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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마을에 있는 옛 담장(등록문화재)이다. 남사마을은 18~20세기에 지어진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로 오래된 토담과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양반들이 살았던 큰 고택에는 흙과 돌로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려 놓은 높은 토담들이, 서민들이 살았던 가옥에는 나지막한 돌담들이 남아 있다. 전통마을에서 경제력과 신분에 따라 다양한 재료와 형식으로 쌓은 담장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7-20220222<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인 이씨고가 앞 돌담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6-20220222<이씨고가 앞 담장과 대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1-20220222<최씨고가 앞 담장과 대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0-20220222<최씨고가 골목길 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3-20220222<사양정사 앞 담장과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2-20220222<마을 중심부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5-20220222<마을 바깥쪽 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3-20220222<골목길 담장>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9-20220222<남사마을>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남사마을의 옛 담장은 마을 주민들이 남사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강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담장 하부에 길이 50 ~ 60cm 정도의 큰 막돌로 2~3층을 쌓은 다음 그 위에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지리산 길목에 있는 남사마을은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지은 전통 한옥 40여 채가 남아 있어 담장과 한옥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통영 해저터널

경남 통영시 당동에 있는 통영 해저터널이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건설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통영 도심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일제강점기에 선박을 통행을 위해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지협에 통영운하를 개설하면서 같이 건설되었다.  터널은 길이 483 m, 폭 5 m로 해수면 아래 10 m 정도의 깊이에 있다. 광복 이후 통영운하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설되면서 지금은 보행자 통행만 가능하며 사실상 관광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통영 해저터널 08-20220220<통영 해저터널>

터널 입구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통영군수가 지은 것이라 한다. 터널 입구에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왕대공 트러스 구조로 만들어진 복도형태로 구조물로 연결되어 있다.

통영 해저터널 01-20220220<통영 도심 터널 입구>

통영 해저터널 16-20220220<터널로 연결되는 통로>

통영 해저터널 13-20220220<안쪽에서 본 통로>

터널은 통영운하를 개설할 때 양쪽에 방파제를 막고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터널을 만든뒤 방파제를 철거하여 바닷물을 통과시켜 해저터널을 완공하였다. 해방 이후 통로 양쪽에 상수도관 등을 묻은 구조물이 추가되면서 폭이 좁아졌다.

통영 해저터널 14-20220220<터널 입구>

통영 해저터널 12-20220220<터널 내부>

해저터널이 보행자 공간으로 바뀌면서 관광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터널 중간에는 해저터널과 통영을 소개하는 공간이 있다.

통영 해저터널 10-20220220<터널 중간>

통영 해저터널 09-20220220<미륵도로 이어지는 터널>

통영 해저터널 07-20220220<미륵도 출구 부근>

통영 해저터널 06-20220220<미륵도 출구>

통영 해저터널 05-20220220<나가는 길>

통영 해저터널 03-20220220<일제강점기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목조구조물>

통영 해저터널 02-20220220<미륵도 방면 출구>

통영 운하는 일제가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 지협을 준설하여 건설한 것으로 길이 1,420 m, 너비 42 ~ 55 m, 간조수심 3.1 m 규모이다. 해저터널과 함께 1932년에 완공되어 부산과 여수 사이 연안항로에 이용되고 있다. 원래는 너비 10 m 정도의 좁은 물길로 간조시에는 걸어서 지나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선들이 이곳 물길을 더 크게 내어 도망치려 했다고 하여 ‘판데목’이라 불렀다.

통영 해저터널 15-20220220<해저터널 위 통영운하>

통영 해저터널 11-20220220<통영운하>

통영 해저터널, 국가등록문화재
통영 해저터널은 1932년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로서,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 간 거리 단축을 위해 만들어 졌으며,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해수면 아래 최대 10m 깊이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공사의 시행이 일제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인력과 자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옛 서울특별시 청사,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공공건축물.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오랜 세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특별시 옛 청사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준공되어 경성부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2008년까지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지상 4층의 철근콘그리이트 건축물로 르네상스 양식을 잘 따르고 있지만, 장식성을 배제한 외관, 실용적인 내부 공간 배치 등 근대 건축의 특징도 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여러차례 수리와 증축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지금은 서울도서관으로 기능이 바뀌면서 전면적으로 리모델링되었다. 건물 전면, 옥탑 및 돔, 중앙홀은 원형대로 보존하였으며, 대회의실인 태평홀은 지하로 이전하여 재현하였다. 또 시장실과 기획상황실은 마감재 등은 원형을 유지하였다.

