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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벌교읍 태백산맥 문학관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소설 첫장면에 등장하는 소화의 집과 현부자집이 있는 곳으로 중도벌판과 순천만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취재메모를 비롯한 각종 자료,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자료들을 통해 소설 <태백산맥>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한번 살펴보고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벌교읍내 태백산맥거리에 있는 주요 명소들을 걸어서 한번 살펴보면 좋은 문학기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벌교읍과 지리산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졌던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기 위해 소설의 첫장면에 등장하는 ‘소화의 집’ 옆에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념관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 모형, 소설은 전체 10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로 이 지역에서 펼쳐졌던 빨치산 활동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내 약도 <태백산맥의 길, 통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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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읍 주변 지역 약도.

OLYMPUS DIGITAL CAMERA취재메모

OLYMPUS DIGITAL CAMERA취재수첩들

취재수첩들,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며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그만 수첩의 한 장에 적힌 것이 소설로 원고지 100장도 될 수 있고, 200장도 될 수 있다. 특히 빨치산에 대한 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으므로 이 작은 수첩 하나는 수십 권의 역사책이 당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지리산 약도

소설 무대가 지리산으로 넓어지면서 지리산에 대한 취재도 필수적이었다. 지리산은 워낙 거대하고 깊은 산이라서 한두 번 행보로서는 그 실체를 알기가 불가능하다. 평생 약초를 캐며 지리산에 산 사람도 지리산 아흔 아홉 번 골짜기를 다 모른다고 할 정도니까, 그래서 열 번 넘게 지리산을 오르며 이런 약도를 그려야 했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빨치산 노래 모음

중학교 학제가 5년제였을 때 광주 서중학교 3학년으로서 전교의 비밀조직 총책을 했던 박현채 선생은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빨치산 최연소 문화부 중책까지 했던 그분은 수많은 증언을 해 주었다. 그분의 탁월한 기억력은 그 당시의 노래 수십곡도 되살려 냈다. 왼쪽 것은 박현채 선생의 육필, 오른쪽 것은 그분이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받아 적은 것이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토벌대의 빨치산분포도. 토벌대에서 작성한 빨치산 지도자 이현상의 행로를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상황의 객관적 인식과 판단을 위해서 취재는 다각도로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당시 지리산 토벌대의 핵심세력 중 하나였던 서남지구전투 경찰대의 자료는 일정 시기의 빨치산들이 세력과 그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왜냐하면 빨치산 출신들 수백 명을 만나본다 해도 소단위 부대의 독립행동에다가, 주로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그들도 빨치산 전체상을 알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태백산맥 육필원고 첫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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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원고. 16,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원형상 -백두대간의 염원, 이종상.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첫장면에 등장하는 현부자집. 소설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1.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송광사박물관] 복장유물, 불구, 불화

송광사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로 한국 불교에서의 위상이나 그 내력에 비해 불상, 불구, 불화 등 불교미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은 유물들은 많지 않은편이다. 송광사 박물관에는 조선후기에 그려진 영산전 팔상도(보물 1368호)와 사천왕상 복장유물(보물 1468호) 등을 볼 수 있다.

복장유물의 이해
복장은 불상이나 불화를 봉안할 때 금.은.칠보 등의 보물을 함께 넣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불교적 상징물 또는 물품 그 자체를 이르기도 한다. 탑에 사리를 넣는 데서 유래하였는데 사리신앙이 유행하면서 탑 뿐만 아니라 불상 안에도 넣기 시작했다. 발원문, 후령통과 오곡, 오색실, 불경과 의복, 다라니와 만다라 등을 넣는데 여기에 복장경위를 기록한 문서나 해당 불상을 조성하게 된 경위 등을 적은 조상기도 함께 넣는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복장유물(북방 다문천왕), 보물 1468호,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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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상 복장유물(서방 광목천왕), 보물 1468호,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복장유물(동방 지국천왕), 보물 1468호,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보살입상,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목조석가모니불좌상 복장유물(황초폭자), 조선 1662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목조석가모니불좌상 복장유물(후령통, 청색유리편), 조선 1662년

