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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정도리 구계동(명승 3호), 넓은 자갈밭과 숲이 아름다운 곳

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구계등(명승 3호)이다. 완도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안으로 파도에 밀려온 자갈이 해안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자갈밭이 9개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하여 구계등이라 부른다. 해안을 따라 너비 80 m가 넘는 자갈밭이 750 여m에 이르며 양쪽에 작은 동산이 자갈밭을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뒷면으로는 해송을 비롯하여 다양한 상록수와 활엽수 등이 숲을 이루고 있어 빼어난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파도에 깎인 다양한 크기의 자갈들이 모여있는 해안 지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 정도리 구계등(명승 3호), 너비 80 여 m의 넓은 자갈밭과 방풍림 숲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계등 들어가는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약간 경사진 지형으로 자갈밭이 9개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구계등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계등 해안 동쪽 끝 작은 동산.

OLYMPUS DIGITAL CAMERA구계등 해안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크기의 자갈들. 오랜 세월 파도를 맞아서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안을 따라서 조성해 놓은 산책로

OLYMPUS DIGITAL CAMERA자갈밭에서 자라고 있는 큰 나무.

OLYMPUS DIGITAL CAMERA해안 가운데 위치한 감상포인트. 뒷편으로 울창한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감상포인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자갈밭과 남해바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안 방풍림. 상록수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방풍림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완도 정도리 구계등, 명승 3호, 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이곳은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4 km정도 떨어진 곳이다. 구계등이란 이름은 파도에 밀려 표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아홉개의 계단(등)을 이룬다 하여 붙여졌다고 전한다. 정도리를 지나 약 4~5백 m 걸으면 상록수로 우거진 방풍림이 있고, 이 언덕을 넘으면 구계등 자갈밭이 전개된다. 자갈밭은 750여 m로 활모양의 해안선이 그대로 뻗쳐 자갈밭을 양쪽에서 감싸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 자갈밭은 너비 83 m로 약간 급경사를 이루고 바다 쪽으로는 약 5 m 정도이다. 동쪽의 자갈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해안으로 걷어 올려지기를 반복하면서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방풍림의 종류는 해송을 비롯하여 감당나무, 가시나무 등의 상록수와 태산목, 단풍, 느티나무 등 20여 종으로 자갈밭과 조화를 이루어 마을의 분위기를 평화롭게 하고 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봉화 닭실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전통마을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닭실마을이다. 봉화읍에서 울진과 태백방향으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늑한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안동 화회마을,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언급되었던 곳이다. 조선 중종때 문신 권벌이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가 있던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2개의 시냇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뒷편으로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로가 남쪽편 철로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청암정(명승 60호)와 권벌종택이 제일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마을 앞을 지나 봉화읍으로 흘러가는 석천계곡을 통해서 마을로 들어왔기때문에 종가집이 마을 입구에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대부분의 가옥들은 기왓집 형태와 구조를 하고 있는 전형전인 반촌의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봉화 닭실마을. 마을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들판이 펼쳐져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가계천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을 지나 또다른 명승인 석천계곡을 만들면서 봉화읍으로 흘러간다. 개천 옆에 있는 길이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옛길이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종택으로 연결되는 큰 길.

SANYO DIGITAL CAMERA권벌종택 솟을대문.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사화로 파직을 당한 후 터를 잡고 살았던 종택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가옥이다.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안채 뒷편에는 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택 사랑채.

SANYO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 있는 사당.

SANYO DIGITAL CAMERA종택 마당 한쪽편에 위치한 청암정(명승 60호). 거북모양 바위에 세워진 정자와 작은 서재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모양 바위위에 세워진 청암정.

SANYO DIGITAL CAMERA종택 옆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그 옆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고택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안채.

SANYO DIGITAL CAMERA마을 고택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 많지 않으나 규모나 형태 등을 볼 때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권벌 종택.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으로 반듯하게 닦아 놓은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 농토. 넓지는 않으나 개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가운데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큰 사랑채가 있는 고택 마당.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입구쪽으로는 70년대 양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주택들도 볼 수 있다.

내성 유곡 권충재 관계유적,
이 곳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충재 권벌(1478 ~ 1548년)의 유적지이다. 이 곳은 유곡으로 ‘닭실’인데 흔히 ‘달실’로 부른다. 그는 안동출신으로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서 활동하던 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중종 28년(1548) 복직되었다가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었고, 명종 3년(1548)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돌아갔다. 이곳에는 그가 지은 청암정과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충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석천정이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고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한옥의 미, 서정호, 경인문화사, 2010년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60호)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에 있는 정자인 청암정(명승 60호)이다.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봉화 닭실마을에 있는 조선중기 문신 권벌의 종가집 옆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는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에 세워졌으며 주변에는 연못이 있다. 퇴계 이황선생을 비롯하여 당대의 학자들이 방문하여 학문을 교류했던 곳으로 이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전해오고 있다. 봄.여름에는 개울에서 물이 들어오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추수를 위해서 물을 막아 놓아 자연스럽게 연못에 물이 흐리지 않고 있다.

