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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산도호부 관아, 동헌 및 내아

울산시 중구 북정동에 남아 있는 옛 울산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옛 관아터에는 울산부사가 일상적인 근무를 하던 동헌과 살림집인 내아가 남아 있다. 조선후기 숙종대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로 일제강점기 이후 울산군청에서 사용하다고 1981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헌은 앞면 6칸 규모로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2칸씩 방을 두고 있다. 왼쪽 방 툇마루에는 난간을 두어 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다. 내아는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를 두고 있는 ‘ㄱ’자형 건물이다. 울산도호부 읍치였던 구도심에 있던 관아에는 군청과 초등학교가 들어섰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초등학교와 군청 등은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현재는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울산도호부는 울산에 있던 조선시대 지방 행정조직이다. 조선초 울주에 진(鎭)을 두었으며 태종 때 울산군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경주에 있던 경상좌병영을 울산으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군으로 강등되었다. 일진왜란 때 울산에 일어난 의병들이 큰 역할을 하면서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병마절도가 겸 부사를 두었다. 이후 전임 도호부사가 파견되어 구한말까지 이어졌다. 관아건물들 또한 울산도호부가 자리를 잡은 조선후기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울산시 중구 북정동에 남아 있는 옛 울산도호부 관아터. 읍치였던 구도심이 있던 지역으로 동헌이 있던 곳은 울산군청에서, 객사는 울산초등학교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시의 확장으로 울산군청과 초등학교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며 도서관 등 옛 관공서 건물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울산도호부 동헌. 앞면 6칸의 건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울산도호부가 자리를 잡은 조선후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후 여러 차례 중건과 수리를 거쳤다.

OLYMPUS DIGITAL CAMERA울산부사가 재판같은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인 대청마루. 앞면 2칸 규모로 다른 지방 동헌 건물에 비해 좁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왼쪽편 온돌방.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은 방은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바깥쪽에 난간이 있는 누마루처럼 꾸며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앞쪽 통로로 사용되는 툇마루. 왼쪽방 앞은 공간을 넓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아래쪽에 있는 살림집인 내아.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 등으로 구성된 ‘ㄱ’자형 건물이다. 중부지방 관아 건물 내아와는 달리 개방적인 평면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넓은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오른쪽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사랑방과 누마루. 사랑채에 해당한는 공간으로 ‘-’자형 안채에 덧붙여서 ‘ㄱ’자형 건물을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앞에서 심어진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뒷편에 있는 작은 정자와 공덕비들.

울산동헌 및 내아,
울산광역시 중구 동헌길 울산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보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이고,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 울산부사 김수오가 처음 지었고, 1763년(영조 39년) 울산부사 홍익대가 다시 지어 반학헌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 이후 울주군청 회의실로 사용하다가 1981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좌우에 2칸씩 방을 두었다. 그리고 왼쪽 방 앞의 툇마루 주위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다. 처마는 부연을 둔 겹처마이고, 기둥 위에는 익공 형식의 포를 올렸으며, 추녀마루가 길게 뻗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아는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둔 ‘ㄱ’자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인 형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1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안내문, 울산시청, 2017년)

<출처>

  1. 울산시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여현(扶餘縣) 관아, 옛 부여박물관에 남아 있는 객사와 동헌

