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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835호)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835호)이다. 불전 앞에 통일신라 때 세운 동.서 삼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래로 현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문사 전각들은 고려중기 원응국사가 크게 중건한 이후 여러차례 중건하였는데 이 불전을 조선후기 숙종 때(1718)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만세루 뒷편에 대웅보전을 크게 신축하면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으로 바뀌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조선중기 불전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좌상 뒷편에 조선후기 후불탱화인 비로자나삼신불회도(보물 1613호)가 있고 벽면에 관음보살.달마대사벽화(1817호)가 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2-20200106청도 운문사 주불전이었던 비로전(보물 835호). 조선후기 숙종 때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4-20200106건물 출입문 문살.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5-20200106지붕을 떠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양식을 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12-20200130
불전 내부.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11-20200130
비로자나불 좌상 뒷편 벽면에 그려진 벽화인 비로자나삼신불회도(보물 1613호)

운문사 비로자나삼신불회도, 보물 1613호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후불탱화로 1855년 임한을 수화승으로 하여 19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삼신불회도는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이 설법 장면을 표현한 불화를 말한다. 화면은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삼신불, 하단에는 협시보살과 괘불도에서만 보여지는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든’노사나불을 묘사한 유일한 후불탱화이며, 안정된 화면구성, 균형잡힌 인물의 표현, 적색과 녹색이 대비를 이루는 차분한 색감 등은 18세기 불화의 높은 격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1-20200106옆에서 본 모습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03-20200106뒷편에서 본 모습

대웅보전, 보물 835호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653년(조선 효종 4)에 중창하였다. 건물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축에는 삼장탱화를 모셨다. 건축물 자체가 보물일 뿐 아니라 주불전인 비로자나불좌상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벽화는 보물 1817호이다. 서쪽 천장에 매단 용가와 악착보살로 불리고 있는 청의동자상도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

전남 나주시 교동에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이다. 대상전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 중심 건물로 문묘라고도 부른다. 나주향교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로 성균관 문묘처럼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성균관 문묘와 비슷한 규모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서울 문묘,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로 서울 성균관 문묘에 버금가는 큰 규모의 대성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팔작지붕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394호 01-20190828
건물 내부. 바닥에 전돌대신 마루가 깔려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월대.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 394호
대서어전은 향교의 중심건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27위의 위패를 모신공간이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성전 중에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교건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성전 벽흙은 공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과 임진왜란 이후 성균관을 다시 지을 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하여 지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대성전은 조선시대 나주향교가 건립되면서 처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670년 소두산 목사에 의해 대성전 중수가 이루어졌고 고종 6년(1869)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으며, 순조 33년 ~ 헌종 3년(1833 ~1837), 고종 32년(1906), 2008년에 대성전 도리이상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정읍 피향정(보물 289호),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정자 건축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옛 태인현 읍치에 남아 있는 피향정(披香亭, 보물 289호)이다. 태인현 관아에서 공식행사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남원 광한루와 함께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정자 건축물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중기 숙종 때(1716)에 새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나 가운데에는 우물천장으로 꾸며놓고 있다. 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았던 인사들이 남겨놓은 글이 적혀 있는 현판들이 많이 남아 있다. 건물 앞.뒤로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앞쪽 연못만 남아 있다. 조선중기 목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읍 피향정(보물 289호). 태인현 읍치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정자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정자를 받치는 기둥. 커다른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앞면에서 본 모습. ‘호남제일정’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 내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장은 대부분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장 아래 걸려 있는 ‘피향정’이라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은 인사들이 남겨놓은 글이 적힌 현판들이 많이 걸려 있다. 통일신라 때 유학자 최치원의 발자취를 찾아 이곳을 방문했던 인사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 풍경. 농업용 저수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연못으로 보인다. 원래는 앞.뒤에 연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앞쪽 연못만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피향정이 있는 옛 태인현 읍치.

정읍 피향정(披香亭), 보물 289호,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이다. 원래 이 정자는 앞뒤로 상.하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군수로 재임중에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공포는 간결한 초익공 건물로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에는 작은 우물천장이 특이하게 설치되어 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교건축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무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국13호)이다. 조선전기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세종 12년(1430)에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위에만 있는 고려시대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다. 곡선적인 건축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후기 건축물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을 모시고 있으며 아미타삼존벽화(국보 313호),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을 사용하는 고려후기 불전 건축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간결하면서 직선적인 조선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량보전 현판

SANYO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직선적이며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기둥과 공포. 기둥은 배흘림을 주어 안정된 느낌을 주면서도 직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간결한 느낌을 주는 문살.

SANYO DIGITAL CAMERA옆쪽 출입문과 기둥.

