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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유적, 목기와 칠기

신창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영산강 유역 저습지에서 확인된 초기 철기시대 생활유적이다. 습지라는 자연적 특성으로 이곳에서는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목재용품들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에서 당시 중국과의 교류 등을 통해 상당히 발달된 수준의 목재 가공기술과 생활수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칠기제품이 다양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목재를 가공해서 만든 수레바퀴(재현품). 당시 중국과 낙랑 등에서 사용하던 바퀴와 비슷한 형태이다.

경이로운 목기와 칠기의 메카
청동기시대는 경작지 확대와 벌목을 위한 대형의 돌도끼가 등장하고 끌, 자귀, 대팻날의 목공구세트가 완성되었다. 이는 주거건축 기술이 발달하는데 영향을 주고, 다양한 목기의 제작이 이루어져 생활용구의 다양화를 촉진하는 듯 역동적인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 청동기와 철기의 유입으로 공구의 재질이 금속으로 바뀌게 되면서 기술혁신과 생산력이 증대되는 등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신창동에서 출토된 목제유물을 용도별로 분류해 보면 무길, 농공구류, 용기류, 제의구류, 방직구, 악기류, 거여구, 건축부재, 생활용구가 있다.,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생산관련 자료는 철기가 남부지방으로 보급된 시기의 생산기술적인 측면과 함께 변화된 사회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 농경과 함께 목기와 칠기의 생산이 있다. 신창동 유적은 생활, 생산, 무덤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와 유물이 조사되어 당시 문화를 총제척으로 규명할 수 있는 복합유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 저습지와 주변에서 확인되는 목기, 철기, 천, 토기 등 다양한 생산관련 자료는 초기 철기시대 경제활동과 기술의 발달정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칠용기, 칠주걱, 마연용 천, 칠기 등 철기 생산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되어 신창동 유적이 한국 칠기의 메카임이 드러났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자귀자루, 도끼자루,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자귀자루, 본 줄기에서 뻗은 가지를 손잡이로 하고 본 줄와 만나는 부분을 깎아 자귀를 결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질기고 단단한 성질의 참나무를 자용하였다. 도끼자루, 나무를 베거나 분리하는 작업에 사용하는 도끼의 자루이다. 1자 형태의 자루는 네모는 구멍에 도끼를 관통하여 장착하고, ㄱ자형태는 꺾인 부분에 도끼의 공부를 끼워 장착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목제용기,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굽다리접시.원통모양칠기.칸막이고배.사각용기.완.접시 등이 있다. 칠기로 제작된 목제용기는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어 의례 등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OLYMPUS DIGITAL CAMERA사각용기, 접시, 손잡이 달린 사각용기, 국자, 뚜껑,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벚나무와 참나무. 신창동 유적에서 확인된 목제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수종들이다.

벚나무, 신창동 유적에서 확인된 두 번째로 많은 수종이다. 현악기, 바디, 검집, 부채자루, 고깔, 칸막이고배, 완, 뚜껑 등에 사용되었다. 특히 오리나무류와 함께 칠제품에 선택적으로 사용된 용재이다. 참나무, 신창동 유적에서 확인된 가장 많은 수종이다.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이 이에 속한다. 괭이와 따비, 방망이 등의 농공구와 수레 부속구, 말뚝 등에 사용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팻날도끼, 조갯날 도끼, 홈자귀

농구와 공구의 자루
농구는 괭이, 따비, 낫자루, 절구공이 등이며 절구공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날과 자루부분을 결합하여 사용하게 된다. 낫은 쇠로 만들어진 날이 나무로 만든 자루에 장착되지만, 괭이와 따비는 날과 자루를 모두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자루는 대부분 적당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사용하였는데, 괭이와 자루의 장착은 자루의 끝부분을 쪼개고 쇄기를 박아 결합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낫자루의 경우에도 쇠로 만들어진 날 부분을 홈에 삽입한 뒤 쐐기 등으로 고정하였다. 공구는 도끼와 자귀자루가 대표적이다. 도끼와 자귀는 장착된 날의 방향에 있어 차이가 있는데, 보통 도끼날은 작업시 팔의 운동방향과 평행하게 장착되고 자귀는 직교한다. 도끼와 자귀자루는 장착방법에 있어 두 가지로 나뉜다. ㄱ자 형태의 도끼와 자귀자루는 줄기에서 뻗은 가지를 자루로 하고, 줄기부분을 사용하여 도끼 등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가공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신창동 공방에서 만들어졌던 목재도구들. 조선시대 농기구 등을 만들었던 대장간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신창동 공방
목공구는 도끼, 자귀, 대팻날, 끌, 새기개, 송곳, 손칼 등이 있다. 이러한 목공구는 대부분 나무나 뿔로 만들어진 자루에 결합하여 사용하는데, 신창동에서는 도끼와 자귀자루, 손칼손잡이가 출토되었다. 목기의 제작과정은 적합한 나무의 선정과 벌체에서 시작하며, 각 과정에 적합한 도구를 사용하였다. 농공구 자루는 참나무류로 만들어졌다. 목제용기와 칠기는 벚나무, 단풍나무, 오리나무를 사용하였으며, 북은 버드나무로 만들어졌다. 농공구 자루는 거친 작업에 사용되는 것으로 쉽게 파손되지 않도록 단단하고 질긴 성실을 가진 참나무류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 현재도 전통 북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버드나무는 악기를 만드는데 적합한 나무이다. 이처럼 신창동 사람들은 나무의 성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용도에 맞는 적절한 나무를 선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목제품은 말뚝과 같이 도끼로 가공하여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칸막이고배처럼 옻칠로 마무리되는 것까지 제작과정과 사용도구에 있어 매우 다양하다. (안내문, 광주박물관,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원통모양칠기,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원통모양칠기는 통나무나 얇은 판재를 원통모양으로 가공하여 만든 몸체에 바닥판을 결합시켜 완성하였다. 내외면 모두에 두꺼운 옻칠을 한 고급용기이다.