부여(扶餘)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사비(泗比)라 불렸다. 백제가 멸망한 후 신라에 예속되면서 672년(문무왕12)에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고, 751년(경덕왕10)에 부여현(扶餘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와 병합되었다가 조선초인 1413년(태종13)에 독립하여 종6폼 현감이 고을 수장인 부여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이었던 사비성 일대만을 포함하며, 1914년 인근 홍산현, 임천군, 석성현, 공주군 일부가 편입되어 부여군이 되었다. 부여가 옛 백제의 도읍이었고, 주위에 넓은 평야가 있기는 하지만 교통의 요지가 아니었기때문에 삼국시대 이후 큰 세력을 형성하거나 지역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고 시골의 작은 고을로 명맥을 이어왔다.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성 아래 삼국시대 백제의 왕궁터이자 옛 부여박물관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 따르면  객사, 내아, 군기고, 향청, 작청, 현사  등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는 동헌.객사.내동헌이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구한말인 1869년에 지어졌으며 박물관 전시실 등으로 사용하면서 변형되었던 것을 1985년에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부여현감이 공적인 업무를 보던 동헌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앞면 5칸의 작은 건물로  ’초연당(超然堂)’ 또는 제민헌(濟民軒)이라 불렸다. 객사는 부풍관(扶風館)이라 불렸으며 궐패를 모시는 앞면 3칸의 정당과 양쪽의 좌.우익실으로 되어 있다. 현감이 살던 살림집인 내아는 앞면 5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의 주춧돌과 기단석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관아 중심건물인 객사이다. 객사는 왕명으로 받들고 내려오는 관리가 머물수 있는 숙소이자,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예를 올리는 곳이다. 부여 객사는 부풍관(扶風館)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백제관(百濟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가운데에 정당을, 양쪽에 좌.우익실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객사건물이다.  박물관 진열실 등으로 사용하면서 내부가 변형되었으나 기본구조는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 또는 전패殿牌)를 모시는 정당(正堂). 앞면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정청 처마에는 봉황머리와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실제 부여를 방문한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익실(翼室).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온돌방 1칸과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익실 대청마루. 넓은 공간으로 부여현감이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됨을 알 수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과 연결된 굴뚝

OLYMPUS DIGITAL CAMERA정당 오른편 우익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현 관아 객사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부여객사.

OLYMPUS DIGITAL CAMERA객사 동쪽편에는 고을수령이 공식업무를 보는 공간인 동헌과 살림집인 내아 건물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현 관아 동헌. 1869년(고종6)에 지은 건물로 초연당(超然堂), 제민헌(濟民軒)이라는 불렀다. 고을 수령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대체로 관아 중심 건물인 객사 동쪽에 위치하여 동헌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처마를 받치면서 장식도 하는 공포를 짜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왼쪽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오른쪽 2칸은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 툇마루를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동헌의 당호인 ‘초연당’이라 적힌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는 부여현감이 재판을 하거나 민원인을 접견하는 등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이다.  옆과 뒷쪽에 판벽을 치고 판문을 달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부여 동헌.

부여동헌(扶餘東軒),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이곳은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청으로 동헌(東軒).객사(客舍).내동헌(內東軒)이 보존되어 있다. 동헌은 부여현의 관아로 1869년(고종6년)에 다시 지었으며 초연당(超然堂), 제민헌(濟民軒)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객사는 관청의 손님, 사신이 유숙하던 건물인데 궐패를 안치하고 대궐을 향해 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였다. 동헌과 같은 해에 다시 지었는데 중앙의 정당(正堂)과 동서양쪽에 붙은 익실(翼室)로 이루어졌다. 양쪽 익실의 지붕은 가운데 정당보다 한 단 낮게 만들어진 건물모양으로 각 실의 위계(位階)를 나타내고 있다. (안내문, 부여군청,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다른 관아 건물터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고목이 관아 입구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현 관아 내아. 부여 현감이 거처하면서 생활하는 살림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출입문. 관아 정문처럼 솟을삼문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팔작지붕집으로 ‘-’자형을 하고 있다. 가운데 3칸의 대청마루와 그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의 주춧돌과 기단석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대청마루 앞에 글려 있는 글씨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뒷편에 있는 사당인 도강영당(道江影堂)이다. 부여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인 홍가신.허목.체제공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 관아 부속건물로 있던 것은 아니고 1970년대에 옛 관아건물이 있던 곳에 신축하였다.

도강영당(道江影堂)
홍가신.허목.체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홍가신(1541~161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22년(1567)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37년(1604)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허목(1595~1682)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에 이르렀다. 그림,글씨,문장에도 능하였다. 체제공(1720~1799)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1735년 과거에 급제한 후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앞면3칸.옆면2칸 규모의 영당은 앞면 1칸을 개방하여 참배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은 통칸으로 3인의 영정을 모셨다. (안내문, 부여군청,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주변에서 발견된 석재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현에 관한 기록들이 남아 있는 『신증동국여지승랑 권18, 1530년』.

