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금동불상

금동대세지보살좌상(보물 1047호)

서울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동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좌상(보물 1047호)이다. 화려하게 장신된 보관을 쓴 보살이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보관에 보병이 새겨져 이으며 오른손에 경전이 들려있어 대세지보살임을 알 수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작으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대좌는 연잎이 3겹으로 중첩된 연꽃대좌이다. 불상의 얼굴, 구슬장식, 연꽃무늬 등을 고려해 볼 떄 고려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대세지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보물 1047호, 호림박물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330호), 목탑터 심초석에서 출토된 불상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보살입상(보물 330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부여 군수리 절터 목탑터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관을 쓰고 연꽃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을 표현하고 있다. 둥글고 원만한 얼굴에는 풍만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옷을 입고 있는 몸통에는 양감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옷모양, 손모양, 얼굴의 미소 등에서 6세기 백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군수리사지(사적44호)는 사비도성 내에 있던 사찰이기는 하지만 문헌에는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백제 별궁이었던 궁남지(사적 135호)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마도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규모가 크지는 않은 편이다. 목탑터에서 사리장치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 불상과 함께 석조여래좌상(보물329호)와 출토되었는 사리장치 대신에 불상을 모신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330호). 목탑터 심초석 부근에서 출토된 금동불상으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상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목탑터에서 같이 출토된 석조여래좌상(보물329호).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출토된 부여 군수리사지(사적 44호). 사비성 남쪽 궁남지 부근에 있는 절터이다. 절터 중에서는 조금 이른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1탑, 1금당식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가 처음 확인된 곳이다. 특히, 이 곳에서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보여주는 칠지도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출처>

  1. 문화재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부여박물관
  5. 중앙빅물관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293호),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

국립 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293호)이다. 높이 21.1 cm의 금동으로 만들 불상으로 충남 부여군 규암리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관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는 불상이다. 양 어깨에서부터 늘어진 구슬장식이 X자로 교차하고 있으며,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으로 얼굴에 표현된 미소와 비례가 적정한 몸의 형태, 조각수법 등 불교가 전래된 초기의 관음보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금동불상은 25 cm 이하의 작은 불상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승려들이 가지고 다니며 불법을 전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초기에는 중국 북조의 영향의 받은 중앙에 부처가 있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둔 ‘일광삼존불’양식이 유행하였다. 이후에는 표정이 훨씬 밝아지고 백제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다소 천진한 미소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7세기 만들어진 불상들은 신체비례와 입체감이 강조되고 훨씬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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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293호).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으로 초기 관음보살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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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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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모습

<출처>

  1.  문화재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부여박물관

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196호)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196호)이다. 이 불상은 광배 뒷면 정지원이 죽은 아래를 위해 불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본존불은 얼굴이 갸름하면서도 눈.코.입의 윤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배의 양쪽에는 합장하고 있는 협시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각양식이나 표현 수법이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과 비슷하며 중국 북위시대에 유행한 불상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에서 만든 금동계미명삼존불(국보 제72호)과 같은 양식이지만 조각수법이 약간 떨어지고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사비기 백제에서는 정(鄭)씨 성을 사용하지 않아 중국에서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많다.

일광삼존불((Buddha Triad Statue with Mandorla)은 서역의 영향을 받아 반입체적인 형태를 보이는 불상으로 중국 북위(北魏, 386~534년)와 북제(北齊, 550∼577년)시기에 많이 만들어졌다. 삼존불상은 여래가 본존인 여래삼존상과 보살이 본존인 보살삼존상이 있는데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산동지방과 교류가 많았던 백제의 서산 용현리마아여래삼존(국보84호)와 많은 금동불상에서 볼 수 있으며, 금동으로 된 일광삼존불도 많이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 보물 196호, 백제 혹은 중국 남조, 6세기, 부여 부소산성

불상과 좌우의 보살상이 하나의 공배와 함께 주조된 이른바 일광삼존 형식의 불상으로, 대좌까지 모두 함께 주조되었습니다. 뒷면에는 ‘정지원이 죽은 아내 조사를 위해 금상을 공경되게 조성하오니, 빨리 삼도를 떠나게 하옵소서.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상의 조각수법이 매우 간략하고 광배의 불꽃무늬와 대좌의 연꽃무늬 등은 정교함이 떨어져 백제 불상 특유의 온화하고 세련된 조형감은 부족합니다. 사비기 백제에서 정씨나 조씨라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아 중국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 328호), 약병을 든 약사여래를 표현한 불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 328호)이다. 높이 29 cm의 작은 금동불상으로 손에 약병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상투모양 머리인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없어 근엄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귀를 크게 만들었다. 대좌와 광배가 남아 있지 않으며, 발밑에는 대좌에 꽂았던 촉이 남아 있다. 외형이나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8호)와 비슷하다.

통일신라는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하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통일신라만의 고유한 양식이 많이 형성되었다. 통일신라 불상이나 석탑을 보면 고려시대에 비해서 조형미나 조각수법, 예술적인 표현 등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고구려 불상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넘치고, 힘있는 모습은 다소 줄어들고 후대에 들어서는 정형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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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328호, 통일신라 8세기,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불상으로 귀를 크게 표현했으며 손에 약항아리가 온전히 남아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높이 29㎝의 자그마한 금동불로,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제해준다는 의미를 지닌 부처로 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특징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풍만한 얼굴은 미소없이 근엄한 인상이며 눈· 코·입의 선이 명확하고 치밀하여 세련된 조각미가 느껴진다.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지그재그형 옷주름과 U자형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는 두껍게 축 늘어진 옷으로 인해 다소 둔중해진 듯 하다. 오른손은 허리 아래로 내려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고 있고, 왼손에는 약항아리를 들고 있다. 대좌는 없지만 불상을 대좌에 꽂았던 뾰족한 촉이 두 발 밑에 하나씩 남아 있으며, 불상 뒷면에는 주조할 때 뚫은 구멍 자국이 남아 있다. 높다란 머리묶음과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비슷하여 8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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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본 모습. 양어깨에 옷을 걸쳐 입었는데 고승의 영정이나 지장보살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불상에 이런 복식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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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