일제는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한양의 중요한 축이었던 경복궁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육조거리에 남북으로 일직선이 되게 총독관저, 조선총독부, 경성부청, 서울역을 배치하였다. 총독관저는 ‘大’, 조선총독부는 ‘日’, 경성부청은 ‘本’ 자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은 세 건물 중 경성부청 청사였던 이 건물만 현재 남아 있다. 일제가 이곳에 경성부청을 옮긴 것은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을 건축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정궁이었던 경운궁(덕수궁)의 상징적 의미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청 앞에 있던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환구단에는 조선호텔을 비롯하여 상업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처음 세워진 이래 90여년 동안 지금의 자리에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옛 서울시 청사. 지상 4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나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건물과는 달리 장식적인 면이 거의 없다.

1965년 4월 27일 서울특별시청
1960년대 서울특별시청의 모습과 그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이 당시 서울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들의 모습과 덕수궁 담의 형태, 시청 앞 광장의 모습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시청 하늘 위에는 ‘시민의 날(4월28일)’을 알리는 5개의 애드벌룬이 떠 있다. 사진에 더해진 정보 중 주황색 글은 실제하는 지명과 건물에 대한 것이고, 흰색 정보는 역사에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이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50년 전인 1965년에 찍은 서울시청과 주변 사진.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앙 현관 출입문.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 거의 대부분 있었던 차량이 멈출 수 있는 포치(Porch)가 없다. 업무 중심으로 지어진 근대적인 공공건축물의 특징과 경성부청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주고 있다.

옛 청사의 구조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조체는 기둥과 보, 바닥 슬래브로 이루어져 있다. 고층에 해당하는 중앙 옥탑 코어 부분과 태평홀의 안족 기둥은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트러스 지붕을 얹었다. 기초는 청사부지가 습기가 많고 연약한 지반이라 파일을 바았는데 깊이를 15~18척으로 하여 신축 당시 특허 받은 압축기식 항타기초로 시공하였다고 한다. 사무실 복도 옆 통로에는 직경 5촌, 길이 15척의 생 소나무 원목을 박아 지반을 보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특별한 장식이 없는 4층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검물이다. 1층 외벽에는 화강석을 붙였으며,

벽체
중앙옥탑코어 및 태평홀은 철골철근콘크리트조, 나머지는 철근 콘크리조로 하고 기둥 사이는 벽돌조의 ‘커튼월’로 되어 있다. 외벽면 아래쪽은 화강석 붙임을 하고 상부는 석재 뿜질로 마감되어 있으며, 옥상 바닥부분에는 석재돌림띠와 난간벽 위에는 두겁돌이 설치되어 있다. 상부의 석재뿜칠 면은 신축 당시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리싱이라는 재료로 마감되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시 청사 1층. 외벽은 화강석을 붙여 마감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상 2~4층 외벽과 창호. 외벽은 석재뿜질로 마감했다.

창호
옛 청사에 설치되었던 창호는 수량이 800여 개에 달하며, 내부창호 일부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신축 당시의 창호는 방화셔터나 외부 덧창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목재창호였다. 창의 경우 외부창은 준공 당시 목재 오르내리창이었다. 사용하면서 원래의 목재창틀에 알루미늄새시를 설치하였는데, 공사중에 원래의 창무틀은 보존처리 및 보수를 하고 그 위에 열손실과 차음을 고려하여 새로운 알루미늄새시(내부는 목재)를 설치하였다. 색상은 준공당시의 색상인 연한 청색으로 마감하였다. 문은 중앙현관 주출입구와 중앙홀 창고 및 승강기실 문 등은 준공 당시 티크원목에 바니시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앙현관 주출입구는 원래와 유사하게 사용중에 새로 교체되었고 실내의 문틀 및 문짝은 대부분 원래의 것이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첨탑에 전시해 놓은 창틀.