닭실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이중환이 ‘택리지’에 4대 명당지로 꼽았던 마을이다. 조선중기 문신 충재 권벌이 중종때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가 있던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닭실마을은 봉화읍에서 10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마을의 명성에 비해 오래된 고택은 많지 않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60호),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정자를 세워놓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권벌 종택 앞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가 세워진 거북모양의 너럭바위. 앞쪽에 냇물을 끌여들여 연못을 조성하고 있어 거북이 물위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청암정에서 내려다 본 연못. 정자 앞 서재 건물인 충재가 있고, 돌다리를 만들어 건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 내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인데 한쪽편 2칸을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온돌을 깔았었는데, 거북모양 모양 바위 위에서 불을 피우면 좋지 않다 하여 마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청암정’이라 적힌 현판. 남명 조식이 쓴 글이라 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청암수석’이라 적힌 현판. 당대의 명필로 전서체의 대가로 손꼽히는 미수 허목이 쓴 글씨이다.

SANYO DIGITAL CAMERA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현판글씨 원본.

SANYO DIGITAL CAMERA청암정제영시, 퇴계 이황선생이 청암정을 주제로 지으신 시를 적은 현판이다.

SANYO DIGITAL CAMERA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곳에 설치해 놓은 툇마루.

SANYO DIGITAL CAMERA툇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

SANYO DIGITAL CAMERA청암정에서 보이는 권벌 종택.

SANYO DIGITAL CAMERA정자 아래에 있는 서재로 사용되었던 작은 정자인 충재.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루에 걸려 있는 ‘충재’라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종택에서 보이는 청암정.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청암정.

SANYO DIGITAL CAMERA정자 뒷편 유물전시관 앞 마당에서 본 청암정. 주위에 심어둔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명승 60호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과 마을 앞을 흐르는 석천계곡에 있는 석천정사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 시냇물, 아름다운 수석 등 자연경관과의 조화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이 마을은 1360년 충재 권벌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마을 모양이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의 지세라 하여 닭실(달실)마을이라 불러왔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경승지로 꼽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한옥의 미, 서정호, 경인문화사, 2010년

단양 석문(명승 45호), 카르스트 지형의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는 명소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에 있는 단양 석문(石門, 명승 45호)이다. 이곳은 단양팔경을 대표하는 도담삼봉(사적 44호) 북쪽 언덕 남한강변에 있는 명소이다. 원래 석회동굴이었는데 지금은 동굴 천장의 일부만 남아 있어 구름다리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을 보여주는 곳이다. 석문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과 주변 경치가 한폭의 사진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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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석문(명승 45호). 석회암 동굴이었던 곳이 무너지고 일부만 남아 구름다리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지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 광장 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위 정자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담삼봉 부근 남한강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석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단양 석문.

OLYMPUS DIGITAL CAMERA석문과 함께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는 석문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과 마을 풍경.

SANYO DIGITAL CAMERA도담삼봉 부근에서 보이는 석문 앞을 흐르는 남한강.

SANYO DIGITAL CAMERA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명승 44호)

단양 석문, 명승 45호,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이곳은 단양팔경의 하나로, 자연이 만들어낸 구름다리 모양의 거대한 돌기둥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아주 오래전에 석회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구름다리 모양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동양에서 제일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문의 모양 그것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이것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마을의 모습도 마치 액자에 담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석문의 왼쪽 아랫 부분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옛날에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할미가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안내문, 단양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단양군청, 2009년
  2.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년

제천 의림지와 제림(명승 20호), 삼한시대에 쌓은 오래된 수리시설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와 제림(명승 20호)이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제방)도 큰 제방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제림(堤林)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숲을 말하며,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졌으며, 옛 그림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영호정, 경호루같은 누각과 바위들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같은 의림지와 함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명승 20호). 삼한시대에 쌓은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한곳으로 예로부터 지역의 명승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 제방 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의림지와 함께 제방 위에 조성된 숲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위에 조성된 숲.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제방 위 울창한 소나무 숲.

OLYMPUS DIGITAL CAMERA영호정(暎湖亭)은 의림지 남쪽 제방위에 있는 정자로 조선후기 순조 때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새로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 아래로 보이는 제천시.

OLYMPUS DIGITAL CAMERA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OLYMPUS DIGITAL CAMERA제방 중간에 세워진 의림지 표지석.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작은 섬처럼 돌출된 곳.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는 의림치 경치를 감상하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정자인 경호루(鏡湖樓), 1948년에 지어진 정자로 영호정과 더불어 의림지를 찾는 대표적인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아름드리 노송사이에 서있는 정자 누각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남쪽편 협곡을 막고 있는 수문.

OLYMPUS DIGITAL CAMERA수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안쪽으로는 뒷편 용두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이 보인다. 이 하천을 막아 저수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둑을 쌓기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부근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쪽편에는 비교적 넓은 광장이 의림지를 바라보면서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북쪽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동쪽편.  2007년에 세워진 우륵정이란 정자가 있다. 근처에 우륵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우륵샘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우륵정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제천 의림지와 제림, 명승 20호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 km이고 수심은 8 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 및 경호루 등과 함께 어루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호서(湖西)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제(奈堤, 큰제방)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림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늕 설과 조선시대 현감인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져 왔으며, 지명분석에 근거한 삼한시대 축조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림제라고 하고 정인지에 의해 두차례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항일운동기간인 1914~1918년까지 대대적으로 수축하였으며, 1972년의 장마에 둑이 무너진 것을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설로는 거북바위를 돌려 놓아 부자집이 몰락하였다는 이야기와 탁발승을 홀대하여 부자집이 몰락하고 그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그리고 의림지에 있는 큰 이무기가 가끔 나와사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었는데 어씨 오형제가 이무기를 잡은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어장사참사가가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