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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회룡포 (명승 16호),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가면서 만든 경치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에 있는 회룡포(명승 16호)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돌면서 용의 형상을 만들고 있다고 하여 회룡포라 부른다. 낙동강 상류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감입곡류 지형 중 그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손꼽이다. 내성천이 휘감아 돌면서 형성된 마을은 마치 섬과 같으며 강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며 넓은 백사장을 자랑한다. 회룡포 마을의 모습은 건너편 비룡산(240 m) 정상부 아래 회룡대에서 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룡산  정상부 아래 회룡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회룡포. 내성천이 극단적으로 휘감아 돌아가고 있다. 감입곡류 지형이 보여주는 경관 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손꼽힌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룡포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비룡산에 있는 고찰인 장안사. 이곳에서 비룡대까지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산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회룡대 아래 있는 고개.

OLYMPUS DIGITAL CAMERA고개에서 내려다 보이는 회룡포마을.

OLYMPUS DIGITAL CAMERA회룡대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비룡산 정상 부근 전망대

OLYMPUS DIGITAL CAMERA전망대에 내려다 보이는 모습. 마을 뒷편이 내려다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전망대 아래로 회룡포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회룡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룡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마을 주위로 휘감고 흐르는 내성천이 넓은 백사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맞은편 비룡산 일대는 경사가 심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룡포를 휘감으면서 흐르는 내성천.

회룡포, 국가명승 16호
회룡포(回龍飽)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 m의 비룡산을 다시 350 ˚ 되돌아서 흘러나가는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산책 코스가 있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의 천년 고찰인 장안사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깍아지르는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일명 용주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토석혼축으로 된 성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가 남아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을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원산성이 위치한 용궁일대는 근초고왕 25년(370)에 백제 영토가 되었다가 512년 고구려 문자왕이 점령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그후 진흥왕 26년(565)에 신라의 땅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원산성은 4세기 말부터 6세기 말까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 지명에서도 나타나듯 전사한 병사의 피가 강물을 따라 흘러 맞은편 언덕에 엉키어 붙었다 하여 「피묻끝」이라 부르고 통곡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하여 강 건너 마을을 달읍이라 부르고 있다. 인근 용궁향교, 하마미, 황목근, 무이서당, 삼강주막, 산택지, 청원정 등이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이곳 회룡포 마을에는 야영과 민박이 가능하다. (안내문, 예천군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문경 토끼비리(명승 31호), 영남대로 옛길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옛길인 토끼비리(명승 31호)이다. 영남대로 관문성인 석현성 남문에서 영강을 옆을 따라 이어지는 약 500 m 정도의 길을 말한다. 옛 영남대로 중 가장 험한 길로 알려져 있는데, 영강이 조령천과 합류하는 곳에서 부터 협곡을 형성하면서 흐르면서 생긴 벼랑에 형성된 길이다. 한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로 경사면에 축대를 쌓거나 큰 바위를 깨어서 좁은 길을 만들어 놓고 있다. 큰 길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과 영남지방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던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길이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영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는 주요 유상교통로이다. 그 중 동쪽 죽령길을 영남좌로,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을 영남중로, 추풍령갈울 영남우로라 한다. 그 중 문경새재(조령)을 넘어서 음성, 이천, 광주를 거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가까워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14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영남대로 옛길은 여러곳에 남아 있는데 그 중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재와 고모산성 남쪽 벼랑에 있는 토끼비리가 잘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끼비리는 조선시대 영남대로를 통제하기 위해 쌓은 관문성인 석현성 남문에서 출발하여 영강 옆 절벽을 따라 이어진 약 500 m의 옛길을 말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모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토끼비리가 있는 영강변 일대. 길이 500여 m로 영강 옆 벼랑길을 따라 한사람 정도 다닐 수 있는 험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명승을 지정될 정도로 경치도 빼어난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현성 남문을 나서면 성벽 바깥쪽으로 옛길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현성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옛길

OLYMPUS DIGITAL CAMERA석현성 성벽 바깥으로 1~2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평탄한 성벽 아래 길이 끝나면 바위를 깎는 등 다양한 형태의 험준한 길이 시작된다. 탐방객 편의를 위해서 이곳에서 부터 목재데크 길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랜 세월 이 길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빤질빤질해진 바위.

