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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퇴계 이황을 모신 서원건축을 대표하는 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170호)이다. 퇴계 이황을 모시기 위해 조선중기 선조 7년(1574)에 세워진 서원으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는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때 월천 조목이 배향되었다. 퇴계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류성룡, 김성일이 있는데 이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처음에는 이들과 함께 인근 호계서원에 모셔졌으나 두사람의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 지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어 류성룡은 하회마을 인근의 병산 서원에, 김성일은 임천서원에 따로 모셨다.

도산서원은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존속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한곳이다. 1970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원 도서관인 광명실에는 약 5000여권의 장서가 있었으며, 장판각에는 2790여판의 목판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근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 보관.전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퇴계 이황을 모신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장소이면서도 서원 건축을 대표하는 곳으로도 의미가 큰 곳이다.

주요 건물로는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보물 211호),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강당인 전교당(보물 210호). 기숙사인 동.서재. 서적을 보관하는 광명실과 장판각, 이황이 직접 세웠으며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부속 건물 등이 있다.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서원 본래의 기능에서도 대표적인 서원이면서도, 서원 건축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고 있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계단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서원내 어디에서든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학문을 수양하는 서원으로서는 입지가 상당히 좋은 곳에 있다.  민가와는 상당이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으면서도 낙동간 너머 넓은 벌판이 있어서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세상을 보면서 치세를 고민할 수 있는 장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들어가는 숲길.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SANYO DIGITAL CAMERA낙동강 너머로 꽤 넓은 벌판이 있고, 민가들이 많은 마을도 볼 수 있다. 마을과는 낙동강으로 막혀 있어서 멀리 떨어진 듯 하면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는 조선후기 정조 때 이곳 시행한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시사단을 볼 수 있다.

시사단
강 건너편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 16년(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체재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 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 마당. 서원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고목들을 여럿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우물인 열정.

열정(冽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 ‘정렬한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고목. 퇴계 이황이 산책을 했던 길이 고목 뒷편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목 뒷편 퇴계 이황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인 천연대.

천연대
퇴계 선생께서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고 심성수양을 위해 산책하시던 곳이다. 『시경』 중의 ‘하늘에는 새가 날고 물에는 물고기가 뛰어 논다’에서 인용하여 천연대라 이름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서원 출입문. 누각이나 솟을삼문이 있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서원의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강학공간까지는 계단식으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이 있고 서쪽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관리소인 하고직사, 강당 역할을 했던 역락서재가 있다. 후에 도산서원으로 바뀔때 옛 건물들은 그대로 두고 뒷편에 강학공간과 사당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도산서원을 대표하는 장면인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진 전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자리한 도산서당.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직접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의 소박한 건물이다. 왼쪽에 퇴계가 주로 머물렀던 작은 온돌방이 있으며, 오른편에 대청마루가 있다.

도산서당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대청마루.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편에 있는 연못인 ‘정우당’. 퇴계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우당
퇴계 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마당에 있는 작은 우물인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로 ‘역경’의 몽괘에서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동쪽편에 있는 작은 화단. ‘절우사’라고 불리우며 이 곳에 매,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심어 퇴계선생이 직접 가꾸셨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절우사에서 본 도산서당.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이다. 도산서원은 강당인 전교당 아래에 동.서재가 있지만,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원내에는 농운정사외에도 역락서재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으며, 다른 서원에 비해서 고직사 건물또한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전국각처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온 선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농운정사 옆쪽에 있는  역락서재. 퇴계가 도산서당에 머물때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을 찾은 손님들이 묵는 장소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물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 건물배치와 정원이 아름답다.

강학공간

도산서원 강학공간은 서원 뒷편 높은 곳에 있는데 상덕사를 앞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학공간에는 강당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를 비롯하여 동.서재, 도서관에 해당하는 많은 서적들을 보관했던 동.서광명실,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강학공간 건물들은 퇴계가 직접 세운 것은 아니고 그의 사후 서원으로 바뀌면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인 진도문.

SANYO DIGITAL CAMERA진도문 동쪽에 있는 누각 형태의 건물인 동광명실. 서적을 보관하던 도서관 건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주위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서광명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 앞쪽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온돌방 1칸과 앞면 3칸의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이라 적힌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선조가 내린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쪽에 문을 달고 있지 않아 바람이 시원하며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약간 가리고 있는데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동.서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편 건물을 ‘박약재’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동재 뒷편에 있는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제향공간

상덕사(보물 211호)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인 조목 선생의 위패와 같이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출입문. 도산서원이 세워질 때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옆에 있는 전사청.

