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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보물 1324호), 회화적 기법이 돋보이는 고려시대 불상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소래산(해발 299.6 m) 중턱에 있는 마애보살입상(보물 1324호)이다. 장군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에 5 mm 정도의 얇은 선으로 보살상을 새겨놓고 있다. 머리에는 둥근 보관을 쓰고 있으며 목에선 삼도가 굵은 띠처럼 새겨져 있고 꽃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은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각진얼굴, 덩굴무늬가 새겨진 보관, 양어깨를 덮은 옷 등이 특징이다. 높아 12 m의 대형 불상으로 회화적인 기법이 돋보인다. 고려초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거대불상 조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1-20191112소래산 중턱 바위에 새겨진 마애보살입상(보물 1324호)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6-20191112
높이 12m 정도의 거대 불상으로 5 mm 정도의 얕은 선를 바위에 새겨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나 신체, 의복 등 세부적인 표현이 섬세하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4-20191112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데 얼굴은 네모형을 하고 있으며 귀를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고 있다. 보관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라 불리는 선이 새겨져 있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5-20191112몸에는 선으로 섬세하게 의복을 표현하고 있다. 단순하면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불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표현기법과 비슷해 보인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3-20191112등산로에서 보이는 불상.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02-20191112불상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시흥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1324호, 고려시대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은 소래산 중턱에 있으며 병풍바위 또는 장군바위라 불리는 암벽에 얇은 선으로 새겨져 있다. 머리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졌으며, 보석으로 꾸며진 원통형의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데, 관의 양옆으로 좁은 관 띠가 휘날리고 있어 특이하다. 얼굴은 갸름하고 눈, 코, 입이 큼직하며, 양쪽 귀는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또한 목에는 삼도라고 불리는 선이 새겨져 있어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인 법의는 배에서부터 규칙적인 반원을 그리며 무릎까지 물결치듯이 유려하게 흘러내렸다. 또한 가슴에는 속옷을 묶은 띠매듭이 선명하다.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쓴 모습이나 이목구비가 큼직하게 표현된 것은 고려 전기 석불 조각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손갖춤에서 오른손은 가슴으로 올려 바깥쪽으로 향하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고 있다.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발꿈치를 붙이고 양쪽으로 발 끝을 벌린 자세를 하고 있는데, 발가락의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이 입상은 전체 높이 약 12.2 m(머리 높이 3.4 m, 보석 관 높이 1.4 m), 어깨너비 약 3.7 m, 연꽃 모양 대좌 너비 약 4.7 m에 달하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석조 불상 조각 중에는 매우 큰 편이다. 새긴 선의 깊이가 5 mm 정도로 얇음에도 기법이 뛰어나며 마치 그림을 그린 듯이 표현되어 있어 세련되다. (안내문, 시흥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흥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 통일신라 초기를 대표하는 불상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절터에 남아 있는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이다. 이 불상은 자연암벽을 파서 석굴사원 형태의 공간을 만들고, 높이 4.3 m의 거대한 불상을 조각해 놓았다. 얼굴은 크고 널직하여 양감이 풍부하며, 체구는 당당한 편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불상 뒷편에는 광배가 조각되어 있는데 작은 부처가 곳곳에 조각되어 있다. 얼굴을 형태나 신체의 표현 등을 고려해 볼 때 주변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등과 비슷한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크고 웅장하며 양식적으로 통일신라초기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 높이 4.3 m의 거대불상이다. 일반적인 석조불상처럼 보이지만, 바위에 새긴 마애불상으로 입체감이 돋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 뒷편 머리광배에는 연꽃무늬를 정교하게 새겨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체 뒷편 광배에 새겨진 작은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또다른 작은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마애여래좌상. 바위에 돋을새김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보호각에 모셔진 불상. 불상이 있는 이곳은 봉화읍에서 십여리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부석사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했다는 ‘한절’이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가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국보 201호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마애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 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삼존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보물 680호)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보물 680호)이다. 이 불상은 바위에 4면에 불상을 새겼던 것으로 지금은 삼존불상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으며, 나머지 면은 닳아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얼굴의 형태나 옷주름의 표현, 광배 등에서 불교가 전래되었던 삼국시대에 많이 조성되었던 바위에 새긴 삼존불상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 입체감있으며, 표현이 부드러운 편이다. 불상의 규모가 크지는 않으며, 조각수법이나 양식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근 영주 가흥동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와 비슷한 형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보물 680호). 바위의 4면에 불상을 새긴 사방불상으로 지금은 앞면의 삼존상만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 사방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본존불과 협시보살상 얼굴. 