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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상주목 관아, 경상감영이 있었던 큰 고장

상주(尙州)는 경북 서북부에 있는 고장으로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낙강강 본류가 상주시 동쪽을 흐르고 있으며 북.서쪽을 백두대간이 막고 있다. 삼한시대 사벌국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고려 성종 (982년) 때 전국 12목 중 상주목이 설치되었다. 조선초 전국 8도체제가 확립되면서 경상도 감영이 이곳에 설치되면서 경상감사가 상주목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경상도의 어원이 상주에 유래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중요한 고장이었다.

읍치였던 상주읍성에는 고을 규모에 걸맞게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있었다. 주산인 왕산 앞에는 상주목사가 근무했던 동헌과 내아, 그리고 관리들이 근무하던 이향청 등 크고 작은 관청 건물이 있었고, 동쪽편에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객사인 상산관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읍성이 허물어지고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없어졌다. 현존하는 옛 관아 건물들인 상산관, 태평루, 침천청 등은 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졌으며 향청만이 옛 관아터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관아 객사 건물인 상산관. 관아 객사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의 중 하나이다. 가운데 궐패를 모신 정청을 두고 앞면 7칸 규모 동익헌과 앞면 5칸 규모 서익헌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궐패를 모신 정청

OLYMPUS DIGITAL CAMERA정청 내부에 재현해 놓은 망궐례 모습. 상주목사가 국왕에 예를 올리는 장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출입문 문루로 사용되었던 태평루

OLYMPUS DIGITAL CAMERA태평루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북천전적지 태평루 앞에 있는 공덕비

태평루
이 누각은 조선시대 1808년(순조 8)에 상주목사 정동교가 건립했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 성행한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당시는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읍성 관아문의 내삼문 밖에 있었고 동헌의 문루로 사용되었다. 그후 1920년 상주향교 동편에 있는 동산으로 옮겨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1992년 현재 위치에 옮겨왔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관아터에 남아 있는 부속건물인 향청. 지역 유력인사들과 함께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장소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천전적지로 옮겨 놓은 정자인 침천정. 상주읍성 남문 밖에 있던 관아에서 설치한 작은 정자이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기 보다는 지역 유력인사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읍치내 향청과 비슷한 성격의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침천정
이 정자는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 4) 상주목사 강복성이 천향정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년(숙종 19)에 목사 이항이 연지를 홍백연당으로 고치고 이향정이라고 하였다. 그후 일제시대인 1914년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방의 뜻있는 유지 여러 명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이 침천정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동헌 뒷편에 있는 왕산공원에 있는 송덕비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성도. 

상주읍성을 중심으로 읍내 반경 5리 이내의 관아 등 공공시설을 그린 지도이다. 동헌건물이 청유당(1827년), 서산서원(1713~1870년)이 그려져 있어 제작시기는 1827년에서 1870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에서 볼 수 있는 옛 상주목 관아 건물 배치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객사와 주변 부속 건물 옛사진

OLYMPUS DIGITAL CAMERA객사가 있던 자리에는 상주경찰서를 비롯하여 여러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과 왕산공원 모습을 볼 수 있는 옛 사진. 일제강점기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과 태평루가 있던 자리에는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초가지붕을 하고 있던 상가들이 있던 남문으로 연결되는 거리.

OLYMPUS DIGITAL CAMERA임란북천전적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읍치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상주 향청, 옛 상주목 관아 부속 건물

경북 상주시 인봉동 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향청이다. 향청은 지방 유력인사였던 양반들이 상주목사 업무를 자문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였던 곳이다. 상주 향청은 조선중기 선조 때 한순이 처음 세웠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간물은 앞 5칸, 옆면 칸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는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 형태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옛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지방 관아 건물 충 향청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상주 향청. 상산관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은 인근 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졌지만 향청만 옛 자리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상주군 관사 등으로 사용되면서 건물자체는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청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양쪽에 앞면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상주향청, 경북 상주시 인봉동
향청의 명칭은 향사당, 이아, 풍헌당 등으로 불려 왔으며 그 기능으로 향촌의 양반들이 지방행정이 보조역할을 하고 향촌의 미풍순화를 하며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였던 곳이다. 상산지에는 1500년대 말에 보은현감 한순이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떄 소실되었고, 광해군 2년(1610)에 손자인 한정이 다시 세웠다고 그 뒤 여러 차례 중수가 거듭되면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한 이래 상주 관아로써 사용되다가 이후 1995년까지는 상주시의 관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지방 양반들이 향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향청 자체가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상주 상산관, 옛 상주목 관아 객사 건물

경북 상주시 만산동 임란북천전적지에 있는 상산관이다.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 중심이 되는 건물로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무는 객사건물이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중건하기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관아가 있던 상주 도심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다.

