전퇴집(앞에 마루가 있는집)이다. 특이한 점은 작은방 앞 처마 밑에 토담을 둘러쳐서 한칸반의 부엌을 만든 것으로 반칸은 후대에 넓혔다. 이것은 중부지방의 오래된 민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부엌 중간쯤에 조왕전을 모시던 자리와 관솔 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있다. 선반은 돌이나 기왓장 깨어진 것을 이용하였다. 장독대의 모양새나 집 앞의 잇돌과 디딤돌의 구조, 그리고 각종 민구와 가정신앙에 관련된 부뚜막 위의 조왕 등 모두 선조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보성 벌교읍 현부자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개량한옥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한옥인 「현부자네」이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 첫장면에 등장하는 회정리 현부자집으로 잘 알려진 집이다. 외관상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처럼 보이지민,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일종의 개량한옥이다. 주로 농촌 지역 신흥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저택의 형태로 전국적으로 많이 지어졌던 주택형태이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소설 <태백산맥> 첫장면에 정하섭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저택이다. 저자는 벌교읍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은 중도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집을 지역 토호를 대표하는 현부자 집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 집의 구조와 위치 등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안채와 문간채, 마당의 별채와 뒷편 제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한옥의 건물 배치와는 약간 다르며 지역의 지주 계층이 살았던 초가가옥의 건물배치와 비슷하다. 건물은 전통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조합한 일종의 개량 한옥이다. 문간채에는 솟을대문 느낌을 주는 누마루를 설치해 놓았으며, 광이나 외양간 대신 달리 문간방을 두고 있다. 내부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심어진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정면에는 안채가, 왼쪽에는 별채가 있다. 안채 대청마루는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천장은 일본식으로 하고 있으며, 방과 마루를 구분하는 문과 벽면이 일본식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 외곽에 위치한 현부자네.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큰 저택으로 일제강점기 신흥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 앞에 조성된 큰 연못.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는 전통한옥의 연못과는 달리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 형태를 하고 있는 문간채. 대문 위에 정자 모양을 하고 있는 누마루를 두고 대저택의 솟을대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본 문간채. 외양간이나 광을 두고 있는 전통한옥과는 달리 양쪽에 2칸씩 문간방을 두고 있다. 마당 가운데에 작은 동산을 꾸며 놓고 있는데 전통한옥의 마당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일본 정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축대를 쌓아 마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운데 특이한 형태의 중문을 두고 있다. 외관상 앞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통 한옥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옆면 3칸이며, 넓은 툇마루를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퇴청마루. 지붕은 일본식 가옥 형태를 하고 있으며, 가운데 칸막이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방과 마루. 마루 앞 문짝은 한옥 문살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식 미닫이문 형태를 하고 있다. 마루 내부에도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별채. 온돌방 1칸과 넓은 광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뒷편에 있는 제각.

OLYMPUS DIGITAL CAMERA제각은 앞면 3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사당이라기 보다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비슷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부자네 집
중도 들녁이 질펀하게 내려다 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이 집의 대문과 안채를 보면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으되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로,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꽤 흥미로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되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태백산맥 1권 14쪽)』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지게 된다.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 한쪽편에 있는 「소화의 집」. 앞면 3칸의 작은 살림집으로 지금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데, 원래는 초가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화의 집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무당 소화네 집의 모습이다. 당시의 무당집은 실제로 제각으로 들어서는 울 안의 앞터에 있었다. 집 둘레로는 낮춤한 토담이 둘러져 있었고, 뒤로는 풍성한 대나무 숲이 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뒤란으로 도는 길목의 장독대 옆에는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는, 소설에서 그려진 소화의 모습처럼 아담한 그런 집이었다. 1988년 무렵 태풍에 집이 쓰러졌고, 토담의 일부와 장독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밭으로 변했다. 그 후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을 2008년 보성군에서 복원하였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도 아픈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현부자네」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은 중도들판.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보성 벌교읍 김범우의 집, 소설 『태백산맥』에 소개된 대지주 저택

전남 보성군 벌교읍 봉림리에 있는 큰 규모의 낡은 고택이다. 저택은 낡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중문이 있는 사랑채가 있으며,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두건물 모두 ‘-’자형으로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담벼락이 허물어지는 등 아직 정비되지 않은 옛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붉은 벽돌로 수리해서 사용한 부분도 남아 있다.

