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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일본실] 일본의 도자기와 공예품

1. 일본이 도자기와 공예품, 2. 전통회화, 3. 도카이도 53역 풍경

일본은 백제를 통해 전해진 불교를 비롯하여 한반도 문화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부분도 상당히 많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아스카, 나라시대에는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불교미술이 크게 융성했으며, 헤이안시대에는 일본적인 특징과 귀족문화가 반영된 밀교와 정토교 미술이 발전하였으며 중세 이후 송나라에서 선종(禪宗)이 전해지면서 일본적인 미의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에도시대에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상인들에 의해 새로운 대중문화가 발달하였다.

중앙박물관 일본실에는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측면에서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공예품, 그리고 회화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인 에도시대 유물들과 현대 미술품들이다. 일본과 한국은 불교라는 부분과 동아시아 역사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있기는 하지만, 양국간 교류가 많지 않았던 고려시대 이후에는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화려한 색감과 간략한 표현이 특징인 회화를 비롯하여 여러분야에서 양국간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도자기 공예도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한국이 기술적, 예술적으로 앞섰지만, 이후한반도로부터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이고 일본 특유의 색감과 회화적인 장점이 반영되어 예술적인 측면을 비롯하여 여러면에서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국화와 나비무늬 접시, 에도시대, 채색자기(고쿠타니 양식)

고쿠타니 자기 가운데, 유럽 수출을 염두에 두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중국 명대의 채색자기를 참고하여 만든 고사이데(五彩手) 양식의 자기이다. 백색의 바탕 위에 보라 군청 노랑 적 녹의 다섯 색을 이용하여 국화와 나비, 괴석 등 중국적인 모티프를 그려 넣었다. 테두리에는 파도와 같은 곡선 문양을 둘렀는데, 이처럼 기하학적 문양과 회화적 요소의 조합은 명대 채색자기의 영향을 받은 고사이데 자기의 특징 중 하나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일본 미술의 흐름 – 근대 이전까지
섬나라 일본이 미술은 대륙에서 새로운 문화가 전래될 때마다 큰 흐름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우선 조몬(縄文), 야요이(彌生), 고훈(古墳) 시대로 이어지던 고대 일본의 문화는 6세기 중반 불교와 함께 전래된 불교미술에 의해 크게 달라졌다. 이후 아스카(飛鳥), 나라(奈良)시대에 걸쳐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은 불교 미술이 융성하고,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귀족적 취향이 반영된 화려한 밀교와 정토교 미술이 발전하였다. 무사집단인 막부(幕府)가 정권을 잡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에도 사실적 표현이 두드러진 불교 미술이 성행하였다. 13세기에 전해진 송(宋)의 문화에 의해 일본 미술의 흐름은 두번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전래된 선종(禪宗)은 일본 고유의 미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여 다도(茶道)와 노(能)의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16세기부터 시작된 서양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유로운 기질을 지닌 에도(江戶)의 도시 상인들은 우키요에(浮世絵)나 가부키(歌舞伎) 등과 같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꽃피웠다. <출처: 중앙박물관>

일본의 무구(武具), 
이리본에서는 중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92~1392년) 이후 무사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무사 소용(所用)의 물품들이 본연의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검(刀劍)과 갑주(甲胄)이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뛰어난 기능의 칼과 갑옷은 대대손손 전해지면서, 단순히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와 신체 보호용 의복의 차원을 넘어 일본 무사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훌륭한 도검과 갑주는 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품이 되었고, 더 나아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봉헌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일본검(와키자시, 黑漆脇差), 에도시대 19세기, 강철.칠.가죽 등

OLYMPUS DIGITAL CAMERA일본검(우치가타나, 黑漆打刀), 에도시대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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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검(다치, 太刀), 에도시대,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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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과 투구, 에도시대 1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등자, 19세기