고직사, 서원 관리인이 머무는 살림집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살림집인 고직사는 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와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가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 규모도 크고 방의 숫자 또한 많은편이다. 서원이 주변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지방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 ‘ㅁ’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살림집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는 제사 준비를 하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양쪽으로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많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 출입문과 문간방.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기숙사였던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 손님들이 머물렀던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에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퇴계종택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회연서원, 조선중기 유학자 정구를 모신 서원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회연서원(檜淵書院)이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조선후기 인조 때 그가 후학을 양성하던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처음 세워졌으며,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구한말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서원은 강학공간을 동쪽에, 제향공간인 사당을 서쪽에 두고 있는 동학서묘(東學西廟)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중기 성리학을 이끌었던 그의 위상을 보여주듯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공간이 강조되고 있다.

한강 정구는 조선중기 성리학을 이끌었던 유학자로 김굉필의 학풍을 계승하고 있다. 성리학뿐 아니라 병학, 역사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관직은 주로 외직을 맡으며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외증조부인 김굉필을 모시는 달성 도동서원에 함께 모셔져 있어 구한말 서원훼철령 때 회연서원이 철폐된 것으로 보인다. 서원 앞에는 그를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 회연서원. 조선중기 유학자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으로 그가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구한말 철폐되었던 것으로 1970년데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출입문 문루인 현도루.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대가천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강당. 화려하지는 않지만 앞면 5칸 규모의 큰 건물이다. 후학양성을 중시하는 회연서원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대청마루. ‘경회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옆 작은 온돌방. 앞쪽에도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마루에서 보이는 강학공간 마당.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어 개방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앞면 3칸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뒷편에 있는 옛 사당. 작은 규모의 사당으로 원래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였음을 알 수 있다. 교육기능을 강조했던 회연서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서쪽으로 옮긴 사당. 서원의 교육기능이 없어지면서 협소했던 사당을 확장하여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새로 지은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이 사당 앞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바깥에 있는 사당인 향연사.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이 모셔져 있다. 일반적인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는 ‘한강 정구 신도비’.

OLYMPUS DIGITAL CAMERA대구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 조선중기 유학자 김굉필을 모시는 서원으로 그의 학품을 계승한 유학자로 이곳에 같이 모셔져 있다.

회연서원,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 정구(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1627년(인조 5)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1583년(선조 16) 정구가 회연초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1690년(숙종 16) 현판.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로부터 서원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0년 대에 복원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의 주향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 김굉필이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 공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의 시호가 내리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 사당, 강당, 동.서재, 신 사당, 전사청, 견도루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 뜰의 백매원에는 신도비가 서 있다.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과 향현사,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 석담 이윤우를 종향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현사에는 신연, 송사이, 용재 이홍기, 육일헌 이홍량, 모재 이홍우, 동호 이서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고성 간성향교, 옛 간성군 중등교육기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간성향교이다. 간성읍에서 약간 떨어져 있으며, 건봉사와 진부령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세종 때 처음 세워졌으며,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이 있었으며, 한국전쟁 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길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고을 규모에 비해서 기숙사인 동.서재와 강당인 명륜당이 큰 편이다.

간성군(杆城郡)은 강원도 고성군에 있던 옛 고을로 간성읍, 거진읍, 현내면, 죽왕면, 토성면 등을 포함한다. 종3품인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었으며, 동해안 여러 고을 중에서는 강릉과 삼척을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중요한 고갯길인 진부령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길에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 4대 사찰의 하나로 왕실과 관련되어 있었던 건봉사가 관내에 있다. 읍치는 현 고성군 소재지에 있었으며, 간성읍사무소와 간성초등학교가 자리에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간성군 중등교육기관이었던 간성향교. 강학공간을 앞쪽에, 제향공간을 뒷편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간성향교 외삼문.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명륜당. 앞면 4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온돌방은 없으며, 넓은 마루로 이루어진 2층 누각 형태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명륜당.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툇마루가 있는 3칸짜리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간성향교.

OLYMPUS DIGITAL CAMERA간성향교 앞을 지나는 46번 국도. 진부령을 지나서 인제 지역을 연결해 주는 주요한 교통로이다.

간성향교
이 향교는 당초 조선 세종 2년(1420)에 성북 용연동(현 간성읍 상리 쇠롱골)에 창건되었으나 그후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으로 인해 여러차례장소가 이전되었다. 현 위치는 인조 18년(1640)에 옮겨져 한국전쟁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자 1956년에 대성전, 동.서재, 대성문 등을, 1960년에 명륜당, 1966년에 동.서무를 중건하였고, 1982년에 외삼문을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향교내에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선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이 위패만은 창건 당시의 것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매년 유림회 주관으로 음력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제를 지내고 있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참고문헌>

  1. 고성군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신문화연구원

익산 여산향교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여산향교이다. 옛 여산부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으로 규모는 약간 큰 편이다. 강당이 앞쪽, 대성전이 뒷쪽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대성전, 동.서재, 명륜당, 전사청 등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대성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전은 앞면3칸 규모를 하고 있으며,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5칸 규모이다. 유생들의 머물던 기숙사는 남아 있지 않으며, 동.서재로 불리는 대성전 앞 건물은 그 형태로 볼 때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동.서무에 해당하는 건물로 보인다.

