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목조건축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보물)

경남 산청군 단성면 교동길에 있는 단성향교 명륜당(明倫堂, 보물)이다. 향교 강학공간 중심 건물로 1728년에 지어져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누각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공(工)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다. 독특한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다른 향교나 서원 강당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1-20220222<단성향교 명륜당(보물)>

건물은 가운데 3칸 넓은 마루를 두고 양쪽에 날개채처럼 생긴 옆면 3칸 온돌방을 두고 있는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조선중기 이전 한옥 건물에서 볼 수 있는 ‘工’자형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9-20220222<누각처럼 보이는 정면에서 본 모습>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8-20220222<아래쪽에서 본 모습>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4-20220222<대정전 앞에서 본 모습>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5-20220222<명륜당 대청마루>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6-20220222<왼쪽 온돌방>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6-20220222<오른쪽 온돌방>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3-20220222<동재 앞에서 본 모습>

단성향교는 고려 중기 인종 때 처음 창건되었으며 조선 세종 때 서쪽 산기슭으로 옮겼다가 조선후기 영조 때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대성전과 명륜당 건물을 다시 지었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지만 다른 향교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2-20220222<산청 단성향교>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명륜당은 국립 교육기관인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 부설된 건물로 학문을 가르치는 강당이다.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은 1725년에 건립되어 여러차례 보수 되었으나 당시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향교의 바깥문인 외삼문 위에 누각형태로 건축된 누(樓)형 명륜당은 전국적으로 사례가 드물어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건물이다. 단성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단성 강누리 구인동에 처음 세워진 후 조선 세종 때에 현 위치에서 서쪽에 떨어진 산기슭으로 옮겨졌고 17세기에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 지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건물인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뒤에 배치된 전당후재 형식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배치양식은 전국에 많은 사례가 있으나 경남지역에서는 유일하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통영 세병관(국보), 삼도수군통제영 객사

경남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세병관(洗兵館, 국보)이다. 조선후기 해군본부격인 삼도수군통제영 객사 건물이다. 건물 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605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수군 선박이 정박했던 통영항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건물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有大)가 쓴 글씨이다. 경복궁 경회루(국보), 여수 진남관(국보)와 함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로 역사성과 건축적인 측면에는 가치가 큰 문화재이다.

통영 세병관 (국보) 03-20220221<통영 세병관(국보)>

건물은 앞면 9칸, 옆면 5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단층건물이다. 궐패를 모시는 정청과 좌우 익랑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관아 객사와는 달리 전체가 개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통제영 휘하 장수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수군훈련을 지휘하기 위한 용도인 것으로 보인다.

통영 세병관 (국보) 02-20220221<정면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04-20220221<옆쪽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01-20220221<남서쪽 모서리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26-20220221<세병관 현판>

건물 자체가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기단 2단으로 높지 않은편이다.  기단 윗편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자연석 주춧돌 위에 민흘림 기둥을 올려 놓고 있다. 기둥 위에 올려진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익공계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18-20220221<건물 기단>

통영 세병관 (국보) 12-20220221<기둥을 올려 놓은 주춧돌>

통영 세병관 (국보) 14-20220221<아래쪽을 굵게 하여 만든 민흘림기둥>

통영 세병관 (국보) 10-20220221<지붕을 받치는 공포>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벽면이 없이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뒷편에는 높은 단을 설치하여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앞뒤쪽 1칸씩 폭을 좁게 하여 통로로 사용되는 퇴간역할을 하고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21-20220221<세병관 내부>

통영 세병관 (국보) 05-20220221<앞쪽에서 본 건물 내부>

통영 세병관 (국보) 20-20220221<내부 천장>

통영 세병관 (국보) 07-20220221<뒷편 통로 역할을 하는 퇴간>

통영 세병관 (국보) 09-20220221<내부 공간을 분리해 주는 벽면역할을 하는 분합문>

가운데에는 45 cm 정도로 단을 높게 만들어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했다. 일반적인 객사의 정청에 해당하는 공이다. 위쪽에 홍살을 세우고 분합문을 두어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천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소란반자를 설치했다. 뒷편에는 문인도가 그려져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25-20220221<국왕의 궐패를 모시는 공간>

통영 세병관 (국보) 24-20220221<천장에 설치된 소란반자>

 통영 세병관 (국보) 08-20220221<뒷편에서 본 모습>

통영 세병관 (국보) 06-20220221<옆에서 본 모습>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로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웅장한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통영 세병관 (국보) 19-20220222<남쪽편 언덕에서 본 삼도수군통제영과 세병관>