부처님을 그리다
불교회화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교리를 그린 그림이다. 크게 기능적으로 불교의 내용과 경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교화용 불화, 단청.벽화 등 불전을 장엄하는 장엄용 불화, 불전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재와 괘불 등 의식에 사용되는 예배용 불화 등으로 나뉜다. 불화는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에는 주로 국가의 화원들이 그렸고, 조선후기에 들어 주로 승려화가인 화승을 통해 제작된다. 금어.화원.화공.화사.편수.양공 등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한다. 우두머리 화승이 불화의 밑그림이니 초를 그리거나 작업을 총괄하고, 다른 화승들이 협업하고 보조하는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팔상도 도솔래의상, 보물 1368호, 조선 1725년

팔상도라고 하는 불화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중 주요한 여덟가지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조선후기 팔상탱은 <석씨원류응화서적>의 영향을 받은 도상으로 나타난다. 도솔래의상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시기 위해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그렸다. 전생에 도적으로 몰려 말뚝에 묶인 채 활을 맞는 장면, 전생의 모습인 호명보살로 흰 코끼리를 타고 아야부인의 옆구리로 들어가는 장면, 마야부인과 정반왕이 상서로운 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장차 아들이 성인이 될 것이라는 바라문의 해몽을 듣는 장면 등을 담았다. 1725년 호남의 대표 화사 의겸스님이 제자들과 송광사 불화 불사를 진행할 때 조성된 불화 중 하나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팔상도 수하항마상, 보물 1368호, 조선 1725년

팔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중 주요한 여덟가지 장면을 그린 것이다. 조선후기 팔상탱은 <석씨원류응화사적>의 영향을 받은 도상으로 나타난다. 수하항마상은 수행 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자 방해하려고 나타난 마왕 파순을 항복시키는 모습을 그렸다. 부처님의 정병을 넘어 뜨리려고 마왕의 부하들이 줄을 당기는 장면, 무력으로 부처님을 항복시키기 위해 무기를 가득 실은 마차를 끌고 행진하는 장면, 부처님이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마왕을 물리치는 장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모습 등을 담았다. 1725년 호남의 대표 화사 의겸스님이 제자들과 송광사 불화 불사를 진행할 때 조성된 불화 중 하나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아미타삼존불탱, 조선 1847년

OLYMPUS DIGITAL CAMERA삼일암 지장시왕도, 조선 1765년

지장시왕도는 지장보살과 명부의 왕 10명을 그린 그림이다. 중앙에 지장보살, 협신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10명의 왕과 사자, 동자들을 그렸다. 지장보살은 오른손에 석장을 비껴들고 비교적 편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연당초문 장식이 눈에 띈다. 송광사 16국사진영을 조성한 화사 쾌윤이 그린 불화로, 구도와 색조를 안정적으로 표현하였다. 1765년 삼일암에 봉안했다가 1955년 관음전 동쪽벽에 이안하였으나 1991년 도난됐다. 이후 2014년에 환수하여 2017년 4월 6일에 송광사로 다시 모셔왔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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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전 신중도, 조선후기

신중도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그림으로, 범천, 제석천과 동진보살, 성중들을 그렸다. 법천, 제석천, 동진보살 모두 고대 인도 신화의 신들이었으나 불교에 들어와서 부처님이 나타나실 때마다 설법을 청하여 듣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불구와 불기
불교의식 중 예불은 삼귀의를 고백하고 다짐하는 행위로 하루 3번 아침, 사시, 저녁에 부처님께 예불한다. 불구는 이러한 의식에서 사용되는 도구로 크게 범종, 금고, 운판, 목어, 법고, 목탁, 향로, 촛대, 다기, 정병, 요령, 금강전, 발우, 석장, 불자, 불명패, 위패 등의 의식 용구와 천개, 풍령, 화병, 번, 당 등의 장식용구로 나눌 수 있다. 불기는 불전에 공양하거나 재를 올릴 때 쓰이는 기구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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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조선 1755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저, 고려