여산(礪山)은 익산시 북쪽을 관할하던 옛 지명으로 관아는 익산시 여산면 소재지에 있었다. 조선초 여산현이었던 작은 규모의 고을이지만 태종비 민씨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숙종 때 단종비 송씨의 본관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충청도와 접경을 이루는 교통의 요지이며, 조선초에는 충청도에 이관되기도 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익산시 여산면 소재지에 있는 여산향교. 옛 여산도호부 관아에서 600 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아래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윗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 건물의 규모는 비교적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산향교 명륜당. 앞면 5칸 규모의 비교적 큰 규모의 강당건물이다. 교육기능보다는 제사를 준비하고 유림들의 모임을 갖는 장소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앞 마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제사기능만 남은 조선후기 이후 향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이며,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을 출입하는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여산향교 대성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꽤 큰 규모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으로 판문을 달았으며, 앞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툇간이 있다.

익산 여산향교 대성전
이 대성전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향교에 공자를 모신 사당을 두고 유학을 장려했다. 나라에서 각 지방에 세운 학교 가운데 하나인 여산향교는 조선 태종2년(1402)에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이후 다시 세웠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가운데 모시고, 동.서쪽으로 맹자 등 네 성인, 공자 제자 열 사람, 주자 등 중국 송나라때 유학자 여섯 사람을 함께 모셨다. 우리나라 유학자 열여덟분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향교에서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 향불을 피워 올리고 매년 봄.가을에는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는 음력 8월27일에 제사(석전대제)를 지낸다. 관청의 후원을 받아 향교의 선비들이 주관하여 지르던 이 제사는 공자의 뜻을 기리는 큰 행사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마당 서쪽에 있는 서재. 판문과 툇간이 있는 전형적인 사당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서무(西廡)라고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장성향교, 장성도호부 공립중등교육기관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장성도호부 공립교육기관인 장성향교다. 읍소재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장성읍 소재지가 일제강점기에 기차역과 가까운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향교는 강학공간을 앞쪽에, 제향공간을 뒷쪽에 둔 전학후모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읍치 반경 수km 안에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필암서원을 비롯하여 봉암서원 등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후기에는 교육기관 역할을 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장성읍 지역에는 장성현이 있었고 남쪽에 진원현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지역이 피폐해져 2개의 현을 합쳤으며, 장성향교와 진원향교가 합쳐졌다. 병자호란 이후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읍치를 입압산성에서 가까운 성산으로 옮겼길 때 장성향교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장성도호부 관아는 향교에서 800여m 떨어진 성산초등하교 부근에 있었다.

장성향교,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방에 설립한 국가교육기관이다. 장성향교는 태조3년(1394)에 북이면 오산리에 창립하였으나, 선조 33년(1600)에 진원향교와 통합하여 장성읍 장자동으로 옮겼다. 그 후 효종9년(1658)에 효종의 군비확장책으로 입암산성이 설치되면서 장성현이 도호부로 승격됨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 명륜당, 외삼문, 홍살문, 고직사 등이 남아 있으며, 외삼문 밖으로 약300m되는 거리에 하마미가 있고, 약 12m되는 곳에 홍살문, 외삼문, 명륜당, 동.서재, 내삼문, 동.서무, 대성전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학문을 하는 공간이 앞에 있고 제사를 모시는 공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장성향교. 장성도호부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이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휴식공간으로 사용하는 문루를 두고 있지 않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교육기관 기능이 약화된 조선후기 향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외삼문.

향교 강학공간

장성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올리는 제향기능만이 남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향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향교의 규모는 비교적 큰 편이다. 건물은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편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명륜당은 앞면 6칸, 옆면 2칸의 큰 건물이며, 사당이 있는 뒷쪽으로 공간이 열려 있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 마당 양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명륜당. 앞면 6칸의 큰 건물이다. 가운데 대청마루에 차창문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마당에서 본 명륜당.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앞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오른쪽에 위치한 고직사.

제향공간

대성전은 앞면 3칸의 전형적이 사당 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대성전 앞 마당 양쪽에는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동.서무를 두고 있다. 장성읍치 주변에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서원들이 있어 실제 교육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건물의 규모가 크고 잘 갖추어진 향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 출입문인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석재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판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사준비를 하는 공간인 기둥이 있는 툇간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무.

OLYMPUS DIGITAL CAMERA서무.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