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금동불상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

국립 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이다. 높이 21.1 cm의 금동으로 만들 불상으로 충남 부여군 규암리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관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는 불상이다. 양 어깨에서부터 늘어진 구슬장식이 X자로 교차하고 있으며,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으로 얼굴에 표현된 미소와 비례가 적정한 몸의 형태, 조각수법 등 불교가 전래된 초기의 관음보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금동불상은 25 cm 이하의 작은 불상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승려들이 가지고 다니며 불법을 전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초기에는 중국 북조의 영향의 받은 중앙에 부처가 있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둔 ‘일광삼존불’양식이 유행하였다. 이후에는 표정이 훨씬 밝아지고 백제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다소 천진한 미소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7세기 만들어진 불상들은 신체비례와 입체감이 강조되고 훨씬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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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으로 초기 관음보살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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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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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모습>

<출처>

  1.  문화재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부여박물관

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이다. 이 불상은 광배 뒷면 정지원이 죽은 아래를 위해 불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본존불은 얼굴이 갸름하면서도 눈.코.입의 윤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배의 양쪽에는 합장하고 있는 협시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각양식이나 표현 수법이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국보)과 비슷하며 중국 북위시대에 유행한 불상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에서 만든 금동계미명삼존불(국보)과 같은 양식이지만 조각수법이 약간 떨어지고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사비기 백제에서는 정(鄭)씨 성을 사용하지 않아 중국에서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많다.

일광삼존불((Buddha Triad Statue with Mandorla)은 서역의 영향을 받아 반입체적인 형태를 보이는 불상으로 중국 북위(北魏, 386~534년)와 북제(北齊, 550∼577년)시기에 많이 만들어졌다. 삼존불상은 여래가 본존인 여래삼존상과 보살이 본존인 보살삼존상이 있는데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산동지방과 교류가 많았던 백제의 서산 용현리마아여래삼존(국보)와 많은 금동불상에서 볼 수 있으며, 금동으로 된 일광삼존불도 많이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 보물 196호, 백제 혹은 중국 남조, 6세기, 부여 부소산성

불상과 좌우의 보살상이 하나의 공배와 함께 주조된 이른바 일광삼존 형식의 불상으로, 대좌까지 모두 함께 주조되었습니다. 뒷면에는 ‘정지원이 죽은 아내 조사를 위해 금상을 공경되게 조성하오니, 빨리 삼도를 떠나게 하옵소서.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상의 조각수법이 매우 간략하고 광배의 불꽃무늬와 대좌의 연꽃무늬 등은 정교함이 떨어져 백제 불상 특유의 온화하고 세련된 조형감은 부족합니다. 사비기 백제에서 정씨나 조씨라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아 중국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이다. 높이 29 cm의 작은 금동불상으로 손에 약병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상투모양 머리인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없어 근엄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귀를 크게 만들었다. 대좌와 광배가 남아 있지 않으며, 발밑에는 대좌에 꽂았던 촉이 남아 있다. 외형이나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와 비슷하다.

통일신라는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하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통일신라만의 고유한 양식이 많이 형성되었다. 통일신라 불상이나 석탑을 보면 고려시대에 비해서 조형미나 조각수법, 예술적인 표현 등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고구려 불상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넘치고, 힘있는 모습은 다소 줄어들고 후대에 들어서는 정형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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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통일신라 8세기>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불상으로 귀를 크게 표현했으며 손에 약항아리가 온전히 남아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높이 29㎝의 자그마한 금동불로,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제해준다는 의미를 지닌 부처로 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특징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풍만한 얼굴은 미소없이 근엄한 인상이며 눈· 코·입의 선이 명확하고 치밀하여 세련된 조각미가 느껴진다.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지그재그형 옷주름과 U자형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는 두껍게 축 늘어진 옷으로 인해 다소 둔중해진 듯 하다. 오른손은 허리 아래로 내려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고 있고, 왼손에는 약항아리를 들고 있다. 대좌는 없지만 불상을 대좌에 꽂았던 뾰족한 촉이 두 발 밑에 하나씩 남아 있으며, 불상 뒷면에는 주조할 때 뚫은 구멍 자국이 남아 있다. 높다란 머리묶음과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비슷하여 8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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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본 모습. 양어깨에 옷을 걸쳐 입었는데 고승의 영정이나 지장보살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불상에 이런 복식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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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모습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물),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물)이다. 왼다리를 내리고 두 손가락을 뺨에 대고 앉아 생각하는 모습의 반가사유상이다. 얼굴과 몸을 가늘고 길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없으며 옷주름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등 현대미술에서 볼 수 있는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보살상에 비해 대좌를 크게 만들어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선과 면이 분명하고 잘 다듬어져 조작수법이 세련되었으며, 조형미 또한 뛰어난 편이다.

반가사유상은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빰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인도에서는 3세기경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불상의 협시보살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단독 불상의 형태로 바뀐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는 남북조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5세기말 운강지역에서 미륵불과 삼존상의 협시보살이 형태로 나타나며, 6세기 북제(北齊)에서 크게 성행했다. 한반도에서는 서산 용현리마애삼존여래상(국보84호)에서 왼쪽 협시불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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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물 331호, 삼국시대 7세기.>

네모난 대좌위에 앉아 있는 이 금동불상은 신체가 사실에 비해 길게 표현된 불상으로 정교한 세부표현과 추상성이 특징이다.

얼굴, 몸통, 팔 등 신체를 극도로 가늘고 길게 표현한 반가사유상이다. 머리에는 보관 장식을 연결했던 구멍이 남아 있고, 어깨부터 다리 아래까지 걸친 장신구는 긴 신체를 더욱 강조한다. 연화대좌 아래의 네모난 대좌는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일본 반가사유상에도 많이 남아있는 대좌 모양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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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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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모습.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국보),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여래입상(국보)이다. 경기도 양평군 신화리에서 1976년에 발견된 높이 30cm의 원통형의 작은 불상이다. 원통형으로 만들어져 사방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얼굴은 길고 둥글며, 목은 길고 굵게 표현되어 있으며, 양어깨에 걸쳐진 옷을 입고 있으며, 신체의 굴곡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으나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묵직하고 단순한 원통형 몸체, 간결한 주름 등 중국 수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면서 강인한 느낌을 주는 고구려 불상의 특징을 보이기는 하지만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는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였지만, 황룡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건립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크게 융성하였다. 황룡사 장륙전에는 신라 3대 보물인 거대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의 금동불상은 불교를 고구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까닭에 신라 고유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돌을 깍아서 만든 석불과 마애불을 많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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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국보 186호, 경기 양평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1970년대에 발견된 이 불상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수나라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신라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 한강변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정면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입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금동불이다. 이 불상은 중국의 북제, 북주에서 수대로 이어지는 연속된 옷주름 형태와 원기둥과 같은 인체 표현을 보여준다. 자신감에 찬 이러한 입체감 표현은 주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삼국시대 금동불의 수준을 한층 끌어 올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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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본 모습. 입체감있게 원통형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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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모습.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