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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19호), 고려 이전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전각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경내에 있는 조사당(국보 19호)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는 건물로 무량수전 뒷편 언덕 숲길을 따라서 조금 걸어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 전해지는 어사화가 있고, 동쪽에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사천왕상 등이 그려진 고려시대 벽화(국보 46호)가 있다.

조사당은 고려 말 (1377년)에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3칸, 옆면1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이다. 앞면 가운데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고려말에 지어졌지만 삼국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불전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 건축의 역사에서 중요한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19호).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주심포 공포를 비롯하여 앞면이 벽으로 되어 있는 등 고려시대 이전 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현판. 세로 쓰기를 하고 장식 등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려시대 목조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주심포 양식의 공포.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벽면 가운데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고려시대와 이전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작은 광창을 두고 있다.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배흘림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국보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11-20151009조사당 내부 벽면에 있던 벽화(국보 19호). 사천왕상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벽화는 일제강점기에 떼어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조사당 앞에 심어진 어사화.

조사당 선비화
선비화의 학명는 골담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1300년 이상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보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부석사는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부석사에는 주불전인 무량수전(국보18호)과 조사당(국보19호) 등 대표적인 불교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건물들은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경주 불국사와 함께 한국적인 사찰 건축의 모범이 되었던 곳이다. 예산 수덕사, 안동 봉정사 등 많은 사찰들이 부석사와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옆에 있는 작은 암자. 사명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모습.

부석사 조사당, 국보 19호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21년(1490)과 선조 6년(1573)에 다시 고쳤다. 고려 신종 4년인 1201년 단청을 하였다는 기록도 확인된 바 있어 조사당이 세워진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무량수전과 같이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양식이다. 출입문 좌우 안쪽 벽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제석천과 범천 그리고 사천왕상이 있었는데, 1916년 건물을 수리하면서 떼어 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원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벽화이다. 현재 조사당 내부에 있는 벽화는 새로 그린 것이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1402호),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신 사당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문성공묘(보물 1402호)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앞쪽 제사 준비를 하는 퇴간을 두고 있다. 건물 주위로 담장을 둘렀으며,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후대 서원의 사당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최초 서원에 세워진 사당으로 ‘사(祠’자를 쓰고 있는 다른 사당과는 달리 ‘묘(廟)’자를 사용하고 있어 격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1402호). 건물은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앞에는 ‘문성공묘’라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출입문. 삼문형식을 하고 있는 후대 서원의 삼문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학서묘의 공간배치에 따라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향교나 후대 서원과는 달리 마당 한쪽에 담장으로 둘러진 작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보물 1403호), 최초의 서원 ‘백운동’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강학당(보물 1403호)이다. 서원에서 교육기능을 하는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 출입문이 있는 남쪽 기단에 계단이 설치하여 내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높게 쌓고 그 위 건물을 올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방에 툇마루를 설치하여 공간이 넓어 보인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이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을 모신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남쪽에 걸려있고,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 현판이 내부 대청마루에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학당(보물 1403호). 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동향을 하고 있지만, 현판은 남향을 하고 있다. 최초로 세워진 백운동 서원의 강당으로 후대에 세워진 서원의 강당이나 향교의 명륜당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았다. 최초의 서원답게 궁궐 전각을 연상시키는 건물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향하는 건물 남쪽에 ’백운동’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사방에 1 m 정도 툇마루를 두어 잠시 앉아서 쉬거나 통로로 사용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앞쪽에서 본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당 내부. 정면에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내부는 3면이 개방되어 있는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보물 211호),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상덕사 및 삼문(보물 211호)이다. 상덕사(尙德祠)는 퇴계 이황과 제자 조목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도산서원 제일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만 남게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사당 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당을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상덕사 경내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고 담장너머로만 그 모습을 살짝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중기 선조 때 처음 세워졌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앞 마당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삼문. 사당을 세울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경사진 언덕에 있어 앞면 기둥을 높게 하였다. 양쪽에는 원래 흙담장이 있었는데, 1970년대 수리하는 과정에서 돌담장으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도산서원 상덕사, 보물 211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를 둘러싼 담장도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에는 흙담장이었으나, 도산서원 정비사업 때 현재의 돌담장으로 바꾸었다. 상덕사는 조선 선조 7년 (1574)에 건립되었으며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도산서원의 제일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문을 두었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로 4단을 쌓은 후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집이다. 건물의 구조는 전교당과 비슷하며 네모기둥에 공포를 두지 않는 간략한 굴도리집이며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꾸며 매우 검소하게 지은 건물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보물 210호), 강학공간 중심건물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전교당(보물 210호)이다. 도산서원 강학공간 중심 역할을 하는 강당 건물로 사당인 상덕사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곳에 있다. 건물 앞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낙동강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앞면 1칸은 온돌방. 나머지 3칸인 넓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나 구조는 간단하며 아주 소박하고 검소하게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대청마루 앞에 문이 없어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쌍여닫이문이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 세워진 건물로 당시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대청마루 앞 현판에 적힌 ‘도산서원’이라는 글씨는 선조가 도산서원에 이름을 내리면서 당시 명필인 한석봉 선생이 선조 앞에서 쓴 글씨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 앞면 4칸의 강당건물로 단순하면서도 크지 않게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이 크지는 않지만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 걸터 앉아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앞쪽에는 문을 달지 않아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막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하는 ‘도산서원’ 현판.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전교당’이라 적힌 현판을 비롯하여 글씨가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 뒷쪽에는 쌍여닫이문이 있는데, 조선중기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넓은 대청마로. 한쪽에는 ‘한존재’라 적힌 온돌방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걸터 앉을 수 있는 툇마루가 있다.

도산서원 전교당(典敎堂), 보물 210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한존재)으로 구성되었다. 대청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나 측면과 배면에는 각 칸마다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한다. 전면 좌우에는 부속건물로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