일본이 채색자기(彩色磁器)
일본의 채색자기는 17세기 초반 규수(九州) 아리타(有田)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당시 유럽의 자기 수요를 독점하고 있었던 중국이 명청 왕조교체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자기 생산이 주춤해진 틈을 노려, 일본은 유럽의 자기 시장을 석권하였다. 이때 수출에 주로 사용된 항구가 이마리(伊万里)로, ‘이마리 자기’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제작 기법도 발달하여 카키에몬(柿右衛門), 나베시마(鍋島), 고쿠타니(古九谷) 등 다양한 양식의 자기가 등장하였다. 이 가운데 고쿠타니 자기는 이시카와 현(石川県) 구타니(九谷)에서 제작되던 채색자기의 초기 형태로 혼돈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사가 현(佐賀県) 아리타에서 제작된 채색자기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참외무늬 낮은 대접, 에도시대 1640~1660년경, 채색자기(고쿠타니 양식)

고쿠타니 자기 가운데 주로 내수용으로 제작되었던 아오네(青根) 양식에 속하는 낮은 대접이다. 노란색 바탕 위에 녹색과 보라색을 이용하여 큼직한 참외를 그려 넣었는데, 마치 당시 유행하던 금지(金紙)화조도 병풍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참외는 당시 의복의 장식문양으로도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색감이나 모티프 등이 모두 일본인들의 미적 취향을 잘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무늬 접시, 에도시대 18세기, 채색자기(나베시마 양식)

OLYMPUS DIGITAL CAMERA호랑이무늬 접시, 에도시대 1640~1660년, 채색자기(고쿠타니 양식)

OLYMPUS DIGITAL CAMERA호랑이와 매화무니 접시, 에도시대 17세기 말, 채색자기(가키에몬 양식)

OLYMPUS DIGITAL CAMERA이마리 동식물무늬 합, 1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이마리 동식물무늬 접시, 17세기

오하구로(お齒黑)
오하구로란 치아를 검게 칠하는 화장법으로, 고대에 일부 상류 계층에서 시작하여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에도시대에 이르면 거의 모든 기혼 여성들이 이를 검게 물들였기 때문에, 신부의 혼수품에는 반드시 오하구로를 위한 도구와 재료가 담긴 상자가 포함되었다. 오하구로의 재료인 오배자(五倍子)는 매우 떫은 맛이 날뿐더러 진한 차나 식초에 쇳덩어리를 담가 산화시킨 액체를 함께 발라줘야 하기 때문에, 화장이 끝난 후에 입안을 헹구기 위한 물과 그릇도 꼭 필요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오하구로 도구, 에도시대 19세기, 은

OLYMPUS DIGITAL CAMERA오하구로 도구상자, 에도시대 1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물통,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금가루와 옻칠

OLYMPUS DIGITAL CAMERA입 안을 헹구기 위한 그릇과 받침, 에도시대 1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수건걸이, 에도시대 1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가 달린 대야와 받침, 에도시대 1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나팔꽃 모양 대접, 이토 스이코(1894~1980년), 채색자기,

OLYMPUS DIGITAL CAMERA닭부리 모양 꽃병, 가와무라 세이잔(1890~1967년), 채색자기

OLYMPUS DIGITAL CAMERA단지, 도미모토 겐키치(1886~1963년), 백자

도미모토 겐키치(富本憲吉, 1886~1963년)
도예가인 도미모토 겐키치는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 채색자기 기술보유자이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금박 장식을 화려하게 사용한 붉은 자기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앞서 조선의 민예품에 깊은 관심을 가진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년) 등의 민예 운동에 참여하면서 소박한 조선의 백자 등도 많이 제작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사자무늬 향 쟁반, 다카하시 고난(1911~1996년), 1939년, 칠기

다양한 색의 옻을 얇게 겹쳐 칠하고 문양을 새길 때 조각도의 깊이와 경사를 조절함으로써 여러 층의 색이 드러나도록 하는 조채칠(彫彩漆) 기법을 이용하여 나이테 문양이 드러나도록 하면서 다리에 날개가 달린 서양풍의 사자를 장식한 쟁반이다. 주변은 검은 옻으로 칠한 모란꽃을 채워넣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탑모양 향로, 2대 마야가와 고잔, 채색자기, 1940년

