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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제대로된 모습을 갖춘 삼국시대 석굴사원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 있는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이다. 제2석굴암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팔공산 자락 절벽에 동굴을 만들고 불상을 모신 석굴사원이다.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굴사원으로 바위에 마애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  전실을 두었던 삼국시대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모신 불상들은 700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본존물은 대좌위에 앉아 있는 자세로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미소띤 얼굴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좌.우의 보살은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을 들고 있는데 당나라 불상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바위에 마애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 전실을 두었던 이전의 석굴사원과는 달리 바위를 파서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안치했던 인도, 중국의 정통 석굴사원을 구현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사원에 모신 불상. 석굴 높이는 4.25 m이며, 높이 4.25 m의 본존불은 아마타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미소를 띤 삼국시대 불상과는 달리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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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편 협시보살. 보관을 쓰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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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편은 대제지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이 있는 절터.

군위 아마타여래삼존 석굴, 국보 109호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은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석굴로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신곳이다. 이 석굴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눌지왕 대에 아도하상이 수도전법한 곳이며, 문무왕 대에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본존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 삼존 석굴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 가람은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되었는데, 1927년 새롭게 발견되어 삼층 모전 석탑을 보수하였고, 1961년에는 초대 주지 스님이 부임하면서 법당을 지었다. 삼존 석굴은 1962년 황수영 박사의 학술 조사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고, 그 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석불교, 계단, 석난간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1985년부터 삼대 법등 주지 스님이 다시 절을 지어 지금의 도량이 되었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4. 위키백과, 2020년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50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도갑사 출입문인 해탈문(국보 50호)이다.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조선초 성종 때인 1473년에 처음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문 2칸으로 맞배지붕을 사용하고 하고 있다. 조선초기 목조건축물로 주심포식과 다포식 공포형식이 섞여 있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사찰 출입문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건축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사찰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50호 06-20191025
도갑사 해탈문(국보 50호).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입구 돌계단. 궁궐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돌계단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가운데 통로와 그 사이로 보이는 사찰 전경. 해탈문을 들어서면 오층석탑과 주불전인 대웅전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강역사와 문수.보현보살을 모시는 공간. 다른 사찰 출입문과는 달리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50호 07-20191025
건물 지붕을 받치는 목조 구조물. 주심포 양식과 다포계 양식이 섞여 있는데 전체적으로 주심포양식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탈문

도갑사 해탈문, 국보 50호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정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없는 부처님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갑사는 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 말에 크게 중흥되었다고 전한다. 이 해탈문은 1960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 성종4년(1473)에 다시 세운 것이다. 석조 기단 위에 중앙 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에 사천왕상을 안치하게 되어 있으나 현재는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둥근 기둥이 사용되었고,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과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과 다포식 양식이 섞인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영암 도갑사)

<출처>

  1. 안내문, 영암 도갑사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삼국시대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거대 불전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경내에 있는 미륵전(국보62호)이다. 미륵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삼국시대  목탑과 함께 주불전으로 지어졌던 장륙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삼국시대 지어졌던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며 이후 인조 때(1635)에 중수하였다. 건물은 외형상 3층 건물을 하고 있으며,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조선시대 불전 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옛 장륙전의 웅장한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으로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915호), 무량사 극락전(보물 356호) 등이 있다. 금산사는 삼국시대 진표(? ~ 752)가 법상종 근본도량으로 창건한 사찰로 법주사와 함께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삼국시대에 주불전으로 많이 지어졌던 미륵삼존상을 모신 장륙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대표적인 불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건물 1층과 2층은 앞면 5칸, 3층은 앞면 3칸 규모이며, 조선시대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1층에는 ’대자보전; 2층에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모퉁이 귀공포. 건물 모서리에는 활주를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11-20190819건물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다. 제일 높은 기둥은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여러개의 나무를 이어서 사용하고 있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12-20190819

미륵전에 모셔진 삼존상.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원래의 삼존불상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으며, 현재의 불상은 인조 때 새로 조성된 소조상이다. 그 중 본존불은 193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방등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미륵전.

SANYO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경내 모습.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방등계단이 중심축에 있으며, 미륵전은 경내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전, 국보 62호
미륵전은 진표율사가 미륵장륙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766년, 신라 혜공왕 2년에 처음 건립한 법당이다. 법당내에는 미륵불 등 삼존상이 조성되어 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에 전소되었으나 인조 13년, 1635년에 수문대사가 한국 유일의 삼층법당으로 재건한 것이다. 법당 외부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형식이며, 법당 내부는 층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통층이다. 건물 중앙의 제일 높은 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몇개의 기둥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둥양식은 목조탑 양식에서 변안된 양식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목재가 썪고 건물이 낡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간 문화재관리국의 주관으로 건물을 전면 보수하였으며 이후 다시 번와공사를 하였다. 법당 내부 지하에는 연대미상의 철제연와대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법당 내부에는 원래 철불이 모셔져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항간에는 연화대가 솥으로 알려져 있으며 솥을 만지는 사람은 속세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미륵전의 터는 원래 용이 살고 있던 연못이었으나 어떤 고승의 가름침에 따라 솥으로 연못을 메워 용을 쫓고 미륵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교건축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무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국13호)이다. 조선전기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세종 12년(1430)에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위에만 있는 고려시대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다. 곡선적인 건축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후기 건축물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을 모시고 있으며 아미타삼존벽화(국보 313호),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을 사용하는 고려후기 불전 건축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간결하면서 직선적인 조선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량보전 현판

SANYO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직선적이며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기둥과 공포. 기둥은 배흘림을 주어 안정된 느낌을 주면서도 직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간결한 느낌을 주는 문살.

