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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 가운루(駕雲樓)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고운사에 있는 가운루(駕雲樓)이다. 사찰 입구 계곡에 세워진 누각 형태의 강당 건물이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는 여려 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원래는 누각 아래를 지나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출입문 기능도 있었는데 지금은 앞쪽에 세워진 다리를 통해 출입한다.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역할을 했던 건물인데 지금은 사찰을 방문한 신도나 탐방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의성 고운사 가운루 20230830_01<의성 고운사 가운루>

의성 고운사 가운루 20230830_05<2층 누각>

의성 고운사 가운루 20230830_02<가운루 내부>

의성 고운사 가운루 20230830_03<가운루 현판>

의성 고운사 가운루 20230830_04<안쪽에서 본 가운루>

고운사 가운루
고운사는 의상이 처음 만든 절로, 신라 말기 최치원이 입산하여 여지.여사 두 대사와 함께 가허루와 우화루를 세웠다. 이후 최치원의 호를 따 고운사로 이름을 고치면서 가허루가 가운루(駕雲樓)로 바뀌었다. 가운루는 구름 위의 누각이라는 뜻이다. 가운루는 계곡 위에 우뚝 서 있는 누각 형식의 건물로 조계문과 천왕문을 따라 들어서면 정면이 보인다. 가운루는 후대에 여러 차례 고쳐 지었는데 이 기록이 남아 있다. 원래는 1층 아래쪽을 지나서 들어가는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가운루 앞에 가운교를 설치하여 사찰에서 들어간다. 가운루 안쪽은 원래 계곡이었으나 지금은 메워져 잔디 마당이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계곡 위의 누각은 다리의 기능을 하는데, 가운루는 다리와 강당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자연과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_

<출처>

  1.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2. ‘보물 의성 고운사 가운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의성 고운사 연수전(보물),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여 지은 왕실 건물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고운사에 있는 연수전(延壽殿)이다. 이 건물은 영조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고 기로소에 입소한 역대 왕의 이름을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어첩봉안각’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이후 고종의 기로소를 입소를 기념하기 위해 건물을 중수하면서 고종으로 부터 ‘연수전’이라는 이름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내 기로소 건물을 순천 송광사와 의성 고운사 2곳에 있었는데 현재는 고운사 연수전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왕실의 어첩은 남아 있지 않으나 건립과 운영에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1<의성 고운사 연수전(보물)>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2<바깥에서 본 모습>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14<만세문>

건물은 서울 경복궁 부근에 위치한 기로소 영수각을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정자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가운데 1칸만 어첩을 봉안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4면이 개방된 마루로 되어 있다.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5<연수전>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6<오른쪽에서 본 모습>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7<왼쪽에서 본 모습>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12<오른쪽 마루>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11<왼쪽 마루>

건물의 벽과 기둥, 천장 등에는 왕의 권위와 무병장수, 부귀영화 등을 상징하는 화려한 단청이 그려져 있다. 단청과 벽화는 매우 수준 높으며,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다양한 그림들이 반영되어 있다.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9<연수전 현판과 단청 그림>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8<왼쪽 벽면의 그림>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10<정면 출입문과 그림>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4<만세문에 있는 도깨비 그림>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30830_03<만세문에 있는 도깨비 그림>

의성 고운사 연수전, 보물
의성 고운사 연수전(延壽殿)_은 영조와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고운사 경내의 유일한 왕실 건물이다. 건물 내에는 조선시대 기로소에 입소한 4명의 왕인 태조, 숙종, 영조, 고종의 묘호(廟號)와 시호(諡號), 휘(諱) 등을 적은 어첩을 보관하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는 조선시대 기로소 안에 있었던 영수각(靈壽閣) 형식을 따라 지었다. 연수전은 절의 다른 건물과는 달리 홀로 정남향을 바라보고 있다. 가운데 방 뒷면 위에는 감실(龕室)을 두어 어첩을 보관하도록 하였다. 연수전 주변에는 토석 담장을 두로고 앞쪽에는 왕의 어첩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가운데 문의 지붕이 좌우보다 한단 높은 솟을삼문을 별도로 지었으며, 만세문이 적힌 현판을 달았다. 건물의 벽과 기둥, 천장 등에는 왕의 권위와 무병장수, 부귀영화 등을 상징하는 화려한 단청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사찰 내의 기로소 원당(願堂)은 전남 순천 송광사와 의성 고운사 등 2곳에 있었으나, 송광사의 경우 현재 불당으로 바뀌어 사라졌고, 고운사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연수전-20221116_01<연수전 상량문 현판, 대한제국 1903년, 의성 고운사>

