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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무섬마을, 물위에 떠 있는 섬처럼 생긴 아름다운 전통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이다. 조선후기 반남박씨 박수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의 증손사위 선성김씨 김대가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나가서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무섬마을’이라고 부른다. 선비들을 많이 배출한 전형적인 양반마을로 구한말에는 주민 500여 명이 살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로 남아 있다.

마을에는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와 선성김씨 종택인 무송헌,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해우당을 비롯하여 격식을 갖춘 ‘ㅁ’자형 가옥, 경북 북부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까치구멍집,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초가집 등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이 남아 있다. 가옥들은 대부분 마을 뒷산을 등지면서 내성천을 향해 서남향을 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형상이 물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고 하여 마을에는 우물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마을을 들어오는 다리인 수도교가 생긴 1979년 이전에는 좁은 외나무다리를 이용해서 마을을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외나무다리가 마을을 대표하는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건너는 다리인 수도교 앞에서 보이는 무섬마을.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고 있다. 내성천이 있는 서남쪽을 향해 배산임수의 지형을 잘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섬마을 모형. 마을에는 농토가 없으며 마을 앞 내성천을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OLYMPUS DIGITAL CAMERA1979년에 세워진 수도교.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북쪽에는 작은 정자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아도서숙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도교를 건너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고택인 김성규가옥이다. 독립운동가 김성규가 살았던 집으로 시인 조지훈의 처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분가하면서 지어진 집으로 홍수 피해을 입어 폐가가 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해우당고택.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으로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 뒷편 골목길 안쪽에 있는 큰규모의 고택인 주실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맞은편에 있는 최근에 수리하여 지은 것으로 보이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뒷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라 불리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 다른 가옥과는 달리 사랑채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툇마루를 넓게 만들어 누마루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기둥이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종택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 옆에 있는 섬계고택. 섬계는 무섬마을을 대표한는 인물로 손꼽히는 박제익의 호이다. 지금은 선성김씨 김동근가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와 관련된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 안쪽에 있는 만죽재고택이다.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17세기에 마을로 이사오면서 처음 자리잡은 종택을 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종택답게 간결하면서도 격식을 갖추고 있는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는 섬계 박제익이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교류하던 섬계초당이 있다. 그 앞쪽에는 선성김씨 종택에 있는 사당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과 만죽재고택 뒷편에 있는 집들.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에 있는 6칸 규모의 작은 까치구멍집.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쪽에 있는 무송헌종택이다.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세종 때 천문학자로 큰 업적을 남긴 무송헌 김담(1416~1464년)의 종손(?)이어서 무송헌종택이라 부른다. 고택 뒷편에는 김담을 비롯한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송헌종택을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왼쪽에 있는 오헌고택. 큰 규모의 저택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박제연의 후손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오른쪽에 있는 농당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김덕진가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덕진가옥 옆에 있는 김위진가옥. 비슷한 규모의 큰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위진 가옥 옆쪽에 있는 작은 규모의 초가집. 안방과 사랑방이 한건물에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까치구멍집인 김규진가옥.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오당’이라 걸린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심부 앞쪽에 있는 김정규가옥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마을에 있는 6칸 까치구멍집에 비해 규모가 확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남쪽편으로 제방길. 아래에 무섬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제방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에 있는 제방길. 내성천과 함께 한적한 시골마을 경치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방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나무다리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마치 섬같은 지형을 하고 있는 무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이다. 다리는 길이 약 150 m, 폭 20 ~25 cm, 높이 60 cm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이다. 옛스런 고택들이 모여있는 무섬마을을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중간에 비껴다리를 만들어 마주 오던 사람이 비껴갈 수 있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외나무다리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영주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이 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 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박수(반남박씨)선생께서 1666년(현종 7) 강건너 ‘머름’에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었다. 그 후 박수 선생의 손자의 사위인 김대(선성김씨)선생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어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강을 향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으로 한때는 마을 소유의 토지가 30리 밖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 강을 건너 가서 농사를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만세운동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일본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도서숙을 건립하여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입구자형(‘ㅁ’)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 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집들이 많이 있어 전통 주거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달성 묘골마을, 박팽년 후손들이 모셔사는 집성촌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위치한 전통마을인 묘골마을이다.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의 2남 박휘순의 처가이 있던 곳으로 그의 부인이 친정인 이 곳에서 아들을 낳고 숨어살다가 성종대에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달성지역에서도 경제력이 상당히 풍부했으며, 지역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씨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인사로 볼 수 있으며,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도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묘골마을은 박팽년이 후손이 복권되면서 양반가문으로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큰 규모의 한옥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한옥은 많지 않으며, 대부분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이다. 육신사 옆에는 조선중기에 종가 별당으로 지어진 태고정(보물 554호)이 있으며, 그 아래에 18세기에 지어진 고택인 도곡재가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육신을 모신 낙빈서원이 있으며 그 아래 운치있게 잘 지어진 삼가헌고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묘골마을.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인 순천박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경제력이 풍부했던 마을로 오래된 고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현재 살고 있는 한옥들의 규모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사육신 기념관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세워진 삼충각. 사육신 박팽년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3대가 국왕으로부터 정려를 받은 것을 기리기 위해 1835년에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저택인 충효당. 조선후기 인조 때 금산군수를 지낸 후손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이다.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한옥. 최근에 크게 수리하여 고택의 멋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개량된 한옥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원래 큰 가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는 대부분 규모가 큰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박팽년 후손들의 크게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옥 대문 안쪽으로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안쪽에 보이는 오래된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 있는 한옥 중 비교적 오래된 고택한 도곡재 솟을대문.