칠기란?
칠은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천연도장재료이다. 칠은 옻나무 수액을 1차적으로 가공한 생칠, 2차 가공된 정제칠로 구분된다. 생칠은 모아진 옻나무 수액 속의 불순물을 걸러낸 것으로 칠하는 목적보다는 광택을 내거나 접착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정제칠은 생칠에 열을 가하면서 수분을 증발시키고 여과하여 얻어진 것으로 투명칠이라고도 한다. 투명칠에 여러가지 안료를 첨가하여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다. 또 칠기는 칠하는 물건의 재료에 따라 나무에 칠하는 목태, 금속에 칠하는 금태, 토기에 칠하는 도태 등으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칠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방부, 방수, 방충의 기능과 내구성을 강화하는데 사용된다. 또, 아름답게 장식하여 미적인 감각을 표현하고 강력한 접착제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칠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지고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칠주걱,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아랫부분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들어 전면에서 보면 긴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옻칠의 채취 및 가공, 칠기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칠이 담긴 토기,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신창동에서 출토된 토기 중에는 내부에 칠이 담겨 있는 것이 있다. 옻칠 재료인 옻나무 수액을 보관하거나, 정제칠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원통모양칠기 몸체,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원통모양칠기 저판,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옻칠토기,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토기에 칠을 하여 표면을 매끄럽고 광택이 나게하여 아름답게 하며, 수분의 침투를 방지하였다. 옻칠토기는 흑칠을 하여 표면이 검은 것과 생칠 후 마연하여 투명한 것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옻칠토기,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신창동의 칠기
신창동의 칠기 제작기술은 용기제작에 있어 접합 뿐 아니라 다양한 재질에 적용되었다. 신창동에서 출토된 칠기는 대부분 목태이며 장식문양이 없는 흑칠이 기본이다. 금태는 녹 부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칠한 것인데 검집의 연결금구에 유일하게 보인다. 도태는 토기의 안과 밖을 칠한 것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습기의 침투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신창동에서는 칠주걱과 내부에 칠이 담겨 있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또, 내면 바닥에 칠이 묻어 있는 천 조각이 부착된 토기도 있다. 천 조각은 토기 내면을 칠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신창동 유적에서는 완성된 칠기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칠기제작과 관련된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는 2,000년 전 신창동은 고도의 칠기제작기술을 소유한 생산 집단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유적 주변의 영산강을 칠천이라 칭하였던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 유적, 마한의 대표적 생활 유적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일대에 있는 신창동유적(사적375호)는 초기철기시대 마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모습을 살표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1963년 처음 발굴이 시작되어 53개의 독널이 발견되었다. 이후 1990년대 도로광사 과정에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이곳에서는 공방지로 흔적과 수많은 목제유물,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모여주는 탄화미를 비롯하야 다양한 동식물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창원 다호리 유적과 함께 삼한시대 생활모습을 모여주는 대표적인 생활유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2,000년 전 신창동 유적을 만나다.
사적 제375호인 신창동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거대한 농경복합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위치하며, 영산강변에 낮게 솟은 삼각산(해발 98.1 m)에서 영산강의 서안을 따라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자락에 해당한다. 현재 호남고속도로가 유적을 통과하고 있다. 신창동 유적이 최초로 알려진 것은 1963년 옹관묘 조사를 통해서이다. 그 뒤 국도 1호선 개량공사가 진행되면서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긴급조사를 실시하여 저습지와 함께 토기가마, 도랑, 주거지, 밭 등이 확인되어 초기철기시대의 생산 및 생활, 무덤이 결합된 대단위 복합유적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다양한 유기물과 생활유물이 포함된 저습지 유적은 학술적.문화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되어 1992년년 9월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국립광주박물관은 20년간 신창동 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2,000년 전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의 흔적은 4개의 구릉과 3개의 곡간을 따라 확인되고 있다. 유적의 서쪽을 기준으로 첫번째 구릉에서는 옹관묘, 두번째 구릉에서는 토기가마.도랑.밭, 두번째와 세번째 구릉사이에는 저습지 유적이 형성되어 있다. 네번째 구릉의 동쪽은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며 영산강과 만나는데, 이곳에서 도랑(환호)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와 네번째 구릉의 비교적 높은 지대를 따라 송국리식 주거지와 후행하는 마한계 방형주거지가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두번째와 네번째 구릉을 따라 환호와 함께 주거영역이 형성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는 토기가마와 밭, 곡간과 충적대지에는 저습지와 논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에서는 칼.활 등 무기, 괭이.낫 등 농공구, 원통모양칠기를 비롯한 각종 용기, 발화구.신발골.베틀 부속구.현악기.빗 등 다양한 목기와 칠기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거나 최초로 발견된 것들로 국내외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함꼐 다양한 토기, 골각기, 동식물 유체가 출토되어 한국 고대 문화의 여러가지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보습, 신석기시대, 여수 화태도, 여수 송도패총, 여수 안도패총 외

