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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교건축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무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국13호)이다. 조선전기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세종 12년(1430)에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위에만 있는 고려시대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다. 곡선적인 건축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후기 건축물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을 모시고 있으며 아미타삼존벽화(국보 313호),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을 사용하는 고려후기 불전 건축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간결하면서 직선적인 조선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량보전 현판

SANYO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직선적이며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기둥과 공포. 기둥은 배흘림을 주어 안정된 느낌을 주면서도 직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간결한 느낌을 주는 문살.

SANYO DIGITAL CAMERA옆쪽 출입문과 기둥.

 

SANYO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뒷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3-20190712
내부 천장. 우물천장을 하고 있으며, 불단 위에 용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2-20190712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와 후불벽화(국보 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1-20190712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4-20190712
극락보전 사면벽화(보물 1315호) 중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극락보전 안쪽에는 삼존불화를 비롯하여 총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극락보전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의 하나이다. 건물자체가 국보이지만 내부에는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맺었다는 화기가 적혀 있는 아미타후불 벽화(보물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그림은 토벽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했던 고려불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명작이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보전만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세종 12년(1430)에 건립됐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로 뛰어나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전라좌수영 객사

전남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진남관(국보 304호)이다. 여수에 있었던 옛 전라좌수영 객사 건물로 현존하는 단층 목조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 15칸, 옆면 5칸으로 전체 면적은 240평 정도이다. 잘 다음은 돌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읠 세웠는데 총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와 다포계 양식을 절충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객사와는 내부에 벽면으로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넓게 개방되어 있다. 천정은 서까래등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임진왜란 직후 처음 건립되었다가 숙종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크게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된 것을 해방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수리하였다. 객사는 지방 관아 중심 건물로 국왕의 궐패를 모시고 관아를 방문한 사신.관리 등이 머무는 장소이다. 조선시대 대부분 관아에는 객사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건물이 전라좌수영 객사인 진남관과 통제영 객사인 세병관이다. 통제영이나 수영에 큰 규모의 객사가 설치된 것은 진(鎭) 등 관할에 속한 함선이나 어선들을 모아 훈련을 했으며, 비상시에는 수영에서 모여서 함대를 편성하고 해전을 지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앞면 1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전라좌수영 객사였다. 좌.우에 익랑을 두는 일반적인 객사 건물과는 달리 단일 건물로 되어 있다.

진남관의 규모
진남관의 정면길이는 54.5 m, 높이는 14 m, 넓이는 748 ㎡, 기중은 68개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이 단층목조 건물로서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이 기둥사이가 15칸이나 되는 건물은 사찰의 회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장경판전과 진남관 단 두 곳 뿐이다. 진남관은 지방관아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규모의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낮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둥을 올린 막돌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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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공포, 서까래, 지붕 등의 모형.

진남관의 건축적 특징
진남관은 돌을 다듬어 단정하게 쌓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우고 벽체 없이 팔작지붕을 얹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주심포와 다포양식을 절충한 것이다. 외부의 살미첨자는 쇠서와 함께 연꽃모양의 화문을 조각하여 하나의 장식판처럼 변형되었고, 건물의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에 높은 기둥들을 배열하여 그 위에 대들보를 가구하면서도 내부 곳곳에 내고주를 세워 중간을 받치게 하였다. 특히 기둥의 배열에서 건물 양쪽 끝 세번쨰 측면 기둥만은 열을 흐트러 놓아 내부가 복도처럼 보이지 않게 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모든 부재들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붕마루와 추녀 마루는 양성을 하였고, 네 추녀끝을 활주로 지탱하고 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궐패를 모셨던 가운데 정청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내부. 좌.우 익랑 구분 없이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 지휘부가 이곳에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수군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수항. 포구 주변에서 수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휘할 수 있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항 앞 바다에서 보이는 진남관. 여수항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건물로 객사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선박을 운행하면서 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남관의 용도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건립되었다. 객사는 성 안의 중요한 위치에, 또는 관아와 함께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비와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 또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또한 진남관은 외국의 사신과 중앙으로부터 왕의 명을 받들고 내려온 대신을 접대하는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진남관.

OLYMPUS DIGITAL CAMERA정청부분 내부. 내부는 통로로 사용되는 툇마루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 천정은 서까래 등이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에 기둥 사이에도 화반을 받쳐두는 절충적인 형태의 다포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진남관의 축조
진남관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에 선조 32년(1599)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건물이다. 진남관은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성의 중심 건축물로서 숙종 42년(1716)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숙종 44년(1718) 이제면 전라좌수사가 다시 세웠다.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야경.