OLYMPUS DIGITAL CAMERA경사가 심해 험한 절벽을 따로 조성된 토끼비리

OLYMPUS DIGITAL CAMERA험준한 잔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이어지는 험준한 산길

OLYMPUS DIGITAL CAMERA경사가 심해 돌로 축대를 쌓아 조성한 길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계속 이어지는 산길

OLYMPUS DIGITAL CAMERA경사가 심해 난간을 설치해 놓은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석현성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석현성 남문. 영남대로 옛길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현성 내부. 주막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문경 토끼비리, 명승 31호,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토끼비리는 문경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개설된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로 영남대로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는 등 역사적 의의가 큰 옛길이다.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영강과 맞은 편 경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옛 길 주변에는 주막거리와 성황당, 당나무 등이 남아 있어 다양한 옛길 문화를 보여주는 등 민속적 가치 또한 크다 할 수 있다. 지금도 석현성 진남문에서 불정원에 이르는 구간 가운데, 벼랑길 약 500 m는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하여 암석안부를 파낸 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이 길을 밟으며 지나간 선인들의 발자취가 빤질빤질한 바위로 남아 있다. 한국의 옛길 가운데 그 역사성과 지형적 특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존된 한국의 대표적 옛길이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3년)

진남교반은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옛길이 있는 문경 영강 일대를 말하는데,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고 있어 명승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쪽 오정산(810 m)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고 남쪽 어룡산(617 m)이 길을 막고 있어, 그 사이를 흐르는 영강 주변만이 남북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지형적 특징 때문에 삼국시대 고구려의 압박을 받았던 신라는 이곳에 고모산성을 쌓고 영남대로 교통로를 통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문경새재 조령관문과 함께 이곳에 관문성인 석현성을 쌓았다. 지금도 영남대로 옛길, 3번 국도, 옛 문경선 철도, 중부내륙고속도 등 다양한 형태의 교통로가 이곳을 지나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경 진남교반 일원. 동쪽 오정산과 남쪽 어룡산 사이를 흐르는 영강 주변을 진남교반이라 한다. 빼어난 경치와 함께 영남대로 옛길, 석현성과 고모산성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강을 건너는 옛 국도 3호선 다리.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 뒤로 신라가 고구려 압박에 대응하고 한강유역을 진출하기 위해 쌓은 고모산성과 신라 고분들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영강을 건너는 옛 문경선 철교.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모산성 아래 있는 옛 문경선 터널

OLYMPUS DIGITAL CAMERA터널에서 나와 철교로 이어지는 철길

OLYMPUS DIGITAL CAMERA고모산성에서 내려다 본 석현성

진남교반 일원
이곳은 1933년 대구일보사가 주최한 경북팔경 선정에서 일경으로 꼽힌 진남교반 일원으로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옛길의 1번집답게 지난 2007년 명승 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 옛 길이 있으며, 길 문화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주막, 길손들의 안녕을 빌었던 성황당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지역은 교통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서 5세기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면서 쌓은 고모산성과 고부산성, 조선시대의 관성인 석현성 등의 성곽유적이 남아 있다. 한 지역에 이렇게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문경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문경 문경새재(명승 32호), 영남과 서울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고갯길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 있는 문경새재(명승 32호)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인 조령(해발 642 m)을 넘는 고갯길로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였다.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 이래 인근 하늘재 고개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고려 이후 문경새재길이 개통되면서 이 길이 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문경새재를 넘어오면서 군사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조선후기에는 조령 관문이 세워졌다.