세계와 우리나라의 농경
약 1만년 전 부터 시작된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인 전신세는 흔히 후빙기라 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해면의 변동, 강수량의 변화, 산림과 색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인류는 이러한 생태환경 변화와 인구 증가 등의 요인에 적응하면서 채집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농경을 시작하게 되었다. 세계의 농경은 각지에서 고유한 양상으로 전개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초의 농경은 약 1만년 전 이른바 비옥한 초생달지역으로 불리는 서남아시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ㅌ 나일강유역에서 시작되었다. 홍수나 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토지대를 배경으로 밀과 보리 등이 재배되고 개, 염소, 양, 돼지, 소 등이 가축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중국 양자강 하류지역에서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절강성 하모도 유적에서는 다양한 농기구와 함께 불탄 쌀, 벼껍질 압착층이 확인되어 이 지역이 동아시아 벼농사의 기원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초기 농경은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는 조.피.기장 등 탄화된 잡곡과 함께 최근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조사된 밭 유구는 신석기시대부터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청동기시대로 전환되면서 벼와 같은 새로운 재배작물과 농사도구가 등장하고 농경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후 농경은 지속적으로 발달하는데, 초기철기시대의 광주 신창동 유적은 이 시기 대규모 농경복합사회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재배작물 씨앗과 함꼐 괭이.따비.낫.절구공이 등 다양한 목제농사도구, 각종 의례유물이 확인되어 당시 농경기술의 복원과 농경의례에 대한 접근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호미형석기, 신석기시대, 여수 월호도, 여수 개도, 돌칼, 신석기시대, 여수 화태도, 여수 안도 외

OLYMPUS DIGITAL CAMERA괭이, 신석기시대 여수 송도, 보성 동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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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래, 청동기시대, 광주 동림동, 고무래는 논이나 밭의 흙을 덮을 때 사용되는 도구이다. 이 고무래는 장방형의 목재에 둥근 구멍을 뚫어 자루를 끼우고, 양끝에는 흙받이를 결합할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뚫었다.

땅을 일구는 도구
밭의 이랑을 만들거나 경작에 필요한 땅을 일구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괭이.삽.보습.따비 등이 있으며, 나무자루를 묶어 사용하였다. 괭이와 삽.보습은 신석기시대 이래 계속 사용되는 도구로 돌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나 뼈로 만든 것도 확인된다. 신창동에서는 평괭이와 쇠스랑모양괭이 두 가지 형태의 괭이가 확인되었다. 괭이의 날과 자루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이후 대부분의 농기구는 철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농업생산력의 증가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돌칼, 청동기시대, 보성 봉갑리 외

OLYMPUS DIGITAL CAMERA돌낫, 청동기시대, 곡성 현정리, 돌칼, 청동기시대, 장흥 송정리 외

수확도구
경작한 곡식을 수확하는 도구로 돌칼과 낫이 있다. 신석기시대의 농경의 시작과 함께 출현하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많이 확인된다. 돌칼은 평면이 타원형 또는 반원형이며 중앙부에 1~2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끈을 꿰어 사용한다. 중국 화북지방 농경문화와 관계가 있으며 처음에는 잡곡의 수확도구로 만들어졌다. 이후 청동기시대 중기부터 벼농사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낫은 형태 상 등과 날로 되어 있으며 한 쪽 끝에 자루를 묶어 사용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신창동 탄화곡물,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신창동 유적의 벼농사와 작물
신석기시대에는 조.기장과 같은 잡곡 위주의 농경이 이루어지다가, 청동기시대로 전환되면서 벼농사가 새로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두류.맥류 등 다양한 재배작물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는 벼, 조, 밀, 들깨, 오이, 삼 등 다양한 재배작물이 확인되었다. 재배벼는 크게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두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포니카는 낟알의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단립형이다.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벼는 전형적인 자포니카로 판명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의 벼종에 해당하는 자포니카 열대형인 자바니카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DNA분석 결과도 재배벼인 단립미이며, 열대형의 자포니카로 분류되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이 시기에 새로운 벼종의 유입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창동 유적에서 확인된 다량의 벼껍질과 불탄 쌀 등은 대부분 유적 주변의 논에서 재배되어 수확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양한 목제 농구와 최소 500여 톤을 능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벼껍질 압착층의 확인은 대규모 수전의 가능성을 증명해 준다. 한편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밭 유구의 흙을 분석한 결과, 벼를 재배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신창동 유적이 논벼와 함께 밭벼의 생산기반이 갖춰진 것으로 증명되었으며, 우리나라 벼농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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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자국 토기,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그릇을 빚을 때 묻었던 볍씨 자국이 가마에서 구운 이후에도 석고에 모양을 뜬 것처럼 남아 있다. 이처럼 바닥에 볍씨 자국이 남아 있는 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농사도구
농사도구는 크게 굴지수, 수확구, 곡물가공구로 구분된다. 굴지구는 땅을 일구는 괭이와 따비, 수확구로는 돌칼과 낫, 곡물가공구로는 갈돌과 갈팔, 돌확과 공이, 절구공이 등이 있다.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농사도구가 출토되었는데 괭이, 따비, 낫자루, 절구공이 등이 있다. 괭이는 날이 달린 몸체와 자루로 구성되며, 평괭이와 쇠스랑형괭이의 두종류가 있다. 괭이는 머리 부분에 네모난 구멍을 만들고 자루를 결합한다. 괭이의 앞면에서 자루를 끼운 뒤 밖에서 자루의 중심에 쐐기를 박아 고정하였는데, 신창동 유적에서만 확인되는 독창적인 결합기술이다. 따비는 두 개의 날을 가진 상날따비로 농경문청동기에 보이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복원이 가능하며, 민속품에 보이는 따비와도 비슷하다. 낫은 31점으로 많이 출토되었으며, 작은 자연목 또는 가지를 막대모양으로 자르고 낫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을 뚫었는데, 고정을 위한 홈을 만든 것도 있다. 절구공이는 원형의 목재를 이용하여 중앙부에 손잡이를 만들고 양끝을 공이로 이용한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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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날따비,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따비는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일구는데 사용하는 굴지구이다. 날의 수에 따라 외날따비와 쌍날따비로 구분된다. 농경문청동기에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최근까지도 사용된 대표적인 농사도구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평괭이,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괭이는 땅을 파고 고르는데 사용된 도구로 날과 자루로 구성된다. 이 괭이는 판상의 목재에 네모난 구멍을 만들어 자루를 결합하는 형태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평괭이,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쇠스랑모양괭이,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괭이는 땅을 파고 고르는데 사용된 도구로 날과 자루로 구성된다. 이 괭이는 뾰족하고 긴 날이 2~3개 달려 있는 목재에 네모난 구멍을 만들어 자루를 결합한 형태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0

