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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절터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이다. 미륵사지 절터 2기의 석탑 앞쪽에 하나씩 세워져 있다.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건설할 당시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당간지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바깥쪽에 띠를 새겨두고 기단부에 안상 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장식이 많지 않으며 단정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영주 부석사나 숙수사지(소수서원)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이곳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신라 황룡사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사찰로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목탑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석탑이 세워져 있고,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기의 석탑 중 동탑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높이 3.95 m로 두개의 기둥이 50 cm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영주 부석사나 숙수사지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은 여러개의 돌로 면석을 만들었으며, 안상을 조각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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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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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탑 앞에 세워진 당간지주. 2기의 당간지주는 거의 같은 형태와 양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상이 새겨진 기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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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보물 236호). 백제 무왕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현존하는 사찰이나 절터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236호,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당간은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로 주로 사찰 입구에 세워둔다.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지주라 한다. 당간지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기 때문에 삼한시대 ‘솟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미륵사지가 남쪽으로 확장될 때 남회랑 안에 당간지주 2기을 세웠다. 지금은 지주만 약 90 m의 간격을 두고 남아 있는데 그 크기와 양식, 제작 기법이 같다. 높이 4.5 m의 지주 바깥 면에는 가장자리와 중앙에 띠가 있고,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지주를 지탱하는 기단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미륵사지의 당간은 서탑을 해체할 때 출토된 석재의 형태로 보아 돌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현존하는 유일한 통일신라 철당간

충남 공주시 계룡산 갑사에 남아 있는 철당간(보물)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로 갑사가 통일신라 화업십찰 중 하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간은 사찰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사찰 입구에 세워진다. 네모난 기단 위에 철당간을 세우고 그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고 있다. 당간의 높이는 15 m이고 당간지주의 높이는 3m이다. 당간은 원래 28개 철통을 연결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24개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당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청주 도심의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41호)와 함께 사찰 당간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갑사(甲寺)는 공주 계룡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의상대사와 관련된 화엄십찰에 속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현재의 갑사는 원래 위치에서 약간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 이곳 출신 영규대사가 의병장으로 큰 역할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내에는 삼신불괘불탱(국보), 철당간(보물), 승탑(보물), 동종(보물)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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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사찰 입구임을 말해주는 높이 15 m의 철당간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철로만든 당간과 당간지주가 온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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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은 네모난 기단 위에 철로 만든 당간을 세우고 그 옆에 돌로 만든 기둥을 세워 지탱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절터에 남아 있는 많은 당간지주의 원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간은 지름 50 cm의 철통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당간지주. 기단 옆에 새겨진 안상으로 이 당간이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SANYO DIGITAL CAMERA계룡산 갑사. 통일신라 의상대사 제자들이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이다. 임진왜란 때 영규대사 승병으로 활약함으로써 크게 번창하여 지역 중심 사찰이 되었다.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256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철당간.지주는 당을 다는 철깃대와 기둥이다. 당간은 절 앞 에 세우는 깃대인데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기 위한 버팀 기둥을 말한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 cm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의 높이는 약 15 m이다. 그러나 1893년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졌다. 이 철당간.지주가 만들어진 시기는 갑사가 신라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점과 받침돌 측면에 새겨진 안상 조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갑사의 철당간과 지주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간 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은 법주사 당간지주, 사찰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철당간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철당간과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고려때 처음 세워졌으며, 철당간은 구한말 대원군이 당백전을 주조할 때 수거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철당간은 순종때 복원되었던 것을 1970년대에 다시 복원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많지 않은 철당간도 남아 있다. 당간은 걸개그림 같은 것을 걸어두는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솟대처럼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기능도 함께 있다. 멀리서 보고 사찰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은 법주사 당간지주,
당간이란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에 당간 즉, 찰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년(1006)에 조성된 것으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 국가 재정 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 곧이어 순종 당시 (1910년경)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속리산 법주사 경내 마당에 세워져 있는 철당간. 원래 사찰 바깥에서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는데, 지금은 금강문이 앞쪽에 들어서면서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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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은 높이 22m의 상당히 큰 규모이다. 구한말에 없어진 것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사찰을 상징하는 철당간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많지 않은 장소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당간지주.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특별한 장식은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철당간에 새겨진 글씨.

SANYO DIGITAL CAMERA2008년 철당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가 남아 있는 옛 절터

경주시 탑동에 있는 남간사지(南澗寺址)이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탄생신화가 있는 경주 나정에서 남산 북쪽 남산신성이 있는 해목령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남간사의 창건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거의 없으나 신라 애장왕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절터가 있었던 자리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고 당시 절에서 사용한 초석이나 축대 등을 민가건물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석조가 남아 있다. 절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보물)가 남아 있다. 부근에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창림사지와 일성왕릉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간사지 절터와 당간지주(보물)>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厭髑滅身)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이르기를, “법흥대왕(法興大王) 즉위 14년(527)에 소신(小臣) 이차돈(異次頓)이 불법을 위하여 제 몸을 없앴다”고 하였으니, 바로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527년)로 서천축(西竺)의 달마(達摩)가 금릉(金陵)에 왔던 해이다. 이 해에 낭지(朗智)법사가 역시 처음으로 영취산(靈鷲山)에서 불법을 열었으니, 대교(大敎)의 흥하고 쇠하는 것은 반드시 원근(遠近)이 동시에 서로 감응한다는 것을 여기서 믿을 수 있다. 원화(元和) 연간(806~820년)에 남간사(南澗寺)의 사문(沙門) 일념(一念)이 촉향분예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는데, 이 사실을 매우 자세히 실었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 권 3 제3신흥법, 원종흥법 염촉멸신,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는 같은 형태와 크기로 마주 서 있다. 당간지주 아래 위에 둥근 구멍을 뚫었고 안쪽에 +자 모양의 홈을 판 것이 특징이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경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며, 그 구조가 단순하며 안정감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당간지주.>

절터는 당간지주에서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 있는데 현재 마을의 모습이 옛 사찰의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사 건물에 사용하였던 초석이나 기단석 등은 민간에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하며, 마을에는 당간사에서 사용하였던 우물인 당간사지 석정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간지주 주변으로 옮겨 놓은 주춧돌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들>

OLYMPUS DIGITAL CAMERA<남간사지 절터와 마을>

경주 남간사지 석정<마을에 남아 있는 석정>

경주를 지키던 중요한 방어시설인 남산신성이 절터 뒷편에 있다. 남산신성 아래에 신라 7대 일성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산신성>

OLYMPUS DIGITAL CAMERA<당간사지가 있는 마을 앞 들판.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탄생신화가 있는 경주 나정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성왕릉에서 내려다 본 남간사지 주변.>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909호, 경주시 탑동
당간은 절에서 불교 의식이 있을 때 불.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남간사는 해목령을 뒤로하여 서남산에 있었던 절로, 지금은 주춧돌과 우물 등이 남아 있다. 법당 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3.6m 높이로 당간지주가 서 있다. 또한 두 기둥은 동서로 70cm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윗부분과 옆모서리를 다듬었고 안쪽은 +자 모양의 홈을 판 것이 특이하다. 아래위에 둥근 구멍을 뚫었는데 그 구조가 단순하며 안정감을 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년
  4. 삼국유사,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