건물은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정청을 두고 양쪽에 숙소인 동익헌.서익헌이 있다. 정청은 앞면 3칸, 동익헌은 앞면 7칸, 서익헌은 앞면 4칸 규모이다. 정정 건물을 높게 하고 양쪽에 익랑형태로 건물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내부에는 원본은 아니지만 조선후기 현종 때(1666현) 상산관을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을 비롯하여 고려 떄 안축이 지은 객관기, 이규보와 조준이 지은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어 오랜 세월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객사 건물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상산관.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현존하는 일반 객사 건물 중 남부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가운데 정청. “상산관”이라 적힌 큰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청 내부. 상주목사가 궐패를 향해 예를 올리는 망궐례를 재현해 놓고 있다.

망궐례
이곳 상산관은 조선시대 상주목의 개사로 궁중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를 행하듯 이곳 전청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두고 대궐을 향하여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 절하던 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배례의식은 목사가 부임할 때와 나라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에 정기적으로 행하여져 왔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동익헌. 앞며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동익헌은 상주를 방문한 문신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서익헌에 비해 크게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익헌 대청마루. 앞면 4칸 옆면 3칸의 상당히 넓은 공간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연회 등을 여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천장.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동익헌. 대청마루가 상당히 넓고 웅장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익헌은 동익헌에 비해 작은 앞면 4칸 규모이다. 뒷편에 3칸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왼쪽끝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익헌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상주객사 상량문, 1666년 전임 군수인 조정융이 옛터에 복원하는 상산관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상량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객관기, 1343년(고려 충혜왕 4)에 상주목사로 부임한 근재 안축 선생이 상산관을 보고 지은 기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려 고종때 문장가 이규보(1168 ~ 1241년)가 지은 “상산관의 높은 추녀 아래서”라는 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초 문신 조준(1346 ~ 1405년)이 지은 “상주객사의 판상운 따라..”라는 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상산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상주 상산관, 경북 상주시 경상대로
객사는 지방 관아의 중심 건물로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시설이다. 이 건물은 1328년(충숙왕 15)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는 「상산지」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앞서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객사이다. 1526년(중종 21) 소실된 것을 목사 윤탕이 중건하였으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 재건하고, 1666(현종 7)에 다시 중건하였다. 근대에는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여자중학교로 옮겨와서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1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충청도 충주목 관아, 청녕헌과 제금당

충북 충주시 성내동에 옛 충주목 관아터이다. 충주시 도심에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충주관아공원’이라 불린다. 이곳에는 옛 동헌 건물인 청녕헌과 별관이었던 제금당, 산고수청각, 충청감영문, 축성사적비 등이 남아 있다. 관아 마당에는 수백년된 고목들이 남아 있어 이곳이 옛 관아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청령헌과 제금당은 구한말인 1870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지었는데 지방 관아 건물로는 큰 편이다. 동쪽에 위치한 제금당은 별관 건물로 충주를 방문한 주요 인사들이 묵을 수 있도록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살림집인 내아와 가장 중요한 객사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충주목(忠州牧)은 조선시대 충주지방에 있었던 지방행정조직으로 정3품 목사가 고을 수령이었으며 읍치는 현 충주시 성내동 일대이다. 충주목와 관할 범위는 현 충주시와 충주시와 접하고 있는 괴산군, 음성군, 제천시의 주요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다. 고려초 전국에 12목이 설치될 때 충주목이 되었으며 조선 세조 때에는 군영인 충주진(鎭)으로 바뀌었다가 인조 때 다시 충주목으로 복구되는 등 강등과 복구를 거듭하였다. 구한말 갑오개혁 때 관찰부로 승격되면서 충북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이후 철도와 도로교통에서 소외되면서 지방 소도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충청도 청주목 관아터. 충주는 조선시대 남한강 수운과 육상교통로의 중심지로 국방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충주목 읍치는 관아가 있던 성내동 일대에 읍성내에 있었는데 충주읍성은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공원 입구로 사용되는 관아출입문. ‘충청감영문’이란 현판이 걸려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목사가 근무했던 공간인 동헌.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으며, 양쪽에 방을 배치하였다. 왼쪽 1칸은 약간 높게 만든 누마루 형태의 ㅇ공간이다. 19세기에 새로 지은 관아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령헌’이라 적힌 현판. 지붕은 겹처마를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목사가 송사를  비롯한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인 넓은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온돌방. 한쪽 끝에 누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청녕헌
1870년 8월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1895년(고종 32)에 충주부의 관찰사가 사용하였고, 이듬해 충청북도 관찰사의 집무실이 되었다. 1908년(순조 2) 5월 25일 도청이 청주로 이전되면서 충주 군수의 정청으로 이용었다. 한말 의병전쟁 때에는 호좌의병장 의암 유인석의 군대가 충주성을 점령하여 한때 위세를 떨쳤던 곳이다. (안내문, 충주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동쪽에 위치한 건물인 제금당.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건물로 충주를 찾았던 왕실 관련 인물들이 머물던 공간이라고 한다.  객사와는 별도로 손님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놓고 이다. 남한강 수운과 죽령, 조령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한 충주의 특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제금당
동헌의 동쪽에 위치한 제금당은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 왔을 때 머물던 별관으로 단청이 화려한 건물이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3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출입문인 내삼문은 1871년(고종8)에 솟을대문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예성별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어 제금당의 다른 이름으로 되었다. 뒤쪽에는 수직청으로 사용되던 산고수청각이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제금당에 딸린 공간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인 산고수청각. 실무자들이 사용하는 작은 규모의 건물이다.