연수전을 중수하며 적은 상량문을 목판에 옮긴 것이다. 매행 14~19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34행이다. 글자는 해서체로 일부 먹흔이 남아 있다. 현판의 내용인 상량문은 조선 말기의 문신 윤용선이 고종의 명을 받아 작성하였다. 연수전 상량문의 앞뒤가 잘려나가고 일부 내용만 적혀 있어 정확한 내용 파악이 어렵다.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2022년)

연수전-20221116_021<연수전 기문 현판, 대한제국 1902년, 의성 고운사>

연수전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현판이다. 현판에는 황태자의 상소로 시작된 고종의 기로소 입소 과정과 고종의 수복을 축원하는 글, 고운사에 연수전이 자리하게 된 과정을 기록하였다. 기문이 만들어진 시기는 고종이 기로소에 입소한 1902년 7월이며, 찬자는 안철용이다.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2022년)

연수전, 왕실의 장수를 축원하다
고운사에는 왕실 축원을 목적으로 연수전(延壽殿)이 남아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1744년 영조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고 기로소에 입소한 역대 왕의 이름을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한 어첩봉안각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경내에 왕의 어첩이 봉안되어 있는 만큼 왕실과 관청의 보호와 지원 속에 사세가 확장되었다. 1902년에는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며 이 건물을 중수하고 기로소로부터 연수전이라는 이름을 받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연수전의 형태는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기로소 영수각 건물(현재 소실)을 모본으로 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수전 내.외부에는 왕의 위상과 무병장수, 부귀영화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벽화로 장엄하여 왕실을 축원하기 위해 건립된 건물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왕실의 어첩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건립 과정과 운영 현황이 기록된 자료들이 다양하게 전한다.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2.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2023년
  3. ‘보물 의성 고운사 연수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 개척촌] 구 후쿠시 집안의 주택, 삿포로 상류층이 살던 집

일본 삿포로시 홋카이도 개척촌에 있는 ‘구 후쿠시 집안의 주택(旧福士家住宅)’이다. 메이지시대 홋카이도 개척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살았던 큰 규모의 주택이다. 삿포로시 도심에 있던 상류층이 살았던 저택으로 건물은 전체 78평 정도이다. 앞쪽에는 서양식 건축양식이 반영된 건물이 있고 뒷편에 일본식 주택이 연결되어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1<구 후쿠시 집안의 주택(旧福士家住宅)>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15<뒷편에 있는 일본식 주택>

일본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 주택 20230529_11<뒷편에서 본 모습>

일본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주택 20230529_21<뒤에서 본 모습>

서양식 목조 건축양식을 하고 있는 앞쪽은 마루가 깔린 넓은 방이 있다. 집주인이 사무실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2<앞쪽 넓은 마루방>

가운데 넓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다다미가 깔린 방들이 있고, 안쪽에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부엌과 거실이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7<가운데 복도>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8<복도 왼쪽 다다미방>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9<복도 왼쪽 다다미방(안쪽)>

가족들이 생활하는 중심공간인 거실은 부엌과 각 방들과 연결되어 있으며가운데 난방용 난로가 놓여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10<거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11<부엌>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12<뒷마당으로 나가는 현관>

복도 오른쪽에는 집주인이 사용하면서 손님들을 맞았던 것으로 보이는 넓은 방이다. 한옥의 사랑채처럼 가족들의 생활공간과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3<큰방으로 연결되는 툇마루>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4<큰 다다미방>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05<툇마루에 놓인 의자>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후쿠시집안주택  20230529_14<거실과 연결되는 통로>

구 후쿠시 집안의 주택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시대에 걸쳐 조선, 통역, 기상 관측, 측량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홋카이도 개척에 공헌한 후쿠시 나리토요(1838~1922)가 메이지시대 중기부터 1922년까지 거주한 건물이다. 메이지시대 전기의 서양식 건축과 메이지시대 후기의 일본식 주택을 접목한 특이한 건물이다. (한국어판 가이드, 홋카이도 개척촌, 2023년)