원래는 인도의 무기로, 제석천이 사용했다는 신화도 있으나 밀교에 들어오면서 불구로 사용된다. 스님들이 어리석은 생각을 없앤다는 의미로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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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요령, 보물 176호,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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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오고령, 고려

요령은 불가에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로, 손잡이 부분이 금강저의 모양이면 금강령이라고 한다. 소리를 통해 진언의 법력을 퍼트려 중생들의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하고, 의식 때에는 영혼을 부르는데 쓰기도 한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능견난사, 고려후기

능견난사는 융기로 만든 기법이 특이하여 위로 포개도 맞고 아래로 포개도 그 크기가 딱 들어맞는다. 조선 숙종이 똑같이 만들어 보도록 명했지만 똑같이 만들어 낼 수가 없어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란 뜻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500여점이 있었으나, 현재는 30점이 남아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송광사박물관] 불교 경전

송광사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도량으로 다양한 불교경전들을 소장하고 있다. 조계종의 근본경전인 금강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들과 한글창제 이후 한글로 번역한 다양한 언해본 불경 등이 있다. 그 중 경패(보물 175호)는 고려시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던 꼬리표로 그 제작수법이 뛰어나며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경전
경전이란 부처님이 설한 교법과 그것을 기록한 불교성전을 말한다. 범어로 ‘수트라(Sutra)’라고 하며 크게 경(經).율(律).논(論) 세가지로 분류된다. 경은 석존이 설한 가르침이며, 율은 수행사문과 재가 신도들이 지켜야 할 계율 및 규약이며, 논은 경전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주석한 것이다. 분량은 84,000법문으로 그 종류와 내용이 방대하며 그 중 초기경전은 부처의 생생한 육성을 그대로 담은 경전이며 대승경전은 부처의 말씀을 사상적으로 담은 경전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경전의 탄생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머무신 동안에는 당신의 가르침을 암송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었지만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에게는 부처님의 정확한 가르침을 기억하고, 또 후대에 전승할 막중한 의무가 있었기에, 제자들을 중심으로 가르침을 결집하였으며 이렇게 경전이 탄생하였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인천안목 목판, 보물 1911호, 조선 1529년

『인천안목』은 중국 남송의 고승 지소가 당시 중국 선종의 가르침, 특징 등을 기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이 목판은 1529년 송광사에서 개판한 것으로, 유학자 이색의 발문, 무학대사의 증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완전한 구성을 갖춘 42판 167장의 목판이 남아 있으며 현재 모본이 되는 목판이 전해지는 것은 송광사가 유일하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 보물 1909호, 조선 1635년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승경전의 하나인 『화엄경』을 중국 당나라 징관이 주소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이 주해한 교장류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 통칭되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금강경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약칭으로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능히 일체를 끊어 없애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공(空)사상의 기초가 되는 경전이자 조계종의 근본 경전이며 선종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전이다. 경전은 공의 이치를 가장 잘 터득하고 있었다는 수보리존자와 부처님이 문답식의 대화를 전개해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반야바라밀경, 조선 1570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반야바라밀경, 조선 1660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반야바라밀경 경판, 조선 1618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반야바라밀경, 조선 1618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반야바라밀경 경판, 조선 16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경패, 보물 175호, 고려

경패는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제작된 경질이나 목함의 곁에 달아 그 안의 경전에 수록된 내용을 식별하기 위해 부착했던 꼬리표이다. 이 경패는 제6세 원감국사께서 강화도 선원사의 거란본대장경을 송광사로 이운할 때 함께 옮겨져 온 것으로 건란본대장경 외부에 달아두었던 것이다. 조각의 정교함이나 그 수법이 매우 뛰어나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유물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한글로 보는 말씀, 불교서 언해
언해본이란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한 책으로 1443년 훈민정음 창제 이후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해사업 초기에는 불교서적을 중심으로 번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석보상절」은 그 가운데 간행된 최초의 불교 언해본이다. 이후 세조는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경 언해에 힘을 쏟았으며 이때 『월인석보』,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선종영가집언해』, 『아미타경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등이 간행되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묘법연화경언해, 조선 1799년