부여현(扶餘縣) 지도, 1872년 지방지 충청도편 中
지도의 하단 여백에 고을의 연혁과 부여의 팔경(八景)을 주기하여 지지(地誌)로 지도를 보완하는 형식이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의 글자로 방위를 표시하고 북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백마강을 연하고 있는 읍치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산지는 풍수의 산도(山圖)에서 보이는 방식으로 맥세를 강조하여 표현하였으며, 천정대(天政臺), 낙화암(落花巖) 등의 기암절벽은 회화식 기법으로 절경을 강조하였다. 잎선 지리지들의 소략하고 거친 묘사와 달리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도로는 적색 실선으로 되어 있고 방위별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 거리와 함께 기재되어 있다. 또한 특별한 기호가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중요한 산천명 이외에 군현의 관아, 객사(客舍), 창고, 향교, 서원, 우역(郵驛), 사원(寺院) 등이 파악되어 있다. 지금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신라 김유신과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평제탑(平濟塔)으로 그려져 있어, 백제시대에 창건된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정림사지박물관,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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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현진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5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4. 정림사지박물관, 2015년


 

수원부(水原府) 관아, 내아(內衙)인 유여택(維與宅)과 복내당(福內堂)

화성행궁(華城行宮)은 국왕이 임시 거처로 사용되는 공간이자, 수원유수(留守)가 집무를 보는 수원부(水原府) 관아이기도 하다. 정조가 머물렀던 행궁의 중심 건물인 봉수당(奉壽堂)이 동헌에 해당한다면, 수원유수가 생활하는 공간인 내아(內衙)는 사랑채에 해당한는 유여택(維與宅), 안채에 해당하는 복내당(福內堂)과 혜경궁 홍씨가 머물렀던 장락당(長樂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면서 수원부 읍치(邑治)를 화성을 옮길때 행궁으로 조성했기때문에 다른 관아에 비해서 살림집에 해당하는 내아의 규모가 큰 편이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유여택은 건물 형태나 규모로 볼 때 수원유수의 생활공간이 아니라 동헌처럼 일상적으로 근무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동헌인 봉수당은 평상시에는 비워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안채에 해당하는 복내당과 장락당에는 국왕 일행을 수행하는 인원들이 머물수 있도록 많은 행랑들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여택(維與宅), 수원유수가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공간

화성행궁 유여택은 동헌인 봉수당 출입문인 중앙문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다. 평소에는 수원유수가 업무를 보며 거처하는 공간으로 다른 관아와는 달리 행궁으로 사용할 때 국왕이 집무하는 공간으로 사용했기때문에 많은 신하들이 도열할 수 있도록 앞에 넓은 마당과 행각을 두고 있다. 건물은 앞면 6칸 정도의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오른쪽편에 누각을 두고 있다. 일반 관청건물과는 달리 당시에 유행하던 권문세가 대저택의 사랑채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 앞에는 월대를 두고 있으며, 누각 앞에는 해시계가 있다. 건물 중앙에 마루를 두고 집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마루 양쪽에 온돌방을 있다. 유여택 앞 마당은 궁궐 정전의 마당보다는 작지만 규모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여택(維與宅)
유여택은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게 되면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곳으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1795년 행차 때, 정조는 이 건물에서 각종 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하교를 내렸다. 원래 이 건물은 1790년에 건립하고 ‘은약헌(隠若軒)’이라 하였다가, 1796년 증축하면서 유여택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의 건물은 1998년 12월 복원된 것이다. <출처:수원시청>

SANYO DIGITAL CAMERA수원유수가 거처하는 내아 사랑채에 해당하는 유여택, 정조가 화성을 행사했을 때 이곳에서 집무를 보면서 신하들을 접견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6칸 규모로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에 유행한 누마루를 오른쪽에 1칸 달아내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유여택 내부에는 국왕이 집무를 보던 환경을 꾸며 놓고 있다. 평소에는 수원유수 처소로 이용된 공간이었다고 하니, 국왕이 집무를 볼 때와는 다른 모습을 꾸며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이 집무를 보는 공간으로 꾸며 놓은 대청마루. 재남헌(扗南軒)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있고, 중앙에 어좌가 마련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維與宅)이라고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유여택 오른쪽에는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누마루에는 공신루(拱宸樓)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유여택 월대. 수원유수의 처소였던 까닭에 삼도와 같은 궁궐의 형식은 배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대 아래에 놓인 해시계인 앙부일구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 앞 마당과 정면 행각. 국왕을 수행하는 인원들이 거처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방들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수당 앞쪽 마당 방향의 행각.

