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고택

정읍 전봉준 유적(사적 293호),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옛 집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 유적(사적 293호)이다.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인 전봉준이 살았던 옛집이다. 구한말(1878)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로 초가지붕을 하고 있다. 부엌.큰방.웃방.끝방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이 민가와는 다른 배치를 하고 있다 고택 앞 마을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공동우물이 남아 있다. 전봉준에는 이곳에서 농사일과 동네서당 훈장을 지내며 살았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옛 집(사적 293호).

SANYO DIGITAL CAMERA옛집은 앞면 4칸의 ‘-’형을 하고 있는 작은 초가집이다. 건물 오른쪽에 부엌이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SANYO DIGITAL CAMERA고택 앞에 있는 우물. 이곳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이다.

전봉준 선생 고택 우물
예로부터 우리고장 정읍은 수질이 좋은 물이 풍부한 고장으로 알려져 왔으며 곳곳에 우물이 형성되고 각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발달하여 왔다. 이 우물은 조소마을 주민들이 사용해 온 공동우물로 근대사의 여명을 밝힌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선생이 이곳에 거주할 때 사용했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고택 옆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초가집.

SANYO DIGITAL CAMERA전봉준 선생 고택이 있는 조소마을.

전봉준선생 고택지, 사적293호,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남향으로 터를 잡은 이 초가집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전봉준(1854 ~ 1895)이 살던 곳으로, 조선 고종 15년(1878)에 지어졌다. 동쪽으로부터 부엌.큰방.윗방.끝방이 나란히 달린 집으로, 남부지방 일반 민가의 구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전봉준은 농사일과 동네 서당의 훈장 등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를 거두는 등, 농민에게 각종 수탈을 자행하자 고종 31년(1894) 분노에 찬 천 여명의 농민을 이끌고 고부관아를 공격 조병갑의 잘못을 응징하였다. 이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는 서막이 되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해남 해남윤씨 녹우당(사적 167호), 윤선도 고택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녹우당(사적 167호)이다. 윤선도가 살았던 곳으로 잘 알려진 해남윤씨 고택으로 입향조인 윤효정이 연동리 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지은 집이다. 원래 있던 집에 윤선도가 효종으로 부터 하사받은 사랑채를 옮겨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한다. 집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마당 한쪽편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으며, 담장 바깥에 윤효정과 윤선도를 모신 사당을 따로 두고 있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주택으로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 연동리마을 남아 있는 해남윤씨 고택. 입구에는 녹우당을 상징하는 은행나무 고목이 우뚝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으며, 행랑채 오른쪽에 솟을대문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윤선도가 수원에서 옮겨왔다는 사랑채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전경. 앞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을 두고 있는데 상류층 주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는 여러개의 방으로 되어 있으며, ‘녹우당’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서까래 아래에 걸려 있는 글씨.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왼쪽편에 툇마루가 없는 문을 볼 수 있는데 넓은 마루방인 것으로 보인다. 그 옆쪽에 안채를 출입하는 문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마당에 있는 잘 꾸며진 연못.

SANYO DIGITAL CAMERA연못 안쪽에 있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행랑채.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마당에서 보이는 솟을대문. 그 옆에 외양간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 옆쪽에 있는 행랑채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사랑채.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마당과 안채 마당 사이에 공간을 분리해 주는 담장.

SANYO DIGITAL CAMERA담장 안쪽으로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있다. 안채는 ‘ㄷ’자 형태로 안마당을 향해 툇마루를 두어 여자들이 일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남 녹우당 21-20150928안채와 안마당.

SANYO DIGITAL CAMERA안채 뒷마당에, 대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꾸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채 마당 한쪽편에 있는 가묘.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은 툇마루를 두고 있는 3칸 규모의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다.

해남윤씨 녹우당, 사적 167호,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고택이다. 윤선도의 4대조부의 효정(어초은, 1467~1543)이 연동에 삶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현종 9년(1668)에 해상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선도(호: 고산, 1587~1671)는 한성부 남부 명례방(현 서울 명동)에서 살다가 중년에 연동으로 내려와 해남 금쇄동과 완도 보길도를 내왕하면서 불후의 시조문학을 남겼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역에는 가묘,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년된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겨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482호), 어부사시사집, 노비문권(보물 제483호) 등으이 지정문화재와 3천여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낙안읍성 서문성벽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대리 낙안읍성 서문 바깥쪽에 있는 서문성벽집이다. 건물은 ‘-’자형 안채와 헛간채, 가게로 사용되었던 작은 별채가 있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안채는 부엌, 안방, 마루, 윗방이 나란히 배채되어 있다. 헛간, 돼지막 등으로 사용되었던 헛간채가 대문 오른쪽에 있다.  안채는 19세기 지어진 건물로 전형적인 읍성내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낙안읍성 서문 입구에서 있으면서 상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 낙안읍성 서문성벽집. 성문 앞 큰 길에 작은 건물을 지어 상점으로 사용해 왔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을 들어서면 담장 역할을 하고 있는 성벽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부엌,안방, 안마루, 웃방이 나란히 배치된 앞면 4칸 규모의  ’-자형 초가집이다. 읍성내 마을에서는 중간규모 정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안채.