OLYMPUS DIGITAL CAMERA오대진언집언해, 조선 1538년

다양한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말씀을 통틀어 일체경 또는 대장경이라고 한다. 크게 근본경전과 대승경전으로 나뉘는데 근본경전에는 『법망경』, 『법구경』, 『숫타니파타』, 『자타카』, 『백유경』, 『유교경』, 『미린다왕문경』 등이 있다. 대승경전에는 대승불교 초기 『대품반야경』, 『소품반야경』을 비롯해 『대반야경』, 『반야심경』, 『금강경』, 『관음경』, 『무량의경』, 『유마경』, 『화엄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의 다양한 말씀이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유미힐소설경, 조선 1854년

5세기초 구지국 출신의 학승 구마라집이 번역하였다. 총3권14품으로 구성된 이 경은 출가하여 불도를 닦는 비구들보다 재가불자인 유마힐이 부처님이 깨달은 신비한 교리를 더 잘 알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보물 205호, 조선 1461년

이 책은 아비달마잡집론에 신라의 현범이 해설을 붙인 것으로, 부처님의 열반에 관해 설명한 책이다. 전체 16권 중 권13과 권14를 각기 1책으로 묶은 것으로 책의 끝에 고려 선종 10년(1093)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 원래 교장의 하나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교장을 원본으로 하여 다시 목판에 새긴 후 찍어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반열반경소, 보물 90호, 조선 1461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열반을 다루고 있는 경전으로, 중생들에게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같이 이해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고려 숙종 4년(1099)에 대각국사 의천이 각국에서 구해온 불경을 간행한 숙장경을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새긴 것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보물 204호, 조선 1461년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 중에서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송나라 시효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쓴 책이다. 책 끝에는 고려 숙종 4년(1099)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펴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천태은사한산습득시집, 고려 1254년

중국 당나라의 한산.습득.홍간 세 사람의 시를 모아 놓은 책으로 여구운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 쓰인 글자체가 같은 기관에서 간행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매우 흡사하여 고려 제조대장경의 조성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고려 고종 41년(1254)에 진주에 설치된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 인출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과주묘법연화경 권7, 보물 1468호, 조선 1461년

OLYMPUS DIGITAL CAMERA성유식록의경초 권12, 보물 1468호, 조선 1461년

OLYMPUS DIGITAL CAMERA묘법연화경현의 권 3, 4, 보물 1468호, 조선 1461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위역경다리니 권 4, 보물 1468호, 조선 1461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송광사 박물관] 승보사찰 송광사

순천 송광사(사적 506호)는 수행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수행도량으로 승보사찰로 불리운다. 통일신라 때 처음 창건되기는 했으나 그 위상이 높지는 않았다. 고려중기 무신정권 때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불교개혁운동인 정혜결사 중심 도량이 되면서 한국불교에 중요한 사찰로 자리잡게 되었다. 송광사는 12국사를 모신 국사전를 중심으로 한 수행공간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는 등 다른 사찰에 비해 수행공간의 특징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고려말 송광사의 위상과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해오고 있다.

송광사의 창건
송광사는 통일신라 말 혜린선사께서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께서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정혜결사 도량으로 송광사를 택하신 뒤 총16분의 국사스님을 배출하였고 조선시대로 들어와 부휴선수 스님과 제자들이 머무르시면서 승보사찰의 전통을 이어왔다. 근래에는 효봉, 구산 스님이 그 전통을 이어 한국정신 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1969년 종합 수도도량인 총림이 된 송광사는 선원, 강원, 율원 등의 기관에서 스님이 상주하며 참선과 경전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행도량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송광사의 이름 유래
송광(松廣)의 이름 유래는 송광산의 이름에서부터 전해진다. 조계산의 원래 이름은 송광산인데 예부터 몇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나는 이 산에서 장차 <十八公(18명이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어 불법을 널리 펼 훌륭한 산>이기 때문에 송광이라 했다는 것이다. 송(松)자를 十八公이라고 풀이하고, 광자는 ‘부처님 말씀을 널리 펼치다’의 뜻으로 해석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송광의 뜻을 보조국사의 나무 매 전설에서 따와 솔갱이라고 풀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산에 소나무가 가득해 있는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수선사형지기(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고려, 보물 572호