OLYMPUS DIGITAL CAMERA낫자루,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철낫을 장착해서 사용하는 도구로 작은 자연목 또는 가지를 막대 모양으로 잘라내고 낫을 끼울 수 있도록 구멍을 뚫었다. 낫과 나루를 묶기 위한 홈을 만든 것도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활,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활은 탄성을 이용하여 화살을 쏘아 보내는 것이다. 신창동에서 출토된 활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 직궁으로 양쪽 끝 부분 일부가 남아 있다. 시위를 거는 부분에 탄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달려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사슴, 멧돼지

OLYMPUS DIGITAL CAMERA그물추,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자돌구,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그물추, 그물 끝에 매달아 그물이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어로 도구이다. 신창동에서 확인된 그물추의 형태는 원통형과 구형이 있다. 모두 그물에 매는 구멍을 가운데에 뚫어 만들었다. 자돌구, 길이가 길고 한쪽 끝이 뾰족한 형태로, 사슴의 앞다리 뼈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자루의 끝에 끼워 수심이 얕은 곳에 있는 물고기를 찔러서 잡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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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데 사용하는 어구로 싸리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위가 좁고 아래로 점차 바라진 형태이며, 가운데가 열려 있다. 고깔모양으로 복원이 가능하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논 어로의 출현
식물성 식량은 채집과 농경을 통해 확보하는 것임에비해 동물성 식량은 사냥과 어로, 가축사육을 통해 확보되었다.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는 잉어, 가물치, 숭어, 참돔, 가오리류와 넙치류 등의 어류와 재첩, 작은말조개, 굴 등의 패류가 확인되었다. 논은 벼농사를 위한 생산지이지만, 예전 우리의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논 물고기잡이도 이루어졌다. 통발과 가리, 자돌구, 토제 그물추가 달린 어망을 이용하여 논의 용수로나 방죽에서 붕어와 잉어 등 민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이렇게 논 어로를 통해 잡는 어류는 논농사의 시작과 함께 논 환경에 적응하여 특징적인 생활양식을 갖게 된 어류이다. 이와함께 재첩, 우렁이, 다슬기, 메기 등 민물어패류 등의 채취도 논의 관개시설, 즉, 수로와 방죽.보 등지에서 행해졌다. 대체로 농사기간 중 여가를 이용하여 행해진 어로작업은 농민에게는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봄, 소, 사슴, 오리

OLYMPUS DIGITAL CAMERA여름, 잉어, 가물치, 숭어, 오이, 밀, 살구, 다슬기, 박

OLYMPUS DIGITAL CAMERA가을, 가래, 재첩, 말조개, 밤, 벼, 도토리, 머루

OLYMPUS DIGITAL CAMERA겨울, 수달, 멧돼지, 자라, 기러기, 꿩, 넙치, 가오리, 참돔

OLYMPUS DIGITAL CAMERA나무방망이, 절구공이,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나무방망이, 나무방망이는 물체를 단단하게 다지거나 빻는 등 생활 속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밖에 견과류의 껍질 분리 등의 용도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절구공이, 원형의 목재를 이용하여 중앙부에 손잡이를 만들고 끝을 공이로 이용한 쌍공이 형태의 절구공이이다. 끝부분이 둥근 것은 껍질을 벗기는 용도로, 편병한 것은 곡물을 빻는 용도로 보기도 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시루,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옹형토기와 뚜껑,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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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음식을 조리기에서 식기로 옮기는 데 사용되는 취사도구이다. 신창동에서 출토된 국자는 손잡이 부분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현재 사용하는 국자의 모양과 거의 같은 형태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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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음식을 조리기에서 식기로 옮기는 데 사용되는 취사도구이다. 현재 사용하는 주걱과 비슷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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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시루와 항아리,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조리도구와 식기
조리는 재료의 씻기, 벗기기, 삶기, 끓이기, 데치기, 튀기기, 찌기 등의 여러가지 행위를 말한다.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날것으로 먹거나 구워 먹는 방법이었으나, 토기가 등장하면서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의 종류가 확대되고, 다양한 조리법도 가능하게 하였다. 철기의 등장과 함께 시루, 솥, 국자와 같은 취사도구와 취사설비의 개량과 보급으로 조리법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시루는 찌는데 사용하고, 옹형토기는 주로 삶거나 끓이는데 사용되었다. 다른 조리도구로 밥과 같은 음식을 조리기에서 식기로 옮기는데 사용된 주걱, 국이나 죽과 같은 음식을 옮기는 국자가 있다. 신석기시대에 성립된 바리모양 토기는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옹, 항아리, 굽다리접시 등으로 기능분화가 시작된다. 이러한 분화는 도작농경의 전파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더욱이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추가된다.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식기는 토기와 목기, 칠기로 구분된다. 토기로는 굽다리접시, 검은간토기, 바리, 대접, 컵형토기, 접시 등이 있다. 목기로는 굽다리접시, 원통모양칠기, 칸막이고배, 사각용기, 완, 접시, 굽다리항아리가 있다. 이러한 기종구성은 이후의 시기에도 변화없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창동 유적이 형성된 시기에 이미 오늘날의 식탁 위의 식기의 전 기종이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국자, 굽다리접시, 뚜껑, 완, 바리,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토제식기식기로는 굽다리접시, 검은간토기, 바리, 대접, 접시, 귀때토기 등이 있다. 신창동 유적이 형성된 시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식기의 전기종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 달린 사각용기, 사각용기, 칸막이 고배, 완,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목제용기는 굽다리접시.원통모양칠기.칸막이고배.사각용기.완.접시 등으로 토기와 기본 구성이 동일하다. 칠 용기는 의례용 또는 신분이 높은 계층을 위한 고급 식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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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달린 호,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 달린 호,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 달린 호, 호형토기