OLYMPUS DIGITAL CAMERA구름과 학 문양의 작은 단지, 운노 기요시, 20세기 전반, 금속

OLYMPUS DIGITAL CAMERA가마, 오쿠니 하쿠사이, 1937년, 금속(철)

OLYMPUS DIGITAL CAMERA발우, 시즈미 난잔, 1943년, 금속(동,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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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염, 고교 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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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천, 다카무리 코운

가면(能面), 감정과 의지를 담아내다
노(能)에서 사용되는 가면은 노인의 형상을 한 신(翁.尉)과 도깨비(鬼), 그리고 연령대와 다양한 성격의 남자.여자가면이 있습니다. 노 가면은 워낙 다양하여, 머리카락의 흐트러짐 정도나 눈썹의 위치 등 매우 미묘한 변화만으로도 연령과 처지가 서로 다른 배역을 표현합니다. 이 중에는 연령대와 성격이 비슷하면 어느 역할에나 사용할 수 있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특정 역할에만 사용하는 가면도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한냐(般若),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질투를 참지 못해 괴물로 변해버린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가면이다.

뿔이 난 도깨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흉하게 변해버린 여인의 역할에 사용하는 가면이다. 눈알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다. 이마 위의 크고 높은 뿔은 여인의 몹쓸 질투심이 넘쳐흘러 솟아난 것이다. 노가면은 이처럼 인간으 심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독특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와카오토고(若男), 에도시대 17세기 후반, 나무에 채색

노 무대 위에서 이승의 남성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된 가면과 같이 젊은 남성의 가면은 주로 요절한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현재 노’중에는, 생전에 전쟁을 업으로 삼아 아수라(阿修羅) 지옥에 떨어진 이들의 성불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막부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로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무사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일은 중요한 의무였기때문일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아야카시(怪士),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눈이 붉게 충혈되고 눈썹과 수염이 솟구쳐 있는 것이 특징인 가면으로, 젊은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특히 ‘아야카시’는 바다에 나타나는 괴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때문에, 후나벤케이(船弁慶)와 같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극에서 자주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스지아야카시(筋怪士), 에도시대 17세기말~18세기초, 나무에 채색

아야카시 가면 가운데에서도 이마에 굵게 힘줄(筋, 스지)이 곤두서 있는 것을 ‘스지아야카시’라고 부른다. 이처럼 노 가면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같은 가면 종류에서도 여러 변형이 발생하였고, 배우들은 그날의 영감에 따라 가면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가와즈(蜼),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두꺼비를 뜻하는 말인 ‘가와즈’가면은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두덩이 움푹 패여 있ㅇ드며,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물에 빠져 죽은 남성의 혼령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여, <후지토(藤戶)>, <아코기(阿漕)>와 같이 익사한 자의 혼령이 등장하는 극에서 주로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베시미(小癋見), 에도시대 17~18세기, 나무에 채색

베시미 가면은 14세기에 간아미(觀阿弥)와 제아미(世阿弥) 부자도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깨비 가면의 한 종류이다. 크기에 따라 오베시미(大癋見)와 고베시미로 나누는데, 전시된 고베시미는 지옥의 도깨비 역할에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하시히메(橋姬), 에도시대 17~18세, 나무에 채색

분노에 가득 차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고 눈에는 핏발이 서리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험악한 모습의 가면으로, 질투에 눈이 멀어 생령(生靈)이 된 여인의 역할에 사용한다. 생령이란 질투나 원한 등의 감정이 너무 강해 살아있는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영혼을 말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우바(姥), 에도시대 17~18세기, 나무에 채색