유물을 통해 본 수선사
수선사형지기는 사천대(고려시대 관청의 하나)의 관리가 기록한 문서로 수선사의 창건연혁 및 가람이 배치상황, 불상과 건물의 현상, 보조국사 비문, 승려수, 재산목록과 함께 제위보이 내용과 규모, 예식보시, 전답.시지.염전.산전의 규모, 노비의 수 등을 기록한 등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사찰의 규모와 건축 상황 및 재산상태 등을 규명하기에 좋은 자료로 상당한 규모의 가람을 갖추었던 수선사의 경제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특유의 관리문서형식을 함께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비문서와 함께 보물 제572호로 지정된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노비문서, 고려, 보물 572호

1281년 작성된 노비문서이다. 수선사의 주지였던 원오국사가 아버지인 양택춘으로 받은 노비를 당시 사찰에 봉안한 거란본 대장경을 관리할 수 있도록 관에서 인증한 문서이다. 세속인인 부친이 출가한 자식에게 노비를 상속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례적인 문서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주지 임명장, 조선 18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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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주지계보, 일제강점기 1921년

불.법.승 삼보사찰
불교에서는 참으로 귀하고 값진 보배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이를 삼보라고 한다. 그 세가지는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승가이다. 이는 불교를 받치는 세 기둥이요,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요소로 한국 불교에는 일찍부터 이 보배를 간직하는 삼대 사찰이 있고 이를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곧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장경이 봉안된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한국 불교이 승맥을 잇고 있는 송광사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전도

송광사 전도는 근현대 불교미술의 거장 금용일섭 스님이 그린 송광사 전각배치도로, 1961년에 한국전쟁 이전의 송광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송광사 경내 전각들 뿐만 아니라 산내 암자까지 그려져 있어 당시 송광사 가람배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그림이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송광사의 가람배치
가람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등 사부대중이 모여사는 곳이라는 뜻의 범어인 승가람마의 준말로, 가람배치는 사찰의 건물배치를 뜻한다. 송광사의 청건 초기에는 금당 앞의 마당을 중심으로 주요 건물들이 행랑으로 둘러싸인 공간 구성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삼국시대부터의 전통적인 평지 가람형식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산지사찰이면서 평지 가람적인 배치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송광사의 공간 구성상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송광사의 역사 기록인 『수선사형지기』, 『조계산수선사중창기』 등의 문서와 <불일보조국사비명>에 기록된 건물 명칭을 통하여 배치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송광사의 가람배치는 화엄일승법계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 사중에서는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화엄일승법계도는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210자 7언시를 도식화한 것으로 『국사전중창상량명변서』, 『해청당중수기』 등이 기록을 통해 송광사의 건물배치와 요사채의 명칭이 법계도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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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가람배치 (모형)

여덟 번에 거친 중창과 중수 과정 속에서 송광사의 가람배치도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쳤다. 제 5.6차 중창 이후 송광사의 가람배치는 『조계산송광사사고』 「건물부」와 유리건판 사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42년 일어난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과 승방 2,152칸이 소실됐다. 이후 용운화상이 주도로 14년간 복구하여 제5차 중창을 완료하였고, 그 이후 1922년에서 1928년까지 퇴락한 건물을 전체적으로 중수하여 1930년대이 가람배치가 이루어졌다. 대웅전을 전면으로 법왕문, 종고루, 대장전, 해탈문 등의 문루로 중심축을 형성하여 대웅전의 좌우로 명부전과 대지전이 위치하고, 전각의 전면으로 각각 심검당, 용화당 및 창고, 보제당 등의 건물을 배치했다. 이후 한국전쟁과 여순사건 등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취봉스님과 구산스님이 대웅전, 명부전, 응향각 등을 중창하고 종고루와 박물관을 새롭게 조성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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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람배치