오르내리창
창에 추를 달아 문틀 윗부분에 댄 도르레에 줄로 걸어 창이 오르내릴 수 있는 창이다. 창틀 양쪽의 선틀에 추상자를 만들어 창무게(유리와 칠 무게 포함)와 평형이 되는 주철제 추(지름 40mm, 길이 450mm)를 상부의 도르래에 면사를 꼬아서 만든 줄로 매달아 놓았다. 추는 창 한짝에 좌우 2개를 매달고, 창은 상하 두짝이 따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선틀의 추상자 속에는 2개의 추를 분리하는 널을 설치하였으며, 추상자는 판재로 막고 하부에 점검 할 수 있는 뚜껑을 설치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청사 중앙 현관 로비. 정면에 폭이 넓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연결되며, 양쪽으로 사무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다.

바닥
현관은 화강석물갈기로 마감하고, 1층 홀 및 동,서쪽 계단은 대리석으로 중앙홀은 모자이크타일로, 사무실은 리놀륨을 특별한 실은 융단을 깔았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1층 사무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지금은 서울도서관 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서관 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는 옛 1층 사무공간.

OLYMPUS DIGITAL CAMERA2층 로비. 서울시청 로비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양쪽에 도서관 자료가 있는 열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신청사와 연결되는 연결통로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특별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2층 일반자료실.

OLYMPUS DIGITAL CAMERA3층 로비. 3층에는 서울시장실,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문화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자료실
서울특별시의 행정과 정책에 대한 모든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서울시정개요’, ‘서울도시기본계획’, ‘올림픽백서’ 등 3만여 권의 자료를 직접 열람할 수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서울자료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 기록문화관.

옛 시장실.기획상황실
이곳은 서울시 옛 청사의 시장실 및 기획상황실 공간이다. 옛 시장실은 해방 이후부터 2008년 5월까지 60여 년 동안 역대 서울시장이 사용했던 집무공간이었다. 시장실은 시청사 3층 정중앙에 위치하며 집무실.접견실.비서실.탕비실.개인화장실.대기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획상황실은 서울시정의 심장부로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 전문가, 시민이 다양한 의제에 대해 보고받고 심의.결정했다. 본래 옛 청사 3층의 동쯕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비서실 공간으로 옮겨 재현하였다. 이밖에도 옛 청사 3층에는 행정 1.2부시장과 정무부시장 집무실, 대회의실인 태평홀 등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3층 옛 서울시장 집무실.

서울특별시 옛 시장실
옛 서울시장 집무실과 접견실, 기획상황실이 복원되어 상설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역대 서울시장의 모습과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 주요 시정 기록물, 서울의 역사 연표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집무실에 걸려 있는 역대 서울시장들.

OLYMPUS DIGITAL CAMERA접견실.

OLYMPUS DIGITAL CAMERA접견실 창문


현관 허리돌림띠와 중앙홀 걸레받이는 대리석을 사용하고, 귀빈실 등 특별한 실은 징두리벽을 설치하고 벽지로 마감되어 있다. 그 이에 내벽은 하얀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시청 기획상황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서울청사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는 5층 돔으로 올라가는 계단.

돔 및 첨탑
옛 청사의 지붕은 전체적으로 평슬래브로 이루어진 지붕을 갖고 있지만, 중심축에 위치한 정면부에는 상징적 요소로 동판을 덮은 돔을 설치하였다. 돔은 일반적으로 원형을 하고 있지만 옛 청사에서는 사각형으로 낮게 이루어져 있다. 철골트러스 구조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목재를 설치 후 판재를 깔은 후 동판을 평판잇기로 하였다. 돔 위에 첨탑을 설치하였는데 목재로 형태를 만들어 세우고 외부 면을 동판으로 장식하여 둘렀다. 전체 높이는 4,132m로 하부는 기단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위로 박공을 둔 창모양의 벽면이 4면에 설치되어 있다. 그 위로 8면으로 분할한 원주가 서고, 원주 상부에 수평띠를 둘렀으며, 그 위에 철퇴 모양의 구(球)를 올린 후 피뢰침을 설치하였다. 돔은 중앙홀 내부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철골트러스를 둔 상태에서 유리돔으로 바뀌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옛 서울시 청사 돔과 옥상. 구형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총독부 청사나 한국은행 청사와는 달리 낮은 사각형 돔을 사용하고 있다.