OLYMPUS DIGITAL CAMERA도곡재는 18세기에 주택으로 지어졌다가 19세기에 후학을 양성하는 재실로 바뀌었다. 안쪽에 살림집인 안채가,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넓게 쓰는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곡대 뒷편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앞쪽에 있는 사랑채. 2동의 건물이 나란히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랑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ㄱ’자형 안채.

OLYMPUS DIGITAL CAMERA묘골마을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에 있는 옛 종가 별당으로 지어진 고택인 태고정(보물 554호).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은 조선중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조선전기 한옥의 양식이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 옆에 있는 육신사. 사육신과 박팽년의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으로 1970년대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육신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 아래에 있는 육신사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낙빈서원. 원래 사육신을 모셨던 서원으로 구한말 훼철되었다가 지금은 강당만 복원되어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빈서원 아래에 있는 삼가헌고택. 조선후기 영조 때 (1769년) 삼가헌 박성수가 이곳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을 현판으로 걸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가헌 고택 별당 건물이 하엽정. 정자 앞 연못에 심어진 연꽃이 유명하다.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한개마을, 17세기 이후 크게 번창한 성주이씨 집성촌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한개마을이다. 조선초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들어온 이래 후손들이 모여사는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조선중기에 성산이씨 씨족마을로 자리잡았으며 영조 때인 17세기 이후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나즈막한 동산인 영취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하천 주변의 넓은 들판이 있어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마을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한주종택, 교리댁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고택들과 제사를 모시기 위한 재실 등이 남아 있다. 마을 서쪽편 높은 곳에 응와종택, 한주종택, 교리댁 등 큰 규모의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극와고택 같은 분가한 후손들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집들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택들을 작은 골목길 안쪽에 대문을 두고 사랑채가 바깥쪽에, 안채를 두며 담장과 중문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마을 외곽에는 제사준비와 후학양성을 위해 지어진 재실과 서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17세기 이후 번창했던 까닭에 큰 업적을 남긴 조상을 모시는 서원은 세워지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 한개마을 입구. 조선후기 양반계층들이 모여 살았던 집성촌으로 뒷편 높은 곳에 종가집을 비롯하여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큰 규모의 저택들이 있고, 아래쪽에는 분가한 후손들이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향조가 살았던 곳에 지은 응와종택을 비롯하여 큰 규모의 고택들이 있는 마을 서쪽편으로 올라가는 길. 뒷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서쪽편은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응와종택, 한주종택, 교리댁 등 규모가 상당히 큰 고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외곽에는 후학을 양성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재실 건물들이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개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는 분가한 후손들이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다. 원래 초가집이었던 것으로 7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바뀐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 서쪽에 위치한 고택인 교리댁. 조선후기 영조 때 처음 지어졌으며 19세기에 사랑채 등을 다시 고쳐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교리댁 뒷편에 있는 응와종택. 마을 입향조인 이우가 처음 살았던 곳으로 조선후기 후손인 이이신이 매입하였으며, 그의 아들이자 사도사자 호위무관이었던 이석문이 세자를 추모하여 북쪽으로 문을 내고 살았다고 하여 북비고택으로도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와종택 사랑채. 정자같은 누마루를 갖추고 있는 크고 화려한 건물로 19세기 유행한 건축양식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와종택 뒷편에 있는 월곡댁. 마을 제일 안쪽 높은 곳에 위치한 고택으로 20세기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간쯤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길. 기와를 얹은 담장 사이로 형성된 넓은 골목길이 시골길 같지 않고 화려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몰길에 있는 대문 안으로 보이는 고택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에는 두동의 한옥 대문채가 마주보고 있어 도시 골목길같은 분위기를 주공 ㅣㅆ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고택인 하회댁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7세기에 창건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가옥의 배치는 ‘ㄷ’자형 평면의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에 ‘-’자형 평면의 중문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면서 안채 우측으로 독립된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회댁 뒷편에 있는 고택인 도동댁. 응화고택에서 분가한 후손이 19세기에 지은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큰 규모의 저택인 한주종택으로 골목길이 이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한주종택. 조선후기 영조 때 처음 지어졌으며 여러차레 중건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승희를 비롯하여 여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깊은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한주종택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간 도동댁 앞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고택인 극와고택. 구한말인 1852년에 처음 건립된 고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와고택에서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중간쯤에 수리중인 고택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간쯤에 있는 공동우물.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아래쪽 큰길.