현재의 송광사 가람배치는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이루어졌던 제8차 중창을 통해 구성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하단.중단.상단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하단에는 일주문을 포함해 우화각과 사천왕문, 화엄전 지역의 요사공간이 있다. 중단에는 범종각을 시작으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신행구역이다. 가장 높은 상단에 스님들의 선방과 선원, 고승 진영을 모신 풍암영각과 16국사 진영을 모신 국사전이 위치해 있어 가람배치에도 승보사찰의 특성이 드러난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봉산제도와 사찰림 관리
봉산(封山)은 조선시대 특정 산을 지정.국가 수요의 임산물 공급을 위하여 민간의 이용을 제한.금지한 제도를 말한다. 그 목적에 따라 황장봉산-왕실의 관 제작용, 선재봉산-선박제조용, 율목봉산-신주제작용, 향탄봉산-능묘 제사용 향목.목탄 제조용 등으로 나뉜다. 왕실에서는 사찰에 봉산보호의 책무를 부여하는 대신 사찰의 부역과 잡역 등을 감면해 주기도 했다. 송광사에는 1830년 율목봉산과 1900년 향탄 봉산이 내려졌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향탄봉산별순행금송패, 대한제국 1900년, 송광사 총섭패, 조선 1830년

OLYMPUS DIGITAL CAMERA조계산 송광사사고 산림부, 일제강점기

조계산 송광사사고 산림부
『조계산 송광사사고』「산림부」에는 1830년부터 1929년까지 100년 동안 사찰림 관리에 관련하여 율목봉산과 향탄봉산의 지정과정과 운영방법, 밤나무와 소나무의 벌채 및 운반방법, 이웃 선암사와의 산림경계분쟁에 대한 5년간의 송사 내용,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불복신청과정, 1927년과 1929년에 작성된 산림시업안 등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천안박물관] 천안의 읍지

조선시대 천안지역에는 천안군, 목천현, 직산현이 있었다. 천안 삼거리는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의 분기점이었던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교통의 요지이자 평야가 비교적 넓은 지역으로 고대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던 고장이다. 조선시대 천안은 경제적으로는 풍요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교문화가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름난 서원이나 고택 등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현재는 옛 직산현 관아가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천안의 읍지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곳” 천안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기 위해 태조산에 올라 도솔의 땅을 살펴보고 내린 이름이다. 천안시는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백제시조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천안시는 1914년 천안군으로 통합되기 이전까지 천안.목천.직산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다. 천안은 고려시대 이후 환주, 영주, 영산군 등으로 불리다 조선 태종 때 천안으로 복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 동쪽에 위치한 목천은 백제시대에는 대목악군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록군으로, 고려 초에는 목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목천이라 하고 현감을 두었다. 시 북쪽에 위치한 직산은 본래 삼한 목지국의 옛 터로 고구려가 취한 이후 사산현으로 불리다가 고려 때부터 직산이라 하였고 조선 태종 때 현감을 두었다. 1963년 1월1일 천안읍이 발전하여 천안시로 승격되면서 천안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5월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이 통합되었고 2008년 7월 동남구와 서북구가 개청하였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성지, 1852년, 천안군수 한여가 사족들의 협조를 얻어 편찬한 천안읍지로 건치연혁, 산천, 풍속, 인물 등 62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록지, 1817년, 1779년 안정복이 편찬한 대록지를 1817년 조국언이 중보하여 편찬한 목천현로 건치연혁, 산천, 풍속, 인물 등 41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록삼강실록, 1903년, 목천지역의 충신, 효자, 열부, 효부 등의 행적을 모아 간행한 책

OLYMPUS DIGITAL CAMERA한명회 묘지석, 조선 중종2년(1507)