SANYO DIGITAL CAMERA행각 한쪽에 전시해 놓은 뒤주. 사도세자가 죽었던 뒤주를 연상시킨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의 내용 중 ‘상제께서 모두 물리치시고 나라의 규모를 크게하리라. 이내 서녁을 돌아보시고 이집을 주었다(유여택)’라는 내용이다. 유여택은 정조가 행차시 집무공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정조의 행궁 행차시에는 행궁의 주요 공간(봉수당, 장락당, 유여택 등)이 궁궐로 사용되었는데, 이 때 봉수당은 정조의 처소(업무를 마치고 머무르는 공간)로, 유여택은 정조의 집무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평소에 유여택은 유수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2014년 가을 유여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원유수 관헌들을 위한 공간 중 외정리소에서 유여택 마당으로 출입하는 중문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 마당에서 복내당으로 출입하는 중문

OLYMPUS DIGITAL CAMERA중문을 들어서면 행각과 작은 마당이 있다. 이 공간은 내아에서 사랑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 뒷마당으로 출입하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 뒷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에서 복내당으로 출입하는 출입문

복내당(福內堂), 수원유수 가족들이 거처하는 내아

화성행궁 복내당(福內堂)은 행궁의 내당이자 실제 이 곳을 집무를 보던 수원유수 가족이 거처하던 내아(內衙)이다. 화성행궁의 성격자체가 국왕이 잠시머무르는 행궁의 성격과 수원화성을 책임지던 화성 유수의 집무공간이었던 까닭에 이 곳 화성행궁 복내당은 화성유속 가족들이 거처하던 주택과 행궁을 방문하는 국왕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숙식을 지원해야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래서 복내당은 행각들이 상당히 많고, 국왕이 잠시 거처하던 봉수당과 장락당이 바로 붙어 있다. 아마도 정조대왕 시절에는 수원유수 가족들이 거처하는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거처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왕을 보필하는 인원들이 이 곳 복내당에 머물면서 행사를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복내당(福內堂)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으로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1794년에 증축되었다.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이곳의 현판은 정조가 직접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판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97년에 복원된 것이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수원유수 내아인 복내당. 건물자체로는 크지 않고 일반 저택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행궁에서 거행되는 행사를 지원해야 하는 까닭에 복내당을 중심으로 많은 행각들이 붙어 있고, 각 행각마다 많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 대청마루

SANYO DIGITAL CAMERA대청마루 안쪽편에 마련된 상석. 드라마 ‘대장금’에 등장했던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뒷편에 내명부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 현판. 복내당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SANYO DIGITAL CAMERA 복내당 부엌, 복내당은 1790년 수원부 신읍치소의 내아(內衙)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은 복내당에 딸린 부엌으로 당시의 부엌 살림들이 연출되어 있어 수원부 유수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에 딸린 행각. 장락당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에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렀던 장락당과 연결되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유여택에서 복내당으로 출입하는 작은 출입문. 화성행궁 복내당에는 건물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이는 복내당이 화성유수 내아로서의 역할보다는 궁궐 내당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말해준다. 좁은 공간에 국왕을 수행하는 많은 수의 상궁, 내시들이 머물러야 했고 그들을 신분, 역할에 따라 구분해야 했기때문에 출입문이 많았다고 생각해 본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 바깥쪽 행각. 대장금의 어린 시절 수락간 생각시 훈련장과 어선경연이 벌어졌던 곳이다. 의녀가 되기 위해 장금이 교육을 받았던 전의감 교육장, 궁궐안에서 보여지는 내의원의 모든 모습과 그 밖의 대장금의 주요 장면이 이 곳 수원화성에서 펼쳐졌다.