OLYMPUS DIGITAL CAMERA고상가옥, 신창동 유적에서 확인된 건축부재와 집터 등을 통해 복원한 건물이다. 지금도 동남아시아 지역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로 곡식 등을 저장하기 위해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량의 저장
신창동 저습지에 인접하여 직경 22 cm 내외의 참나무 기둥이 세워진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집의 출입시설에 해당하는 문짝, 집을 만드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건축부재가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고상가옥 형태의 집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상가옥은 기둥을 세우고 바닥면을 지면보다 높게 만들어 사다리를 통해 출입하는 마치 원두막과 같은 형태의 건물이다. 이 고상가옥은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부경과 같이 창고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 창고는 곡식을 비롯한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로 만들어졌다. 토기는 기능에 따라 조리기와 식기, 저장용기 등으로 구분된다. 항아리는 주로 저장용기로 사용되는데, 내년에 파종할 씨앗이나 식량으로 사용할 곡식을 담아 습기와 동물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고상가옥 안에 보관하였을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광주박물관] 마한의 대외교류

영산강 유역과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은 고대 한.중.일 무역로 주요 거점으로 오랜 세월 중국, 일본과 교류해 왔다. 삼국시대에도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갔지만 지방세력으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오다 점차 백제에 흡수된다. 반면에 전남 동부지역은 가야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전남지역에서는 중국과 교류를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장고형고분, 곱은옥, 야요이토기 등 유적과 유물로서 일본과의 교류를 확인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관모,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삼국시대.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지역세력에게 나누어준 위세품으로 보여지는 금동관모이다.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동북아시아 속의 마한
광주.전남지역 선사시대에는 결합식낚시바늘, 귀걸이, 흑요석, 화천, 오수전, 동경, 중국식동검, 납-바륨계 유리, 낙랑토기, 야요이계토기, 하지키계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런 문물은 광주.전남지역이 신석기시대부터 일본열도, 중국과 문화교류가 활발하였음을 보여준다. 마한이 기원후 286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고, 4세기 후반 백제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광주.전남지역에 금동관모.금동신발.금속.유리제 장신구 등이 돌방무덤에서 출토된다. 이러한 위세품은 삼국시대부터 마한이 중국, 일본, 백제와 정치적인 교류로 성격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전남 동부지역은 4세기 후반 ~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가야계문화가 확인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오수전, 여수 거문도, 중국 한~수. 한.중.일 무역교통로에 위치한 전남지역에서는 낙랑 등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중국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당시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동전을 들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박유리구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삼국, 빈구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삼국, 구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삼국, 백자완, 광양 마로산성, 중국, 청자완, 광양 마로산성, 중국

기원전 4~3세기 경 중국으로부터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화천, 오수전, 동경, 중국식동검, 납-바륨계 유리, 낙랑토기 등 중국문물이 함께 들어온다. 마한은 3세기 후반까지도 중국 서진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7세기 무렵에는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나 당을 통하여 도자문화가 전해진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릇받침, 순천 덕암동, 굽다리항아리, 해남 가좌리, 긴목단지, 순천 덕암동, 그릇받침, 순천 운평리, 가야. 전남 동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가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토기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광양 원월리, 고흥 신촌, 순천 왕지동, 가야

전남 동부지역은 6세기 전반까지 가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순천 운평리.용당동.왕지동, 여수 죽림리에서 확인된 가야계 돌덧널무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지역 가야 문화는 가야연맹체의 성쇠와 함께 변천한다. 4세기 후엽 ~ 5세기 전반에는 금관가야 및 아라가야문화가, 5세기 ~ 6세기 초에는 소가야계 문화가, 5세기 말 ~ 6세기 전반에는 대가야 문화가 나타난다. 이후 백제의 진출과 함께 가야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백제문화에 편입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딸린곱은옥, 일본 고분시대, 순천 월산리 반원. 곡옥은 일본 천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 중 하나로 고대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입큰구멍단지, 일본 고분시대, 무안 맥포리, 광주 동림동, 영암 만수리, 무안 사창리, 장군, 일본고분시대, 광주 산정동, 광주 하남동

OLYMPUS DIGITAL CAMERA입큰구멍단지, 하남 월송리, 광주 월계동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일본 야요이시대, 보성 조성리

OLYMPUS DIGITAL CAMERA새김덧띠무늬토기, 일본 야요이시대, 광주 평동

광주 전남지역은 신석기시대부터 일본열도와 밀접히 교류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와 청동기 제작기술을 일본 야요이시대 성립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야요이계 토기와 하직기계 토기는 이를 뒷받침한다. 6세기 무렵에는 영산강유역에 일본 스에키토기를 비롯하여 일본과의 연관성이 제기되는 무덤들과 백제계 문물이 등장하면서 일본과 백제의 문물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산강 유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장고형고분. ‘전방후원분’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일본의 고대 무덤 형식이다.

장고형고분
6세기 후반 이후 마한 지역에 원형 분구를 갖춘 백제식 돌방무덤이 유행할 무렵, 영산강 유역이나 서해안 지역에 둥근 분구 앞부분에 네모난 봉토를 덧붙이 형태의 장고분이 나타난다. 이른바 ‘전방후원분’이라고도 하는 장고분은 무덤의 외형 뿐 아니라 원통형토기 등 일본 관련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있어 무덤의 성격에 관하여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목간, 복제품, 나주 복암리.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목간이다. 복암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향을 받은 영산강 유역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당시 사람들이 중국과 거래, 행정 등을 위해 문자를 사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목간, 복제품, 나주 복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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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복제품, 나주 복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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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복제품, 나주 복암리.