뒷면에 불꽃무늬 형태의 광배를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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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높이 149 cm의 본존불. 결과부좌를 하고 있는 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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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옆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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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서 본 모습. 단순하면서도 입체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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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면 불상은 그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옆면.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은 길 옆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지금은 보호각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보물 680호, 경북 영주시 이산면 한성로
이 불상은 삼국시대 말기 또는 통일신라 시대 초기에 돌에 새긴 불상이다. 바위 네 면에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긴 이 석불은 일부 닳았지만 한 면의 삼존불상만은 뚜렷하다. 결가부좌한 본존불이 가운데 앉아 있고, 양 옆에 본존을 모시는 보살이 서 있다.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가름하며 어깨가 딱 벌어져 있다. 양 어꺠를 덮은 옷은 앞가슴이 U자형으로 터졌으며 여기에 속옷을 맨 띠 매듭이 표현되었다. 양 옆에서 본존을 모시는 보살 역시 불꽃 무늬가 새겨진 두광을 지니고, 머리에 관을 썼는데 체구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으며 옷자락이 묵직한 점 등이 본존불의 양식과 비슷하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세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있어 이 불상은 7세기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사방 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본존 불상의 높이는 149 cm이고, 본존을 모시는 양 옆 보살상의 높이는 좌우 각각 108 cm와 112 cm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이다. 영주시 도심 서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긴 마애삼존상과 작은 여래좌상이다. 삼존상는 큼직한 체구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새겨져 있다. 본존상은 큼직한 코, 다문입, 둥글고 살찐 얼굴 등에서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오른쪽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보병을 들고 있다. 삼국시대 삼존불상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옆에 있는 여래좌상도 크기는 작지만 생동감이 넘치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 영주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 삼국시대 삼존불상 양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마애삼존여래좌상. 입체감있게 표현한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003년 새로 발견된 마애여래좌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새겨진 바위. 아래쪽에는 삼한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곳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불상은 커다란 자연 화강암벽을 쪼아서 가운데 넓은 면에는 앉아 있는 형상의 본존을, 좌우에는 서 있는 형상의 협시보살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상은 상당히 큰 체구로 백발의 머리 위에 큼직한 상투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을 팽팽한 뺨, 큼직하고 듬직한 코, 꽉 다문 입 등으로 장중하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왼쪽 보살상은 가슴이 넓고,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을 배에 댄 표현 등에서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오른쪽 보살상은 비슷한 수법으로 표현되었지만, 보관에 보병이 묘산된 점이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은 다르다. 만들어진 시기는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2003년에 새로이 발견된 여래좌상은 목에 삼도가 뚜렷하며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창녕 송현리 마애여래좌상(보물 75호)

경남 창년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 75호)이다. 창녕읍에서 화왕산을 오르는 입구에 있는 비화가야 송현리 고분군 아래에 작은 불전에 모셔져 있다. 있다. 자연암석을 다듬어 돋을새김으로 부처를 새긴 마애불상이다. 높이 1.37 m로 비교적 큰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입체감이 돋보이는 등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사실성이 줄어들고 형식적인 면을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송현리 마애여래좌상(보물 75호).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바위에 입체감있게 불상을 새겼는데, 사실성은 떨어지며 형식적인 면을 보이는 통일신라 후기 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작은 불전.

SANYO DIGITAL CAMERA불상은 비화가야 고분군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절터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 뒷편에 있는 비화가야 고분군(사적 514호)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보물75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자연암석을 반원형으로 다듬어 두드러진 돋을새김으로 부처를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이다. 부처의 뒷부분과 아랫부부은 면을 다듬어 광배와 대좌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 1.37 m의 석불좌상이다. 머리의 큼직한 육계는 이례적으로 2단으로 되었고,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되었다. 손은 악마의 항복을 받고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취했다. 항마촉지인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 당부터 크게 유행하였고, 신라에서는 경북 군위의 석조삼존불상을 시작으로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이 성행하였다. 볼록한 뺨,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늘어진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어깨는 넓지만 가슴은 두텁지 않다. 틀어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있으나 조금 크게 표현되었다. 전체적인 자세와 얼굴, 법의의 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사실성이 약한 법의의 주름, 넓지만 평평한 가슴 등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 하대의 불상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