OLYMPUS DIGITAL CAMERATV드라마 ‘대장금’에서 대장금이 입었던 의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어린 장금 생각시 의상, 어린 장금 의상, 장금 수랏간 생각시 의상, 장금 수랏간 나인 의상, 장금 의녀 의상, 장금 최고상궁 의상의 순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 뒷쪽편 행각들. 복내당과 작은 출입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마도 뒷쪽편에는 국왕을 수행하던 상궁.나인들이 거처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행각은 여러개의 방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 뒷편 행각과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화성행궁 복내당 뒷쪽편. 상당히 많은 행각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조대왕 행차시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복내당 뒷마당 출입문. 행각과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이 문을 통해서 내아였던 복내당을 출입했던 것으로 보이며, 국왕 행차시 많은 인원들이 거처하기때문에 출입문을 크게 만들었다.

 

 

 

경기도 용인현(龍仁縣) 관아,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관아 건물

용인현(龍仁縣)은 용인 지역에 설치된 조선시대 행정 구역으로 종5품 현령이 고을 수령이었다. 그 범위는 양지군과 죽산군이 합쳐진 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읍치는 오늘날 용인시 마북동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용인 한국민속촌에는 옛날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 관아건물을 복원해 놓고 있다. 용구현은 처인현과 통합되기 전인 고려시대 고을이름으로 용인현을 잘못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아는 국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고을을 방문한 관찰사나 중앙 관료가 묵었던 숙소인 객사를 중심으로 고을수령이 근무하던 동헌, 살림집인 내아, 형방청을 비롯해서 아전들이 근무하던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곳 민속촌에서는 객사를 비롯하여 아전들이 근무하던 건물들은 복원해 놓고 있지는 않다. 또한 용인현은 현(縣)단위 고을 규모로 종5품인 현령이 고을 수령으로 있었던 지역인데, 현재 복원된 관아 건물들은 실제보다 규모나 면적에 있어서 약간 과장된 느낌을 주고 있는 규모이다.

관아 아문(衙門)과 행각

용구현 관아 출입문인 용구아문은 지방 행정단위 중 고을규모가 컸던 고을의 아문을 복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문으로 이루어진 출입문 위에 문루를 올려놓아서 웅장해 보이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아문 양쪽으로는 하급관료나 관아소속 노비들이 머물렀던 외행랑이 들어서 있다.

관아는 공청이라고도 하며,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외관직의 정무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지방행정의 단위 부서인 주,군,현에는 각기 관찰사, 부사, 군사, 현감, 현령 등 지방장관과 함께 공청이 있었다. 이곳 관아는 정문과 외행랑, 중문과 내행랑, 정청인 동헌과 내당, 그리고 내당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후면에 옥사가 부설되어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OLYMPUS DIGITAL CAMERA용인민속촌에 복원해 놓고 있는 관아 건물. 용구현 관아를 복원해 놓고 있다고 설명해 놓고 있는데, 용구현은 고려시대 용인지역 고을이름이며, 관아건물의 규모 또한 고을 규모에 비해서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용인현 관아 아문. 이층 문루형식으로 되어 있다. 문루는 화감암석재로 만든 기둥위에 문루를 올려놓고 있다. 문루에서는 보통 고을수령이나 이 곳을 방문한 인사들이 관아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문 양쪽으로는 외행랑 건물이 쭉 들어서 있다. 실제 관아건물보다는 외행랑을 과장되게 만든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문과 중문 사이의 마당. 행랑에는 아전(衙前)들이 근무하던 방들과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에는 고을수령이 사용하던 교통수단인 가마, 교자, 말을 보관하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종5품에 해당하는 용인현령은 고위직이 아니기때문에 실제로 교자나 가마를 타지 않고 지역을 돌아볼 때는 말을 타거나 걸어 다녔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문 왼쪽편에 아전(衙前)들이 근무하거나 민원인들이 대기하던 방들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전들이 근무하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는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부엌

OLYMPUS DIGITAL CAMERA외행랑 건물에 온돌방이 여럿이 있기는 한데, 실제 조선시대 관청건물에서는 온돌방을 많이 두지 않고 대청마루가 많았던 것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용인 현령이 업무를 보는 동헌으로 들어가는 중문인 등원문. 삼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입구에서 본 아문과 행랑

