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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충주댐, 남한강을 막아 조성한 국내 최대 규모의 다목적댐

충북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리에 있는 충주댐이다. 남한강 중류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 협곡을 막아서 만든 다목적댐이다. 높이 97.5 m, 제방길이 447 m로 국내 최대규모의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댐의 건설로 유역면적이 만수위 때 97 km²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인공호수인 충주호를 만들고 있다.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남한강 수로의 교통요지였던 청풍도호부가 있던 청풍면과 단양군 소재지가 수몰되었다. 하류 방향으로 20 km 떨어진 충주시 가금면에 조정지댐이 있으며, 본댐과 조정지댐에 수력발전소를 두고 있다. 충주댐은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의 역할도 있지만, 한강유역 수위를 조절하고 용수를 공급하는데 더 큰 역할을 가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충주댐. 한강유역 수위를 조절하고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다목적댐으로 소양강댐과 함께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댐은 콘크리이트 구조물 자체의 무게로 저수지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수 때 물을 방출하는 여수로와 수문.

OLYMPUS DIGITAL CAMERA실제로 수력발전을 한 후 물을 내 보내는 수로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인 충주호. 협곡을 막아 조성한 충주댐 부근은 넓어 보이지 않지만 상류는 청풍면과 단양읍 일대가 수몰될 정도로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댐 안쪽 작은 선착장.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에서 조금 들어가면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40 여 km 정도 떨어진 장화나루까지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강폭이 상당히 좁은 협곡 지역이다. 평지와 만나는 동량면 소재지에 남한강을 건너 원주, 제천으로 갈 수 있는 나루터가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댐 아래에 있는 다리인 충원교에서 본 충주댐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하류 방향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2. 물백과사전, 한국수자원공사, 2019년


 

단양 석문(명승), 카르스트 지형의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는 명소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에 있는 단양 석문(石門, 명승)이다. 이곳은 단양팔경을 대표하는 도담삼봉(사적 44호) 북쪽 언덕 남한강변에 있는 명소이다. 원래 석회동굴이었는데 지금은 동굴 천장의 일부만 남아 있어 구름다리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을 보여주는 곳이다. 석문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과 주변 경치가 한폭의 사진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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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석문(명승).>

석회암 동굴이었던 곳이 무너지고 일부만 남아 구름다리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지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 광장 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위 정자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담삼봉 부근 남한강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석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석문.

OLYMPUS DIGITAL CAMERA석문과 함께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는 석문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과 마을 풍경.

SANYO DIGITAL CAMERA도담삼봉 부근에서 보이는 석문 앞을 흐르는 남한강.

SANYO DIGITAL CAMERA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명승 44호)

단양 석문, 명승 45호,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이곳은 단양팔경의 하나로, 자연이 만들어낸 구름다리 모양의 거대한 돌기둥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아주 오래전에 석회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구름다리 모양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동양에서 제일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문의 모양 그것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이것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마을의 모습도 마치 액자에 담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석문의 왼쪽 아랫 부분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옛날에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할미가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안내문, 단양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단양군청, 2009년
  2.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년

여주 남한강 조포나루터, 한강 4대 나룻터 중 한곳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 일대는 물자를 운반하던 남한강 뱃길에서 중요한 나룻터였던 조포나루가 있던 곳이다. 여주 이포나루, 서울 광나루, 서울 마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룻터로 불리던 곳으로 신륵사 입구 황포돛배 선착장 자리에서 남한강 건너 연양동을 연결했다. 조포나루터는 남한강을 건너는 나룻터 역할도 중요했지만, 조선시대 세금으로 곡식을 운반하던 조운선들이 쉬어가는 정박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여행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보제헌이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60년대까지도 나룻배가 운행되면서 많은 사람과 물자가 통행하던 곳이었다. 1963년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 침몰하여 많은 학생들이 익사하는 사고가 난 후 1964년 여주대교가 개통되어 그 역할을 마감하였다. 나룻터가 번창하던 때에는 나룻배과 남한강 수운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면서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흥청거리는 포구로 많은 주막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조포나룻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비석과 관광객을 싣고 나르는 황포돛배만이 이곳이 번창했던 나룻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변공원으로 바뀐 조포나룻터. 조선시대 마포나루, 광나루, 이포나루와 함께 남한강 4대 나룻터로 불리우며 크게 번창했던 조포나루는 지금은 관광유람선인 황포돛배만이 오가는 관광지로 바뀌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포나룻터 입구에 복원해 놓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주막들이 들어서 있고 남한강을 오가는 많은 배들이 정박했던 나룻터 주변은 지금은 평범한 관광지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조포나룻터에 황포돛배가 정박해 있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나루터.

SANYO DIGITAL CAMERA유람선을 태운 황포돛배(2008년). 4대강 사업 이전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풍경이 아름다운 신륵사 삼층석탑 너머로 보이는 남한강 상류.