OLYMPUS DIGITAL CAMERA헛간채는 돼지막, 헛간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문간방을 두고 있다. 지금의 형태는 일제강점기 이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헛간채는 골목으로 창문을 두고 있지 않으며, 원래 있던 돌담을 담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터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낙안성 김소아 가옥
이 집의 건립 연대는 19세기 중엽으로 추측된다. 남향으로 낙안마을의 보편적인 평면구성을 대표할 수 있는 구조이다.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안마루, 웃방 그리고 헛간으로 구성된 한일자 모양의 집이다.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안방 쪽은 뒤로도 툇마루를 놓았다. 부엌은 앞과 뒤쪽으로 넓히면서 큰 공간을 이루고 있다. 부뚜막은 안방쪽의 벽에 설치되어 있다. 이 고을의 일반적 특징과 같이 처마가 특히 짧고 서까래를 덧달았으며, 서까래도 대나무를 섞어 쓰거나 가늘게 만들었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낙안읍성 마루방집

전남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 낙안읍성 안에 있는 마루방집이다. 낙안읍성 내 동.서를 연결하는 큰 길 옆에 있는 초가로 지은 가옥이다. 마당이 비교적 넓은 집으로 안쪽에 ‘-’자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부엌.안방.마루.작은방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으며,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시던 자리가 남아 있다. 초가집이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으로 관아에 근무했던 아전 또는 향리가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마루방집. 19세기초에 지어진 것으로 비교적 넉넉한 규모의 초가집이다.

순천 낙안읍성 마루방집 05-20100705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셨던 곳과 관솔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옥 뒷마당에 있는 오래된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과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이 가옥은 낙안읍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에 위치하고 있다.

낙안성 김대자 가옥
19세기 초에 건축된 집으로 추정되며 평면은 중앙에 대청을 둔 한일자 모양의 4칸 전퇴집(앞에 마루가 있는집)이다. 특이한 점은 작은방 앞 처마 밑에 토담을 둘러쳐서 한칸반의 부엌을 만든 것으로 반칸은 후대에 넓혔다. 이것은 중부지방의 오래된 민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부엌 중간쯤에 조왕전을 모시던 자리와 관솔 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있다. 선반은 돌이나 기왓장 깨어진 것을 이용하였다. 장독대의 모양새나 집 앞의 잇돌과 디딤돌의 구조, 그리고 각종 민구와 가정신앙에 관련된 부뚜막 위의 조왕 등 모두 선조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보성 벌교읍 현부자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개량한옥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한옥인 「현부자네」이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 첫장면에 등장하는 회정리 현부자집으로 잘 알려진 집이다. 외관상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처럼 보이지민,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일종의 개량한옥이다. 주로 농촌 지역 신흥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저택의 형태로 전국적으로 많이 지어졌던 주택형태이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소설 <태백산맥> 첫장면에 정하섭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저택이다. 저자는 벌교읍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은 중도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집을 지역 토호를 대표하는 현부자 집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 집의 구조와 위치 등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안채와 문간채, 마당의 별채와 뒷편 제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한옥의 건물 배치와는 약간 다르며 지역의 지주 계층이 살았던 초가가옥의 건물배치와 비슷하다. 건물은 전통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조합한 일종의 개량 한옥이다. 문간채에는 솟을대문 느낌을 주는 누마루를 설치해 놓았으며, 광이나 외양간 대신 달리 문간방을 두고 있다. 내부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심어진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정면에는 안채가, 왼쪽에는 별채가 있다. 안채 대청마루는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천장은 일본식으로 하고 있으며, 방과 마루를 구분하는 문과 벽면이 일본식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 외곽에 위치한 현부자네.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큰 저택으로 일제강점기 신흥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 앞에 조성된 큰 연못.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는 전통한옥의 연못과는 달리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 형태를 하고 있는 문간채. 대문 위에 정자 모양을 하고 있는 누마루를 두고 대저택의 솟을대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본 문간채. 외양간이나 광을 두고 있는 전통한옥과는 달리 양쪽에 2칸씩 문간방을 두고 있다. 마당 가운데에 작은 동산을 꾸며 놓고 있는데 전통한옥의 마당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일본 정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축대를 쌓아 마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운데 특이한 형태의 중문을 두고 있다. 외관상 앞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통 한옥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옆면 3칸이며, 넓은 툇마루를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퇴청마루. 지붕은 일본식 가옥 형태를 하고 있으며, 가운데 칸막이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방과 마루. 마루 앞 문짝은 한옥 문살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식 미닫이문 형태를 하고 있다. 마루 내부에도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별채. 온돌방 1칸과 넓은 광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뒷편에 있는 제각.

OLYMPUS DIGITAL CAMERA제각은 앞면 3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사당이라기 보다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비슷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부자네 집
중도 들녁이 질펀하게 내려다 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이 집의 대문과 안채를 보면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으되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로,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꽤 흥미로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되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태백산맥 1권 14쪽)』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지게 된다.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 한쪽편에 있는 「소화의 집」. 앞면 3칸의 작은 살림집으로 지금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데, 원래는 초가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화의 집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무당 소화네 집의 모습이다. 당시의 무당집은 실제로 제각으로 들어서는 울 안의 앞터에 있었다. 집 둘레로는 낮춤한 토담이 둘러져 있었고, 뒤로는 풍성한 대나무 숲이 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뒤란으로 도는 길목의 장독대 옆에는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는, 소설에서 그려진 소화의 모습처럼 아담한 그런 집이었다. 1988년 무렵 태풍에 집이 쓰러졌고, 토담의 일부와 장독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밭으로 변했다. 그 후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을 2008년 보성군에서 복원하였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도 아픈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현부자네」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은 중도들판.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