문경새재는 주흘산(1,106 m)와 조령산(1,020 m) 사이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령 동쪽으로는 하늘재가, 서쪽에는 이화령(548 m)이 있다. 이곳에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원(院)이 있던 건물터, 신.구 경상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장소인 교귀정, 여행객들이 쉬었던 정자와 주막터, 옛길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러 비석들, 옛 선비들이 걸었던 과거길 등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경새재 고갯길이 시작되는 첫번째 관문 주흘문 앞 넓은 공터. 문경새재 고갯길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경새재 고갯길을 흐르는 초곡천.  주흘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조령산을 사이에 두고 계곡을 형성하면서 흘러 내려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령 제1관문인 주흘관. 이곳에 TV드라마 세트장이 있어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다. 한국 사람들 눈에 가장 익숙한 성곽의 모습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성문. ‘영남제일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문을 들어서면 길 옆으로 볼 수 있는 비석들. 문경새재와 관련된 관리들의 공덕비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영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는 주요 유상교통로이다. 그 중 동쪽 죽령길을 영남좌로,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을 영남중로, 추풍령갈울 영남우로라 한다. 그 중 문경새재(조령)을 넘어서 음성, 이천, 광주를 거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가까워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14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영남대로 옛길은 여러곳에 남아 있는데 그 중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재와 고모산성 남쪽 벼랑에 있는 토끼비리가 잘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경새재 고갯길.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개 고갯길은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정비가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상당 기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사용된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주흘관 안쪽에 있는 TV드라마 세트장. ‘태조왕건’을 비롯하여 KBS에서 방영되었던 주요 사극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어 눈에 익숙한 장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길 옆에 볼 수 있는 기암괴석. 기름틀의 누름돌처럼 생겼다하여 지름틀바우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령원터. 출장에 나선 관리들의 숙식과 편의를 위한 곳이다. 문경새재 고갯갤에는 3곳의 원터와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막들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령원 내부. 담장을 비교적 견고하게 쌓고 그 안에 건물을 두고 있다. 아마도 호랑이나 산적 등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령원터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의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던 길목에 위치하여 수 많은 길손들이 오고가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역과 원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 등 3곳의 원터가 전해지고 있다. 조령원터의 전체면적은 1,980 ㎡ (600평)이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은 너비 2.8 ~ 3.0 m, 높이 2.9 m 내외이고, 동쪽 57.6 m, 서쪽 53 m, 남쪽 38.9 m, 북쪽 37.7 m의 대칭변 길이가 모두 다른 남북으로 길게 쌓여진 장방형이다. 서쪽 돌담 중간에 문지가 남아 있는데 돌담을 성벽의 육축모양으로 마무리하고 그 사이에 2매의 방형 석주를 문설주로 세웠다. 문경시에서는 조령원터 복원을 위해 1977년과 1997년 2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터가 두개 층에 걸쳐 발견되었는데 발굴 보조서에 따르면 상단의 건물지에서 고려시대의 온돌유지와 부엌시설 일부가 드러났다. 또한 이를 비롯하여 와편, 토기편, 자기편, 어망추, 철제 화살촉,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령원터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고갯길. 일반적인 도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경새재 옛 길.

OLYMPUS DIGITAL CAMERA문경새재길에 재현해 놓은 주막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시대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장소인 교귀정이다.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교인처로 1470년경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3월 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폐허로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하고 있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교귀정 아래 계곡. 이곳에서 TV사극 “태조왕건” 중 궁예의 최후를 보여주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교귀정을 조금 지나면 길 옆에 구한말 최양업 신부(김대건에 이어 두번째 한국인 사제)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었다고 전해지는 기도굴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문경새재길

OLYMPUS DIGITAL CAMERA문경새제 옛 과거길(옛길).

영남에서 한양을 다닐 수 있는 길은 조령과 축령 및 추풍령을 경유하는 세 갈래가 있는데 문경새재는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왕래하였으며,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에서 드러나듯 “기쁜소식을 듣게 된다.”하여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도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길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길이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고갯길에 보이는 소원성취탑,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서 쌓은 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길 옆으로 옛 사람들이 세운 비석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령 산불됴심 표석. 조선후기에 한글 사용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표석의 설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대체적으로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석이다. 현재 문화재 위치는 처음 세워질 당시의 장소로 보여지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산불예방과 주흘산의 자연에 대한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국내에 고어로 된 한글비석은 모두 4점이나 “조령 산불됴심 표석”을 제외하곤 모두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어 국내 유일의 순수한글 비석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2관문으로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길옆에 있는 작은 폭포인 조곡폭포

OLYMPUS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제2관문.

OLYMPUS DIGITAL CAMERA조령 제2관문이 조곡관. 그 앞으로 큰 개울이 흐르고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계곡 상류방향. 초곡천 발원지와 주흘산으로 길이 이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제2관문. ‘영남제이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령 제3관문이 있는 고개로 이어지는 길.