SANYO DIGITAL CAMERA옆쪽 출입문과 기둥.

 

SANYO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뒷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3-20190712
내부 천장. 우물천장을 하고 있으며, 불단 위에 용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2-20190712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와 후불벽화(국보 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1-20190712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4-20190712
극락보전 사면벽화(보물 1315호) 중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극락보전 안쪽에는 삼존불화를 비롯하여 총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극락보전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의 하나이다. 건물자체가 국보이지만 내부에는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맺었다는 화기가 적혀 있는 아미타후불 벽화(보물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그림은 토벽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했던 고려불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명작이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보전만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세종 12년(1430)에 건립됐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로 뛰어나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전라좌수영 객사

전남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진남관(국보 304호)이다. 여수에 있었던 옛 전라좌수영 객사 건물로 현존하는 단층 목조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 15칸, 옆면 5칸으로 전체 면적은 240평 정도이다. 잘 다음은 돌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읠 세웠는데 총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와 다포계 양식을 절충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객사와는 내부에 벽면으로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넓게 개방되어 있다. 천정은 서까래등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임진왜란 직후 처음 건립되었다가 숙종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크게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된 것을 해방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수리하였다. 객사는 지방 관아 중심 건물로 국왕의 궐패를 모시고 관아를 방문한 사신.관리 등이 머무는 장소이다. 조선시대 대부분 관아에는 객사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건물이 전라좌수영 객사인 진남관과 통제영 객사인 세병관이다. 통제영이나 수영에 큰 규모의 객사가 설치된 것은 진(鎭) 등 관할에 속한 함선이나 어선들을 모아 훈련을 했으며, 비상시에는 수영에서 모여서 함대를 편성하고 해전을 지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앞면 1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전라좌수영 객사였다. 좌.우에 익랑을 두는 일반적인 객사 건물과는 달리 단일 건물로 되어 있다.

진남관의 규모
진남관의 정면길이는 54.5 m, 높이는 14 m, 넓이는 748 ㎡, 기중은 68개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이 단층목조 건물로서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이 기둥사이가 15칸이나 되는 건물은 사찰의 회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장경판전과 진남관 단 두 곳 뿐이다. 진남관은 지방관아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규모의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낮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둥을 올린 막돌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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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공포, 서까래, 지붕 등의 모형.

진남관의 건축적 특징
진남관은 돌을 다듬어 단정하게 쌓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우고 벽체 없이 팔작지붕을 얹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주심포와 다포양식을 절충한 것이다. 외부의 살미첨자는 쇠서와 함께 연꽃모양의 화문을 조각하여 하나의 장식판처럼 변형되었고, 건물의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에 높은 기둥들을 배열하여 그 위에 대들보를 가구하면서도 내부 곳곳에 내고주를 세워 중간을 받치게 하였다. 특히 기둥의 배열에서 건물 양쪽 끝 세번쨰 측면 기둥만은 열을 흐트러 놓아 내부가 복도처럼 보이지 않게 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모든 부재들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붕마루와 추녀 마루는 양성을 하였고, 네 추녀끝을 활주로 지탱하고 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궐패를 모셨던 가운데 정청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내부. 좌.우 익랑 구분 없이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 지휘부가 이곳에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수군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수항. 포구 주변에서 수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휘할 수 있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항 앞 바다에서 보이는 진남관. 여수항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건물로 객사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선박을 운행하면서 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남관의 용도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건립되었다. 객사는 성 안의 중요한 위치에, 또는 관아와 함께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비와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 또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또한 진남관은 외국의 사신과 중앙으로부터 왕의 명을 받들고 내려온 대신을 접대하는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진남관.

OLYMPUS DIGITAL CAMERA정청부분 내부. 내부는 통로로 사용되는 툇마루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 천정은 서까래 등이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에 기둥 사이에도 화반을 받쳐두는 절충적인 형태의 다포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진남관의 축조
진남관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에 선조 32년(1599)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건물이다. 진남관은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성의 중심 건축물로서 숙종 42년(1716)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숙종 44년(1718) 이제면 전라좌수사가 다시 세웠다.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야경.

진남관, 국보 304호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선조32) 통제사 이시언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16년(숙종42) 화재로 불탄 것을 1718년(숙종44)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이순신 전사 120년이 되는 해를 기려서 다시 세운 것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여수공립보통학교 등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관의 중건기는 1953년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글씨는 중건 당시에 이제면이 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면모가 곳곳에 서려 있는 핵심적인 유적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크다. 진남관 앞에 있는 2개의 돌기둥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수군들의 밤 훈련을 위해 불을 밝힐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당시에는 4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이 전한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