동헌, 용인 현령이 근무하던 공간

동헌은 지방수령이 근무하던 지방장관이 공사를 처리하는던 공청으로 관아의 중심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종2품이 수령인 부(府)에서 종5,6품관이 수령인 현(縣)까지 다양한 규모의 고을이 존재했었다. 고을 수령의 명칭 또한 다양해서 부사, 목사, 군수, 현감, 현령 등 직위에 따른 이름들이 있었으며, 호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장소인 동헌 건물은 가운데 대청마루로 된 정청이라는 넓은 공간이 있고, 그 양쪽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한쪽은 고을수령 집무실이라 할 수 있고, 다른 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이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동헌 건물은 옛날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 관아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동헌 건물규모는 앞면 7칸으로 가운데 3칸은 공적인 업무를 보던 정청이며,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는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한칸의 폭이 넓게 만들어서 건물규모가 상당히 크게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용인현) 동헌을 복원했다고 하는 한국민속촌 관아 동헌건물이다.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은 칸사이의 폭이 넓어서 상당히 크게 지은 건물이다. 외국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는지(?) 실제보다 약간 크게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건물은 정청으로 사용하는 가운데3칸 대청마루와 양쪽에 온돌방 2칸씩을 두고 있다. 현령급 고을은 일반적을 5칸 정도 규모이지만 7칸 규모로 상당히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로 되어 있는 가운데 3칸을 정청이라고 부르며, 고을 수령이 하급관리들과 공식적인 회의를 하거나 재판 등 공식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한쪽편은 손님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른쪽 온돌방은 고을수령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고을수령은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겨울 난방비 등의 문제로 앞면 1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OLYMPUS DIGITAL CAMERA분합문을 걸어 놓아 시원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건물을 복원할 때 빠지지 않는 형구들이 동헌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고을 수령에 대한 선입견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마당 한쪽에는 방위를 표시한 표지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등원문을 들어서면 양쪽에는 내행랑채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들은 아전들이 근무하던 방과 부엌,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행랑채 대청마루에 전시된 하급관료들의 모자.

부근당(付根堂)은 지방장관이 백성들을 위한 원활한 정무와 자신의 영달, 관내의 태평과 풍작 등을 기원하는 신당으로 지방장관이 새로 부임을 해 오면 가장 먼저 이 신당에 들러 참배를 한다. 부근당에는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 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시고 있는 무속신앙과 결합된 관청내의 독특한 신앙형태이다. 무신도와 남근석, 제단이 구비되어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뒷편에는 부근당(付根堂)이라는 사당이 있다. 부근당은 관아에 설치된 사당으로 무속신앙이 관청과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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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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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옆 옥사로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한국민속촌 옥사(獄舍)는 우리나라 사극에서 많이 등장했던 장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보통 옥사는 형방청 건물과 같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현단위 작은 고을에서는 큰 옥사를 두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또한 약간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사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형구를 차고 있는 중죄인

OLYMPUS DIGITAL CAMERA여자 옥사

OLYMPUS DIGITAL CAMERA일반 옥사

OLYMPUS DIGITAL CAMERA옥사에 전시된 형구들.

내아(內衙), 지방 수령의 거처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지방 수령 사적인 거처로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을 내아 또는 내당이라고 부른다. 내아는 원래 고을 수령의 부인과 자녀들이 거처를 하는 곳이지만, 조선시대에 실제로 고을 수령이 가족과 함께 부임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며 주로 단신으로 부임하거나 나이가 어린 자식이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림집인 내아 건물은 대부분 소박하게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내아에는 관청에  예속된 기생인 관기나 노비인 관노들이 함께 거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된 내아 건물은 앞면 5칸반의 규모가 큰 건물에 내외행랑채를 두고 있다. 본채 건물은 특이하게 ‘ㅓ’형 건물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데, 아마도 구한말에 많이 지어졌던 양반집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청인 동헌과는 복도와 협문으로 연결되며 그 나름의 행랑이 있어 고간과 주비의 처소가 갖추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후기 구한말 양반집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민속촌 내아 건물 본채. 앞면 5칸반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 ‘ㅓ’형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한말 양반집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누마루. 사랑채와 붙어 있으며, 정자의 기능을 하고 있는 구조로 관아 내아 건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누마루 내부에는 침대처럼 생긴 가구가 놓여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청인 동헌과는 복도와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을 수령 가족들이 거처하는 방으로 온돌방이 3칸에, 사랑방과 연결된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고을수령의 거처는 대가족이 사는 살림집이 아니기 때문에 방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안방과 사랑방 사이의 대청마루. 일반적인 살림집이 아니라서 그런지 대청마루가 중앙에 개방된 모습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안방 내부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이 곳 내아에는 본채와는 별도로 ‘ㄱ’자형으로 생긴 행랑채가 있다. 관아에 소속된 노비나 기생들이 머물던 공간간으로 집안 살림과 방문객을 식사 준비 등을 하는 장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에 있는 1칸짜리 방.