SANYO DIGITAL CAMERA2008년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여주 신륵사.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단양 도담삼봉(명승), 단양팔경 중 첫번째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남한강에 있는 도담삼봉(島潭三峯, 명승)이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첫번째로 손꼽히고 있다.   중국 신선사상에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삼신산(三神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선세계를 구현한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경주 임해전지를 비롯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남한강 가운데 높이 6 m의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첩봉, 오른쪽에는 처봉이 나란히 솟아 있다. 장군봉 중간에는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도담상봉은 태조와 함께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법과 질서 등 국가의 기반을 설계한 정도전이 젊은 시절 이곳에서 지냈으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하였으며,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많은 인사들이 도담삼봉 풍경과 관련된 시와 그림을 남겼다.

SANYO DIGITAL CAMERA단양팔경 중 첫번째로 손꼽히는 도담삼봉. 호수같은 남한강 가운데 3봉우리가 솟아 있다. 신선세계를 구현한 인공연못 등에서 볼 수 있는 세봉우리를 잘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SANYO DIGITAL CAMERA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는 가운데 봉우리. 장군봉 또는 남편봉이라 불리다. 이곳 정자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장군봉에 세워진 정자.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처봉이라 불리는 오른쪽 봉우리. 남편과 돌아 앉은 형상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첩봉이라 불리는 왼쪽편 작은 봉우리.

SANYO DIGITAL CAMERA강물에 비친 도담삼봉.

SANYO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방향. 이 지역은 석회암 지질로 경치가 아름다운 절벽이 많은 카스트르 지형이다.

SANYO DIGITAL CAMERA남한강 하류방향. 멀지 않은 곳에 단양읍 시가지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도담삼봉 주변을 운행하는 유람선

OLYMPUS DIGITAL CAMERA하류방향 단양읍 부근 다리에서 본 도담삼봉 부근 남한강.

OLYMPUS DIGITAL CAMERA단양읍 부근 남한강.

단양 도담삼봉(島潭三峯), 명승44호,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번지
「단양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은 절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원추 모양의 봉우리로 남한강이 휘돌아 이룬 깊은 못에 크고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단양군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단양군청, 2009년
  2.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년

단양 적성산성(사적),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가 쌓은 산성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재산에 정상부에 있는 적성산성(赤城山城,사적 )이다. 이곳은 조령(문경새재)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길을 지키는 산성이다. 남한강 북쪽에서 죽령을 향하는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산성내에 가장 오래된 비석 중 하나인 단양 신라적성비(국보189호)가 있고, 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 전경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에서 몇 안되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이 멀리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서울방향 휴게소에서 걸어 올라갈 수 있어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성재산 정상부을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900m 정도이며, 북동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붕괴되었는데 최근에 대부분 복원하였다. 석축은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았는데 보은의 삼년산성, 서울의 아차산성과 비슷한 신라계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산성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며, 당시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경쟁을 벌렸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적성산성 아래에는 조선시대 단양군 읍치가 있었으며, 고려시대까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읍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단양 적성산성.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놓고 다투던 시절에 신라가 쌓은 석축산성이다.

SANYO DIGITAL CAMERA산성은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재산 정상부에 석축을 둘러쌓은 테뫼식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900m 정도이다. 성벽 바깥으로도 경사가 심하여 공략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산성에서 발견된 신라 적성비. 땅속에 묻혀 있어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글자가 또렷하게 보인다. 비석에는 440자 정도의 글자가 적혀 있다고 한다. 비문 내용은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운 지역민들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라고 하며. 유명한 장군 이사부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입구에서 본 적성산성

SANYO DIGITAL CAMERA고려시대까지 단양군 읍치을 방어하는 읍성역할을 했으나 그 이후 북동쪽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허물어졌다. 최근에 인근 보은 삼년산성을 참조하여 옛 성벽을 거의 복원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남한강 방면으로 내가는 성문.

SANYO DIGITAL CAMERA성문 옆에는 적성산성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옛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적성산성 옛 성벽 석축. 작은 돌로 촘촘히 석축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성벽 아래로 보이는 남한강

SANYO DIGITAL CAMERA조선시대 성곽과 달리 성벽 위에 여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전투시 목책을 성벽 위에 쌓았을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산성 바깥쪽 성벽. 성벽 아래로 경사가 매우 급하다.

SANYO DIGITAL CAMERA산성 안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산성에서 보이는 남한강 지역은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지만 수양개(사적398호)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구석기시대 이래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적성산성 남쪽으로 백두대간을 넘는 주요 교통로인 죽령과 소백산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적성산성 남쪽편 성벽

SANYO DIGITAL CAMERA적성산성 아래 고속도로휴게소

단양 적성산성, 사적265호,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 900 m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있어,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단양군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단양군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