네모난 모양의 분청사기 묘지석으로 중종반정 이듬해에 2차로 제작된 것이다. 한명회의 인적사항, 선대가계, 행적, 관로, 성풍 등의 기록되어 있으며, 찬자는 최숙생이다. 충남 공주 학봉리 가마터에서 한명회 묘지석 파편이 확인되어 공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24매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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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도 초상, 조선

이 초상화는 1624년 그려진 정사공신상이 아니라 18세기 전반에 작은 종이 초본의 얼굴 모습을 토대로 하여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상화가 특이하게 얼굴과 사모의 모사법은 17세기 초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모습과 유사하지만, 신체와 관복, 교의자, 각담의 모사법은 18세기 전반 초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정1품의 품대인 서대를 착용한 것으로 보아 홍진도가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후에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17세기 공신화상을 대체하기 위해 그린 18세기 초상화의 매우 특이한 사례로 주목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홍진도 시호완의, 1741년

시호는 왕과 왕비를 비롯하여 벼슬을 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의하여 왕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말한다. 이 자료는 홍진도에게 충목이라는 시호를 내리기로 한다는 내용의 완의로 1741년 9월 27일 사간원에서 작성한 것이다. 충목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을 받들었기에 충’ 그리고 ‘덕을 베풀고 항상 정의롭게 행하였기에 목’이라 한 것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조주부유서자필, 1636년

홍희가 아들 홍진도에게 남긴 유서를 옮겨 적은 것이다. 종가를 팔지 말 것, 조상의 신주를 종가에 보관할 것을 먼저 당부하고, 이어서 조부모와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배정한 전답과 노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로써 당시 집안이 소유한 재산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데, 동대문 밖, 남양, 수원, 용인 등 경기 일대에 산재하며 상당한 규모로 추정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박문수 시권, 1722년, 박문수가 과거 시험을 보며 작성한 시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문수 유지, 1728년, 영조가 경상도 관찰사 박문수에게 내린 유지이다. 박문수가 관할 지방관의 근무성적을 올린 장계에 대해 그중 성적이 좋은 정석범에게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문수 증시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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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비문

OLYMPUS DIGITAL CAMERA비문, 1899년

OLYMPUS DIGITAL CAMERA수령관안, 18세기말, 충청도의 각 고을 수령, 찰방, 절도사, 진관 등 현황을 기록한 병풍식 책자

OLYMPUS DIGITAL CAMERA차정첩, 조선시대, 유학 김택수를 춘향 석전제에 집례로 선정되어 참석을 알리는 문서

OLYMPUS DIGITAL CAMERA천안군수 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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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단자, 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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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구, 1689년 12월

OLYMPUS DIGITAL CAMERA관안, 조선후기

관안(官案)으로 구성된 존안류이다. 관안은 각 관서별로 현임자의 명단이다. 이러한 존안류는 편의상 기름먹인 장지에 철첩으로 장첩한 다음에 현임자의 명단을 소편지로 써서 붙여놓았고, 인사이동으로 변화가 있으면 구임자 것을 떼고 새로 부입자를 써놓는 것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호패, 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인장, 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천안군관아 지도

OLYMPUS DIGITAL CAMERA천안군관아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목천향교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직산현 관아 모형

직산현 관아와 영소정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사무를 보던 관청 건물이다. 1872년 제작된 직산현 지도에 의하면 이때까지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호서계수아문, 내삼문, 동헌, 책방 등 4동만 남아 있다. 관아의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태의 건물로 호서계수아문이라는 현팜이 걸려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직산현이 경기도를 지나 충청도의 첫번째 고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충청도읍지」에 의하면 1665년 현종이 온행 때 이곳에 이르러 작은 연못을 감상하고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듬해인 1666년 현감 윤취은이 정자를 건립하고 송시열에게 이름을 청하니, 연못의 아름다음을 칭하여 영소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영소정은 1870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거되었지만 부왕인 현종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영소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숙종대왕의 어제시와 송시열의 직산영소정기 등 44명의 신료들의 시를 묶어 직산영소정어제서 갱화첩이 전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천안삼거리 부근에 위치한 천안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안삼거리 부근

<출처>

  1.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