진남관, 국보 304호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선조32) 통제사 이시언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16년(숙종42) 화재로 불탄 것을 1718년(숙종44)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이순신 전사 120년이 되는 해를 기려서 다시 세운 것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여수공립보통학교 등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관의 중건기는 1953년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글씨는 중건 당시에 이제면이 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면모가 곳곳에 서려 있는 핵심적인 유적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크다. 진남관 앞에 있는 2개의 돌기둥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수군들의 밤 훈련을 위해 불을 밝힐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당시에는 4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이 전한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순천 송광사 혜심고신제서(국보 43호), 고려시대 송광사에 내려진 고문서

순천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인 혜심고신제서(국보 43호)이다. 고려중기 1216년(고종 2)에 송광사 제2세 진각국사 혜심에게 대선사의 호를 내린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고문서이다. 비단 7장을 이어만든 두루마리에 글씨를 쓴 것이다. 당시 공문서의 양식, 제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혜심고진제서(국보 43호).

고려 고종이 송광사의 제2세 국사인 진각국사 혜심에게 대선사의 호를 내린다는 내용이다. 주로 국사의 학문과 덕망을 높이 찬양하는 내용으로 끝 부분에 관리의 수결이 있어 당시의 공문서나 명령서 양식을 알 수 있고, 고려시대의 선사.대선사제도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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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제2세 국사인 진각국사 혜심의 영정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로 당시 수선사의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국사전(국보 56호), 고려말 주심포계열 건축을 잘 보여주는 건물

전남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 불전인 국사전(국보 56호)이다. 불교역사에 큰 역할을 했던 고승 16명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려말 공민왕 때(1369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원래는 참선을 하던 승방이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주심포 양식의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차례 수리를 했던 건물이지만 건물안 천장과 용무늬가 있는 들보는 창건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주심포양식의 공포가 익공형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등 당대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국사전(국보 56호). 큰 업적을 남긴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신 건물로 고려말에 처음 지어졌다. 승보사찰로 불리는 송광사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경내 뒷편 수행공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이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56호 02-20181219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계인데, 고려말 주심포에서 익공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사전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모형

국사전의 공포양식
국사전의 공포양식은 고리시대 건물에서 보이는 주심포가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익공형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공포는 기둥과 창방이 만나는 부분에서 헛첨차를 돌출시켜 그 위에 십자형으로 짜인 제1살미와 행공첨차를 받치고 이 행공첨차로 외목도리장여를 받친 이른바 주삼포계에 속한다. 외목도리를 기둥 밖 먼 위치에 놓아 이를 받치기 위한 첨차도 길어졌는데 첨차끝을 초가지의 형태, 대들보와 종보의 초각한 마구리, 대들보와 종보의 보아지 형태로 조각한 받침 등에서 조선 초기의 양식적 특징이 보인다. 부재면에는 당초문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전반적으로 짜임새는 단순하나 세부수법에 장식적인 요소가 짙게 나타난다. (안내문, 송광사, 2018년)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56호 03-20181219건물 창건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천장과 용무늬가 그려진 대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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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전에 모셔진 보조국사 지눌의 영정. 국사전에 모셔진 16국사는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시대에 활약했던 제1세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16인이 고승을 말한다. 14세기 후반 처음 모셔진 것으로 추정되면 현재의 영정은 1780년에 다시 그려진 것이다.

승보종찰의 상징, 국사전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의 스승이었던 큰스님 16분의 진영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1369년(공민왕18)에 처음 지었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중수했는데 주두높이가 얕고 주두굽이 직사각 처리된 점과 살미첨차, 행공첨차 등의 쇠서 및 교두형 의장성과 보머리의 봉각형 처리와 동자주대공 등의 건축의장으로 볼 때 주심포계의 조선 초기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에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

국립광주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중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이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원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반출하려던 것을 회수하여 경복궁 내에 옮겼다가 이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쌍사자 석등은 2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통일신라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353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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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석등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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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사실적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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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사자 석상. 사실적이며 힘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가 새겨진 평이한 모습의 아래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곳에 창을 두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으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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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통일신라 9세기 후분, 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
석등은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빛을 밝히기 위해 불을 켜는 곳이다. 받침은 두 마리의 사자가 늠름하게 가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사자는 갈기가 달린 숫사자로 입과 갈기, 꼬리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불을 켜는 곳에는 창을 댄 못 구멍이 남아 있고, 지붕돌에는 연꽃모양 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의 석등, 박경식, 학연문화사,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