OLYMPUS DIGITAL CAMERA녹유벼루, 순천 검단산성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보성 조성리, 쇠손칼, 보성 거석리 구주

OLYMPUS DIGITAL CAMERA토제잔, 삼국시대, 보성 도안리 석평, 해남 황산리 분토

OLYMPUS DIGITAL CAMERA전달린토기, 삼국시대, 광주 양과동 행림, 작은단지, 삼국시대, 무안 맥포리, 영암 신연리

OLYMPUS DIGITAL CAMERA긴목잔, 삼국시대, 해남 황산리 분토, 보성 도안리 석평, 영암 만수리, 굽다리 완, 광주 평동, 주전자, 광주 동림동,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잔, 순천 대곡리 도룡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접시, 삼국,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짧은목항아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말띠꾸미개, 삼국,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굽다리접시,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문자와 차 문화
6세기 후반, 마한 지역에 들어온 백제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자’이다. 나주 복암리유적에서는 모두 65점의 목간이 출토되어, 이 시기 활발한 문자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간은 행정문서나 세금 관련 기록, 물자 이도에 따른 꼬리표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목간에는 먹으로 글씨를 쓴 경우가 많으며, 글씨를 지울 때는 손칼을 사용하였다. 차(茶)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의 신라 흥덕왕 3년(828) 기사에서 확인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4~5세기 무렵 불교 수용과 함께 차 문화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광주 동림동유적 출토 토기 주전자에는 물 따르는 주구 안쪽에 거르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차와 관련된 용기로 추정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 쇠낫, 삼국,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쇠손칼,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미늘갑옷,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OLYMPUS DIGITAL CAMERA복발,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OLYMPUS DIGITAL CAMERA가슴가리개,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OLYMPUS DIGITAL CAMERA긴칼,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쇠투겁창,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물미,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마한속의 백제문화
369년, 백제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벌한 후 재지세력자들에게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중국도자기 등 당시 희귀한 물품을 내려주는 간접지배 방식을 채택하였다. 천안이나 익산, 나주 등지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이런 물품들은 백제문화의 확산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목간을 사용한 문서의 유통이나 차문화 같은 백제 상류층의 귀족문화도 함께 전해져 마한의 전통 문화는 점차 약화된다. 6세기 부반부터는 마한 토착묘제를 대신하여 백제계 돌방무덤이 수용되면서 완전히 백제문화에 흡수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살포,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OLYMPUS DIGITAL CAMERA 금동신발,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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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어깨가리개, 판갑옷,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안동고분은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마을에 있다. 2006년, 전남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 분구 정상부에 1기의 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에서는 금동관모를 비롯하여 금동신발, 금동귀걸이, 청동거울, 철제갑옷과 투구, 고리자루칼, 살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동관모는 백제왕실에서 지방 유력자에게 하사한 사여품으로, 멀리 떨어진 해안지역까지 백제 중앙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광주박물관] 마한사람들

마한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충청.전라자 지역에 있었던 정치집단을 말하면 중국 역사서 <삼국지>에는 마한지역에 54개 소국이 있었으며 그 중 목지국이 맹주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낙랑군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왜와 연결되는 해상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한.중.일 무역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 지역에서는 청동기 유물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출토되고 있으며 그 수준 또한 높은 편이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 기록된 마한에 대한 내용은 거의 비슷한데 옥과 구슬을 좋아하고 제사의식에 방울을 사용하는 등이 내용이 있는데 이는 출토유물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이와 구슬, 고흥장덕리 등. 중국 역사서 <후한서> 등에는 마한사람이 옥이나 유리로 만든 구슬을 특히 좋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한
마한은 기원전 3~2세기부터 기원후 5~6세기까지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존재하였던 정치연맹체이다. 기록에 의하면, 마한은 목지국을 맹주로 하는 54개의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한의 북쪽에는 낙랑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왜와 접하였고, 동쪽에는 진한과 변한이 있어 삼한을 이루었다. 마한은 규모가 10여만 호에 이를 정도로 삼한 가운데 가장 강대하였다. 중국 서진(265~316)에 사신을 파견할 만큼 어느 정도 정치적인 독자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마한의 중심세력이 남쪽에 자리잡게 되고,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에는 정치.문화적으로 완전히 백제에 편입된다.(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오수전, 여수 거문도 서도리, 중국 한~수. 마한지역 사람들에 중국과 교역하면서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옥은 휘석, 각섬석, 사문석, 실리카로 구성되는 광물로, 크게 경옥과 연옥으로 구분된다. 넓은 의미로 유사한 성질을 지니면서 장신구로 가공되는 수정, 호박, 마노, 벽옥, 납석 등이 옥에 포함되기도 한다. 옥은 다양한 빛깔과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갖춰 선사시대부터 종교나 의례, 벽사, 장식 등 다양한 목적에 사용되었다. 마한 사람들은 특히 옥을 금이나 비단보다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이어 옷이나 신체를 장식하는데 널리 애용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구슬, 담양 태목리, 순천 덕암동, 대롱옥, 광주 선암동,곱은옥, 순천 복성리 상비,

OLYMPUS DIGITAL CAMERA구슬.굽은옥, 곡성 연화리, 여수 평여동 외

OLYMPUS DIGITAL CAMERA송곳.줄, 보성 도안리 석평, 줄.수정, 보성 도안리 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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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원석, 보성 도안리 석평, 수정 가공품, 보성 도안리 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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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가는 돌, 보성 도안리 석평, 대롱옥, 영암 옥야리