문경 조령관문 사적147호 20191216-31조령 고개에 있는 제3관문 조령관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후 세 개의 관문(주흘관.조곡관.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 나그네의 숙소 조령원터, 신길원현감 충렬비, 산불됴심비 등의 유적과 뺴어난 자연경관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새재성황신과 최명길, 문경새재아리랑과 같은 설화와 민요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사적(제147호) 문경조령관문과 명승(제32호) 문경새재 옛길, 지방기념물(제18호) 주흘산 조령관문 일원 등의 문화재가 있고, 1981년부터는 도립공원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최근에는 옛길박물관, 생태공원, 오픈세트장이 들어서 다양한 역사.문화의 장이 되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충주 탄금대(명승 42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여겨진 곳

충북 충주시 칠금동 일대에 있는 탄금대(명승 42호)이다.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 불려왔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을 맞아 큰 패배를 당했던 곳이다. 대문산으로 불렸던 해발 100 m 작은 야산이지만 충주의 주산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충주댐을 지나온 남한강이 속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큰 하천인 달천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류방향으로는 중앙탑으로 불렸단 탑평리 칠층석탑, 장미산성, 고구려비, 누암리고분군 등 삼국시대 한강유역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탄금대의 주인공 우륵 또한 진흥왕이 충주지역을 점령한 후 이주시킨 신라 귀족 집단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탄금대(명승 42호).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타금대 숲길. 충주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뀐 지금은 다양한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탄금대.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 앞을 흐른 남한강. 하류 방향으로 근처에 조정지댐이 있어 남한강 수량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방향.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하류방향.  이 곳에서 달천과 남한강이 만난다.  탄금대 앞으로 용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형적인 도시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도시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 충혼탑

OLYMPUS DIGITAL CAMERA팔천고혼위령탑. 임진왜란 때 탄금대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8천여명의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충주 탄금대, 명승 42호
탄금대는 해발 108 m 정도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시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 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 고대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이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완도 정도리 구계동(명승 3호), 넓은 자갈밭과 숲이 아름다운 곳

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구계등(명승 3호)이다. 완도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안으로 파도에 밀려온 자갈이 해안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자갈밭이 9개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하여 구계등이라 부른다. 해안을 따라 너비 80 m가 넘는 자갈밭이 750 여m에 이르며 양쪽에 작은 동산이 자갈밭을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뒷면으로는 해송을 비롯하여 다양한 상록수와 활엽수 등이 숲을 이루고 있어 빼어난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파도에 깎인 다양한 크기의 자갈들이 모여있는 해안 지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 정도리 구계등(명승 3호), 너비 80 여 m의 넓은 자갈밭과 방풍림 숲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계등 들어가는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약간 경사진 지형으로 자갈밭이 9개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구계등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계등 해안 동쪽 끝 작은 동산.

OLYMPUS DIGITAL CAMERA구계등 해안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크기의 자갈들. 오랜 세월 파도를 맞아서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안을 따라서 조성해 놓은 산책로

OLYMPUS DIGITAL CAMERA자갈밭에서 자라고 있는 큰 나무.

OLYMPUS DIGITAL CAMERA해안 가운데 위치한 감상포인트. 뒷편으로 울창한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감상포인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자갈밭과 남해바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안 방풍림. 상록수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방풍림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완도 정도리 구계등, 명승 3호, 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이곳은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4 km정도 떨어진 곳이다. 구계등이란 이름은 파도에 밀려 표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아홉개의 계단(등)을 이룬다 하여 붙여졌다고 전한다. 정도리를 지나 약 4~5백 m 걸으면 상록수로 우거진 방풍림이 있고, 이 언덕을 넘으면 구계등 자갈밭이 전개된다. 자갈밭은 750여 m로 활모양의 해안선이 그대로 뻗쳐 자갈밭을 양쪽에서 감싸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 자갈밭은 너비 83 m로 약간 급경사를 이루고 바다 쪽으로는 약 5 m 정도이다. 동쪽의 자갈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해안으로 걷어 올려지기를 반복하면서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방풍림의 종류는 해송을 비롯하여 감당나무, 가시나무 등의 상록수와 태산목, 단풍, 느티나무 등 20여 종으로 자갈밭과 조화를 이루어 마을의 분위기를 평화롭게 하고 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