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목조건축

영주 부석사 안양루(보물)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경내에 있는 안양루(安養樓,보물)이다. 부석사 주불전 영역을 출입하는 문루(門樓)로 기록에 따르면 1555년 <강운각>이라는 단층건물이 소실되면서 1576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한국 산지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사찰진입 축을 꺾어 무량수전이 있는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종교적 경외감과 조망을 극대화하고 있다. 조선중기 이전에 사용된 목조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건물이자 무량수전과 함께 부석사를 대표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안양루(보물)>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아래층만 기둥만 있으며 계단을 두어 문루 아래를 통해 무량수전이 있는 공간을 출입하게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문루 기둥과 공포>

위층은 사방이 뚫려 있어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내부는 넓지 않으나 신도들이 잠깐 머물 수 있는 강당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루 2층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무량수전이 있는 사찰 중심 영역은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 조성했으며, 그 앞에 안양루라는 누각을 세워 놓았다. 마치 봉황이 날아오르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루와 무량수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루와 해넘이 풍경>

SANYO DIGITAL CAMERA<2007년>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에 있는 불영사 응진전(보물)이다. 1984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따르면 임닌왜란 전후로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음이 밝졌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영사가 불에 타 버렸을 때 홀로 남은 불전으로 당시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이후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으로 바뀌었으며 영산전의 기능은 주불전인 대웅전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1-20220711<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1카능 4짝 여닫이문을, 양쪽에는 작은 창을 달아 놓았다. 조선전기 이전의 건축 양식과 조선중기 이후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 조선중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2-20220711<지붕을 받치는 공포>

협문 대신 벽면과 작은 창을 두는 것은 조선전기 이전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3-20220711<벽면과 창문>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5-20220711<옆에서 본 모습>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4-20220711<옆면 공포>

울진 불영사 응진전, 보물
응진전은 석가모니부처와 그의 제자를 모신 전각이다. 이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고 아담한 다포계홑처마 맞배기와집이다. 기단은 자연설을 허튼층 쌓기 하였으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출입을 위한 사분합문을 두었으며, 좌.우 협칸에 벽을 두고 벽 위쪽에 작은 광창을 달았다. 좌.우 하인방과 기둥에는 툇마루를 두었던 흔적이 있다. 공포의 구성은 내.외 2출목이다. 일반적으로 맞배지붕 건물은 주심포계이며, 공포도 앞.뒷편에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건물은 건물 4면에 모두 공포를 배치하였다. 응진전은 1984년 해체.보수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1578년(선조 11), 1629년(인조 7), 166년(현종 7), 1716년(숙종 42)과 1843년(현종 9) 등 어러 차례 보수되었음이 밝혀졌다. 상량문에 영산전으로 적혀 있어서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의 제자들도 함꼐 봉안되면서 응진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수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선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보물)

경남 산청군 단성면 교동길에 있는 단성향교 명륜당(明倫堂, 보물)이다. 향교 강학공간 중심 건물로 1728년에 지어져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누각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공(工)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다. 독특한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다른 향교나 서원 강당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1-20220222<단성향교 명륜당(보물)>

건물은 가운데 3칸 넓은 마루를 두고 양쪽에 날개채처럼 생긴 옆면 3칸 온돌방을 두고 있는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조선중기 이전 한옥 건물에서 볼 수 있는 ‘工’자형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9-20220222<누각처럼 보이는 정면에서 본 모습>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8-20220222<아래쪽에서 본 모습>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4-20220222<대정전 앞에서 본 모습>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5-20220222<명륜당 대청마루>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6-20220222<왼쪽 온돌방>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6-20220222<오른쪽 온돌방>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3-20220222<동재 앞에서 본 모습>

단성향교는 고려 중기 인종 때 처음 창건되었으며 조선 세종 때 서쪽 산기슭으로 옮겼다가 조선후기 영조 때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대성전과 명륜당 건물을 다시 지었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지만 다른 향교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2-20220222<산청 단성향교>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명륜당은 국립 교육기관인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 부설된 건물로 학문을 가르치는 강당이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은 1725년에 건립되어 여러차례 보수 되었으나 당시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향교의 바깥문인 외삼문 위에 누각형태로 건축된 누(樓)형 명륜당은 전국적으로 사례가 드물어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건물이다. 단성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단성 강누리 구인동에 처음 세워진 후 조선 세종 때에 현 위치에서 서쪽에 떨어진 산기슭으로 옮겨졌고 17세기에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 지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건물인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뒤에 배치된 전당후재 형식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배치양식은 전국에 많은 사례가 있으나 경남지역에서는 유일하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통영 세병관(국보), 삼도수군통제영 객사

