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금동불상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국보), 1976-2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국보)이다. 이 불상은 1976년 경북 선산읍 봉한동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국보)과 함께 출토된 2점의 금동보살입상 중 하나이다. 보살상은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편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복잡하고 화려한 장신구의 표현이 특이한 보살상으로 삼국시대인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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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 국보, 경북 구미 봉한동, 신라 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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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국보), 1976-1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국보)이다. 이 불상은 1976년 경북 선산읍 봉한동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국보)과 함께 출토된 2점의 금동보살입상 중 하나이다. 보살상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무릅을 약간 구부린 채 서 있는 자세이다. 신체는 날씬한 편으로 균형이 잘 맞으며, 옷은 몸에 얇게 밀착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사실적이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삼국시대 후기 금동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지며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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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 국보 , 경북 구미 봉한동, 신라 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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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국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국보)이다. 이 불상은 1976년 경북 선산읍 봉한동에서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불상이다. 왼손과 왼발 일부가 없어지고 약간의 녹이 있으나 도금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모양의 머리칼을 붙였으며, 그 위에 상투모양의 머리를 올려놓고 있다. 양감 있는 얼굴에 예리한 선으로 눈.코.입을 표현하였다. 몸의 형태나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면서도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다. 7세기 후반 8세기 초반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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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국보, 경북 구미 봉한동, 통일신라 8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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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금동대세지보살좌상(보물)

서울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동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좌상(보물)이다. 화려하게 장신된 보관을 쓴 보살이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보관에 보병이 새겨져 이으며 오른손에 경전이 들려있어 대세지보살임을 알 수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작으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대좌는 연잎이 3겹으로 중첩된 연꽃대좌이다. 불상의 얼굴, 구슬장식, 연꽃무늬 등을 고려해 볼 떄 고려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대세지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보물, 호림박물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목탑터 심초석에서 출토된 불상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보살입상(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부여 군수리 절터 목탑터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관을 쓰고 연꽃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을 표현하고 있다. 둥글고 원만한 얼굴에는 풍만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옷을 입고 있는 몸통에는 양감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옷모양, 손모양, 얼굴의 미소 등에서 6세기 백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군수리사지(사적44호)는 사비도성 내에 있던 사찰이기는 하지만 문헌에는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백제 별궁이었던 궁남지(사적 135호)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마도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규모가 크지는 않은 편이다. 목탑터에서 사리장치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 불상과 함께 석조여래좌상(보물329호)와 출토되었는 사리장치 대신에 불상을 모신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목탑터 심초석 부근에서 출토된 금동불상으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상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목탑터에서 같이 출토된 석조여래좌상(보물329호).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출토된 부여 군수리사지(사적 44호). 사비성 남쪽 궁남지 부근에 있는 절터이다. 절터 중에서는 조금 이른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1탑, 1금당식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가 처음 확인된 곳이다. 특히, 이 곳에서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보여주는 칠지도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출처>

  1. 문화재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부여박물관
  5. 중앙빅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