지붕
철근콘크리트 슬래브 위에 아스팔트방수를 한 평지붕이고, 중앙의 돔지붕 및 배면의 태평홀 경사지붕은 철골 트러스 구조 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설치하고 목재를 설치 후 판재를 깔은 후 동판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돔 내부.

천장
현관 및 계단실, 1~3층 사무실 천장은 콘크리트 바탕에 회반죽 바르기를 하였고, 중앙홀 및 복도, 4층 사무실은 목조반자틀에 졸대를 설치하고 회반죽 바르기를 하였다. 보와 벽, 그리고 천장과 만나는 부분, 모서리 등은 장식문양을 석고로 만들어 붙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돔천장. 리모델링하면서 내부에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리천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돔 내부는 이 건물의 옛 흔적들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각종 건축부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옛 청사의 첨탑, 참호 마감.

OLYMPUS DIGITAL CAMERA목재 징두리벽, 3층 목재문틀, 각종 출입문들, 2층 중앙홀 목재 환기창

OLYMPUS DIGITAL CAMERA3층 시장집무실 목재커튼박스, 3층 내부복도 목재창

OLYMPUS DIGITAL CAMERA태평홀 아치 석고장식, 1차형틀

OLYMPUS DIGITAL CAMERA창호철물

OLYMPUS DIGITAL CAMERA돔하부 장식벽 동판, 돔지붕 동판, 첨탑내 하부 모서리 목재

OLYMPUS DIGITAL CAMERA목재 콕센트박스, 배터리, 선홈통받이, 도르레, 검 도장,

옛 청사의 내.외부 마감재

OLYMPUS DIGITAL CAMERA목심박힌 적벽돌, 중공적벽돌, 원형철근, 대리석 걸레받이, 바닥 모자이크타일

OLYMPUS DIGITAL CAMERA중앙홀 기둥주두 석고장식, 중앙홀 기둥모서리 석고장식, 계단실 창 모서리 석고장식, 4층 중앙홀 원형기둥 상부 석고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초배지

OLYMPUS DIGITAL CAMERA태평홀 보 상부 수평 석고장식

OLYMPUS DIGITAL CAMERA보 상부 석고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중앙홀 천장틀 및 회반죽 바르기, 천장 환기구, 천장 석고장식

회반죽 바르기
내부 바름벽 재료인 회반죽은 소석회, 여물을 해초풀로 반죽한 것이다. 바탕면에 균열방지와 탈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염을 마름모형으로 작은 못으로 박아대고 바탕 바르기를 하여 면을 평탄하게 만든 후 그 위에 고름질, 잔고름질, 재벌, 정벌바름을 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중앙홀 철골기둥 주작

OLYMPUS DIGITAL CAMERA철골 구조물

OLYMPUS DIGITAL CAMERA철골구조물.

OLYMPUS DIGITAL CAMERA철근콘크리트 보 및 슬래브

OLYMPUS DIGITAL CAMERA지정말목

군기시터 발굴현장 북쪽 끝 근대 문화층에서 확인된 나무말뚝으로 기초 하부의 연약한 지층의 지내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 나무 말뚝은 일제강점기 때 건물 기초시설로 추정된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옛 청사 외벽. 독일제풍인 리싱을 발랐다.

리싱 바름
외벽 마감 재료인 리싱은 독일제품으로 규산석회가 주성분이다. 입자에 따라 대, 중, 소 3가지가 있으며, 색채가 다양하나 옛 청사에는 흰색의 중간 크기 입자를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옛 청사에 처음 사용되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옛 청사 리모델링 공법 모델.

