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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송현리 마애여래좌상(보물)

경남 창년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이다. 창녕읍에서 화왕산을 오르는 입구에 있는 비화가야 송현리 고분군 아래에 작은 불전에 모셔져 있다. 있다. 자연암석을 다듬어 돋을새김으로 부처를 새긴 마애불상이다. 높이 1.37 m로 비교적 큰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입체감이 돋보이는 등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사실성이 줄어들고 형식적인 면을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송현리 마애여래좌상(보물).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바위에 입체감있게 불상을 새겼는데, 사실성은 떨어지며 형식적인 면을 보이는 통일신라 후기 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작은 불전.

SANYO DIGITAL CAMERA불상은 비화가야 고분군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절터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 뒷편에 있는 비화가야 고분군(사적 514호)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보물75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자연암석을 반원형으로 다듬어 두드러진 돋을새김으로 부처를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이다. 부처의 뒷부분과 아랫부부은 면을 다듬어 광배와 대좌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 1.37 m의 석불좌상이다. 머리의 큼직한 육계는 이례적으로 2단으로 되었고,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되었다. 손은 악마의 항복을 받고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취했다. 항마촉지인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 당부터 크게 유행하였고, 신라에서는 경북 군위의 석조삼존불상을 시작으로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이 성행하였다. 볼록한 뺨,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늘어진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어깨는 넓지만 가슴은 두텁지 않다. 틀어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있으나 조금 크게 표현되었다. 전체적인 자세와 얼굴, 법의의 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사실성이 약한 법의의 주름, 넓지만 평평한 가슴 등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 하대의 불상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전남 화순군 운주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운주사 대웅전 뒷편 불사바위가 있는 언덕 아래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높이 5.16m의 거대불상이자 운주사에 남아 있는 많은 불상 중 유일하게 바위에 새겼다. 불상은 눈썹과 코는 양각으로, 나무지 부분은 대부분 음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표현이 투박하고 거친 편이다.

운주사(雲住寺)는 도선국사가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사찰로 창건 연대나 내력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다. 고려 중기부터 고려말까지 지역에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정유재란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는 불상 70여구와 석탑 18기가 남아 있는데, 조선초까지 천여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내 남아 있는 문화재로는 구층석탑(보물796호), 석조불감(보물797호), 원형 다층석탑(보물798호)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높이 5.16m의 비교적 큰 불상으로 운주사에 남아 있는 많은 불상 중 유일하게 바위에 새긴 마애불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의 얼굴부분. 코와 눈썹을 양각으로 표현했으며, 나머지 부분은 대부분 음각으로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애불상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주사.

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마애불은 지금의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40 m 떨어져 있는 거대한 바위의 벼랑에 새겨져 있다. 육계는 두툼하게 솟아 있고 희미한 눈썹과 기다란 코는 양각으로, 귓바퀴는 음각으로 표현되었다. 손을 모으고 있어서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 주름과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 주름이 팔(八)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운주사 석불의 대부분과 같다. 좌대는 8개의 연꽃 무늬가 복련으로 음각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지 말고 무릎까지만 음각 선문으로 표현하였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운주사 석불군 가운데 유일한 마애불이며 광배나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5.16 m 로 규모가 크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보물), 고려초기 양식이 잘 나타난 마애불상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마애여래의좌상(보물)이다. 법주사 바깥쪽에 있는 높이 6m에 이르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통일신라말 혼란기를 거쳐면 크게 쇠퇴한 불상조각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불상으로 연꽃위에 걸터 앉아 이씨고, 발을 큼직한 연꽃잎 위에 올려 놓고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형미도 떨어지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보물 216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로 높이가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볼록 새겨진 이 여래 좌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倚像)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이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뚜렷한 눈더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 등은 길다란 귀, 삼도(三道)의 표현 등과 함께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넓은 어깨에 비해서 유난히 잘록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거의 수평적으로 처리한 조각수법에서도 나타난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보물 216호). 사찰입구에 있는 거대 암반에 얕은 돋을새김으로 미륵불상을 새겨 놓고 있다. 조각수법은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머리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촘촘하게 새겼으며 얼굴은 투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에는 크고 긴 코와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과 함께 두꺼운 입술이 잘 표현되어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을 의자삼아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불상 중에서는 특이한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 바위에는 지장보살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옆쪽 큰 바위에 새겨진 글씨.

OLYMPUS DIGITAL CAMERA바위 반대쪽면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과 글자들이 새겨진 큰 바위들. 개울을 따라 법주사로 들어가는 옛 길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  이때에는 불상을 정비해서 그런지 새로조성한 것처럼 깨끗하다. 지금은 이끼 등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