OLYMPUS DIGITAL CAMERA방과 방 사이에 작은 대청마루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를 방문하는 방문객이나 관아에 근무하던 사람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일반 살림집에 비해서 부엌의 규모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출입문이 있는 내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은 바깥쪽에서 내부를 직접 볼 수 없도록 꺽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내아 외행랑채는 주로 창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물 등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는 다양한 술통들이 보인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많았던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 관아,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내아(內衙)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는 지금의 인천 부평구, 계양구, 부천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행정기관으로 읍치는 계양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부평도호부는 서울 한강이남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로 15개면이 부평도호부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부평이 인천에 속해있지만 원래는 인천과는 구분되는 지역으로 사실상 부천과 같은 생활권이었다 할 수 있다. 구한말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부평의 중심이 현재의 부평역과 부천역 부근으로 바뀌었지만 부평과 부천의 중심지는 계산구 부평초등학교가 있는 옛 부평도호부 청사 주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옛 부평도호부 청사가 있었던 읍치에는 객사, 동헌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아로 추정되는 건물이 부평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다. 일제가 구한말에 초등학교를 설치하면서 관아 건물 중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객사를 초등학교 건물로 바꾼 경우가 많은데 부평도호부는 대부분의 청사가 허물어지고, 내아 건물만 변형된 채로 학교 운동장 구석에 남아 있다. 부평도호부에서 관장하는 중등교육기관인 부평향교는 계양산 아래에 남아 있다.

부평도호부 청사
고려시대 의종 4년에 안남도호부, 고종2년에 계양도호부, 조선시대 태종 13년에는 부평도호부를 설치했다. 기록에 의하면 객사, 동.서헌, 삼문, 근민당, 좌.우익랑, 동.서책방, 사령청, 향청, 포도청, 훈무당, 부창 등 여러채의 청사 건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부평초등학교를 지으면서 대부분 철거하여 현재는 내아만 남아 있다. 원래 “ㄱ”자형 건물이 있었으나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자형 건물로 바꾸어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도리집이 됐다. <출처:인천시청>

SANYO DIGITAL CAMERA 조선시대 경기도 한강이남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 중 하나였던 부평도호부 청사가 있었던 부평초등학교이다. 이곳에는 객사, 동헌 등 많은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내아로 쓰였던 건물만이 운동장 한쪽에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평도호부 내아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부평초등학교 운동장 동쪽편에 있다. 운동장 입구에는 관청 부근에 많이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평도호부 내아 건물. 부평부사가 거처했던 살림직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원래 우리나라 건물에서는 짝수를 잘 쓰지 않는데 이 곳은 ‘ㄱ’자형 건물을 변형해서 그런지 6칸짜리 건물이 만들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세워졌다. ‘ㄱ’자형으로 된 살림집을 변형한 것으로 일반적인 한옥이나 관아 건물에서 잘 보이지 않는 건물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앞에는 정조대왕 잠시 들렀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욕은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역대 임금중에 공식적으로 부평을 경유해간 임금은 정조대왕 한 분이다. 정조 21년에는 김포에 있는 장릉을 참배하고, 부평.안산을 거쳐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였다. 이때 정조는 부평에 머물며 활을 쏘고 욕은지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출처:인천시청>

SANYO DIGITAL CAMERA부평도호부 내아 건물

SANYO DIGITAL CAMERA부평초등학교는 지금의 행정구역상 부평구에 있지 않고 계양구에 있다. 초등학교 건물 앞에 고목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곳에 객사나 동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부평부사를 지낸 관리들의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