경남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세병관(洗兵館, 국보)이다. 조선후기 해군본부격인 삼도수군통제영 객사 건물이다. 건물 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605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수군 선박이 정박했던 통영항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건물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有大)가 쓴 글씨이다. 경복궁 경회루(국보), 여수 진남관(국보)와 함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로 역사성과 건축적인 측면에는 가치가 큰 문화재이다.

통영 세병관 (국보) 03-20220221<통영 세병관(국보)>

건물은 앞면 9칸, 옆면 5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단층건물이다. 궐패를 모시는 정청과 좌우 익랑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관아 객사와는 달리 전체가 개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통제영 휘하 장수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수군훈련을 지휘하기 위한 용도인 것으로 보인다.

통영 세병관 (국보) 02-20220221<정면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04-20220221<옆쪽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01-20220221<남서쪽 모서리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26-20220221<세병관 현판>

건물 자체가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기단 2단으로 높지 않은편이다.  기단 윗편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자연석 주춧돌 위에 민흘림 기둥을 올려 놓고 있다. 기둥 위에 올려진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익공계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18-20220221<건물 기단>

통영 세병관 (국보) 12-20220221<기둥을 올려 놓은 주춧돌>

통영 세병관 (국보) 14-20220221<아래쪽을 굵게 하여 만든 민흘림기둥>

통영 세병관 (국보) 10-20220221<지붕을 받치는 공포>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벽면이 없이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뒷편에는 높은 단을 설치하여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앞뒤쪽 1칸씩 폭을 좁게 하여 통로로 사용되는 퇴간역할을 하고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21-20220221<세병관 내부>

통영 세병관 (국보) 05-20220221<앞쪽에서 본 건물 내부>

통영 세병관 (국보) 20-20220221<내부 천장>

통영 세병관 (국보) 07-20220221<뒷편 통로 역할을 하는 퇴간>

통영 세병관 (국보) 09-20220221<내부 공간을 분리해 주는 벽면역할을 하는 분합문>

가운데에는 45 cm 정도로 단을 높게 만들어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했다. 일반적인 객사의 정청에 해당하는 공이다. 위쪽에 홍살을 세우고 분합문을 두어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천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소란반자를 설치했다. 뒷편에는 문인도가 그려져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25-20220221<국왕의 궐패를 모시는 공간>

통영 세병관 (국보) 24-20220221<천장에 설치된 소란반자>

 통영 세병관 (국보) 08-20220221<뒷편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06-20220221<옆에서 본 모습>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로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웅장한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19-20220222<남쪽편 언덕에서 본 삼도수군통제영과 세병관>

통영 세병관 (국보) 16-20220221<세병관 출입문>

통영 세병관 (국보) 17-20220221<세병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통영 앞바다>

세병관(洗兵館), 국보, 경남 통영시 세병로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客舍)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金應海)가 1646년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蔡東健)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有大)가 쓴 글씨이다.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_

<출처>

  1.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경주향교 대성전(보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 대성전(보물)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때(1604년)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기단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쌓았는데 가운데와 양쪽에 석재계단을 두고 있다. 건물을 중건할 때 임해전(臨海殿) 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건물을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상량문이 남아 있으며 당시 건축양식이 잘 반영된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대성전(보물)>

가운데 계단과 정로(正路)는 조선 현종 때(1655) 동,서무를 중건하면서 임해전 터에 있던 석물들을 가져와 만들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기단과 가운데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옆 계단>

정로는 신삼문과 대성전을 연결하는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마당.>

보물_제1727호_경주향교_대성전(2011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대성전 내부>

경주향교 대성전, 보물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성전과 동.서무에 143현의 위패를 모셨는데 이후 몇 차례의 위패 정리령에 따라 현재는 25현의 위패가 대성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선조 33년(1600)에 공사를 시작하여 35년(1602)에 공사를 마쳤음이 1998년 보수공사를 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간결하고 위엄이 있는 목조 건물로 옛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안내문, 경주시청)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