산고수청각
제금당의 수직청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4칸, 측면 1.5칸인 맞배기와집이다. 구조는 방 2칸에 부엌 1칸이 딸렸으며 정남향을 하고 있다. 동헌인 청녕헌이 충주의 진산인 대림산을 향하여 남서향을 하고 있는데, 별관인 제금당과 산고수청각은 정남향을 하고 있다. 이는 청녕헌은 지방관이 사용하는 아사이기 때문이나 제금당과 산고수청각은 왕부의 건물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안내문, 충주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제금당 출입문. 솟을삼문 형식을 하고 있어 왕실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성별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금당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전국의 주요 관아터에서 볼 수 있는 구한말 천주교 박해 때 희생들을 기리기 위한 순교비를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순교자 현양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건립된 순교자들의 현양비, 천주교 박해가 있을때마다 충주 부근의 천주교우들이 충주 동헌에 잡혀와 심문을 받았으므로, 이곳에 서린 순교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충주에서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장소는 봉방당 무학당 주변(현 충주우체국 신축부지)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이기연, 이부춘, 이석중 부자, 권아기련 등 많은 사람이 순교한 사실이 확인된다. (안내문, 충주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관아공원 앞 골목길.

충주관아골
조선시대 충주읍성 내에 있던 충주목 관아터에 조성한 공원으로, 청녕헌과 제금당 등 옛 관아건물들이 남아 있다. 이 관아건물들은 1870년(고종 7) 8월 화재로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가 재건한 것이다. 그후 내부를 개조하여 중원군 청사로 사용하다가 1963년 군청이 이전하면서 충주시에서 복원한 후 그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관아공원에는 청녕헌과 제금당 외에 충청감영문, 산고수청각, 축성사적비, 순교자헌양비 등이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소나무 등의 수목과 어우러져 있어 고색창연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전라도 나주목 관아(사적), 객사인 금성관과 내아

전남 나주시 금계동 일대에 남아 있는 옛 나주목 관아터(사적)이다. 나주시 구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관아터에는 객사인 금성관, 내아인 금학헌,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 등이 남아 있다. 객사인 금성관은 조선초 처음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에 중수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군청사로 사용하면서 개조되어 정청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동익헌과 서익헌, 망화루 등이 복원되었다. 내아인 금학헌은 구한말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나주군수 관사로 사용되면서 일부 변형이 있었으나 최근에 원형을 복원하였다. 관아 건물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부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지방관아 중 비교적 큰 규모였던 나주목 관아의 옛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서깊은 유적지이다.

