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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위치한 마애삼존불입상(국보)이다. 이 불상은 마애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사각형의 감실안에 보살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여래상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는 삼존불상이다. 오른쪽에는 약사여래, 왼쪽에는 석가여래, 가운데에 작은 크기의 관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아래쪽에는 백제시대 연화대좌가 확인되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불상의 얼굴은 상당부분 훼손되어 확인이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을 입체감이 돋보이며, 조각수법도 뛰어난 석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한반도와 중국간 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태안반도에서 비교적 높은 봉우리에 속하는 백화산(284m)에 중턱 천수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던 6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불교를 중국 남조로부터 받아들였으며, 남조의 여러 왕조와 깊은 관계를 가졌지만, 이 삼존불상은 중국 산동지방 북제의 석굴사원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상(국보84)에 선행하는 양식을 가졌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307호)>

가운데 관음보살을, 양쪽에 약사여래와 석가여래 입상이 있고 가운데에 관음보살을 배치한 특이한 형태의 삼존불상이다. 감실모양의 암벽에 불상을 새긴 마애불상으로 양감이 풍부하고 입체감이 있어 보이며, 조각수법 또한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던 6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불교가 전래된 초기 불상 형태이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국보 307호, 백제시대,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중턱에 있는 높이 394cm, 폭 545cm의 감실모양의 암벽에 새겨진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이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과는 달리 중앙에는 보살, 좌에는 석가여래, 우에는 약사여래불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또한 좌우의 여래상은 큰 반면에 중앙의 관세음보살은 작아 1보살.2여래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통견의 불의가 두껍고 힘차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는 등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양식상으로 중국 북제 불상양식의 계통을 따르고 있어 제작연대는 6세기로 추정된다. 지리적으로 당시 삼국시대 중국과의 교역에서 다리역할을 했던 태안반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새로운 석굴사원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태안군청>

OLYMPUS DIGITAL CAMERA양쪽의 여래상은 크게, 가운데 보살상은 작게 만들었다. 얼굴은 훼손되어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들지만 양감이 풍부하고 입체감이 있는 등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의 발 아래에 연화대좌는 삼국시대 백제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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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편은 여래입상은 석가여래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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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작게 표현된 입상은 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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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는 약병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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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 입상.

SANYO DIGITAL CAMERA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여래상(국보84호)이다. 여래입상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을 배치하고 있다. 태안의 삼존불입상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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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상(Buddha Triad Stutue with Mandorla, Commissioned by Jia Zhiyuan), 북위 정광6년(525), 칭저우시 출토, 贾知渊(Jia Zhiyuan)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기록된 삼존불상이다. 광배가 있는 삼존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입상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광배 주위에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산동지방과 백제의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보호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태안 천수만과 서해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태을암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수만. 주위 높은 산이 거의 없다.

태안마애삼존불, 국보307호,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기슬, 백제 6세기 중반
높이 306cm의 태안마애삼존불은 보통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과는 달리 중앙에는 보살, 좌우에는 여래를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여래불의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껍고 힘차게 처리되어, 앞자락이 두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는 등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보살은 여래보다 작게 표현되었고, 보주를 들고 서 있은 형식으로 다리에 x자형으로 교차된 옷자락을 표현한 양식이 부여 군수리보살입상과 비슷하다. 양식상으로는 북제 불상 양식의 계통을 따르고 있어 제작연대는 6세기로 추정된다. <출처:공주박물관>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석굴사원에 조성된 통일신라 마애불상

경북 경북면 양북면 안동리에 위치한 골굴암(骨窟庵)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보물)이다. 경주 토함산 동쪽편 기림사 골짜기의 높은 암벽에 위치한 자연굴을 이용해 만든 석굴 중 가장 윗부분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상이다. 자연석의 석질이 고르지 않이 일부 손상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입체감이 돋보인다. 머리위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의 윤곽이 입체적이면서 뚜렷하다. 얼굴에 비해 신체는 평면적이며 넓게 표현되어 있다.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을 이루며, 굴곡을 표현한 V자형 무늬가 있다. 뒷편에는 암벽에 광배를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여러 특징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굴암은 토함산 석굴암처럼 인도와 서역에서 주로 조성된 석굴사원을 구현한 것으로 보이는 암자이다. 멀리 양북면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언덕 아래 12개의 작은 자연굴에 불전을 마련하여 암자를 형성하고 있다. 이 불상은 그 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주불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 남겨놓을 정도로 당시에도 유명했던 곳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보물)>

골굴암은 계곡 바위에 12개의 굴을 파고 조성한 일종의 석굴사원이다. 양동면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다. 작은 암자이지만  특이한 입지와 주변경치가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 남겨놓을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골굴암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굴굴암으로 올라가는 길.>

불상은 자연석을 부조형식으로 조각하였다. 바위의 석질이 양호하지 않아 일부 훼손되기는 하지만,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이다. 얼굴은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반해, 몸체는 평면적이다. 머리 주위로 광배를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골굴암 마애여래좌상(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골굴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조선시대까지는 목조전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바깥세상에서 올려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 암자에서 보이는 불상>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보물591호,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이 불상은 골굴암의 주존불로 동남쪽을 향한 암벽의 약 4m 높이에 새겨져 있다. 높다란 상투 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태 등은 형식화가 진행된 9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건장하지만 평면화된 신체, 얇게 빋츤 듯 계단식으로 평행되게 한 옷 주름, 무릎에서 형식적으로 나타낸 물결모양의 옷주름과 겨드랑이 사이에 팔과 몸의 굴곡을 표히한 V자형 무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광배는 불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기림사사적기, 祇林寺事蹟記』에는 골굴암에 열두 굴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은 그 주불인 듯하며 만든 시기는 9세기경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경주 골굴 석굴도」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어 있으나 지금은 곳곳에 가구의 흔적만 남아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5년)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