유리옥
유리는 제작과 가공이 쉽고, 오랫동안 변질되지 않으며,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갖가지 색깔을 만들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유리의 화학조성은 납, 포타쉬, 소다, 알칼리혼합유리 등으로 분류된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3~2세기 무렵의 부여 합송리, 당진 소소리, 장수 남양리유적 등에서 중국계 납-바륨 유리가 출토되었다. 기원전후에는 해남 군곡리패총에서 소다유리가 출토되는 등 원료가 다양해지고, 다채로운 색상과 모양의 유리옥이 장신구의 주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거푸집, 담양 태목리

OLYMPUS DIGITAL CAMERA곱은옥 거푸집, 해남 군곡리, 광주 선암동, 대롱옥 거푸집, 광주 선암동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거푸집, 광주 선암동

OLYMPUS DIGITAL CAMERA구슬, 고흥 장덕리, 순천 덕암동, 담양 태목리

마한 사람들의이 옷차림
금.보화.비단.모직물 등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소와 말을 탈 줄을 모르고, 오직 구슬을 귀중히 여겨서 옷에 꿰메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달기도 한다.
그들은 대체로 머리를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 놓으며,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짚신을 신는다. <후한서 동이열전>
구슬을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달기도 하지만 금.은과 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풍속은 옷과 모자를 입거나 쓰기를 좋아하여, 일반백성들도 (낙랑이나 대방)군에 가서 조알할 적에는 모두 옷과 모자를 빌려 입으며, (대방군에서 준) 자신의 인수를 차고 옷과 모자를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된다.
머리칼을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다.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풍속에는 금.은.비단.모직물 따위를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구슬을 귀중하게 여겨서 옷에 꿰어 차기도 하고 또는 머리를 장식하거나 귀에 달기도 한다.
남자들은 머리를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며,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짚신을 신는다. <진서 동이열전>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이와 구슬, 보성 봉동 등

주조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철기를 제작하는 공정. 탄소가 많이 포함된 선철을 다시 가열하여 만든 쇳물 사용. 냉각 속도에 따라 백주철, 회주철이 있음. 서서히 식혀 점성이 강한 회주철이 많이 사용됨. 충격에 약해 주로 용기 제작에 사용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송풍관, 광주 신창도, 슬래그, 광양 용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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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도끼, 광주 동림동, 쇠도끼 거푸집, 광양 도월리

단조
가열된 철 소재를 두드려 철기를 제작하는 공정. 가열과 두드림이 반복되는 단야는 쇠의 성질을 단단하게 함. 단야도구에는 집게, 망치, 모루, 숫돌 등이 있음. 고대에는 철기 제작을 위한 중간 소재로 덩이쇠가 만들어짐 주로 칼처럼 예리한 날이 필요한 무기 제작에 사용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쇠손칼, 나주 복암리,

OLYMPUS DIGITAL CAMERA덩이쇠, 해남 원진리,

OLYMPUS DIGITAL CAMERA쇠칼, 순천 용당동, 단야구, 무안 사창리, 숫돌, 무안 사창리

OLYMPUS DIGITAL CAMERA덩이쇠, 해남 원진리, 고흥 장덕리,

OLYMPUS DIGITAL CAMERA전남지역의 토기들,

독널은 시신이나 뼈를 묻는 토기를 말하며, 독널무덤은 독널을 이용한 무덤 쓰기의 한 방식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비교적 크기가 작은 유.소아용 독널이 주로 사용되었다. 삼한시기 진.변한 지역에서는 지하에 깊은 토광을 파고 나무널이나 덧널을 매장하지만 마한 지역에서는 비교적 얕은 토광 주위에 도랑을 돌리는 분구묘 혹은 주구묘가 채택되어 지역적인 차이를 보인다. 광주 신창동유적(BC100 ~ AD100)에서는 토기 2점을 맞물리게 배치한 이음독무덤이 널리 사용되었으며,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독널은 점차 대형화한다. 5세기 중엽 ~ 5세기 말경 나주 반남면 일대의 대형 분구묘에는 중심 매장시설로 커다란 전용독널이 설치되어 금강유역의 돌방무덤과 차이를 나타내며, 백제 중앙과는 차별되는 마한 문화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5세기 말경 영산강유역에도 독널무덤을 대체하는 백제계의 돌방무덤이 도입되며,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마한의 토착문화는 백제 문화에 완전히 편입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독널은 영산강유역 마한지역을 특징짓는 매장방식이다.

마한 사람들의 제사 풍습
해마다 5월에는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낮이나 밤이나 술자리를 베풀고 떼지어 노래 부르며 춤춘다. 춤출 때에는 수십명이 서로 줄을 서서 땅을 밟으며 장단을 맞춘다. 10월에 농사를 끝내고는 또 다시 이와 같이 한다. <후한서 동이열전>
그들의 춤은 수십명이 모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그 가락과 율동은 (중국의)의 탁무와 흡사하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이 있으니 그것을 ‘소도’라고 한다,. (그곳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으로 도망 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도적질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의) 풍습은 귀신을 믿으므로 해마다 5월에 씨뿌리는 작업을 마친 뒤, 뗴지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신에게 제사지낸다. 국읍에는 각각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재하게 하는데, 그를 ‘천군’이라 부른다. 또 별읍을 설치하여 그 이름을 ‘소도’라 하는데,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단다. 소도의 뜻은 서역의 부도와 흡사하지만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쁜 점은 차이가 있다. <진서 동이열전>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소형토기, 해남 군곡리,

OLYMPUS DIGITAL CAMERA새모양토기, 해남 군곡리, 소형토기, 해남 군곡리

OLYMPUS DIGITAL CAMERA토제구슬.곱은옥, 순천해룡면.해남 군곡리

점뼈는 동물 뼈를 불에 달구어 생긴 흔적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치던 도구이다. 주로 사슴과 멧돼지의 어깨뼈나 갈비뼈가 사용되었다. 점뼈는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동북지역과 일본의 규슈지역에도 분포한다. 마한 지역에서는 군산 남전, 해남 군곡리 등 조개더미유적에서 확인되며, 사천 늑도에서도 출토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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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뼈, 해남 군곡리