나주는 전남지방을 흐르는 영산강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던 큰 고을로 고려시대부터 큰 규모의 지방행정 조직인 나주목(牧)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전주와 함께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읍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나주목지도 등 여러 문헌에 관아 건물들의 위치와 형태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현존하는 관아건물 등과 비교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목 객사 출입문인 망화루. 객사인 금성관과 함께 조선초에 처음 세워졌다. 다른 지방 객사문과는 달리 문루 형식을 하고 있다. 내부에 중삼문과 내삼문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목 객사 금성관 중삼문.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통 객사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삼문형식을 하고 있으며 문루에서 거친 박석으로 삼도형식이 통로가 조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목 객사인 금성관. 가운데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정청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과 서익헌을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 군청건물로 사용하면서 정청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동익헌과 서익헌을 다시 지어 원형을 복원하였다. 동.서익헌 건물의 규모가 다른 것이 특이하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목 객사 정청. ‘금성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지방관아 객사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이다.

SANYO DIGITAL CAMERA정청 내부. 넓은 마루가 깔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정은 우물천장과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 섞여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앞면 6칸의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는 동익헌. 가운데 2칸은 온돌방이며 오른쪽에 넓은 마루가 있다. 최근에 복원한 건물로 ‘벽오헌’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익헌은 앞면 5칸으로 동익헌에 비해 약간 작은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서익현 앞쪽 툇마루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나주목 객사.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객사 앞 마당. 가운데 내삼문 터가 있다. 궁궐 정전 영역처럼 마당에 박석이 깔여 있으며 가운데 통로가 있다.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정청이다.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보는 곳이며 중앙의 사신이 묵던 곳이다. 특히 정청(나주목은 금성관)에는 전패와 궐패를 모셔두고 망궐례를 행하던 공간이었다. 즉 사신을 접대하고, 왕정의 위덕을 펴서, 관부의 위엄을 세우는 곳이었다. 나주목 객사 금성관은 이유인 목사(1487.4.12 ~ 1489 재임)가 망화루와 함께 건립하였다. 이후 임란때 피해를 입어 김개목사가 1617년 4월 21일 중수하고 1774년 이명중 목사가 개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나주군청사로 사용되다 1963년 보수를 거쳐 1876년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이후 나주목 금성관 복원정비 사업을 통해 금성관 앞을 가리고 있던 나주군청사를 헐고 금성관의 동익헌(벽오헌).서익헌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객사 마당 한쪽편에 모아 놓은 공덕비들.

SANYO DIGITAL CAMERA객사 서쪽편에는 나주목사가 근무했던 동헌과 살림집인 내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와 내아인 금학헌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목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

SANYO DIGITAL CAMERA정수루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내아였던 금학헌이 남아 있다. 구한말에 지어진 것으로 일제강점기 나주군수 관사로 사용하다가 최근에 원형을 복원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목사가 거처했던 살림집인 내아. ‘ㄷ’자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구한말 상류층 저택의 형태가 잘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내아에 딸린 행랑채에 해당하는 부속건물

나주목사 내아. 금학헌
이곳은 조선시대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살림집을 상류주택의 안채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성안에 있던 관아건물 중에서 객사 금성관과 동헌의 출입문 정수수와 함께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소중한 유산이다. 내아가 처음 세워진 때는 알 수 없으나 안채 상량문에 1825년(순조 25) 7월 1일 주춧돌을 놓고 7월 20일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문간채는 1892년(고종 29)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수 관사로 사용하면서 원형이 변형되었으나 최근에 모두 충실하게 복원하였다. 목사내아는 주변에 객사, 정수루가 함께 있어 조선시대 관아건축 양식의 원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내아 부근에 남아 있는 의열각

나주목 관아.나주읍성
이곳은 천여년 동안 나주의 중심공간으로 금성관을 중심으로 하는 객사공간과 나주목사가 직접 정무를 보았던 나주목 동헌(정수루, 목사내아)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을 정점으로 동문(동점문), 서문(서성문), 남문(남고문), 북문(북망문)의 사대성문과 성벽을 쌓아 도시의 위용을 갖추었으며, 현재 규모는 김계희목사(1457.811 ~ 1459.11.21 재임)가 완성하였다. 나주읍성은 둘레가 3,679 m 면적은 974,390 ㎡ 이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읍성을 중심으로 동부면(16개리) 서부면(24개리)이 편재되어 1,361호 4,662명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이 378명이 많았다. 또한 남문밖에는 전라우영(현 나주초등학교)이, 서문밖에는 나주향교가 자리하고 동문밖에는 석장(석당간, 보물 49호)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읍성을 중심으로 석당간, 나주향교, 목사내아, 정수루, 주사청 등의 건물이 있다. 좌측의 나주목고지도는 영.정조 때 비변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지도로 나주읍성과 관아의 각 건물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주는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