<출처>

  1. 한국어판 가이드, 홋카이도 개척촌, 2023년
  2. 홈페이지, 野外博物館 北海道開拓の村, 2023년

* 옛 소재지: 札幌市中央区北4条東1丁目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아 건물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이다.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강원감영 정당(正堂) 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64년 경에 건립된 보인다. 현재 위치에 세워진 이래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지만 실물이 그대로 계승되어 왔으며 조선시대 감영 선화당 건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1<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선화당은 앞면 7칸, 옆면 4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관아 건물이다. 평면구조는 앞뒤와 양쪽 1칸씩이 복도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집무공간이 있다. 이런 평면배치는 지방관아 동헌 건물에서는 볼 수 없으며 중앙부처 정청 건물과 같은 형태이다. 관찰사의 정치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건물 형태이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13<정면에서 본 모습>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14<앞과 옆에서 본 모습>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12<옆과 뒤에서 본 모습>

건물은 높지 않은 기단  위에  올려져 있으며 사방이 문으로 둘러져 있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11<건물 기단>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4<선화당 현판과 출입문>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7<앞면 복도>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8<뒷면 복도>

내부는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온돌시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양쪽 1칸씩은 누마루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부공간 배치로 볼 때 판결 업무가 많았던 지방관아 동헌과는 달리 관찰사는 감영에 속한 지방관 등과 회의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부처 정청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5<관찰사 집무공간>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9<옆에서 본 모습>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3<누마루 기능을 겸하고 있는 오른쪽 공간>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10<내부 모습>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20230511_06<왼쪽 공간>

선화당(宣化堂)
선화당은 강원감영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강원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관찰사가 강원도의 정무를 보던 집무실인 정청이다. 관찰사는 이곳에서 강원도에 속한 각 지역의 행정.농정.조세.민원.군사.재판 등에 대한 업무를 수행했다. 선화당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현종 6년(1665) 이만영 관찰사가 다시 짓기 시작하여 1667년 이후산 관찰사 때 완공되었다. 선화당은 한때 일본군수비대, 원성군청, 강원도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이곳 선화당을 거쳐 간 관찰사는 500여명으로, 황희, 정철 등도 이 선화당에서 백성을 살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23년
  2.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원주 구룡사 보광루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에 있는 구룡사 보광루이다. 구룡사 경내를 출입하는 문루이자 강당 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2층 문루 건물이다. 강당 역할을 하고 있는 2층 누각은 대웅전을 향해 개방시킨 형태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후기 숙종 때(1707년) 다시 지은 건물이라 한다.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1<원주 구룡사 보광루>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3<앞쪽에서 본 모습>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4<반대편에서 본 모습>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5<옆에서 본 모습>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9<대웅전에서 본 모습>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10<건물 내부>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8<내부에서 본 대웅전>

구룡사는 사찰로 삼국시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강원도 치악산과 영서지방을 대표하는 사찰이지만 내력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현재의 사찰 건무들을 조선후기 이후에 중건된 것이라 한다.

원주 구룡사 보광루 20230511_06<원주 치악산 구룡사>

원주 구룡사 보광루
구룡사는 치악산 능선 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산지에 건립한 서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구룡사는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경사진 지형의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보광루는 구룡사의 사찰 배치에서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의 성격을 가진 건물로, 공간의 위계를 구분함과 동시에 누각 아래를 통한 진입으로 공간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68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가 전해지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원래 지금의 절터 일대는 깊은 연못이었는데, 거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대사가 절을 지르려 하자, 용들은 이를 막기 위해 비를 내려 산을 물로 채웠다. 이에 의상대사가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연못물이 말라서 그 자리에 구룡사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절 입구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때문에 절 이름의 ‘아홉 구(九)’를 ‘거북 구(龜)’자로 고쳐 쓰게 되었다고 한다. 2008년 보광루 해체 보수공사 때에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숙종 33년(1707)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석경의 <삽교집>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대승암과 백련당, 월봉암 등 선승들이 살았던 암자 등 구룡사 주변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안내문, 원주 구룡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원주 구룡사, 2023년
  2. ‘원주구룡사보광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구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