통영 세병관 (국보) 16-20220221<세병관 출입문>

통영 세병관 (국보) 17-20220221<세병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통영 앞바다>

세병관(洗兵館), 국보, 경남 통영시 세병로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客舍)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金應海)가 1646년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蔡東健)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有大)가 쓴 글씨이다.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_

<출처>

  1.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경주향교 대성전(보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 대성전(보물)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때(1604년)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기단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쌓았는데 가운데와 양쪽에 석재계단을 두고 있다. 건물을 중건할 때 임해전(臨海殿) 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건물을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상량문이 남아 있으며 당시 건축양식이 잘 반영된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대성전(보물)>

가운데 계단과 정로(正路)는 조선 현종 때(1655) 동,서무를 중건하면서 임해전 터에 있던 석물들을 가져와 만들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기단과 가운데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옆 계단>

정로는 신삼문과 대성전을 연결하는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마당.>

보물_제1727호_경주향교_대성전(2011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대성전 내부>

경주향교 대성전, 보물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성전과 동.서무에 143현의 위패를 모셨는데 이후 몇 차례의 위패 정리령에 따라 현재는 25현의 위패가 대성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선조 33년(1600)에 공사를 시작하여 35년(1602)에 공사를 마쳤음이 1998년 보수공사를 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간결하고 위엄이 있는 목조 건물로 옛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안내문, 경주시청)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청송 대전사 보광전(普光殿, 보물)

경북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주불전인 보광전(보물)이다. 조선후기 현종 때(1672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후기 불전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불전 내부 벽면 단청과 벽화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그림으로서 예술성이 뛰어나다. 바위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한 보광전의 모습은 주왕산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손꼽힌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1-20201205<청송 대전사 보광전(보물)>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3-20201205<보광전 현판,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겹처마>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4-20201205<창호는 장식성이 없는 띠살을 사용하고 있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6-20201205<옆면 출입문>

불전 내부에는 닫집에 석조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다. 우물천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벽면과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불화와 단청은 건축당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고 작품성도 뛰어난 편이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5-20201205<보광전 내부>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7-20201205<바위 봉우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2-20201205<앞쪽에서 본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大典寺 普光殿), 보물 1570호
청송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그 건축연대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 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 구조는 화강석 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고, 건물의 구조는 2고주 5량가 다포계 양식으로 외 2출목 3제공, 내 2출목 3제공 이다. 건물 전면은 앙설형이고 배면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 목조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내부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운문사 대웅보전(보물)이다. 불전 앞에 통일신라 때 세운 동.서 삼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래로 현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문사 전각들은 고려중기 원응국사가 크게 중건한 이후 여러차례 중건하였는데 이 불전을 조선후기 숙종 때(1718)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만세루 뒷편에 대웅보전을 크게 신축하면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으로 바뀌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조선중기 불전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좌상 뒷편에 조선후기 후불탱화인 비로자나삼신불회도(보물 1613호)가 있고 벽면에 관음보살.달마대사벽화(1817호)가 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2-20200106<청도 운문사 주불전이었던 비로전(보물).>

조선후기 숙종 때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4-20200106건물 출입문 문살.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5-20200106지붕을 떠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양식을 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12-20200130
불전 내부.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11-20200130
비로자나불 좌상 뒷편 벽면에 그려진 벽화인 비로자나삼신불회도(보물 1613호)

운문사 비로자나삼신불회도, 보물 1613호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후불탱화로 1855년 임한을 수화승으로 하여 19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삼신불회도는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이 설법 장면을 표현한 불화를 말한다. 화면은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삼신불, 하단에는 협시보살과 괘불도에서만 보여지는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든’노사나불을 묘사한 유일한 후불탱화이며, 안정된 화면구성, 균형잡힌 인물의 표현, 적색과 녹색이 대비를 이루는 차분한 색감 등은 18세기 불화의 높은 격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1-20200106옆에서 본 모습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3-20200106뒷편에서 본 모습

대웅보전, 보물 835호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653년(조선 효종 4)에 중창하였다. 건물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축에는 삼장탱화를 모셨다. 건축물 자체가 보물일 뿐 아니라 주불전인 비로자나불좌상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벽화는 보물 1817호이다. 서쪽 천장에 매단 용가와 악착보살로 불리고 있는 청의동자상도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