OLYMPUS DIGITAL CAMERA소형토기, 해남 군곡리

새는 영혼을 인도하거나 풍요를 준다는 믿음을 담고 있으며, 새를 형상화한 유물은 청동기시대부터 발견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소도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다’는 솟대 관련 기록은 삼한의 새 신앙을 보여주며, 새 모양 토기와 목기,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새 관련 의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새모양토기, 왕양 용강리, 담양 대목리,

OLYMPUS DIGITAL CAMERA새모양토기, 광주 동림동, 광주 선암동

OLYMPUS DIGITAL CAMERA이형 토제품, 보성 도안리 석평, 토제방울, 보성 도안리 석평

OLYMPUS DIGITAL CAMERA소형토기, 해남 군곡리

OLYMPUS DIGITAL CAMERA소형토기.국자형토기, 광주 평동.보성 도안리 석평

마한사람들의 주거와 생활
마한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 알며, 길쌈하여 베를 짠다. 큰 밤이 생산되는데 그 크기가 배와 같으며,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의 길이는 5자나 된다. 읍락에 잡거하여 또한 성곽이 없다. 땅을 파서 움집을 만드니 모양이 마치 무덤 같으며, 출입하는 문은 윗부분에 있다. <후한서 동이열전>

 

OLYMPUS DIGITAL CAMERA장란형토기, 광양 원월리.순천대곡리.순천 성산리 대법, 순천 덕암동, 손잡이달린토기, 담양 대목리, 구멍뚫린 항아리, 곡성 오지리, 짧은목항아리, 담양 대목리, 바리, 순천 대곡리 도름, 시루, 순천 성산리 대법

OLYMPUS DIGITAL CAMERA겹아가리 항아리, 담양 태목리,, 귀때토기, 여주 죽림리 차등, 완형토기, 순천 덕암동.광주 동림동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화순 용강리.곡성 오지리.순천 대곡리, 깊은 바리, 순천 대곡리

마한의 부엌
마한의 집터에서는 난방과 배연 기능이 강화된 터널식 노지와 여기에 조리 기능을 더한 부뚜막식 노지가 확인된다. 부뚜막 아래 아궁이는 점토로 만든 아궁이를 장식하였으며, 연도 끝부분에는 집밖으로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굴뚝을 냈다. 부뚜막 주변에서는 대개 시루와 솥으로 사용된 장란형토기가 함께 출토된다. 시루는 찜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릇으로 이 시기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외에도 취사와 관련된 각종 연질 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아궁이테, 광주 세동, 장한형토기, 여수 죽림리, 시루, 굴뚝, 광양 용강리 석정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광주박물관] 청동기문화의 발전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유물이(국보143호)가 화순군 대곡리 에서 출토되었다. 샤머니즘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지방울을 비롯하여 청동거울, 청동검 등이 함께 통나무관으로 만든 무덤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외 함평 초포리, 화순 백암리 등에서 비슷한 성격의 청동기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지방울, 복제품, 화순 대곡리, 국보 143호. 한반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로 샤머니즘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동기문화의 발전
한국 청동기 문화는 크게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한다. 비파형동검문화는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형성되었다. 거친무늬거울, 청동투겁창 등이 함께 제작되었다. 세형동검문화는 기원전 4~3세기부터 기원전.후에 해당된다. 잔무늬거울과 같은 정교한 청동기가 제작되며, 가지방울과 같은 의례용청동기가 다양하게 제작된다. 이 시기 광주.전남지역 유적은 화순 대곡리 유적이 태표적이며, 함평 초포리, 화순 백암리, 고흥 소록도 유적 등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가지방울, 복제품, 화순 대곡리, 국보 143호.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거울, 화순 대곡리, 국보 143호

OLYMPUS DIGITAL CAMERA1. 돌도끼, 2. 돌화살촉, 청동기시대, 고흥 소록도

OLYMPUS DIGITAL CAMERA3. 청동거울, 청동기시대, 고흥 소록도

OLYMPUS DIGITAL CAMERA동검,  화순 대곡리(국보 143호),

OLYMPUS DIGITAL CAMERA동새기개.청동도끼, 화순 대곡리(국보 143호), 청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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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검, 화순 백암리, 칼자루 끝 장식, 영암 장천리

화순 대곡리유적
화순 대곡리유적은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지널무덤이다. 1971년, 배수로 공사 중에 동검 3점.청동거울 2점.팔주령 2점.쌍두령 2점.도끼 1점. 새기개 1점 등 청동유물 11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2008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무덤은 2단 구덩이에 길이 약 180 cm, 너비 약 60 cm 크기의 통나무관을 묻고 그 위에 3~4단 돌을 쌓은 뒤 봉분을 덮은 구조이다. 통나무관 밑에서 동검 2점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무덤의 연대는 기원전 4~3서ㅔ기로 추정되며, 통나무관이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청동기시대 무덤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무덤 출토 청동유물은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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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널, 화순 대곡리

OLYMPUS DIGITAL CAMERA통나무관 모형

통나무관
대곡리유적에서 출토된 통나무관은 관의 바깥쪽과 뚜껑안쪽에 각각 턱을 만들어 서로 맞물리도록 제작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절강성 소흥의 인산대묘나 베트남박물관에 전시된 베케 유적 통나무관에서도 확인된다. 대곡리 유적 통나무관에 사용된 나무는 굴피나무로 동아시아 지역에만 분포한다. 같은 시기 통나무관이 사용된 예는 창원 다호리 유적 1호 무덤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무덤유적이 확인된 화순 대곡리 유적.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