나이 든 여인으이 모습을 표현한 가면이다. 눈가가 길게 찢어지고 처진 것으로 보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역할에 사용하였을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노 가면처럼 무표정하다?
일본에서는 무표정한 사람을 노 가면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나 나무를 깎아 만든 노 가면도 훌륭한 배우의 연기에 따라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인의 가면을 쓴 배우가 고개를 살짝 들면, 그 얼굴에 문득 미소가 번진듯 합니다. 이를 날이 갠다는 뜻으로 ‘하레루(晴れる)’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살짝 고개를 숙이면 어딘가 슬픔이 떠오릅니다. 이를 흐려진다는 의미로 ‘구모루(曇る)’라고 합니다. 여기에 손을 가지런히 들어 눈을 살짝 가리면 더욱 격한 슬픔을 나타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히메(小姬), 에도시대 17세기 후반, 나무에 채색

젊은 여인의 역할에 사용되는 가면이다. 여인의 가면은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의 가닥수와 흐트러짐, 볼의 야윔, 주름살의 수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 연령대와 성격을 다르게 표현하다. 이 가면의 명칭인 ‘고희메’는 여인의 가면 중에서도 매우 드문 것으로, 여인의 가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오모테(小面)’가면을 대신하는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강화역사박물관, 공예미술품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공예 미술품들이다. 강화지역에서 출토되거나 소장되어 왔던 것은 아니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 박물관에 기탁,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는 문화재들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여러곳에서 출토되는 금속이나 옥, 유리 등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장신구와 불상을 비롯한 불교공예품, 고려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옛 공예
공예란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용품을 주변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가지 물건들을 모두 포함하므로 역사가 매우 길며 분류기준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재료에 따라 금속공예.돌공예.목공예.칠공예.죽공예.종이공예.가죽공예.도자공예.밀초공예.유리공예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수요계층과 사용처에 따라 종교용품, 왕실용품, 사치품, 민예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공예품은 그 민족의 오낸 역사와 더불어 생활터전이 되어온 자연환경과 주거환경, 종교, 생활철학에 따른 민족의 정서가 빚은 고유한 아름다움이 드러나 있다. 우리나라의 공에품에는 각 시대의 특징이 녹아 있다.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 고운무늬가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거울 등을 통해 당시의 발달된 기술과 미감을 엿 볼 수 있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금관과 금제 귀걸이 등에서는 정교한 금은 세공기술이 돋보이며, 고려의 청자, 담백한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의 도자공예품은 세계도자사에서도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청렴한 선비문화가 그 주축이었던 조선시대에는 간결하고 쾌적한 목공가구들과 화려하면서도 운치 있는 나전칠기 등이 조선시대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공예품은 각 시대마다의 이념과 기술, 에술성이 담겨 있으며, 여기에 실용성까지 겸비하여 발전되어 왔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검부속구(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말모양띠고리(철기~원삼국시대), 청동초두(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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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철제투구와 갑옷

OLYMPUS DIGITAL CAMERA철제환두대도, 허리띠고리, 발걸이, 마구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철제투구(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수저(고려~조선시대), 금입사초문화형접시(고려시대), 금동잔탁(고려시대)

불교조각
불교조각은 불교도들이 예배대상인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돌과 나무 등을 이용하여 형상화한 것을 말한다. 부처는 본래 모니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비로자나불(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 아미타불(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한다는 부처), 약사불(중생들이 모든 질병을 치유해주는 부처) 등의 개념이 형성되어 다양한 불상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기원 후 4세기 경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상도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중국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이었으나, 점차 우리나라 특유의 조형감각이 돋보이는 불상을 제작하여 <서산 마애삼존불>,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일제의 중생을 구하려 애쓰는 자를 일컫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이전의 석가모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불상과 마찬가지로 보살상도 큰 공덕을 쌓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석가모니불을 보조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이 있다. 그중에서도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은 모든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고 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믿어져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로 신앙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보살상은 불상과 달리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몸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두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 외에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 사천왕, 팔부중 등도 조각으로 다수 제작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좌불상(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동경(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명문금고(고려시대)