뜬구조 공법
옛 청사의 원형보존 구간인 중앙홀 및 전면외벽을 존치한 상태에서 지하 골조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뜬구조 공법을 도입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서울시 옛 청사의 역사
조선시대 한성부 청사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 동쪽의 세번째 자리에 있었다. 17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청사였다. 19세기 후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 앞쪽으로 옮겼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청사를 옮겼다. 일제강점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고 청사는 중구 충모로 1가(현 신세계백화점)에 있었다. 1920년대 들어 시세가 팽창하자 일제는 청사 신축을 계획하고 1923년 2월 당시 경성일보사가 있던 자리로 위치를 선정하였다. 당시 위치 선정 배경에는 건립 중이던 조선총독부 청사와 함께 덕수궁(경운궁)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일제는 1924년 신청사를 착공하여 1926년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에 새청사를 준공하였다. 광복 후 서울시는 경성부 청사를 그대로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하였으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시정업무의 확대 등으로 1987년까지 6차례의 증축과정을 거쳐 확장되었으며, 내.외부 공간의 개보수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행정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공간의 변용이 요구됨에 따라 시민의 행정, 문화, 예술, 사회생활의 중심공간으로서 자치시대의 자유로운 개방공간을 확보하고자 새로운 청사를 짓고 옛 청사는 서울도서관으로 조성하는 공사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시행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시울시청 옥상 공원. 덕수궁을 비롯하여, 서울시청광장, 광화문 대로 등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명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시청과 마주 하고 있는 프리자 호텔

OLYMPUS DIGITAL CAMERA숭례문과 서울역으로 연결대는 광화문 대로.

OLYMPUS DIGITAL CAMERA울창함 숲으로 둘러 싸인 덕수궁.

OLYMPUS DIGITAL CAMERA대한성공회 성당과 서울시의회(옛 국회의사당)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 대로.

OLYMPUS DIGITAL CAMERA옛 서울시 청사과 신청사.

서울시 옛 청사, 일제강점기,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 옛 청사는 일제강점기인 1026년 경성부 청사로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광복 후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좌우 대칭적인 정면성과 입면과 평면의 3분할 구성 등 르네상스 양식의 기본 틀을 갖추면서도 대지 형태에 맞춘 합리적인 배치, 개방형 사무 공간, 장식성을 배제한 수수한 외관 등 역사주의 건축 양식에서 근대주의 건축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시정의 확대로 수차례 증축과 개수와 보수작업이 이루어졌는데, 21세기 행정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고, 세계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뒤편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다. 신청사 건축으로 내부와 외관 일부가 변경되었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새단장 공사를 거치면서 서울도서관과 전시관, 역사관을 갖춘 시민 문화 공간이 조성되었다. 이 건물은 옥탑과 전면 파사드(facade), 현관과 중앙 홀 등 주요 부분에 건립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당시의 건축 기술 수준을 가늠할 수 있으며, 주변의 덕수궁과 성공회 성당, 구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등과 함께 서울 태평로 일대의 역사적 도시 경관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강릉 임당동 성당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에 위치한 임당동성당이다. 이 성당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인 195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웅장하거나 화려한 멋은 없지만 다양한 양식을 접목시켜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에 지어진 영동지방 성당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당시 시대 상황이나 건축양식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근대건축물에 해당하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임당동성당은 1931년 강릉읍 임정이라는 곳에 처음 세워졌다가 193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강릉도호부 관아인 임영관이 주변 지역으로 읍치(邑治)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강릉 임당동성당.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기에 지어진 성당건축물로 화려하거나 웅장함은 없지만 전통 성당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낡았지만 세련된 느낌을 준다.

SANYO DIGITAL CAMERA성당 정면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첨탑은 교회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 큰 교회에는 종루역할도 하지만 이 성당은 교회건축물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만 갖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성당 측면. 북쪽편에는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으며, 제단 근처에는 약간 돌출된 익랑을 두고 있어 전체적으로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이 있는 남쪽편 측면.

