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고택

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경북 경주시 강동면 안강마을에 있는 강학당(講學堂)이다. 구한말에 마을 여주이씨 집안에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이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오른쪽에 마루와 작은 방이 있는 날개채를 달아 내었다. 건물 뒷편에는 서당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작은 행랑채가 있다. 앞쪽에 있던 서당건물이었던 심수정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반 집성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던 서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날개채에 있는 작은 장판각>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으로 들어오는 길>

강학당(講學堂)
이집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연상이 고종7년(1870)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장판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1/3칸짜리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더 큰 경산서당을 소유하고 있다. 동쪽에 서 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정자인 심수정(心水亭)이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1560년 경에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17년에 현재의 모습을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정자와 바깥에 있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자는 ‘ㄱ’자형 건물로 왼쪽 2칸은 대청마루,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청마루 앞쪽에 큰 누마루를 달아 내었다. 여주 이씨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대청마루와 누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이 웅장하며,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마주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OLYMPUS DIGITAL CAMERA<입구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와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누마루>

정자 바깥에 있는 행랑채는 화재로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옛 건물이다. ‘ㄱ’자형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향단에서 보이는 모습>

심수정(心水亭)
이 정자는 회재 이언적의 동생인 이언괄(1494~1553년)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언괄은 벼슬을 마다하고 형 대신 노모를 모셨다. 여주 이씨 집안의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을 ‘ㄱ’자로 꺾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두었다. 이렇듯 집이 바라보는 방향은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이다. 마을 안팎에 있는 10여개의 정자 중 규모가 제일 크며, 안락정과 강학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 역할을 했다. 철종 때 불에 타서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이향정 고택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이향정(二香亭) 고택이다. 온양군수를 지낸 이향정 이범중이 살던 집으로 조선후기 숙종 때 지어진 집이다. 이 집은 마을 입구 근처 언덕에 위치한 저택으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곡식을 보관했던 광을 많이 두고 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고택의 위치나 건물의 배치, 규모 등으로 볼 때 조선후기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이 살았던 대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이향정>

사랑채는 앞면 6칸 규모로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왼쪽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달아내고 난간을 달아 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는 왼쪽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온돌방>

살림집은안채, 아래채, 방앗간채가 있는데 마당을 비롯하여 공간을 넓고 사용하고 있으며 곡식 등을 보관하는 광을 많이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안방과 툇마루>

안채_대청에서_내다본_풍경<안채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모습>

이향정(二香亭)
이집은 온양군수를 지낸 이향정 이범중이 숙종 21년(1695)경에 지은 것으로, 그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안채 뒤쪽으로 산길을 따라 쌓은 담장이 인상적인데, 사랑채 앞으로도 낮은 산이 자리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담장을 따라 올라가는 오솔길에는 초여름이면 찔레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안마당이 넓고 방앗간채가 따로 있으며, 곳간이 매우 많은 점으로 미루어 집주인이 부농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두곡고택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두곡고택(杜谷古宅)이다. 조선후기 영조 떄 이언적 후손이 분가하면서 세운 집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가 튼 ‘ㅁ’자 평면을 하면서 주위에 부속건물들을 배치하였다. 마을 안쪽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오래된 종가와는 달리 낮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조선후기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었던 대저택의 규모나 입지조건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두곡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채>

대문채에서_본_사랑채<사랑채 마당>

안채<안채>

OLYMPUS DIGITAL CAMERA<뒤편에서 본 모습>

두곡고택(杜谷古宅)
이 집은 영조9년(1733)에 이식중(1711~1777년)이 분가할 떄 지은 것이다. 후에 이언괄의 14세손인 두곡 이조원의 소유가 된 후 후손들이 살면서 두곡고택이라 불렀다. ‘ㅁ’자 모양을 하고 있는 살림채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대문채가 있고 북쪽으로는 곳간책들이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을에서 규모가 매우 큰 주택에 속한다. 안채 바로 뒤의 작은 별채는 딸을 기르기 위한 공간이었다. 한쪽은 곳간이고 한쪽 방은 집안의 딸이 사용하던 방으로, 출가 후에도 친정에 오면 이 방을 내주었다고 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낙선당 고택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낙선당(樂善堂) 고택이다. 입향조 손소의 셋째 아들인 손숙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조선중기 중종 때 처음 지어졌다. 사랑채가 대문채, 아래채와 함께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고, 오른쪽에 행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본채를 이루고 있다. 집주인이 천석꾼이었다고 하며 많은 곳간을 두고 있다. 마을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저택에 속하지면 기난을 낮게 하고 건물들은 소박하게 지어졌다. 안채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낙선당 고택>

대문채는 앞면 3칸  규모로 가운데 출입문, 오른쪽에 행랑방, 왼쪽에 외양간을 두고 있다. 대문채 왼쪽으로 큰 규모의 아래채가 있는데 큰 광과 작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채 끝에 있는 작은 온돌방은 작은 사랑방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채>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채 끝에 있는 작은 온돌방, 작은 사랑방인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로 왼쪽에 대청마루, 오른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낙선당(樂善堂)은 사랑채의 이름이며 병자호란 떄 순절한 낙선당 손종로의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낙선당’ 현판이 걸려 있는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온돌방>

본채는 앞면 7칸의 행랑채와 ‘ㄷ’자형 몸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사랑방, 광 등이 있고 왼쪽에 안방, 부엌 등이 있다. 행랑채은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행랑방을, 오른쪽에는 큰 광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대청마루와 안방>

OLYMPUS DIGITAL CAMERA<왼쪽 날개채>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날개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낙선당(樂善堂)
이 집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망재 손숙돈이 분가할 때 지은 것이다. 병자호란 때 순절한 낙선당 손종로(1598~1636년)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양반가의 큰 집들은 기단을 높게 쌓은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은 기단이 매우 낮은 것이 특징이다. 이 집의 주인이 천석꾼이었다고 하는데, 유난히 많은 곳간과 곡식을 찧었던 디딜방아채의 모습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본채 옆에 자리한 건물은 사당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