이 집은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저택으로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서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곳이다. 조정래 작가 친구가 살았던 집으로 작가에게 좋은 기억이 남아 있어 소설에서는 긍정적으로 표현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저택인 현부자집이 당시 신흥부호가 살았던 일본식 주택양식이 반영된 대저택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이 저택은 전통 한옥양식을 하고 있다. 저택이 있는 봉림리 마을은 벌교읍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보물 304호)를 이용하여 벌교읍으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 김범우 일가의 대저택으로 소개된 고택이 있는 마을. 벌교읍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 대문. 담장이 앞에 있기는 하지만, 안쪽에 문간방과 외양간이 있는 문간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을 들어서면 안채 출입하는 중문이 있는 사랑채까지 골목처럼 만들어 놓았다. 왼쪽은 사랑채가 있는 마당이며, 오른쪽은 안채에서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담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문간채. 왼쪽에 문간방과 사랑채 마당이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앞 마당.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4-20180324안쪽에서 본 사랑채. 왼쪽 2칸은 사랑채로, 오른쪽은 가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2-20180324안채는 ‘-’자형 건물로 개방된 대청마루를 두지 않고 앞쪽에 약간 넓은 툇마루를 두고 있다. 가운데 제사 등을 지내는 대청마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1-20180324안채 앞 마당. 옆쪽에 곳간채를 두고 있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3-20180324장둑대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보이는 안채. 마당에는 다양한 정원수를 심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을 두르고 있는 담장.

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겼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태백산맥 1권 141쪽)”. 사랑채, 겹안채, 창고 자리, 장독대, 돌담 등 그 모든 형태와 규모들이 대주주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안채 오른쪽 앞부분 귀퉁이에 있는 돼지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대지주라 하더라도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돼지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의 알뜰함과 환경오염을 막고자 했던 살아 있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 집에서도 오른쪽으로 고읍들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자리를 무심코 잡은게 아님을 보여준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춘천 김유정 생가, 지주계층이 살았던 초가집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있는 김유정 생가이다. 대지주였던 김유정 일가가 살았던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건물은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춘천지역 지주계층이 살았던 한옥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유정은 이곳 실레마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가 23세 이후 이 마을에 귀향하여 농촌계몽운동을 했다. ‘봄봄’을 비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이마을에서 머물때 쓰여졌으며,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또한 이 마을인 경우가 많다. 마을은 춘천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경춘선 기차역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를 기념하는 역사만 남아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12-20180127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

춘천 김유정 생가 09-20180127건물은 초가 지붕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춘천 김유정 생가 03-20180127건물 앞쪽에는 넓은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사랑채가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2-20180127건물 한쪽편에 안마당을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4-20180127중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안마당. 앞쪽에 사랑채 툇마루가 보이며 뒷편에 안채가 있으며, 두 건물이 연결되는 부분에 부엌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7-20180127부엌에서 보이는 안마당을 출입하는 중문. 바깥에서 안마당을 볼 수 없도록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5-20180127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08-20180127바깥쪽 방앗간 등이 있는 별채 건물.

춘천 김유정 생가 10-20180127마당 한쪽편에 소설 ‘봄봄’의 중요 장면을 표현한 조각상이 있다.

춘천 김유정 생가 13-20180127김유정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실레마을.

춘천 김유정 생가 11-20180127소설에 등장하는 실레마을 주요 명소.

작품의 무대가 기념관이 되는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 뜰에 서면, 금병산 자락에 폭 안긴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멀리 금병산자락 아래 잣나무 숲 뒤쪽은 「동백꽃」의 배경이다. 맞은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이한(‘안해’) 터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잣나무숲으로 들어서면 실존인물이었던 「봄봄」의 봉필이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있다. 점순이와 성례를 안 시켜주고 일만 부려먹는데 불만을느낀 ‘나’가 장인영감과 드잡이를 하며 싸우는 모습이 막 눈앞에 그려지는 곳이다. 김유정이 코다리찌개로 술을 마시던 주막터도 남아 있다. 멀리 한들의 할미천에는 산골 나그네(들병이)가 남편을 숨겨두었던 물레방앗간터가 있다. 이들 작품과 함께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따는 콩밭’, ‘만무방’, ‘산골’, ‘가을’ 등 12편이 이곳 살레마을을 무대로 한 작품이다. 살레마을 어디에 서 있어도 몽태, 춘호, 근식이, 덕돌이, 덕만이, 점순이 같은 인물들을 만날 것 같다. 살레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금병산(해발 652 m)에는 김유정의 소설 제목을 딴 등산로가 산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소설 속으로 이끈다. 이곳 살레마을은 작가의 생가가 있고,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가 되는 살아 있는 문학기념관이다. 전국의 많은 문학기념관 중 유일하게 촌(村)자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내문, 춘천시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춘천시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