SANYO DIGITAL CAMERA성당내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이다. 간결하면서 세련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강릉 임당동성당,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1950년대 강원도 지역 성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외관의 뾰족한 종탑과 지붕 장식, 첨두형 아치 창호, 부축벽을 이용한 입면구성 및 내부의 정교한 몰딩구성 등 의장기법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서울 구대법원청사, 서울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대법원 청사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구 대법원청사이다. 이 건물에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법원 건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지하1층, 지상3층의 근세 고딕풍 건물로 철근콘크리이트조와 벽돌조 구조에 화강석과 갈색타일을 붙여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中庭)이 좌우대칭을 하고 있는 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아치형 포치(Porch)가 돌출된 현관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권위주의적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법원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분수가 있는 삼거리가 있고, 그 남쪽편 언덕에 고딕풍의 오래된 건물인 구대법원청사 건물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김장생, 이황 등 유명인사들이 살았던 곳으로 구한말에는 육영공원, 독일영사관, 독립신문사옥 등이 자리잡았던 유서깊은 곳이다. 구한말 사법기관인 평리원(平理院: 한성재판소)이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사법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대법원 이전 이후 건물구조 등의 문재로 전면부를 남겨놓고 리모델링하여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접근성 등의 장점으로 다양한 해외 걸작들의 순회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덕수궁 부근 정동길에서도 높은 언덕에 위치한 구대법원청사. 일제강점기에 법원청사로 지어진 건물로 1995년 서초동으로 이전할때까지 대법원청사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대법원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언덕. 덕수궁 동남쪽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등기소 등 공공기관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대법원과 관련된 공공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대법원청사 오르는 길. 원래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었겠지만 지금은 숲속길로 탈바꿈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사는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 외형에서도 일제강점기 공공기관 건물에서 보여주는 위압적이면서 권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 근대적인 사법기관인 한성재판소가 들어선 이래 법조타운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3개의 아치가 있는 포치(Porch)현관을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외장은 화강석과 갈색타일을 붙였으며, 아치모양의 창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치형 현관 내부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현관 내부에서 본 청사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건물 내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전면부를 제외하고는 새로 신축한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미술관 1층. 건물내부가 원래 건물 형태와 완전히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중앙 로비가 3층까지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넓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르느와르 특별전이 열렸을 때의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은 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이다. 세계적인 걸작들이 순회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가장 선호하는 공간인 것 같다.

SANYO DIGITAL CAMERA2층 전시실 입구.

SANYO DIGITAL CAMERA미술관 3층 휴게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구대법원청사

OLYMPUS DIGITAL CAMERA구대법원청사 앞 마당. 숲으로 가려져 있지만 덕수궁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이다. 마당 앞 숲에는 야외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미술관 티켓박스.

OLYMPUS DIGITAL CAMERA배재학당 앞 정동길로 나가는 길.

육영공원 터, 육영공원은 정부에서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서양학문을 가르쳤다, 1886년 9월 설립 당시부터 1891년 박동(현 수송동)으로 옮겨가지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독일영사관터, 독일영사관은 1884년 이곳에 있던 육영공원과 자리를 맞바꾸면서 정동시대를 열었다. 1902년 다시 상동(현 남창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독립신문사 터,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으로 한글판과 영어판 두가지로 발간하였다. 1896년 4월7일 창간할 때부터 1899년 12월4일 폐간될 때까지 사옥이 이곳 독일영사관터 안에 있었다. <출처: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청사 마당과 정원은 퇴계 이황 집터, 김장생(金長生)의 생가터 등 권문세가들의 저택이 있었던 유서깊은 자리이다. 이 곳에 구한말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을 비롯하여, 독일영사관, 독립신문 등이 자리잡기도 하였다. 정원에는 현대 미술 조작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미술관 앞 마당에 전시된 작품.

OLYMPUS DIGITAL CAMERA숲의 수호자, 최우람 작, 2006, 스테인레스 스틸

OLYMPUS DIGITAL CAMERA생각하다, 배형경 작, 2012년, 청동

구 대법원청사, 등록문화재237호, 1928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이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경성재판소 건물이다. 그 자리는 조선말 개화기 때 평리원(平理院, 한성재판소)이 세워졌던 곳이다. 이곳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근세 고딕풍으로 지은 것이다. 뾰족 아치가 아닌 반원형 아치를 사용함으로써 장중함을 더하고 있다.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조와 벽돌조 구조에 화강석과 갈색타일을 붙였다. 건물의 평면은 日자로 만들었는데, 중앙계단과 연결통로를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中庭) 두개가 있어 좌우대칭을 이루었다. 법원 단지가 이전된 후 서울시가 이 건물을 인수하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개조공사를 하였다. 공사 중 구조적으로 약화된 부분들이 드러나 정면의 벽판만 보존하고 나머지 부분은 철거하여 새 건물을 이어 지었다. 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 보존 방법 중의 하나인 정면보존 방법의 사례이다. <출처:문화재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