 

SANYO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뒷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3-20190712
내부 천장. 우물천장을 하고 있으며, 불단 위에 용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2-20190712
아미타삼존여래좌상(보물 1312호)와 후불벽화(국보 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1-20190712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4-20190712
극락보전 사면벽화(보물 1315호) 중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극락보전 안쪽에는 삼존불화를 비롯하여 총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극락보전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의 하나이다. 건물자체가 국보이지만 내부에는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맺었다는 화기가 적혀 있는 아미타후불 벽화(보물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그림은 토벽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했던 고려불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명작이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보전만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세종 12년(1430)에 건립됐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로 뛰어나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0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전라좌수영 객사

전남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진남관(국보 304호)이다. 여수에 있었던 옛 전라좌수영 객사 건물로 현존하는 단층 목조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 15칸, 옆면 5칸으로 전체 면적은 240평 정도이다. 잘 다음은 돌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읠 세웠는데 총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와 다포계 양식을 절충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객사와는 내부에 벽면으로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넓게 개방되어 있다. 천정은 서까래등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임진왜란 직후 처음 건립되었다가 숙종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크게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된 것을 해방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수리하였다. 객사는 지방 관아 중심 건물로 국왕의 궐패를 모시고 관아를 방문한 사신.관리 등이 머무는 장소이다. 조선시대 대부분 관아에는 객사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건물이 전라좌수영 객사인 진남관과 통제영 객사인 세병관이다. 통제영이나 수영에 큰 규모의 객사가 설치된 것은 진(鎭) 등 관할에 속한 함선이나 어선들을 모아 훈련을 했으며, 비상시에는 수영에서 모여서 함대를 편성하고 해전을 지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앞면 1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전라좌수영 객사였다. 좌.우에 익랑을 두는 일반적인 객사 건물과는 달리 단일 건물로 되어 있다.

진남관의 규모
진남관의 정면길이는 54.5 m, 높이는 14 m, 넓이는 748 ㎡, 기중은 68개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이 단층목조 건물로서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이 기둥사이가 15칸이나 되는 건물은 사찰의 회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장경판전과 진남관 단 두 곳 뿐이다. 진남관은 지방관아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규모의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낮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둥을 올린 막돌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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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공포, 서까래, 지붕 등의 모형.

진남관의 건축적 특징
진남관은 돌을 다듬어 단정하게 쌓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우고 벽체 없이 팔작지붕을 얹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주심포와 다포양식을 절충한 것이다. 외부의 살미첨자는 쇠서와 함께 연꽃모양의 화문을 조각하여 하나의 장식판처럼 변형되었고, 건물의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에 높은 기둥들을 배열하여 그 위에 대들보를 가구하면서도 내부 곳곳에 내고주를 세워 중간을 받치게 하였다. 특히 기둥의 배열에서 건물 양쪽 끝 세번쨰 측면 기둥만은 열을 흐트러 놓아 내부가 복도처럼 보이지 않게 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모든 부재들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붕마루와 추녀 마루는 양성을 하였고, 네 추녀끝을 활주로 지탱하고 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궐패를 모셨던 가운데 정청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내부. 좌.우 익랑 구분 없이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 지휘부가 이곳에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수군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수항. 포구 주변에서 수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휘할 수 있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항 앞 바다에서 보이는 진남관. 여수항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건물로 객사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선박을 운행하면서 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남관의 용도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건립되었다. 객사는 성 안의 중요한 위치에, 또는 관아와 함께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비와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 또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또한 진남관은 외국의 사신과 중앙으로부터 왕의 명을 받들고 내려온 대신을 접대하는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진남관.

OLYMPUS DIGITAL CAMERA정청부분 내부. 내부는 통로로 사용되는 툇마루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 천정은 서까래 등이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에 기둥 사이에도 화반을 받쳐두는 절충적인 형태의 다포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진남관의 축조
진남관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에 선조 32년(1599)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건물이다. 진남관은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성의 중심 건축물로서 숙종 42년(1716)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숙종 44년(1718) 이제면 전라좌수사가 다시 세웠다.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야경.

진남관, 국보 304호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선조32) 통제사 이시언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16년(숙종42) 화재로 불탄 것을 1718년(숙종44)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이순신 전사 120년이 되는 해를 기려서 다시 세운 것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여수공립보통학교 등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관의 중건기는 1953년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글씨는 중건 당시에 이제면이 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면모가 곳곳에 서려 있는 핵심적인 유적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크다. 진남관 앞에 있는 2개의 돌기둥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수군들의 밤 훈련을 위해 불을 밝힐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당시에는 4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이 전한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