금고(金鼓), 불교 의식 용품으로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의 하나이다. 절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사용한다. 얇은 북과 같은 형태로서 세 개의 고리가 있어 달아맬 수 있게 되어 있다. 표면은 동심원이 여러겹으로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연화문이 배치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주조된 이 금고의 측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고 중 명문이 있다고 알려진 금고는 50여기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고는 865년(신라 경문왕5)에 제작된 금고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금고는 널리 사용되었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옥기의 역사
구석기시대에는 옥제품을 비롯한 장신구가 보이지 않으나 신석기시대 이후에는 옥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주로 점판암제, 곱돌제, 대리석제 등 보통의 돌을 사용하고 있지만 비취제나 흰색 옥돌, 벽옥제도 소량으로 사용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굽은옥, 대롱옥, 구슬 등이 사용되었는데 이들의 재료는 천하석, 벽옥, 유리 등으로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에서 출토된다. 철기시대 옥의 형태는 정형화된 굽은옥, 6면체로 정교하게 다듬은 여러면옥, 주산알 모양의 옥과 구슬이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면 옥은 정형화되고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목걸이에 사용된 옥의 종류는 둥근옥, 여러면옥, 대롱옥, 백옥, 굽은옥 등이 있다. 삼국시대의 옥이 다양해지는 것은 중국 옥문화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옥기(玉器, Jade)
옥으로 만든 장신구로, 옛사람들은 옥을 천지의 정수이며 음양에 있어 지극히 순결한 것이라 생각하고 귀하게 여겼다. 옥의 원석을 갈고 다듬어 작은 구멍을 뚫으면 구슬이 되고, 이 구슬을 꿰어 달아 길이가 목에 두르는데 알맞으면 목걸이가 되고, 가슴까지 걸치면 가슴걸이, 손가락에 끼우면 반지, 팔목에 끼우면 팔찌가 된다. 그리고 팔에 끼우면 완천이 된다. 옥은 형태에 따라 구슬, 대롱옥, 둥근옥, 굽은옥 등으로 분류되며, 옥에 사용되는 물질에는 석제, 유리, 마노, 수정, 호박, 비취, 황옥 등이 있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옥구슬(삼국시대)

유리구슬(Glass Bead)
유리로 만든 장식용 구슬로, 삼국시대 비금속 장식구를 대표한다. 한국의 고대 유리구슬은 형태.크기.제작기법.용도.색 이외에도 화학 조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형태상으로는 둥근 구슬, 굽은 구슬 등을 기본으로 변형하여 만든 각형 구슬, 대추형 구슬, 참외형 또는 메론형 구슬, 꽃잎형 구슬, 연주형 구슬, 코일형 구슬 등이 있으며 구슬 표면에 나타난 장식적 무늬에 따라 다른 색상의 줄무늬를 돌린 연리문구슬, 점무늬로 동심원을 그린 청령옥, 유리 표면에 사람 얼굴 등 어떤 형상을 나타낸 모자이크장식 구슬, 투명유리 내부에 얇은 금박을 입힌 금박구슬이 있다. 또한 크기가 아주 작은 구슬들을 소옥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삼국시대),

곱은옥(Curved Jade)
보통 ‘C’자형으로 만곡한 몸체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서 매달게 되어 있는 치레걸이로, 형태상 ‘C’자형, 반원형, 반월형 등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곱은옥이라고 한다. 청동기시대 곱은옥의 재료는 대부분 천하석이지만, 철기시대 이후에는 수정, 삼국시대에는 유리 등의 재질로 변화한다. 곱은옥의 사용방법은 유적에서의 출토상태를 고려하여 볼 때 대롱옥과 반월형 곱은옥이 세트를 이루어 목걸이가 되며, 이때 곱은옥은 펜던트의 역할이다. 반면 곱은옥이 귀걸이로 이용된 듯 출토되는 예도 있다. 이 외에도 대롱옥과 연결된 목걸이나 머리장식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곱은 옥장식 목걸이(삼국시대),