성주 한개마을,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개마을은 많은 인재를 배출한 격조 높은 선비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민속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은 주산인 영취산(해발 331.7 m)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청룡등과 백호등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며, 마을 앞으로 이천과 백천이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남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전국 최고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의 이름인 한개는 순후 우리말로서 ‘한’은 크고 넓다(大)는 뜻이고 ‘개’는 큰 물이 드나드는 곳(浦)을 나타낸 방언으로, 백천에 제방을 쌓기 이전에 큰물이 졌다가 빠져나가면서 생겨난 큰 개울로 인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은 조선 세종 때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하였으며,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17세기 이후 과거합격자가 많이 나왔으며, 충절과 지조, 높은 학문, 독립운동 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현재 마을에는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9채와 조상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6채의 재실을 포함한 75채의 집들이 있으며,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된 전통가옥이다. 또한 각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적당한 곡선의 토석담장으로 된 옛 골목길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마을의 운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마을의 집들은 배치 및 평면이 지역적인 특성을 담고 있으며, 지붕.대청.부엌.툇마루 등이 거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의 가재도구와 의복, 생활용품 등 옛 생활의 흔적을 담은 유산들도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어 전통 민속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영덕 원구리마을, 영해읍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통마을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원구리 마을이다. 영해평야의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양반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전형적인 전통마을이다. 16세기 영양남씨가 처음 터를 잡았으며 이후 무안박씨, 대흥백씨, 안동권씨 등 여러 성씨들이 모여살고 있다. 마을에는 경수당종택을 비롯하여 양양남씨 난고종택, 대흥백씨 상의당을 비롯하여 오래된 고택들과 정자 등이 남아 있다. 그중 경수당종택은 99칸규모의 대저택이었으며, 난고종택도 비슷한 규모이다.

영해도호부 읍치였던 면소재지에서 3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양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간다. 퇴계 이황이 경수당종택 현판을 써 주었다는 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선비들이 많이 찾았던 마을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원구리마을. 넓은 영해평야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여러 성씨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전통마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위치한 난고종택. 여러 성씨들 중 가장 먼저 터를 잡고 살아온 영양남씨 종택이다. 이집은 조선후기 인조 때 처음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난고종택에 딸린 정자 건물물. 앞면 4칸의 2층 누각 형식으로 지어진 큰 건물이다. 건물형태로 볼 때 구한말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난고종택 마당 한쪽편에 있는 별채.

OLYMPUS DIGITAL CAMERA난고종택 앞 영해평야 들판. 건너편에 영해지방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는 인량마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난고종택 앞 ‘오촌댁’이라는 고택이 있던 자리. 현재 오촌댁 건물은 해체되어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야외로 옮겨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난고종택 앞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 안쪽에 있는 고택. 지금은 오래된 시골집이지만 규모가 있는 ‘ㅁ’자형 고택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에 있는 경수당종택.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99칸 대저택으로 무안박씨 종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수당종택 사랑채로 쓰였던 대청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경수당종택 옆에 있는 낡은 고택. 분가한 후손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수당종택 안쪽으로 대흥백씨가 살았던 고택인 상의당이 보인다. 지금은 수리공사가 진행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언덕 아래에 위치한 정자로 보이는 오래된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그 옆으로도 낡은 한옥이 보인다.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영덕 송천리 마을, 7번국도 교통요지에 위치한 안동권씨 집성촌

경북 영덕군 병곡면에 있는 송천리 마을이다. 동해안 주요 교통로인 7번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영해평야를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병곡역과 주막이 있었는데, 17세기 초 인근 관어대 마을에 살았던 안동권씨가 이곳에 이주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권득여가 송천보를 창설했다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송천에 보를 쌓고 늪지였던 주변을 간척하면서 크게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앞을 지나던 7번국도가 다른곳으로 확장.이전되면서 지금은 지나가는 차량이 많지 한적한 시골마을로 바뀌었다. 마을입구에는 1950년대에 지어진 송천예배당을 비롯하여, 슈퍼, 이발소 간판이 있는 건물, 정미소 등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찾는 큰 마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권득여의 종택에 해당하는 세려고택이 남아 있으며, 옛날 큰 저택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한옥들도 골목길에서 여럿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송천리마을. 영해읍치에서 송천을 건너 첫번째 마을이다. 조선시대 역참과 주막이 있었던 교통요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위치한 송천예배당.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슈퍼와 이발소였던 오래된 상가건물을 볼 수 있다. 송천을 건너는 오래된 다리와 옛 7번국도 2차선 다리가 지금도 남아 있어 예로부터 교통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래된 정미소도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천리를 지나 울진으로 이어지는 옛 7번국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로 들어가는 골목길. 고택의 형태를 하고 있는 주택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하고 있는 영덕지역 고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이 낡았지만 옛 건물의 형태는 제대로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멀리 세려고택 뒷편에 있는 고목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택인 세려고택. 17세기 관어대마을에서 이 마을로 들어온 권득여의 아들 권대림이 지은 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세려고택 뒷편 언덕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세려고택 앞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에 있는 오래된 한옥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시골집. 기와를 비롯하여 후대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동쪽에 있는 낡고 오래된 정자건물. 세려고택에 딸린 정자로 보인다.
<출처>

  1.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