대롱옥
원통의 대롱과 같은 형태로, 길이 방향의 중앙에 구멍을 뚫어 연결해서 사용하는 치레걸이이다. 재질은 대부분 벽옥이지만, 응회암과 같은 돌을 이용하여 만든 것과 흙으로 만든 것도 있다. 옥구슬 중에는 가장 먼저 발생한 것으로, 대롱옥은 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등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대체로 목걸이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나, 숫자가 적은 경우는 귀걸이 등 다른 치레걸이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곱은옥 등 다른 형태의 옥과 결합되어 세트를 이루기도 한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경우 무덤의 외곽이나 상부 등에서 출토되는 것을은 장송의례와 같은 매장의례에 이용된 것들로 판단된다. 아직 벽옥제 대롱옥을 제작한 흔적은 어느 유적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롱옥

OLYMPUS DIGITAL CAMERA은장도(조선시대), 노리개(조선시대)

고려청자
우리나라의 청자는 백토로 형체를 만들어 말린 후 섭씨 700~800도에서 한번 굽고, 그 위에 석회질의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고온에서 구워내는 자기의 일종이다. 그릇을 두 번 구우면서 태토의 색이 흐린 회색이 되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바탕에 비취색 유약이 입혀지게 되어 이를 비취색, 곧 비색이라고 부른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일대 사건이었다. 초기에는 중국의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았지만 차츰 고려청자만의 특색있는 형태와 무늬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상감 기법의 발달은 고려청자의 독창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상감연당초문매병(고려시대), 청자음각모란문장경병(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소병(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상감쌍어문대접(고려시대), 청자상감운학문대접(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상감운학문완(고려시대), 청자음각연당초문잔탁(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흑백상감류문소병(고려시대), 청자상감연판문호(고려시대), 분청사기귀얄문편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상감국화문접시(고려시대)

조선백자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도자기문화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분청사기는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제작되었으나 백자의 경우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만들어졌고 사용되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는 조선전기 약 150년간의 짧은 기간동안 만들어졌던 그릇으로 미술사학자인 고유섭선생은 회청색의 바탕흙에 백토를 바르고 유약을 씌워서 구워냈다고하여 “분장회청사기”라고 불렀으며 그 줄임말이 분청사기이다. 청자에서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기형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표면에 백토를 입히는 여러가지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장식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분청사기는 1467~1468년 경기도 광주에서 관요가 설치된 이후 국가에서 필요한 그릇을 백자로 제작하면서 지방 분청사기 가마들은 점차 지방 관청과 일반 백성을 위한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분청사기의 질은 떨어진 반면 백자의 생산량이 늘어났고,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이전인 16세기 중엽 분장분청사기를 끝으로 백자에 흡수되었다. 분청사기를 제작했던 가마터로 공주 학봉리를 중심으로 한 계룡산지역과 광주 충효동을 중심으로 한 무등산 지역이 가장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의 도자를 대표하는 백자는 청자제작에 사용된 흙보다 순도가 높으며 안정된 흙을 사용했다. 백자를 굽는 온도도 청자의 경우 1280도 가량이지만 백자는 1300도 정도가 일반적이다. 백자는 세종때부터 왕이 사용하는 그릇인 어기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선왕실에서 많은 양의 백자를 필요로 했다. 때문에 대궐 내의 식사와 잔치를 담당하던 사옹원에서 백자의 제작을 책임지는 관청이 되어,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분원’을 만들어 따로 관리하였다.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분원이 왕실과 중앙 관처용 백자의 제작을 담당했던 관요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관요의 설치와 운영에 따라 백자는 발전하고 쇠퇴하기도 하였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분청사기인화문대접(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문접시(조선시대), 청자화형접시(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호(조선시대), 백자주병(조선시대), 백자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자라병(조선시대), 백자편병(조선시대), 흑유어문편병(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상감철화연당문초문발(조선시대), 백자음각연판문꽈리형연적(조선시대), 백자합(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명기인형(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명기소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좌불(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운용문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운용문병(조선시대), 청화백자운용문병(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어문대야(조선시대), 청화백자수복문합(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목단문호(조선시대), 청화백자봉황문호(조선시대), 청화백자수자문소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 청화백자박쥐문호(조선시대), 청화백자칠보문호(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국화문호(조선시대), 청화백자봉황문소호(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